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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와 국민참여경선 근본적 재검토하자

당의 후보는 당심으로 뽑는 것이 원칙


* 아젠더 자유게시판의 훼드라님의 글입니다.

한나라당 경선은 끝났지만 박사모와 박근혜를 지지했던 일부 보수성향 시민단체들이 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있다. 경선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측에서 현재 가장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국민참여경선에서 여론조사 결과를 투표에 반영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선은 여론조사 결과를 전체 투표수의 20퍼센트가 되도록 환산하는 방식이었다. 가령 투표에 참여한 당원,대의원,국민참여 선거인단수가 8,000명이면 여론조사 응답자가 2000명이 되는 것으로 가정 환산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여론조사 표본을 1,000명 밖에 뽑지 못했을 경우 여론조사에 참여한 국민은 한 사람이 두표를 행사한것이나 마찬가지 결과가 되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 경선결과는 여론조사 한사람의 표의 등가성이 무려 다섯배가 되었다.

한나라당 경선방식의 이와같은 문제점이 결국 경선을 준비중인 민주당에게까지 불똥이 튀게 만들었다. 여론조사를 전체 투표수의 20퍼센트로 반영하면 불리해질것으로 판단한 후보들은 10퍼센트로 낮춰줄 것을 요구했고 당 지도부는 15퍼센트를 절충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여론조사 비율이 높아져야 유리하다고 판단한 조순형 후보측은 20퍼센트가 되지 않을 경우 후보사퇴도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고 조순형을 제외한 다른 후보들 역시 20퍼센트는 안된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헌데 왜 이런 경선방식이 채택되었는가. 사실 따지고 보면 미국식 오픈프라이머리제도를 본딴 소위 국민경선제도는 간접선거제를 하고 있는 미국만의 독특한 선거제도다. 지금의 우리나라 주요정당 경선방식을 당원들이 후보를 뽑는 유럽의 방식과 전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는 미국식의 절충형이라고 말한 전문가도 있던데, 아무래도 적당히 꿰맞춰 평가를 내린 것 같은 느낌이다. 국민경선제도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었다.

당시 민주당이 미국식 예비선거 제도를 본딴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한 것은 보궐선거에서의 잇달은 패배로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자 일종의 국면전환용으로 만든 이벤트였다. 제주에서부터 시작 전국을 순회하는 국민경선. 그리고 거기서 노무현이란 옥동자가 화려하게 탄생하였다. 우리나라로선 최초로 도입한 국민경선제도였기에 당연히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흥행에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국민경선이 흥행에 성공 노풍이 불자 한나라당으로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소위 ' 대세론 '으로 별다른 이변이 없는한 이회창 총재가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이 되는게 기정사실화되어있는 상황에서, 급조된 후보 몇몇을 만들어 형식적은 국민경선을 치뤘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후 주요정당의 당 지도부 경선등은 이와비슷한 방식을 따르게 되었고 이른바 ' 국민경선 '이 하나의 제도화 되어가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으로선 괴리가 있었다. 이른바 당심과 민심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바로 97년 이인제 후보가 경선에 불복 탈당한 명분이 당심이 민심과 너무 다른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는 점 아닌가. 그래서 나온 대안이 당원과 대의원 이외에 여론조사를 후보선출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키자는 것 이었다.

그러나 많은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지적하는것처럼 여론조사로 후보를 선출한다는 것은 무리고 문제가 많다. 2002년에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로 단일화를 한 선례가 있긴 하지만 그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노풍이 식고 대신 월드컵 열기로 인해 정몽준 후보가 뜨기 시작하면서 후보교체론이 일었고 결국 이른바 ' 후보 단일화 '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선이 코앞인대 국민경선을 또 한번 하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여론조사로 인한 후보 단일화였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07년. 한나라당도 범여권인 대통합 민주신당도 그리고 미니정당으로 전락한 민주당도 모두 이른바 ' 국민참여경선 ' 제도로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거나 그렇게 할 예정이다. 민주노동당에서도 한때 ' 민중참여 경선제 '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일단 당원직선제에 의한 후보선출 과정을 진행중이다.

