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덕 캘리포니아주 변호사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이사에 대한 재판이 부당했다는 내용의 서신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변호사는 17일자 “사법 시스템의 붕괴와 조작된 선거”라는 제목의 서신을 통해 변희재 대표와 관련,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애국 성향 방송사인 미디어워치의 현직 대표”라며 “그는 여전히 51세의 젊은 남성으로, 막 결혼했고 그의 첫 딸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그에게 서울구치소 2년형을 선고하기 전날 밤에 태어났다”고 소개했다. 그는 변 대표의 구속에 대해 “이 사건의 법적 근거는 잘못된 소송 원인(즉, 허위 사실이 없는 상태에서의 법인 명예훼손)이었으며, 전반적으로 적법 절차가 결여되어 있었다”며 “어떠한 하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 불법적인 구금을 막는 영미법계의 법적 제도, ‘인신보호청원’)도 고려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장 변호사는 “판결문은 근거 없는 변명과 논리적 오류로 가득 차 있으며, 무려 36페이지에 달한다. 미국 기준으로 볼 때 극히 불합리하고 부당하다. 이는 모두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며 “그들은 붕괴된 사법 시스템에 의해 학대받고, 타락하고 비정통적인 정권에
아르망 이스라엘의 ‘다시 읽는 드레퓌스 사건’을 읽었습니다. 1894년 드레퓌스가 투옥되고, 약 1년만에 결정적 조작 증거가 잡힙니다. 이를 잡아낸 인물은 피카르 대령입니다. 그러나 프랑스 법원은 오히려 피카르 대령을 구속시킵니다. 1898년 에밀 졸라가 나서, 드레퓌스 조작 사건 주범과 배후의 실명을 공개하며 ‘나는 고발한다’는 칼럼을 ‘로로르’지에 게재합니다. 그러나 에밀 졸라마저 군법정 모독죄로 구속형이 확실해지자 영국으로 망명합니다. 드레퓌스의 변호사는 법정에 가는 길에 반대파 인사의 총탄에 맞고 중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에밀 졸라 또한 의문사를 당합니다. 결국 피카르, 에밀 졸라 등 프랑스의 양심-진실 세력들의 목숨을 던진 투쟁 끝에 12년만인 1906년에야 드레퓌스는 무죄를 선고 받고 명예회복을 합니다. 프랑스의 명예를 지켜낸 피카르 대령은 국방장관직에 오릅니다. 반면 드레퓌스 조작의 실무를 맡은 앙리 대령과 그 수하들은 모두 의문의 자살을 당합니다. 배후세력들이 꼬리를 자르려고 앙리 일당을 자살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제 무려 9년째 투옥된 최서원 씨가 한동훈, 장시호 등에 대대적인 소송으로 반격에 나섭니다. 이미 드레퓌스 사건 이상으로 조작 증거
지난 12월 15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연세사랑병원 고용곤 병원장 등의 대리수술 및 유령수술 등 의료법 위반 혐의 8차 공판에서, 병원 측 변호인단이 환자의 피해 호소를 외면하고 사건을 단순한 법리 해석 문제로 축소하려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이날 변호인단이 내세운 논리는 지난 7차 공판까지 과정에서 증언을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수술실 실태와 정면으로 배치돼, 병원 측이 반성보다는 ‘법 기술’을 이용해 처벌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이날 공판은 핵심 증인 김미영(가명) 씨의 불출석으로 인해, 향후 증인 채택 및 입증 계획을 논의하는 공방 위주로 진행됐다. 당초 해당 증인은 피고인들과 마주치는 것을 꺼려 차폐막(가림막)이 설치된 상태에서의 증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재판에는 끝내 참석하지 않았다. 이에 검찰 측은 다음 공판기일에 대리수술 피해자로 의심되는 환자 김충호(가명) 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김 씨는 수술 후 심각한 부작용을 겪었으며,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비를 환불받은 정황이 있어 대리수술 여부를 규명할 핵심 증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변호인단은 이를 강력히 반대했다. 변호인 측은 “이번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