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셀럽

[정치셀럽] “청춘을 바친 대한민국 군의 명예를 위해 ‘그들’에 회유당하지 않았다” - 김현태 전 707특수임무단장(1)

세번째 초대 셀럽, 김현태 전 707 특수임무단장
“장군·지휘관 줄줄이 파면… 사실상 정치적 숙청과 공포 통치”
“언론·검찰·판사 믿던 시절에서 이제 시민들 편에 서서 싸워야 생각”
“재판 결과 연연하지 않기로 해… 마음은 더 가볍고 전투력은 더 올라갔다”
“군인은 위기 때 나라 구할 수 있는 리더가 되도록 준비돼야”
“‘고맙다·응원한다’ 시민분들 말에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해”

인싸잇의 정치 섹션 코너 ‘정치셀럽’은 정치권에서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유명인과의 인터뷰’를 다룹니다. 인터뷰 대상은 전현직 국회의원이나 정당인 등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 분야에서 대중에 영향력 있는 유튜버, 법조인, 언론인, 학자, 기타 일반인 등의 셀럽을 포함합니다. 이들과 현 시국, 정치 철학, 목표, 개인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갈등과 화만 돋우는 정치’가 아닌 ‘흥미롭고 배울 게 많은 정치’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파면 통보를 받은 김현태 전 707특수임무단장은 이제 시민들과 함께 아스팔트에 서서 자신이 겪은 계엄 사태의 경위와 군·안보 현안을 증언하는 인물이 됐다. 대통령 경호와 대테러·대침투 등 특수 작전을 맡는 707특수임무단은 흔히 ‘대한민국 군의 최정예 창끝’으로 불리는 부대다. 그런 부대의 지휘관이 군복이 아닌 사복 차림으로 시민들 옆에 서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모습은 최근 우리 군과 정치·사법 제도, 안보 정책을 둘러싼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인터뷰 내내 김 전 단장은 군과 부대원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보이면서도, 현 상황이 장병들에게 가져올 혼란과 조직의 붕괴 위험성을 우려하며 이를 바로잡고 싶다고 토로했다. 김 전 단장은 아스팔트에 나온 시민들을 떠올리며 여러 차례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애국 시민께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거리로 나오게 했으며, 또 시민들에게 감사와 눈물을 전하게 했을까. 지난 30년 동안 참군인으로 살아오며 ‘대령’이라는 계급장까지 달기까지 어떤 선택을 해왔을까. 어떤 국가관과 소신이 그를 오늘 이 자리로 이끌었는지, 또 군을 지휘하던 사람으로서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안보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그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인싸잇>은 12·3 계엄 사태에 대한 김현태 전 단장의 입장 그리고 현 정권 및 군의 상황이 안보와 한미동맹에 미치는 영향, 30년 군 생활과 파면 이후의 삶, 대한민국의 세 아이 아버지로서 품은 교육관과 향후 계획 등에 대해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 2024년 12·3 계엄으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윤석열 전 대통령은 19일 내란 우두머리 1심 재판 선고를 앞두고 있다. 현재 심경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사실 1년 동안 수사와 재판, 언론 보도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꽤 덤덤한 편이다. 이 재판이 헌법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내란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모두가 알고 있다고 본다. 내가 파면된 이후 전한길 전 강사를 비롯해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거리에서 애국운동을 이어온 시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이번 선고가 나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그분들의 눈물과 헌신이 담긴 재판이라는 걸 절실히 느낀다. 지귀연 판사에게도 심리적 부담이 크겠지만, 그 부담을 이겨내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정의로운 판결, 당연히 무죄나 최소한 공소기각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 곽종근 사령관 해임과 김현태 단장의 파면을 비롯해 다른 간부들까지 추가 징계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은 안타깝다. 곽종근 사령관은 직접 모셨던 지휘관이다. 한때는 진실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후 회유 정황들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민주당과 사전에 합의된 것이라는 것을 파악했다. 실제로 다른 사령관들과 대통령은 계속 구속된 상태인데, 곽종근 사령관만 피부 근염이라는 기존 지병을 이유로 해임되기 전부터 보석으로 나왔다. 이것이 재판에서도 내란죄 적용에서 빼주겠다는 일종의 암묵적 약속이 작동한 결과라고 본다. 반면, 저를 포함한 많은 장군들과 군인들이 줄줄이 파면을 당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수십 명이 추가로 징계를 받을 수 있는 문제다. 이 징계 흐름은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지 모르겠으나, 군인의 시각에서 보면 결국 군 조직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다.”

