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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치를 하기 전만 해도 대쪽판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법과 원칙을 중시, 우리나라 법조인들의 표상이라는 평판을 받았었다. 그리고 그는 이 같은 평판을 바탕으로 대법관을 지내고 감사원장을 역임하는 등 국가의 기강을 세우는 직책들을 두루 설렵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 총리로 인준을 받고 총리직에 올랐으나 법에 명시된 총리의 권한을 행사하려다 청와대와 충돌, 결국 총리직까지 스스로 내던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주가는 더욱 올랐다.

또 한 때 국민 지지율 70%까지 받으며 이회창 대세론으로 곧 대통령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두 번의 대권 도전에서 모두 석패했다. 그리고 이전 얻었던 대쪽판사, 원칙주의자 등의 평판도 소멸되어 갔다. 거기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후 대대적으로 실시된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서 대통령 선거자금을 차떼기로 받은 것이 밝혀지면서 지탄을 받으며 대국민 사과까지 한 뒤 야인으로 돌아갔다.

따라서 이 같은 그의 정치인생 10년은 그의 인생에서 성공한 60년 후의 실패한 10년이라는 멍에를 지우며 많은 회한을 남겼을 것이다. 또 이런 현상들이 그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실패한 10년은 비록 그의 실패에 결정적 작용을 했던 김대업, 설훈 등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으므로 더욱 앙금을 남겼을 것이다. 이들이 유죄판결을 받으므로 그의 두 아들에게 제기되었던 병역비리 의혹이나 그의 부인에게 제기되었던 불법자금 수수의혹은 면죄부를 받았으나 어쨌든 대쪽판사라는 이미지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더욱 깊은 한을 남겼을지 모른다.

더구나 대통령 후보였다는 이유로 그의 두 아들이 모두다 병역 미필자라는 것이 알려졌다. 또 며느리의 원정출산 의혹과 아들, 딸 본인 모두 호화주택에 거주했던 사실들도 알려졌다. 또 이미지에 맞지 않게 그의 동생인 이회성씨나 그의 측근이었던 서상목씨 등이 국세청을 이용, 대기업 등으로부터 트럭 째 받은 선거자금은 어떤 변명으로도 그의 예전 이미지를 상쇄시킬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지난 4년 반 동안 그는 정치적 발언자체도 봉쇄되었으며 정치적 금치산자 비슷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 때문에 그가 그동안 쌓았던 대쪽판사, 원칙주의자 등의 명성에 엄청난 흠집을 남겼으니 그로서는 지난 5년이 매우 힘들었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다시 대통령에 출마할 것 같다는 뉴스가 근래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의도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또 아직 출마선언도 하지 않았는데 그의 국민 지지도가 20%선에 육박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보도되고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지금 여의도는 한나라당 안에서부터 지독한 전운이 감돌고 있다. 또 언론들의 촉각 못지않게 일반 국민들의 시선도 이회창의 입에 쏠리고 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 후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유력 대통령 후보다. 그는 현재 평균 지지율 50%를 넘기며 대통령 직 1보 앞에 와 있다. 하지만 지난 한나라당 후보경선이 시작되면서 불거지기 시작한 그에 대한 여러 의혹들은 그가 만약 장관이나 총리 직 같은 임명직 공직자로 국회 청문회장에 섰다면 절대로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는 것들로만 점철되어 있다.

그는 그 스스로 자녀교육을 위하여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했으나 그 같은 이유 때문에 정상 전 이화여대 총장이나 장대환 전 매일경제 사장은 총리서리로 임명을 받은 뒤 국회 청문회를 거친 인준투표에서 인준을 받지 못했다. 또 그 외 지난 한나라당 후보경선 당시 불거졌던 충북 옥천과 도곡동 땅 같은 부동산 투기 관련 의혹들 까지 겹친다면 그는 절대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리고 그의 처남과 형 등 친인척들의 부동산 투기의혹들, 그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면서 결재한 것으로 알려진 서초동 지역 고도제한 해제나 천호동 지역 뉴타운 지정 건, 여의도 국제금융센타 허가와 기공에 따른 의혹과 상암DMC 건설에 따른 의혹 등은 그 스스로 모두 부인하지만 이런 의혹들에 휘말렸다는 것 자체로 공직임용을 불가했을 것이란 얘기다.

여기에 지금 현재 그의 아킬레스 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BBK투자자문(주)의 옵셔널밴쳐스사 주가조작 의혹은 그 당사자인 김경준 씨의 귀국과 상관없이 그와 50%씩의 지분으로 동업을 했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도 공직 임용은 불가할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이처럼 객관적 판단으로도 공직임용이 어려울 것 같은 여러 의혹과 하자가 있음에도 국민지지도 50%를 넘기는 놀라운 지지율로 대통령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 지금 우리나라 대한민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한나라당은 이회창이 만든 당이다. 물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민주공화당이 그 뿌리이고 그 뿌리를 이은 전두환과 신군부의 민주정의당이 그 줄기이며 김영삼 전 대통령의 신한국당이란 열매에서 나온 씨앗으로 생겨났기 때문에 이회창이 한나라당을 만들었다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1997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 때, 김영삼 대통령이 만든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면서 이회창씨는 그 당의 총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해 11월 김대중 총재의 국민회의와 김종필 총재의 자민련이 후보단일화를 성사시키자 신한국당을 한나라당으로 바꾸며 그 당의 후보로 선거에 나섰다.

