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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의 자살, 어떻게 평가할까

앞으로 닥칠 혼란이 우려스럽다

* 자유게시판의 훼드라님의 글입니다.

“ 왜 신은 자살하지 말라는 계율을 만들었단 말인가 ? ”

뜬금없이 셰익스피어의 희곡 ‘ 햄릿 ’의 대사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자신의 고향마을 뒷산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하기로 결심하는 순간, 아니면 그 전날밤이나 혹은 오늘 새벽 일어나 등산길에 나서는 순간에라도 아마도 노 전 대통령 한번쯤은 그렇게 절규하거나 탄식하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을까. 성경이니, 불경이니 하는 옛 성현(聖賢)의 경구(警句)까지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는 행위는 어리석어 보이는게 사실입니다. 흔히 하는말로 죽을 용기가 있거든 그 용기로라도 살아라고도 합니다만요.

하긴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자살을 결심하는데 이르기까지 그 사람을 짓누르고 있었을 고통이나 압박감 같은것은 오죽했겠습니까. 정말 그건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 마음속을 제대로 헤아리는건 불가능한 일이죠. 아무튼 오늘 하늘도 그다지 흐리지 않았던 주말아침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노무현 정권 5년동안 제 주 관심사는 사실 정치보담은 통일,북한문제에 있었기 때문에 생각해보니 정작 노 전 대통령을 겨냥 직접적으로 비판한 글은 그리 많지 않더군요. 정치권을 비판한 글에도 가령 노무현 주변의 386 파워엘리트나 지식인 그룹, 혹은 그네들의 역사관을 비판한적은 있어도 제가 직접 노무현을 비판한적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 다 합해봐야 수백편의 글들중 노무현을 주제로 한 글은 열편을 채 넘지 않을것입니다.

사실 노 전 대통령을 평가하는 제 입장이 몇차례 바뀐적이 있음을 솔직히 인정합니다. 문득 2004년 탄핵정국 당시 한 네티즌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 만약 노무현이 한 20년쯤 후에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능히 그 업무를 수행해냈을것 ’ 이라고요. 거기서 ‘ 20년쯤 후 ’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긴 힘들었지만, 여하튼 남북분단과 좌우갈등이 현존하는 우리현실에서 범 진보개혁성향의 대통령 노무현이 제대로 국정수행을 하는데는 여러 가지로 장애가 있을수밖에 없었던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2002년 대선전후나 노무현 정권 초창기에 제가 그에게 걸었던 기대는 노무현을 찍었던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걸었던 기대감, 정치는 부패하고, 정경유착이 횡행하며 사회적 부조리가 아직도 많은 우리나라에 그래도 어떤 새로운 변화를 몰고올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막연한 기대감. 그 정서와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란 점입니다. 노무현 주위의 386 파워엘리트나 지식인 그룹의 역사관과 사상엔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저였지만, 최소한 정치개혁에 대한 친노그룹의 순수한 열정만은 어느정도 인정하고 이해하는 입장이었다고나 할까요. 글쎄요, 모르겠습니다. 정말 보수진영이 노무현 정권의 정치개혁 의지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었더라면, 그의 정치개혁은 그나마 어느정도 성과를 거둘수 있었을까요 ?

하지만 노 정권 초창기 그 지지그룹의 최대의 화두였던 정치개혁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대한민국 헌정 60년사를 송두리째 뒤엎으려는듯한 386과 좌파진영의 역사관에 문제와 위기의식을 느껴 그때부턴 다시 본격적으로 반노(反盧)로 돌아섰던게 노 정권 5년동안 제 글의 정치적 흐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소식을 들은 지금은 그저 만감이 교차할 따름이네요. 네, 착잡합니다.

