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심규진 | 지난 3일 펜앤마이크 의뢰로 여론조사 업체 공정이 실시한 지방선거 관련 여론조사 결과는, 지금까지 한국 정치권과 올드 미디어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여론조사 상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에 국민의힘 39.7%, 더불어민주당 39.6%로 사실상 오차범위 내 접전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는 같은 시기 갤럽이나 NBS 등 면접조사에서 두 자릿수 격차가 벌어졌던 결과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표본 오차나 우연이 아니다. 핵심은 질문 설계다. 기존 여론조사는 “어느 정당을 지지하십니까”라는 추상적 태도를 물어왔다. 반면 이번 조사는 “지방선거에서 어느 정당에 투표하시겠습니까”라는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지라는 감정이 아니라, 실제 투표라는 행동을 전제로 한 것이다. 같은 유권자라도 질문이 달라지면 답은 달라진다. 그리고 이 간극이 바로, 올드 미디어가 반복적으로 놓쳐온 지점이다. 세부 수치를 들여다보면 그 이유는 더 분명해진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은 민주당 37.9%, 국민의힘 38.3%로 박빙이었고, 경기·인천은 40.2% 대 42.0%로 국민의힘이 오히려 앞섰다. 대전·
인싸잇=심규진 | 선거가 다가올수록 여론조사 수치가 정치의 전부인 것처럼 소비된다. 갤럽이 얼마, NBS가 얼마인지가 하루가 멀다 인용되고, 정치권은 그 숫자에 일희일비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잘 던져지지 않는다. 그 숫자가 실제 투표 행동으로 이어지느냐는 문제다. 현재 한국 정치에서 통용되는 여론조사의 대부분은 ‘의견 조사’에 가깝다. 지지 여부, 호감과 비호감, 선호 정당을 묻는다. 이는 유권자의 태도를 파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행동을 예측하는 데는 결정적으로 부족하다. 선거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문장 설계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지지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쉽다. 그러나 “실제로 투표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지난 선거에서 실제로 투표했습니까” “불만이 있어도 결국 투표하실 의향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은 다르다. 전자는 생각을 묻고, 후자는 선택의 비용을 묻는다. 정치가 알아야 할 것은 후자다. 특히 보수 정당이 반복적으로 놓치는 지점은 기존 지지층의 행동 강도 변화다. 여론조사 수치가 떨어졌다고 해서 반드시 노선 이탈이나 중도 이동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상당수 경우는 ‘찍을 생각은 있으나 적극적이
인싸잇=심규진 | 유럽 전역의 농민 시위는 더 이상 보조금이나 가격을 둘러싼 산업 갈등이 아니다. 2023년 말부터 누적된 분노는 2026년 초 EU–메르코수르 FTA 타결을 계기로 폭발했고, 그 에너지는 곧바로 신우파(New Right)의 정치적 동력으로 흡수됐다. 한때 좌파적 보호주의의 전형적 수혜자였던 농민들이, 이제는 반(反)엘리트·반(反)규제·자국민 우선의 언어를 가장 선명하게 밀어붙이는 전위로 변모한 것이다. 전환의 핵심은 프레임이다. 브뤼셀의 환경 관료는 ‘현장을 모르는 기후 엘리트’로, 농민은 ‘진짜 국민’으로 재정의됐다. 그린 딜과 Farm to Fork는 도덕의 언어를 입었지만, 현장에서는 경유·비료·질소 규제와 휴경 의무라는 생존 비용으로 돌아왔다. 목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속도와 방식이 무시된 정책은 곧 ‘그린래시(Greenlash)’를 낳았고, 이 반작용은 규제 철폐를 외치는 신우파의 메시지와 정확히 맞물렸다. 자유무역 역시 결정적 기폭제였다. 우크라이나산 곡물 유입과 남미산 농축산물 개방은 농민들의 체감 공정성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엄격한 기준을 지키느라 비싸졌는데, 규제가 느슨한 수입품은 무관세로 들어온다”는 인식은 자유무역의
인싸잇=심규진 | 정치에서 호칭은 예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 인식의 문제다. 누구를 어떻게 부르느냐는 그 인물을 어떤 권력 위계에 놓고 있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런 점에서 최근 김어준이 방송에서 대통령 배우자를 ‘김혜경 여사’가 아니라 ‘김혜경 씨’라고 호칭한 장면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여권 내부 인사가, 그것도 오랜 시간 정치적 공생 관계에 있었던 인물이 공개 석상에서 ‘여사’라는 최소한의 정치적 호칭조차 부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확한 신호다. 이는 이재명을 대통령 권력의 중심으로 온전히 인정하지 않겠다는, 혹은 더 이상 그 권위를 전제하지 않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현재 여권 내부의 갈등은 단순한 당권 다툼이 아니다. 이는 한국 좌파 정치가 어떤 통치 모델을 선택할 것인가를 둘러싼 구조적 충돌이다. 이재명이 지향하는 권력 모델은 노무현·문재인 시기의 상징 정치나 도덕 서사 중심의 좌파 전통과 다르다. 오히려 푸틴이나 에르도안식 통치 모델에 가까운, 강력한 행정력과 제도 장악을 통해 권력을 고착화하는 방식이다. 이재명 정치의 핵심은 팬덤 그 자체가 아니라, 정치적 보위 그룹의 존재다. 강성 좌파 외곽 조직으로 분류돼 온 운동권 계보, 이른바