즉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 그룹이 국민회의에 동참하지 않고 남아서 당을 유지하던 민주당이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지명하자 조순후보와 후보연합이 아닌 합당을 성사시킨 뒤 합당 전당대회에서 당명을 한나라당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잠시 조순씨에게 총재직을 맡겼으나 대선에서 패하고는 당을 접수했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이회창으로 인해 완전히 물갈이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당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세력들까지 물갈이가 확실하게 이뤄젔기 때문이다.

이를 분석하면 이렇다. 우선 민주공화당이 민정당으로 변할 때 떨어져 나갔다가 3당 합당으로 다시 한 식구가 되었지만 결국은 자민련으로 분화한 김종필 그룹은 개별적으로 몇 몇의 정치인이 남아있어도 지금의 한나라당과는 전혀 다른 조직으로 떨어져 나갔다. 그 잔존세력이 지금의 국민중심당이다.

또 3당 합당 후에도 당의 대주주로 남았다가 김영삼이 총재가 되면서 떨어져 나간 박태준, 이종찬, 이한동, 박철언, 정호용, 권정달, 등 민정당 핵심그룹은 지금 정치권에서 완전히 사라졌다.이들은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 시절 당의 핵심 주류들이었으나 김영삼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한 뒤 밀려난 것이다.

또 김윤환 김광일 등 민국당 그룹은 이회창 총재의 당 개편작업 때 권력 언저리에서 밀려나버렸다. 이 후 다시 지난 2004년 총선 당시 대통령 탄핵의 주역들은 박근혜 전 대표시절 물갈이가 되었지만 어쨌든 지금의 한나라당 기초를 닦은 사람이 이회창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한나라당 주인이 된 것은 사실상 전광석화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그만큼 이 후보는 사실상 한나라당에 기여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명박 후보는 1992년 민자당 전국구를 받아 국회의원이 되면서 이 정치세력의 일원이 되지만 당의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1996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었으나 선거 부정으로 의원직을 사퇴할 때까지 당을 벼랑으로 몰고 가는 역할까지 했던 어쩌면 해당행위자이기도 하다.

이명박은 자신의 부정선거를 덮기 위하여 위증을 교사하고 증인을 해외로 도피시키는 등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 당은 그의 주장에 따라 이명박을 감쌌다. 하지만 결국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국회의원직을 사퇴한다. 이 와중에 그의 소속당인 신한국당은 그의 변명에 따라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를 몰아부쳤다가 모든 잘못이 이명박 측에게 있음이 확인되자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했다.

그가 서울시장이 된 것도 사실은 그의 능력이라기보다 한나라당이라는 후광이 더 작용했다. 2002년 지방선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비리 때문에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이 호남을 뺀 전 지역에서 참패를 했으며 그 같은 바람 덕택에 서울시장에 당선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서울시장 재임 시 터진 한나라당의 차떼기 범법 행위 때문에 그는 사실상 당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후 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온몸으로 살려냈다. 하지만 이명박은 당을 살려낸 박근혜를 물리치고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그리고 전광석화처럼 당을 자신의 당으로 장악해 버렸다. 이는 30일과 1일 나온 나경원과 이방호의 발언으로만 봐도 그렇다.

2007년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전 주인과 현 주인의 대결?

한나라당을 10년간 장악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기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들고 지배했던 당으로부터 지금 감당하기 힘든 공격을 당하고 있다. 또 그를 공격하는 창이 그가 키웠던 나경원이며 그의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던 이방호다. 특히 이방호는 아주 작심을 하고 나섰다. 자신이 주군으로 모셨으며 자신 또한 차떼기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있음에도 이회창을 차떼기로 몰아붙이고 있다. 정치의 비정함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좋다. 이 같은 치고받음이 국민에게 알려지지 않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여러 의혹들을 더욱 가열차게 까발려 이명박이란 허상의 진실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키운 사람들로부터 참을 수 없는 공격을 받는 이회창이 성격상 그대로 참고 넘길 수만은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아마도 출마를 선언하면 그 1성이 법과 도덕이 우선하는 대한민국 건설일 것이다. 따라서 이회창으로서는 이명박의 여러 의혹들을 공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보다 보수집권이 우선인 조중동으로서도 이를 보도하지 않을 이유기 없다. 어쩌면 이회창의 지지율이 30%대에 육박하는 순간 조중동은 깨끗한 보수의 집권이라는 이유를 들어 회색보수 이명박을 가열차게 검증하고 나설지 모른다. 한국의 보수 주류들은 그들이 말하는 ‘좌파정권’ 분쇄의 도구로 이명박을 선택했을 뿐이지 이명박이라는 자연인을 선택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의 보수는 이명박 세력에 있는 이재오 박형준 등을 전향한 좌파로 보고 있으며 이명박이 집권한 뒤 이들의 득세로 다시 이명박 정부를 좌파정부로 몰아갈지 모른다는 의심을 완벽하게 걷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박근혜보다는 이명박을 선택했던 이유는 회색이지만 확실한 승리의 도구로는 이명박이 더 안전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근혜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아직도 잔존하고 있는 여성대통령 불가론이 일정부분 작용했으며, 박근혜로서는 박정희의 프레임에 갇혀 중도보수와 호남세를 흡입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던 보수그룹의 테크노크라트들이 작전상 이명박을 후보로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위험도까지 제거된 확실한 보수 확실한 상표 이회창이 나선다면 혹시 있을지도 모를 이명박의 부정비리 의혹과 이명박과 그의 그룹에 따라다니는 위장좌파의 위험까지 떨쳐버릴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수 본류임을 자처하며 보수의 집권을 바라는 조중동으로서는 이회창에게 적을 질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이회창과 이명박의 대결이 될 공산이 크다. 즉 한나라당 전 주인과 현 주인의 대결이 되는 것이다. 48일이 남은 대통령 선거, 드디어 국민들도 구경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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