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일본 주오대 교수는 4일 "강제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행위를 시키는 것"이라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강조했다. 요시아키 교수는 이날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 등이 배재대 학술지원센터에서 개최한 한일공동세미나에서 "아베 총리는 폭행을 이용한 연행이 없다는 이유로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은 없었다'라고 발언했지만 이는 강제 사역(使役)의 의미를 간과한 것"이라고 말했다. 요시아키 교수에 따르면 1932년 나가사키 여성 15명은 `군인 상대 식당, 매점 종업원'을 모집한다는 말을 믿고 따라나섰다가 중국 상하이의 위안소에 2년간 감금돼 성노예 생활을 했다. 이후 피해자들의 호소로 위안소 경영자와 중개인은 기소돼 국외이송유괴죄와 국외이송죄 혐의로 1937년 일본 대심원(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요시아키 교수는 "이 판례는 위안부를 강제로 연행하지 않았더라도 기망이나 감언이설로 위안소에 끌고 갔다면 중대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요시아키 교수는 또 "위안소는 업자가 마음대로 전쟁지역, 점령지에서 못 만들기 때문에 일본군이 업자를 지정해 감독, 통제한 것이 분명하다"라며 "군이 위안소 규칙, 요금, 이용시간
주상용 경찰청 수사국장은 3일 김승연 회장이 2년 전 논현동에서 술집 종업원을 폭행했다는 주장 등이 제기된데 대해 김 회장을 다시 소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비쳤다. 주 국장은 이날 김 회장 `보복폭행'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찾아 "논현동 사건을 언론을 통해 어제 처음 알았는데 수사결과에 따라 지난달 사건과 병합해서 사법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논현동 사건으로 김 회장을 소환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피해자 진술만 받을 수는 없지 않느냐"라며 김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다시 소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주 국장은 "통상 폭행사건 발생시 피해자 진술과 목격자 1∼2명의 진술, 진단서만 있으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발부받는다"라며 "지난달 사건과 관련해 지금 확보한 자료만으로도 영장신청에 어려움은 없지만 저쪽에 변호사들이 있고 공소유지 및 영장 발부의 확실성을 위해 보강조사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주 국장은 "이번 사건 구속영장 신청 시점은 논현동 사건의 수사 결과를 고려해 최종 결정될 것"이라며 "영장을 먼저 신청하고 추후에 수사를 보강하는 것은 수사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뺨을 한 대 맞아도 고소하는 세상인데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작년 7월 발족 이후 9개월여 만에 친일재산 첫 환수 결정을 내놓았다. 2일 정부에 따르면 재산조사위는 대통령 직속 4년 한시기구(2년 연장가능)로서 2005년 2월 당시 최용규 의원 등 169명이 발의하고 12월29일 공포ㆍ시행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설립됐다. 법무부, 경찰청, 재경부 등에서 파견된 공무원 46명과 자체충원 인력 25명으로 구성된 재산조사위는 조선총독부 관보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조사보고서 등을 참조해 조사대상자 452명의 명단을 작성하고 이들의 호적, 족보 등을 참조해 가계도를 작성했다. 조사위는 가계도에 따라 행정자치부 지적정보센터를 통해 친일행위자와 그 후손 명의의 토지소유 현황을 조회한 뒤 토지대장, 등기부등본, 임야조사서 등을 토대로 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 사이에 취득한 재산을 가려냈다. 특별법에 따라 환수 대상이 되는 재산은 러일전쟁 시작(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ㆍ증여받은 재산 등이다. 다만 특별법이 시행되기 전 제3자가 친일재산이라는 사실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2일 제18차 전원위원회를 열고 친일파들의 재산을 국가에 귀속하는 첫 결정을 내린다. 첫 환수 대상자는 지금까지 조사개시 결정이 내려졌던 이완용, 이병길, 민영휘, 권중현, 권태환, 송병준, 이재극 등 수십여명 가운데 복수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진 재산은 재정경제부에 통보돼 `나라(국.國)' 명의로 등기한 뒤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의 예우 및 생활안정을 위한 지원금, 독립운동 관련 기념사업에 우선적으로 쓰인다. 환수 대상이 되는 친일재산은 러일전쟁 시작(1904년)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ㆍ증여받은 재산 등으로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주고 취득한 경우는 제외된다. 