노무현. 파란만장(波瀾萬丈)이란 표현을 언론과 네티즌들이 쓰고 있는데 이건 좀 동의하기 어렵군요.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걸어온 인생을 놓고봐도 한참 비교가 안 될뿐더러 장기표니, 김근태니, 장준하니 군사정권시절 재야인사로 활동하다 옥고(獄苦)를 치른 인물들과 비교해봐도 변호사로 활동한 인간 노무현의 젊은 시절은 평탄하였으니까요. 심지어 전두환 전 대통령 조차도 움막집 아이로 태어나 일국의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立志傳的)의 인물이니까요.

다만 정치권에 입문한 뒤엔 곡절(曲折)이 시작되었지요. 88년 청문회 스타로 화려하게 등장하지만 3당합당때 김영삼과 결별한 이후, 부산에서 내리 출마 낙선합니다. 정확히는 부산에선 총선 두 번(92년,00년), 지방선거(95년 부산시장 후보) 한번 총 세 번 출마 낙선했고, 96년엔 DJ가 정계복귀를 하여 국민회의를 창당한뒤 이에 합류를 거부한 나머지 세력들의 민주당 후보로 정치1번지 서울 종로에 출마 역시 낙선하였습니다.

허나 지역감정에 정면으로 연거푸 도전 매번 고배를 마시는 그의 어찌보면 우직하고, 어찌보면 올곧아보이는 그의 모습이 오히려 더 호감을 불러일으켰고, 급기야 2002년 새천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 후보로 선출된 뒤, 결국 그해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의 삶을 그리고 그가 대통령으로 있던 5년을 과연 어찌 평가하면 좋을지 참 쉽게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 그 자체가 어쩌면 우리 사회의 굴절되고 왜곡된 이념갈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니까요.

가령 그의 언행을 놓고 지지하는 이들은 서민적이고 친근감있다고 말하는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대통령답지 않게 경박하고 천박하다고 평가합니다. 그의 5년에 대해서도 어떤이는 편가르기로 인해 사회갈등,계층갈등만 증폭되었던 시절이라고 하는 반면, 또 어떤이는 그래도 진보개혁의 선봉에 서서 많은 일을 한 사람이라 평가합니다. 정말 어떤이의 말처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몇십년쯤 더 세월이 흐른뒤에 내릴수 있을련지도 모릅니다.

어찌되었든 그가 권위적이었던 과거의 독재자들보담은 서민적인 이미지의 대통령이었던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계형 범죄자를 조직적 범죄를 진두지휘한 사람과 똑같은 기준으로 다룰수 있느냐는 조기숙 전 홍보수석의 볼멘소리엔 동의하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 따지고 보면 수천억 비자금을 조성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나 IMF의 가장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책적 실패에 비한다면 노 전 대통령의 과오는 경미하다고 볼 수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여하튼 착잡함과 씁쓸함이란 두 개의 돌덩이를 제 잔잔한 감성연못에 던져주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렇게 떠났군요. 사실 걱정되는건 그의 서거보담은 서거 이후에 닥칠지 모를 - 아니 이미 바람소리가 들리기 시직하고 있는 - 혼란의 소용돌이와 광풍입니다. 박연차 게이트에 대해 잔뜩이나 정치보복이라 격앙되어있는 노사모,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정책실패에 들끓고 있는 범 진보진영. 그들이 합쳐 아무래도 또 한바탕 큰 소용돌이가 일어날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입니다. 이미 그 조짐은 인터넷 곳곳에 보이더군요. 심지어 어느 골수 친노 사이트에는 ‘ 너희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는 제목의 게시물까지 올라왔다던가요 ?

그래서 불길합니다. 2004년 노대통령 탄핵 직후 불었던 여론의 거센 반발광풍, 그리고 지난해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촉발되 반년 가까이를 끌었던 촛불정국 그 와 흡사한 아니 어쩌면 더 거셀지도 모를 또 한차례의 광란의 폭풍이 불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자꾸만 듭니다.

p.s : 그래서인지...노 전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선 슬프다는 생각 보담은

앞으로 닥칠 혼란에 대한 우려만이 앞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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