이명박의 당선으로 말미암아 노무현의 퇴임 후 신변안전이 보장된다는 이야기는, 전직 국가원수로 신분이 변화한 노무현이 평가하기에 나름대로 우호적인 인물이 차기 대통령에 취임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노무현으로부터 이명박에로의 평화적 정부 이양이 기정사실화된 지금, 청와대는 매우 평온한 표정이다. 체념의 소산이라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담담한 기색이다. 정권을 빼앗긴 측에서 보통 내비치곤 하는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신기할 만큼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청와대에 가장 절망과 당혹감이 감돌았던 순간은 정동영이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자로 확정됐을 때였다. 이회창이 정계복귀 결정을 발표했을 적에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명박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경우에 직전의 집권세력, 특히 친노인사들을 대상으로 절대 살생부를 만들지 못할 사람으로 인식된다. 남의 잘못을 문제로 삼기에는 이명박 스스로가 켕기는 구석이 엄청 많기 때문이다. 그가 정치보복에 나서는 즉시 뭐 묻은 게 뭐 묻은 거 나무란다는 반발이 일제히 터져 나오는 이유에서다. 과거사 정리의 외피를 두른 정치보복에도 최소한의 명분과 정당성은 갖춰져야 하는 법이다.
노무현을 뱃사람에 비유하면 그는 예인선을 엉터리로 몰다가 유조선 옆구리에 구멍을 낸 무능한 초보 선장이다. 초보 선장의 부주의한 항해는 막대한 분량의 원유가 천혜의 황금어장으로 유출되는 환경재앙을 초래했다. 이때 이명박이 등장해 모든 기름을 일주일 안에 깨끗이 치울 수 있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한다. 바다를 광범위하게 오염시킨 기름띠와 해변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타르 덩어리를 하루빨리 제거하기 바라는 어민과 국민들로서는 이명박의 자신만만한 호언장담에 일단은 희망을 걸어볼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명박이 사용하려는 방제수단이 당장 눈에서 기름만 보이지 않게끔 조치하는 대증요법이라는 데 있다. 그는 유화제를 뿌리는 방법 이상의 해법은 갖고 있지 않다. 2차 오염의 발생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하지만 유조선 습격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무능한 초보 선장의 시각에서 사태를 바라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름이 속히 대중의 시야에서 자취를 감춰야만 자신을 겨냥한 원성이 조기에 가라앉는다. 예인선 선장한테 중요한 일은 기름띠의 근본적 제거와 조속한 환경복원이 아니다. 자신의 몫으로 떨어질 책임부담의 최소화다. 해안을 뒤덮은 죽음의 기름 덩어리들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제거하는 과정은 길고도 험하기 짝이 없다. 예인선 선장을 향한 원망과 분노는 국민과 어민들 사이에서 제거기간과 비례해 높아진다.
국민원로는 결과를 가치판단의 중심에 두자는 소신과 철학을 늘 견지해온 터다. 동기의 도덕을 믿지 말라는 거다. 결과의 윤리를 숭상하자는 것이다. 왜군을 무찔러야 한다는 동기의 진정성과 순수성만을 고려하면 원균이 이순신보다 열 배는 훌륭한 장수였다. 동기의 도덕률만으로 전쟁에 임한 결과, 원균은 거북선을 포함한 100여 척의 금쪽같은 아군 함선들을 거제도 앞바다에 수장시켰다.
노무현과 이명박이 상생과 공존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은 벌어진 결과만을 기준으로 삼더라도 이미 올바른 분석이다. 따라서 그들의 행동을 추동한 동기에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동기야 어떻든 여태껏 노무현의 일거수일투족은 이명박의 대통령 선거 승리를 한 발 한 발 앞당기는 계기로 작용해왔다. 현재까지는 ‘노명박’에서 주로 이명박이 이득을 취해왔다는 의미다. 퇴임한 이후의 신변안정 보장을 제외하면 노무현은 이명박과의 관계에서 별다른 실리를 취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원히 남는 장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마련이다. 노무현과 이명박의 관계에서 12월 19일은 중대한 분수령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손익분기점이 갈리는 날인 탓이다. 둘 가운데 노무현이 얻을 바가 더 커진다는 소리다. 이명박이 손해를 볼 순서가 마침내 왔다는 말씀이다.
흔히 유화제로 알려진 유처리제는 원유를 단지 바다 밑바닥으로 침전시키는 역할을 수행할 따름이다. 해결이 아닌 은폐인 셈이다.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원유는 두고두고 해양생태계를 파괴한다. 더욱이 일부 환경운동가들은 유화제가 2차 오염의 주범인 ‘오일볼’의 생성을 촉진시킨다는 주장마저 펼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수습하겠다는 명목으로 출범한 이명박 정권은 전임 정권이 남긴 모순들을 확대재생산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이명박은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란 비난여론에 편승해 집권에 성공했다. 한데 “이게 모두 이명박 때문이다!”라는 암초에 걸려 좌초할 운명이다. 오일볼 노무현은 유화제 이명박에게 비난여론이 쏠린 틈을 타고 슬금슬금 육지에 상륙하리라. 정권이 교체되는 것과 동시에 노명박 관계의 부양자와 수혜자 또한 서로의 위치를 맞바꾸게 될 테니까.
생각해보면 이명박은 사업도, 정치도, 선거도 참 편하게 했다. 너무도 쉽게 성공한 데 대한 대가를 치를 날이 차츰차츰 다가오고 있다. 유권자들이 이명박에게 기대했던 ‘노무현 정권 청산’에 완벽히 실패했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바로 그날이. 이명박과 노무현은 다르다는 이명박 지지자들의 그릇된 신념이 완전히 박살나는 무시무시한 아마겟돈의 시점이. ‘노명박 시스템’이라는 한국정치의 괴물은 이제 그 최대 수혜자인 이명박까지 바야흐로 게걸스럽고 무자비하게 잡아먹을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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