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진 칼럼] 현대판 예송 논쟁 - 보수의 방향을 둘러싼 싸움

인싸잇=심규진 | 조선시대 예송 논쟁은 흔히 “본질과 상관없는 명분 싸움”의 대표 사례로 이야기된다. 왕실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를 두고 나라가 갈라졌다는 사실만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형식 논리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예송 논쟁의 본질은 전혀 달랐다. 그 핵심은 단순한 예법이 아니라, 왕권의 정통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조선의 질서를 정의할 권리를 가지는가라는 문제였다.

 

예법은 표면에 불과했고, 본질은 정치적 정체성과 권력 재편이었다. 그래서 예송은 단순한 소모적 논쟁이 아니라 이후 붕당 정치의 구조를 결정한 사건으로 역사에 남았다.

 

지금 국민의힘 내부에서 벌어지는 갈등 역시 겉으로는 예송 논쟁처럼 보인다.

 

윤어게인 아젠다의 제도권화, ‘윤석열 없는 윤어게인’, 그리고 절윤 노선까지. 외부에서는 “또 명분 싸움이다”, “본질 없는 기싸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중도층의 시각에서는 먹고사는 문제와 직접 연결되지 않기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논쟁은 단순한 명분 싸움이 아니다.

 

먼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윤어게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더 이상 제도권 정치의 직접적인 플레이어가 아니다. 윤석열을 다시 정치 전면으로 불러들이자는 주장조차 윤어게인 내부의 주류가 아니다. 결국 윤석열은 행위자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 남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새로운 정치 현상이 탄생했다.

 

중앙 통제가 없는 분권화된 네트워크,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한 의제 확산, 조직보다 정서와 문제의식으로 연결된 결사 구조가 그것이다. 윤어게인이 남긴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정치가 아니라 의제와 세대였다.

 

윤석열이 남긴 정치적 레거시는 분명하다.

 

체제 전쟁이라는 문제의식, 자유민주주의 질서 회복, 법치 회복 담론, 그리고 2030세대의 새로운 정치 참여 문화. 이것은 단순한 팬덤이라기보다, 오랫동안 지리멸렬했던 제도권 우파 정당에 선명한 노선과 도덕적 정당성, 그리고 강한 결사 의식을 주입한 사건이었다.

 

그래서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이 동력을 흡수하지 않고 국민의힘이 거대 야권과 맞설 수 있는가. 절윤이라는 선언만으로 새로운 정치적 에너지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보면 답은 부정적이다.

 

윤어게인은 이미 정치적 화력, 의제 설정 능력, 세대 기반 동원력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전략 자산을 확보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논쟁은 정통성 싸움이 아니라, 이 전략 자산을 누가 어떻게 제도권 정치로 전환할 것인가를 둘러싼 충돌이다.

 

중진협의회나 형식적 회동이 반복되고 있지만, 조경태·엄태영 등을 중심으로 한 중진 정치가 제시하는 틀은 여전히 형식 논리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윤어게인을 대체할 새로운 의제도, 미래 비전도, 세대 참여를 확장할 노선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도층은 이 논쟁에 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윤어게인 논쟁은 또 하나의 내부 싸움일 뿐이다. 정치 저 관여층은 윤석열을 악마화하거나, 이를 둘러싸고 싸우는 국민의힘을 구태 정치로 인식한다.

 

그러나 대권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핵심 결사층이었다. 지금 가장 강한 정치적 결사와 문제의식이 어디에서 형성되고 있는지를 냉정하게 봐야 한다. 그것은 윤어게인이 남긴 시대적 아젠다, 그리고 체제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

 

그렇다면 장동혁의 선택지는 사실상 명확하다.

 

절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은 거의 없다. 핵심 지지층은 분열되고 리더십은 약화되며, 그렇다고 중도층이 갑자기 국민의힘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절윤은 확장도 결집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길이다.

 

현실적인 옵션은 하나다.

 

지금 가장 뜨거운 정치적 동력과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라는 의제를 기반으로 먼저 리더십을 세우는 것. 그리고 그 위에서 신우파적 아젠다, 2030 세대 중심의 참여 정치, 미래지향적 정책 의제를 통해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결국 지금의 핵심은 이것이다.

 

비정형화되고 제도화되지 않은 날것의 정치 에너지인 윤어게인을 어떻게 제도권 리더십과 국가 개조, 보수 재건의 에너지로 승화시킬 것인가. 극단적 참칭 세력과 내부의 보신주의적 기득권 정치 사이에서 얼마나 넓은 중간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장동혁 리더십의 진짜 시험대가 된다.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중도에게는 예송 논쟁처럼 보이는 싸움이지만, 장동혁에게는 정치적 화력과 의제, 그리고 세대라는 실질적 전략 자산을 둘러싼 현대판 예송이다.

 

정치는 명분만으로도, 실리만으로도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의 논쟁은 새로운 보수의 방향과 리더십을 결정하는 과정이며, 이 에너지를 제도권 안에서 어떻게 조직하고 승화시키느냐에 따라 보수의 미래와 다음 정권의 가능성도 갈리게 될 것이다.

 

□ 심규진 스페인 IE대학교 조교수 약력

 

정치 문법을 문화 전쟁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며, 우파의 문화적·정치적 복권과 승리를 이끄는 담론을 제시하는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 연구자다. 호주 멜버른대학교, 싱가포르 경영대학교(SMU) 등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싱가포르 교육부 미디어개발국 및 스페인 과학혁신부의 지원을 받아 국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석사, 미국 시러큐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국제 커뮤니케이션 학회(ICA)에서 최고 논문상을 수상한 바 있다. 또한 지역민방 청주방송과 미디어다음에서 기자로 활동했고, 여의도연구원 데이터랩 실장,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학문과 실무를 아우르는 보수 우파의 브레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국민스피커 심규진 교수〉를 통해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로운, 독립적 민심과 데이터 기반 정치 평론이라는 대중적 실험에 나서고 있다.

 

▶ 유튜브 검색: @kyujinshim78

 

저서로는 『하이퍼젠더』,『K-드라마 윤석열』, 『새로운 대한민국』(공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