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렸을 때, 집에는 ‘삼국지’ 책이 가득했습니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완역본인 ‘대삼국지’ 10권부터 요약본 3권짜리 아동용 만화까지 다양한 버전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부친의 친구인 수학선생이 ‘삼국지’를 3번 읽지 않으면 사람 구실도 못한다는 말을 자주 하여, 저도 초등학교 시절부터 ‘삼국지’를 읽어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그 어떠한 역사적, 문학적 감동도 느낀 바 없었습니다.
2018년 1차 구속기간에 다시 한번 ‘이문열 삼국지’ 10권을 읽고서야 ‘삼국지’ 자체의 문제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반면, 시바 료타료의 ‘사카모토 료마’ 책을 읽을 땐 전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사카모토 료마’에는 일본의 근대국가 건설과 자유민권 사상이 녹아있기 떄문입니다.
이번 2차 구속 때 ‘이문열의 초한지’를 읽으면서 ‘사카모토 료마’ 때와 비슷한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삼국지’에서는 전혀 없는, 진시황제에 나라를 빼앗긴 각 제국 후손들의 치열한 독립투쟁, 그 과정에서 백성을 위한 나라와 ‘왕’은 무엇인지, 왕도정치의 철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온갖 속임수와 권모술수만 난무한 ‘삼국지’와 달리, ‘초한지’는 누가 ‘민심’과 ‘민도’를 잡느냐는 국가경영의 문제를 다룹니다. 즉, 전쟁의 최고봉 항우를 정치의 최고봉 유방이 제압하는 과정이 초한지의 스토리인 것입니다.
항우에 쫓겨 수레에 타고 도망치던 유방은 같이 타고 있던 두명의 어린 아들을 발로 차, 수레에서 떨어뜨리려 합니다. ‘내 아들을 살리려다 항우에 잡혀 내가 죽으면, 나를 따르던 장군들과 백성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삼국지’에서 조자룡이 유비의 처와 자식을 구하러 목숨을 걸고 적진 깊이 들어가는 대목과 비교되는 장면이지요.
소설이 아닌 ‘정사 삼국지’에서의 유비는 사실 ‘조조’에 기생하며 수시로 뒤통수를 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나 주워먹는 인물입니다.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으니 ‘삼국지’가 형편없을 수 밖에 없지요.
저는 부친과 달리, 딸 ‘주해’ 주위에 각종 ‘초한지’ 관련 책과 만화, 영화 등을 깔아놓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디어워치에서 기획, 제가 직접 ‘초한지’ 소개 다큐도 제작해볼 생각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삼국지’ 이전에 ‘초한지’, ‘사카모토 료마’, 그리고 조만간 나올 ‘태블릿 진실 투쟁기’ 등을 읽고 자라게 될 것입니다.
2025. 12. 23. 남부구치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