사실 국민경선제도를 도입하게 된 보다 근본적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역시 정치개혁 문제와 만나게 된다. 97년 김영삼 정권 말기 한보사태등의 권력유착형 비리에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고 방송3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정치개혁 문제에 관한 TV토론을 벌였고 시민단체들은 활발히 이 토론에 참여하였다. 그리거 어떻게 하면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정치개혁을 이룰수 있을까 하는 논의과정에서 나온게 보스정치의 폐단과 정당공천의 문제점이었다. 여당의 경우는 집권당 총재인 대통령이 그리고 야당은 정파의 보스가 공천권을 비롯한 정책결정등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 저비용 고효율의 정치개혁은 난망하다는 것이다.

김대중 정권 들어서 이와같은 정치개혁에 관한 토론은 보다 본격화 되었고, 정당구조와 공천제도의 문제점에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이른바 ' 상향식 공천제 '였다. 한마디로 정파의 보스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하향식 공천이 아닌 밑에서 당원과 대의원 또는 지지자들이 직접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 후보자를 뽑는 상향식 공천으로 가자는 것 이었다. 그리고 이후 일부 지방선거나 보궐선거등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상향식 공천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국민경선도 결국 그와같은 상향식 공천의 일환이다. 이전까지의 주요정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여당의 경우는 현직대통령 혹은 현직대통령이 지명한 후계자를 야당의 경우는 당 총재를 대통령 후보로 뽑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와같은 방식이 아닌 직접 당원과 대의원 그리고 일반국민까지 참여하는 ' 상향식 공천 '을 하자는 것이 국민참여경선의 근본취지인 셈이다. - 물론 3김시대 이전의 야당은 민주경선을 치루었다. 하지만 대개는 조직력과 금력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경선이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일단 여기선 논외로 하자.

괴리가 생긴 것이 바로 민심과 당심의 차이다. 97년 일곱명의 후보가 맞붙은 신한국당의 경선은 이회창 후보를 선출했으니 이인제 후보는 ' 당심이 민심과 다른 후보를 선출했다 '며 경선에 불복 탈당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의 한나라당에선 반대로 박근혜 후보 지지자들과 일부 보수진영에서 ' 당심에서 이기고 민심에서 졌다 '며 여론조사 방식의 문제점을 들고 나온 것이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를 좁히려고 여론조사 제도를 도입하자 이번엔 반대로 당심에서 우세한쪽이 반발하게 된 것이다.

당심과 민심의 괴리라. 근데 정당이란 근본적으로 정책이나 이념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만드는 결사체다. 정당에서 뽑은 후보는 결국 그 정당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키기에 가장 알맞은 후보라고 생각되어 뽑은 것이다. 만약 그런 후보가 민심과 괴리에 있다면 정당은 그 후보로 하여금 또 지지자들이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이상과 정책을 설득시키면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 정당정치사야 다들 알다시피 인물중심으로 이합집산을 해 왔다. 그런판에 정당에 대한 그와같은 교과서적인 이야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근본적으로 상향식 공천이나 국민경선 제도 같은 것을 도입한 것은 보스정치의 폐단을 줄이고 특히 경선때면 벌어지는 대의원 줄세우기나 금품매수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데 취지가 있었다. 그러나 국민경선을 하더라도 대의원이나 당원 지지자들 줄세우기는 마찬가지로 일어난다는게 이미 여실히 증명되었다.

결국 소위 당심과 민심의 괴리 이야기는 거기서 나온 것이다. 당내 조직을 많이 장악

했으나 대중적 지지가 취약한 후보가 있고, 반대로 여론조사에선 높은 지지율이 나오는데 당내 지지기반은 취약한 후보가 있다. 이런 현실에선 여론조사를 어떻게 반영하든 또는 국민참여비율을 어떻게 하든 이와같은 반발은 끝없이 일어날 것이다.

97년 신한국당 경선의 경우 이인제후보가 당이 민심과 다른 후보를 선택했다고 경선결과에 불복 탈당했다. 여론조사 제도를 도입한 2007년의 한나라당 경선의 경우 당심에선 이기고 민심에서 졌다며 박근혜 지지자 일부가 반발하고 있다. 이러자 민주당에서도 똑같은 반발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이다. 대중적 지명도를 갖춘 조순형 후보는 여론조사 비율을 높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당내 기반이 있으나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1퍼센트 지지율도 나오지 않는 타 후보들은 여론조사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론조사 반영의 불합리성을 논하기에 앞서 이미 민심이냐 당심이냐 하는 문제로 마찰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식의 국민경선 제도가 계속 가면 이런일은 대선정국때마다 일어날것이란건 불을보듯 뻔한 이치다.