 

- 간부 파면 등 징계를 받는 상황이 군 내부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지금 진행되는 파면과 징계 흐름은 군 조직을 겨냥한 정치적 숙청과 공포 통치로 진단한다. 초기부터 사령관급을 전원 구속시키고 저를 포함한 여러 장교들을 불구속 기소하면서, 3공수여단장·특수작전항공단장 같은 관련자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묶어놓고 ‘뭐라도 내놓으면 살려주겠다’는 식의 협박과 회유가 반복됐다. 수사 과정에서 군인들은 법 절차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자신이 아는 사실에 더해 감정과 개인적 평가까지 실어 진술했고, 그 결과가 특검과 민주당이 원하던 방향과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 인원들이 결국 저처럼 재판에 넘겨졌고, 이들에 대한 추가 징계와 파면이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이런 구조는 군 내부에 불만을 폭발적으로 키우면서도, 파면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앞세워 그 불만을 외부로 표출하지 못하게 틀어막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군을 바로 세우는 인사 정비가 아니라 정권의 뜻에 따르지 않는 군인들을 표적 삼아 본보기를 세우고, 나머지 장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 ‘언제든 협박과 회유가 통하는 사람들’만 남기려는 시도라고 본다.”

 

- 그렇다면 군 징계가 당장 국가 안보까지 연결될 수 있는 사안인지 궁금하다.

 

“당연히 안보와 직접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본다. 지금처럼 장군·지휘관들을 줄줄이 파면하고 징계하면 군 내부에 ‘조금이라도 눈에 띄면 나도 당할 수 있다’는 공포 분위기가 생긴다. 그러면 지휘관들이 결심을 미루고 윗선 눈치만 보게 되고, 전시에 필요한 과감한 판단과 책임 있는 지휘가 사실상 마비된다. 그 자체가 군 전투력을 무너뜨리는 일이기 때문에 안보와 직접 맞닿아 있다고 본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공격해 온다면, 안타깝게도 방어가 제대로 안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평소에도 우리는 북한을 주적으로 삼고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강한 훈련을 해서 이기더라도 많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리도 군사력이 있지만 북한도 군사력이 있고, 한반도라는 공간 자체가 좁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어쩔 수 없이 큰 피해가 날 수밖에 없다. 이기더라도 그런 구조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부 문제뿐 아니라 한미동맹 부분도 크게 걸린다.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혼자서만 자국을 방어하지 않고, 동맹과 관계를 통해 안보를 유지한다. 군에서 전시에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을 ‘핵심’이라고 한다. 북한 군의 핵심은 북한의 전쟁 지도부이고, 한국군의 핵심은 한미 동맹이다. 우리가 전쟁이 났을 때 전쟁의 ‘핵심’은 주적인 김정은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그 지도부를 제거하거나 체포하면 수백만 군인을 다 죽일 필요 없이 이길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국군의 핵심은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이었다. 그래서 총과 탄 같은 무기 체계와 규격도 미국과 같은 표준으로 맞춰왔고, 미국 탄을 우리가 쓰고 우리 탄을 미국이 쓸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왔다. 그래서 수십 년 동안 한미동맹이라는 말을 써 왔고, 한미동맹이 깨지는 순간 우리가 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너희가 자꾸 중국하고 붙으면 우리는 대만, 일본으로 간다’는 식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까지 왔다. 예전에는 이런 말 자체를 못 했는데, 이제는 공공연하게 나온다. 이렇게 한미동맹 약화 흐름까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우리 안보가 아주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라고 본다.”

 

-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고소한 상태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제기한 고소는, 김용현 장관 증인으로 나가 특전사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 건 말고도 언론 보도를 보면 제 이름으로 된 고소가 10건 정도 된다고 나오지만, 지금까지 저에게 정식으로 조사 출석을 요구한 경찰이나 군검찰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고소를 했다면 고소인이 먼저 조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 절차조차 진행되지 않는 걸 보면, 사실관계에 자신이 없으면서 언론플레이용으로 ‘고소했다’는 사실만 흘리고 있다고 본다.

안귀령 부대변인 관련 사안은 우리 부대와 부하들의 명예가 걸린 문제다. 계엄 직후 총기 탈취 논란이 있었을 때 현장에 있던 부대원의 진술서를 받아 군검찰에 제출했고, 그 팩트를 바탕으로 일관되게 이야기해 왔다. 그런데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본인을 피해자인 양 포장하고 거짓 프레임을 씌우며 고소까지 했다. 그래서 이 부분은 더 이상 넘길 수 없는 문제라고 보고, 군인의 작전 중 총기를 탈취한 행위에 대해 군형법까지 적용해 고소할 계획이다.”