인싸잇=심규진 | 국민의힘에서 지금 장동혁 당대표에게 나가라고 요구하는 의원들은 대부분 영남권, 강남권, 비례 출신들이다. 이들 중에 당 간판을 빼고 독자적으로 정치적 생존이 가능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까. 오히려 이들이 스스로 커밍아웃을 해줬기에, 당원들과 지지자들 입장에서는 무엇이 오답인지가 분명하게 가려졌다. 당의 확장, 지방선거 운운하지만, 정작 이들은 진영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챙기는 데에만 여념이 없는 형편없는 이기주의자들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확장이니 뭐니 떠들기 전에, 먼저 제대로 된 당원 주권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정당 민주주의에 입각해 기득권을 타파하고, 청년과 정치 신인들에게 문호를 열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며, 바로 그 길이 확장의 길이라는 사실을 국민의힘 현 지도부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인싸잇=심규진 | 아르헨티나의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는 정치 무대에 등장할 때부터 파격의 상징이었다. 그는 유세 현장에서 실제 톱을 들고 나와 “기득권 국가를 베어내겠다”고 외쳤고, 그 퍼포먼스는 전 세계 언론의 조롱과 관심을 동시에 끌어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과격한 선동가쯤으로 치부했지만, 집권 이후의 행보는 의외로 일관됐다. 말이 아니라 정책으로, 상징이 아니라 집행으로 국가를 흔들었다. 밀레이 정부가 내세운 핵심은 단순했다. 공공부문을 성역으로 두지 않겠다는 것. 계약직·임시직 공무원에게 적성·역량 검사를 도입하고, 그 결과를 계약 갱신의 기준으로 삼았다. 전면 해고라는 자극적인 방식 대신, “검증 후 선택”이라는 구조를 취했다. 이 조치는 행정 효율의 문제이기도 했지만, 정치적으로는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졌다. 민간에서 이미 경쟁과 평가에 익숙한 청년층과 중산층에게, 국가는 마침내 자신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이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밀레이는 집권 여당이었고, 행정부의 집행 권한을 쥐고 있었다. 노조의 반발을 감수할 수 있었고, 정책의 결과를 즉각적인 정치적 효능감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지
인싸잇=심규진 | 솔직히 말해 처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단식을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필자 역시 반대 쪽에 가까웠다. 단식은 너무 낡고, 신파적이며, 자칫하면 정치적 ‘떼쓰기’처럼 보일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 황교안 대표의 단식이 남긴 정치적 실패의 기억이 강하게 떠올랐다. 감정의 과잉은 있었지만, 결과는 냉혹했다. 그런데 장동혁은 달랐다. 단식을 망설이는 듯 보이다가, 어느 순간 전격적으로 결단했다. 이것이 바로 장동혁의 정치 스타일이다. 외부 압력에 떠밀려 움직이지 않는다. 정치적 이득이 불분명해 보이는 길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판단이라면 주저 없이 실행한다. 그래서 그의 행보는 늘 ‘표면’이 아니라 ‘행간’으로 읽어야 한다. 유튜브 정치의 문법에 익숙한 일부 인사들이 여론에 밀려 반응형 정치를 할 때, 장동혁은 늘 타이밍을 선점해 왔다. 떠밀려 하는 정치와, 주도하는 정치는 결과가 다르다. 장동혁의 단식은 바로 그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필자는 과거 엘리자베스 1세를 언급한 적이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누구와 가까워 보일 때조차 이미 다음 수를 깔아둔 군주였다. 장동혁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정치인은 보이는 대로만
인싸잇=심규진|정치에서 사과는 도덕적 제스처가 아니라 명백한 전략 행위다. 특히 위기 국면에서의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과가 정치적 손실을 얼마나 줄이고 회복 가능성을 얼마나 남기느냐의 문제로 평가된다. 이 점에서 최근 한동훈의 사과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치적 득실 계산에서 실패한 사례에 가깝다.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따르면, 사과는 단기적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중장기적 신뢰 회복을 목표로 설계돼야 한다. 즉, 즉각적인 지지층 결집보다 중립층과 관망층의 판단을 유예시키는 것이 핵심 성과 지표다. 그러나 이번 사과는 이 기준에서 정치적 ‘득’을 만들지 못했고, 오히려 손실을 고정하는 효과를 낳았다. 정치적 득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다. 강성 지지층 내부에서는 ‘사과를 했다’는 형식 자체가 심리적 방어 근거로 작동한다. 이는 단기적으로 지지층 이탈을 일부 막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이 효과는 이미 결집된 집단 내부에서만 유효하며, 새로운 지지 확장이나 중립층 설득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정치적 득이라고 부르기에는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 반면 정치적 손실은 구조적이고 광범위하다. 첫째, 사과의 핵심 구성 요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