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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5월 31일 이라크 과격 무장단체인 알자르카위에 납치되었다가 끝내 6월 23일 주검으로 돌아온 김선일씨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 한국은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국내에서 찬반 양론이 고조되고 있던 시점이었으며, 알자르카위는 김선일씨 석방조건으로 '이라크 파병계획 철회'를 요구했었다. 이번 샘물교회 단기봉사팀 납치 건에 있어서도 탈레반측은 아프가니스탄 주둔 동의부대 및 다산부대의 완전철군을 석방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있게 보아야 할 부분은 바로 납치의 타이밍이다.

김선일씨 사건의 경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을 저지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번 샘물교회 단기봉사팀 납치 건은 아프간 주둔 한국군의 파병연장 가능성을 봉쇄하려는 것이 목적임을 알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김선일씨 사건의 경우와 이번 납치사건 모두 큰 방향은 정해져있었지만 그 결정이 최종적으로 집행되기까지 상당한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바로 이 점을 무장세력이 파고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아프간 주둔 동의부대와 다산부대는 오는 연말 철군을 목표로 현재 활동중이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까지도 미국정부가 한국군의 아프간 주둔을 계속해서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고, 더욱이,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프간 파병이 연장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냉정한 현실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볼 때 이번 탈레반의 '완전철군' 요구는 아프간 철군에 대한 한국정부의 진정성을 테스트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김선일씨 사건의 경우 또한 국내외 사정이 대단히 불확실하고 유동적이었던 만큼 혹 파병 자체를 막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파병 시기를 대폭 늦출 수 있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와같은 상황에서 '완전철군'과는 별도로 가즈니 지역에 투옥된 23명의 탈레반 전사들과 23명의 피납 한국인을 맞교환하자는 요구조건이 새롭게 제시되었다. '완전철군' 조건이 전적으로 한국정부를 겨냥한 요구조건이라면 '탈레반 전사 석방'은 한국정부가 아닌 아프간 정부 및 그 배후에 있는 미군 당국을 겨냥한 요구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아프간 파병이 미국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던 만큼 한국군의 '완전철군'에 대해 미국정부가 어떠한 입장과 방향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카드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다시말해 23명의 탈레반 전사들 석방에 대해 아프간 정부와 미국 정부가 소극적인 입장을 나타낼 경우 한국정부의 '완전철군' 약속에 대해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 있다는 속내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선일씨 사건의 경우에도 알자르카위는 6월 3일 김선일씨 인터뷰 비디오를 AP통신에 보내 미국정부의 스탠스를 타진한 바 있다. 그런 가운데 미군의 포위망이 서서히 좁혀들어오자 김선일씨를 살해하였다.

그러나, 이와같은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은 적지않은 차이점 또한 갖고 있다.

첫째, 지난 2004년 김선일씨 납치 사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테러행위를 결코 용납할 수 없으며 이라크 파병은 예정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사태를 악화시켰던 것과 달리 탈레반 무장세력을 자극시킬 수 있는 그 어떠한 언행도 삼가하고 있다. 일종의 '김선일씨 사건 학습효과'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004년의 경우 현지 관계자들에게 납치단체와의 협상을 맡겼다가 뒤늦게 정부가 뛰어들어 도리어 낭패를 본 것을 거울삼아 초기단계부터 정부가 직접 대화와 협상을 시도하고 있는 것 또한 크게 달라진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정부 차원에서 대단히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단 한국정부의 초기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지난 2004년 김선일씨 사건 당시와 비교하여 매우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해보인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는 미국 정부 및 아프간 정부와의 원활한 공조체제를 유지함으로써 23명 전원의 무사귀환을 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협의하고 관철시켜야만 하기 때문이다.

특히, 향후 고도의 심리전이 상호간에 전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사태를 신중하게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 다시말해 비록 아프간 주둔 한국군이 수일내에 완전철군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일부라도 철군시키는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써 탈레반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23명의 탈레반 전사 석방 건 역시 1~2명을 먼저 석방하면서 피납자들과 맞교환하는 방식을 진지하게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선교단체와의 연관성...김선일 선교사와 샘물교회 단기선교팀