 

 

- 지난 1년 동안 수사와 보도, 징계 흐름을 지켜보시면서 처음과 지금 사이에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국가 시스템을 바라보는 눈이다. 처음에는 정치와 언론, 검찰·판사 세계를 잘 모르고, 그저 부하들과 부대 명예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국방부 출입기자 전원을 상대로 공개 기자회견을 하면 진실이 통하리라 믿었고, 국방부도 최소한 사실관계는 지켜줄 거라고 순진하게 기대했다. 수사 초기에는 ‘마지막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검사님뿐’이라는 마음으로 개인 휴대전화 통화 내역과 각종 자료까지 다 정리해 넘겨가며, 한 줄 한 줄 질문을 다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 공소장을 받아보니, 제가 성실하게 제출한 자료를 가지고 사실이 아닌 소설을 만들어 나를 공격하는 문서가 되어 있었고, 수사검사가 그대로 공판검사가 되어 재판정에서 다시 나를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검찰과 법원, 나아가 우리나라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변호사를 구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는 변호사들이 도와주겠다고 했다가 사건 내용을 보고 연락이 끊기거나, 외부 압력을 이유로 수임을 거부하는 일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대한민국이 정말 정상적인 민주국가가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거시 미디어가 사실 확인 없이 가짜뉴스를 쏟아내고, 검찰과 법원이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며 한쪽 방향으로만 기울어 있는 현실을 직접 겪고 나니, 이 나라가 공산국가처럼 미끄러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피부로 느껴졌다.

그래서 혼자 산책을 하며 논어와 안중근 장군의 글을 다시 읽다가 ‘견리사의·견위수명’과 ‘필부불가탈지’ 같은 구절을 붙잡게 됐다. 이득이 아닌 의(義)를 기준으로 서야 하고, 평범한 한 사람의 의지라도 끝까지 꺾이지 않으면 버틸 수 있다는 확신으로 제 기준을 다시 세웠다. 예전에는 언론과 검찰·판사를 믿고 나와 우리 부대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군을 떠난 사람으로서 자유우파 애국 시민들 편에 서서 대한민국이 바로 서도록 싸우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본다. 재판은 변호인들이 하자는 대로 성실히 임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고, 그래서 아이러니하지만 지금이 오히려 마음은 더 가볍고 군인으로서의 전투력은 더 올라가 있다고 느낀다.”

 

- 30년 동안 군 생활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파면 통보를 받았다.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주변인들의 일상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지금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군인을 특별한 직업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군을 직업이라기보다 자신에게 잘 맞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친구 따라 육사를 갔는데, 통제되고 절제된 생활, 사람들과 어울리는 문화가 나와 잘 맞아서 30년 동안 정말 즐기면서 행복하게 군 생활을 했다. 그래서 인생관도 늘 ‘평범하게 사는 게 목표’라고 말해 왔다. 남들처럼 나이 되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아이 낳고, 1년에 한 번 정도 가족 여행 가고, 직장 가지고, 나이 들면 집도 사고, 이혼하지 않고 아이들 다 출가시키는 그런 삶이 제 기준에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이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어렵더라. 그래서 스스로 절제를 많이 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비상계엄 사태와 파면을 겪으면서 내가 꿈꾸던 그 평범한 일상이 한 번에 흔들리긴 했다. 부하들과 함께 군에서 나이 들고, 평범하게 은퇴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남들보다 조금 빨리 전역하게 됐고, 원치 않게 정치 재판이라고 확신하는 재판의 피고인 신분이 된 것이 일상의 가장 큰 변화다. 처음에는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이 이 일로 충격을 받아 건강이 나빠지지 않을까 그게 제일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 없이 전체 상황을 보시고 이해해 주시면서 겉으로는 잘 지내고 계신다. 가족들도 표현은 많이 안 하지만 내가 왜 이 길을 가는지 알고 묵묵히 응원해 주고 있다. 그래도 지금 상황을 ‘완전히 다른 인생’이라기보다, 내가 생각했던 평범한 코스에서 조금 일찍 방향이 틀어진 정도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 군인으로 살아오면서 인생의 모토는 무엇이었나.

 

“군 생활 30년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드는 군인’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사관학교와 장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소명은 단순히 진급을 잘하는 생존형 간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관과 철학을 갖추고 위기 때 나라를 구할 수 있는 리더가 되는 일이라고 믿어 왔다. 그래서 선배들이 이미 닦아놓은 ‘진급 코스’를 쫓기보다는, 특전사와 레바논·이라크·UAE 아크부대 파병을 자원해 나만의 길을 찾는 길을 선택했다. 진급이 조금 늦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조직 운영과 후배 교육을 위해 제 인생의 일부를 기꺼이 포기하는 것이 더 군인답다고 봤기 때문이다. 훈련도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같이 즐기며 더 강해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힘든 훈련 속에서도 특전사만의 자부심과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자 했다. 제 소신은 분명하다. 진급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진급은 그 다음 계급을 잘할 수 있는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진급 기준을 인품과 지휘 능력, 그리고 군인으로서의 철학에 두어야 한다고 후배들에게도 늘 이야기해 왔다.”