국민참여 경선제도를 민주당에서 처음 도입했을때는 이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이 전무하다시피 한 제도였기에 그저 매주 전국을 돌며 엎치락 뒷치락 하는 집권당의 경선 개표과정을 신기한 듯 다들 지켜보았을뿐이다. 미국식 예비선거제도를 본땄다고 하니 나름대로 선진 정치제도의 도입이란 점에서 어떤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최초의 국민경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 후보에게 건 많은 국민들의 바램이 정치개혁 아니었던가.

하지만 이제 국민경선제도의 문제점을 논의할 시기가 왔다. 무엇보다도 상향식 공천제도와 특히 이런식의 국민참여경선이 대의원, 당원 줄세우기나 금품매수같은 폐단을 줄이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 생각해볼 문제다. 그래도 보스정치의 폐단은 많이 사라지지 않았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보스정치가 사라진 것은 3김이 정치무대에서 사라지면서 각 정당이 정당중심, 의회중심의 정치를 표방하면서 자연스럽게 변화가 온것일뿐 국민참여경선은 이 부분에 대해선 기여한 바가 없다.

지금 논란이 되고있는 여론조사 문제도 그렇다. 여론조사 한 통화가 직접 투표소에서 투표한 당원,대의원,선거인단의 한표보다 두세배 혹은 그 이상의 효과를 가져올수 있는 이런식의 환산방식도 문제고, 정당과 정당정치의 근본개념을 생각해볼 때 이것은 자칫 우리나라에 그나마 보다 진보적인 정책정당, 이념정당을 뿌리내리는데 더 큰 장애요인이 될 수도 있다. 만약 소위 민심으로 뽑은 후보가 그 당의 지지자와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이상향이나 표방하는 정책이 다르다면 그땐 어쩔것인가 ?

쉽게 예를 들어 이번에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출마했던 고진화 의원의 경우 국보법 폐지를 찬성하고 있으며 북핵문제때 대북제제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헌데 만약 이 사람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높아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되었다면 그땐 어찌되는가. 설마 그런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지겠느냐 하겠지만 실제 민주당의 경우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조순형 의원의 경우엔 FTA 협상이나 이라크 파병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남프라이즈등 민주당 지지성향 사이트의 대다수 네티즌들은 이라크 파병이나 FTA에 반대했다.

근본적으로 국민참여경선이 ' 저비용 고효율 ' 정치시스템인지 한번 생각해봐야할 문제다. 또 한가지 정치개혁에 관한 TV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90년대 후반 당시 이화여대 교수였던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런말을 했다. ' 백만명, 이백만명이 참여하는 상향식 공천을 하면 보스정치의 폐단을 줄일수 있다 '고. 하지만 인구가 4,800만 정도고 유권자가 3천만이 조금 넘는 작은 나라에서 몇백만명이 참여하는 경선이라면 사실상 선거를 두 번 치르는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어버린다. 대통령 선거는 그래도 아직까지 70퍼센트 이하로 투표율이 내려간일이 없지만 총선이나 지방선거의 경우는 기껏 50-60퍼센트 투표율을 기록하는걸 감안한다면 그런식의 상향식 공천은 결국 유권자들이 선거를 두 번 치르는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럼 대체 선거는 뭐하러 하나 ? 차라리 국민경선이나 여론조사등으로 후보도 뽑고 당선자도 다 뽑아버리는게 났겠다.


민주당에서 처음 국민참여경선 방식으로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고 했을때부터 과연 저런 방식이 정치개혁에 얼만큼 도움을 줄 수 있는가 하는 본질적인 문제엔 회의적이었다. 그때 지금과 같은 문제점이 생길것이라고 예견했던 것은 아니지만, 고비용 저효율 정치를 저비용 고효율 정치로 바꾸고 보스정치의 폐단을 없애고 정당을 이념중심 정책중심 정당으로 거듭나게 해야한다는 본질적인 문제에선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만 그 당시엔 워낙 국민경선의 관심이 높고 필자에게도 생소한 제도였기에 지켜보기만 했다. 하지만 이제 국민경선의 문제점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하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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