피납 초기 일부 언론에서 '단기선교팀'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그 후 '의료봉사팀'으로 바뀐 것도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2004년 김선일씨 사건의 경우에도 초기단계에서 '김선일 선교사'라는 표현을 썼다가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로 바뀐 것을 연상케한다. 물론, 이유는 무슬림 원리주의자들인 탈레반을 자극하지 말아달라는 해당교회 및 피납자 가족들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것과 다름없다. 왜냐하면 이미 수많은 외신들이 '한국 기독교인들 (Korean Christians)'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에 탈레반은 물론 아프간 현지 사람들 모두가 이들이 선교활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김선일씨는 온누리교회(담임목사 하용조)에서 이라크에 파송한 선교사였으며, 이번에 아프간에 들어간 20명의 한국인들은 분당샘물교회(담임목사 박은조)에서 파송한 단기선교팀이다. 특히, 분당샘물교회의 경우 아프간 칸다하르시에서 병원과 유치원을 운영중이며, 매년 단기선교팀을 정기적으로 파송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이, 분당샘물교회는 지난 2006년 8월 아프간에서 열리기로 예정되었다가 행사가 취소된 '2006 아프간 평화선교축제'의 배후단체인 아시아문화협력개발기구(IACD)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이슬람권 선교활동을 최근들어 크게 강화해왔다.

2004년 김선일씨가 이라크에 갈 수 있었던 배경에 온누리교회로부터의 선교사 파송과 후원, 그리고 김비호 장로 - 김천호 집사라는 현지 온누리교회 성도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다시 말해 평소부터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이들의 현지 활동과 인품에 대해 상세하게 들어왔던 만큼 일반사람들이 이라크에 대해 갖고있을 부정적인 선입견과 막연한 두려움이 없었기에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분당샘물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카부르, 칸다하르, 잘랄라바드 등 도시지역을 제외한 적지않은 산악 및 농촌지역이 탈레반의 영향권에 들어가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곳에 단기선교를 나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그곳에서 활동중인 선교사들의 소식을 너무도 훤하게 알고 있기에 그러한 부분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상세한 현지 정보와 독실한 신앙심이 결합될 경우 용기와 열정이 두려움과 막연함을 압도한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정부와 한국대사관의 대응...2004년과 2007년 어떻게 다른가?

그렇다면 이번 납치사건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첫째, 현지 선교단체, 한국대사관, 아프간당국간 유기적 협력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현지 선교단체가 아프간 현지 사정에 정통하다고 할지라도 20명이 넘는 대규모 외국인 집단이 이동하는데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따르게 된다. 따라서 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면서 한국대사관 및 아프간당국과 긴밀한 협력체제를 유지해나갔어야 하는데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의 최종행선지였던 칸다하르가 탈레반의 발원지이고, 그곳으로 가기위한 길목에 해당하는 가즈니 지역이 테러가 빈발했던 곳임을 감안할 때 이들 대규모 팀이 육로로 이동한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한 행동이 될 수 있다.

결국 선교단체의 지나친 자신감과 한국대사관 및 아프간 당국에 대한 불신이 사태를 악화시킨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 2006년 8월 '세계평화선교축제' 개최를 놓고 빚어진 한국대사관 및 아프간 정부와의 갈등이 그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 측면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한국대사관의 업무미숙도 지적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들 단기봉사팀이 카부르공항에 도착한 시점부터 대사관은 그야말로 일거수 일투족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관찰했었어야 하며, 혹시라도 이들이 위험지역으로 향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할 책임이 대사관측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다시말해 이들의 최종 행선지가 칸다하르라는 사실을 놓고 그 적절성 여부에 대해 판단하여 대사관의 입장을 이들에게 강력하게 전달하는 동시에 혹시라도 이를 무리하게 강행하려 할 경우 아프간 당국과 협력하여 이것을 막을 의무가 대사관측에 있다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이동경로를 어떻게 선택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긴밀한 소통을 통해 위험 가능성을 사전에 제거했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사관측은 이들의 동선을 카불 도착 이후 사실상 놓친 것으로 보이며, 이들의 정확한 행방을 파악하는데에도 적지않은 시간이 걸린 것으로 보인다. 업무미숙을 넘어 직무유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지난 2004년 김선일씨 사건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한 비판과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김선일씨가 피랍된 시점이 5월 31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와 이라크대사관은 6월19일까지 그 사실 자체를 몰랐었으며, 뒤늦게 알자르카위가 AP통신에게 보낸 비디오, 그리고 온누리교회의 장로가 김비호 장로에게 보낸 서신 등이 공개되면서 정부의 사건 은폐 의혹까지 제기된 바 있다.

결국, 5월 31일부터 6월 19일까지 김선일씨의 행방 추적과 납치단체와의 석방교섭을 일개 무역업자에 불과한 김천호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와 비교해볼 때 이번 피납사건의 경우 정부의 현지 보호활동에는 적지않은 문제점이 있지만 최소한 초기 사건인지 및 그 후 대처능력에 있어서 만큼은 상당히 개선된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는 비공식단체인 알자르카위와 사실상의 공식단체인 탈레반이라는 납치단체의 본질과 성격이 차이가 난다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출처: nakore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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