 

- 30년 동안 소령·중령을 거쳐 대령으로 그리고 707특수임무단장으로 군 생활을 해 오셨다. 군에 대한 자부심도 남다르실 텐데, 소개해 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달라.

 

“특전사에서는 훈련을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같이 즐기며 더 강해지는 시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장기나 바둑을 못 두는 부대원들을 위해 오목대회를 열기도 했고, 훈련장마다 족구장을 설치해 밤새 산에서 훈련하고 들어온 대원들도 ‘족구 한다’는 소리만 들리면 텐트에서 먼저 뛰어나올 정도로, 힘든 훈련 한가운데 일수록 단합은 물론 작은 즐거움과 추억을 심어 주고 싶었다. 

 

계곡이 얼어붙은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군가 한 곡을 부른 뒤 잠깐 입수했다가 나오는 이벤트를 통해, 고된 훈련 속에서도 특전사만의 자부심과 동지애를 몸으로 느끼게 하려 했다. UAE 파병 부대장 시절에는 ‘어차피 여덟 달은 함께 갇혀 지내야 한다면, 이 시간을 이들의 인생에서 가장 밀도 높은 8개월로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중동은 현지 은행에서 코란에 의해서 고리대금이 불가해 예금이자를 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현지 한국 은행을 찾고 설득해 부대 복지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기도 했다. 또 현지 한인 사회와도 적극적으로 어울려 교민 야구·농구·축구팀을 도우면서 현지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장애인학교 봉사와 광복절 행사 참여를 통해 한국 군인의 존재를 알리는 데 힘쓰기도 했다.”

 

 

- 사관학교 졸업 후 군인으로서 30년 동안 어떤 마인드로 생활해 왔는가. 당시 군인으로서의 목표와 꿈은 무엇이었는가.


“사관학교에 들어갈 때부터 ‘군인’을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앞장서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교로 30년을 살아오며 늘 ‘지금 이 선택이 나와 부하, 그리고 군을 더 강하게 만드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 왔다. 많은 군인들이 대령·장군처럼 계급 자체를 목표로 군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진급은 열심히 근무한 결과로서 주어지는 명예이기 때문에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그것이 군 생활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 버리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인생 전체가 허무해지고 군이 직장과 생계 수단으로만 전락할 위험이 있다.

 

소위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이상은 100%이고 현실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태라 가장 순수한 군인 정신으로 채워져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누구나 현실과 타협하게 된다. 적어도 이상이 51%는 남아 있어야 군 생활이고, 현실이 51%를 넘는 순간부터는 그냥 직장 생활이라고 후배들에게 이야기해 왔다. 그래서 계급이 무엇이든 머릿속에는 ‘내가 이 군의 주인이자 사성장군의 책임감을 가진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소대장·중대장·대대장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장교’는 선배들이 만들어 놓은 진급 코스를 따라가는 관리형 간부가 아니라, 위기 때 조직을 이끌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본다. 그런 생각 때문에 육사 출신들마저 육군본부·합참 같은 안전한 자리를 선호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특전사와 파병 부대처럼 제 전문성을 살려 부하들과 직접 부딪히며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곳을 우선해서 선택해 왔다. 진급이 보장된 보직을 쫓기보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내가 군을 택한 이유’에 맞는 자리에서 땀을 흘리는 것이 더 군인답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인드에서 자연스럽게 세운 제 목표와 꿈은 ‘별을 몇 개 다느냐’가 아니라, 제가 거쳐 간 부대와 사람들이 ‘그래도 저 지휘관 밑에 있을 때는 군대가 군대 같았고 군인으로 사는 게 인정받고 명예롭고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군 생활·가정 생활·사회 생활·취미·자기 개발을 균형 있게 관리하면서 매년 운동 하나와 자기계발 하나는 반드시 해내자고 스스로 기준을 세워 지켜 온 것도 그 연장선이다.

 

제가 떠난 뒤에도 후배들이 조금 더 인간답고 보람 있게 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길을 하나라도 더 열어 두는 군인, 그리고 진급 가능성은 열어 두되 판단의 중심을 ‘나의 이익’이 아니라 ‘부대와 부하, 국가와 군’에 두는 장교가 많아지도록 앞에서 먼저 실천하는 군인이 되는 것, 그것이 지난 30년 동안 제가 붙잡고 있었던 군인으로서의 목표이자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