귀속결정은 조사위 재적위원 9명 중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되며 친일파 후손은 이에 불복해 통지받은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작년 7월 발족한 친일재산조사위는 대통령 직속 4년 한시기구(2년 연장가능)로서 친일반민족 행위자를 선정, 이들이 후손에게 남긴 재산을 찾아내 국가 귀속 여부를 결정하는데 지금까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경찰청은 1일 오후 2시15분부터 2시간 반 동안 종로구 가회동 김 회장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경찰이 횡령 등 경제사건이 아닌 폭력사건으로 재벌총수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처음이다. 경찰은 이날 김 회장의 집 정문과 진입로에 설치된 CCTV 및 김 회장의 에쿠스승용차, 체어맨승용차에 장착된 GPS(위성항법장치)를 조사해 사건 당일 보복폭행이 벌어지기 전 김 회장이 탄 승용차가 집을 나서는 모습이 찍혔는지, 김 회장의 동선이 기록돼 있는지 확인했으나 결과는 밝히지 않았다. 남대문서 과학수사팀장은 "CCTV와 GPS는 현장에서만 확인하고 경찰서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김 회장 자택에서 발견한 씨앗과 나뭇가지, 검정색 점퍼와 운동복 하의, 등산화, 운동화 등이 압수품목에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승용차 2대의 타이어 주변에 붙어있는 흙을 채취해 청계산에 갔었는지 정밀 검사키로 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김회장이 청계산과 북창동 S클럽에서 직접 폭행했다"고 주장한 반면 김 회장은 "청담동 G주점과 청계산에는 간 적이 없고, 직접 폭행한 사실도 없다"고 부인함에 따라 사건 당일 김 회장의 행적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의혹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경찰청은 1일 오후 2시15분부터 2시간 반 동안 종로구 가회동 김 회장 자택에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압수수색을 마친뒤 경찰은 어떤 자료를 찾아냈는지 밝히지 않았으나 결과가 기대에 못미쳤다고 말했다. 경찰이 횡령 등 경제사건이 아닌 폭력사건으로 재벌총수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압수수색에 나선 강대원 남대문서 수사과장은 김 회장 자택 관리인에게 "김 회장 부자가 피의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압수수색을 하러 왔다. 조기에 철수하겠다"라며 압수수색영장을 전달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김회장이 청계산 등에서 직접 폭행했다"고 주장한 반면 김 회장은 "청담동 G주점과 청계산에는 간 적이 없고, 직접 폭행한 사실도 없다"고 부인함에 따라 사건 당일 김 회장의 행적을 파악할 수 있는 물증을 확보하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김 회장의 집 차고에 설치된 CCTV자료를 압수해 사건 당일 범행시각 전에 김 회장이 탄 승용차가 집을 나서는 모습이 찍혀있는지 확인하고, 차량에 설치된 GPS(위성추적장치) 정보를 분석해 당일 이동경로를 파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후 4시45분께 압수수색을 끝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은 30일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차남(22)을 소환, 새벽까지 김 회장의 개입 여부 등을 집중 조사했다. 경찰은 김씨를 상대로 한 조사와 관련자의 휴대전화 사용내역 조회 등을 통해 김 회장이 이번 사건에 적극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 경찰은 이날 중국에서 돌아온 김씨를 오후 11시 피해자 겸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으며, 사건의 발단이 된 청담동 G주점에서 북창동 S클럽 종업원 윤모씨 일행과 시비 과정에서 다친 경위를 조사했다. 경찰은 이어 ▲G주점과 청계산 공사현장, S클럽에 김 회장이 동행했는지 ▲김 회장이 직접 폭력을 휘둘렀는지 ▲S클럽 종업원을 보복 폭행했는지 ▲폭행 당시 도구를 사용했는지 등을 집중 추궁했다. 김씨는 경찰에 추궁에 "모른다" "아니다"를 반복하며 김 회장 측의 입장을 두둔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또 김씨와 줄곧 동행하면서 폭행 장면을 모두 목격한 것으로 알려진 친구 A씨가 사건 해결에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그의 신원과 소재도 캐물었다. A씨는 사건현장 3곳을 생생하게 목격한 유일한 제3자로 알려져 있다. 김씨는 29일 아버지가 11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을 수사중인 서울경찰청은 30일 중간 수사결과 브리핑에서 "피해자들은 진술을 통해 김 회장이 청계산 공사현장에서 `아들을 내가 때렸다'고 말한 조 모씨의 등을 쇠파이프로 가격하고, 발로 얼굴 등 전신을 수십차례 폭행했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회장은 `내 아들이 맞는데 왜 말리지 않았느냐'며 나머지 북창동 S클럽 종업원 3명도 손과 발로 얼굴과 등 부위를 10여차례 이상 폭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피해자들은 또 "김 회장 일행은 아들이 `조씨는 나를 때린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자 북창동 S 클럽으로 이동해 윤 모씨를 불러 아들 김 모씨에게 직접 폭행토록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조사한 피해자 6명 중 5명은 회장에게, 1명은 아들에게 직접 맞았다고 주장했다. 이들 주장에 따르면 가장 부상이 심한 사람은 김 회장의 아들을 때렸다고 거짓 주장했던 조모씨로, 김 회장에게 쇠파이프 등으로 맞아 두부타박상과 늑골골절이 의심되는 상처를 입었다. 공사장에 끌려갔던 또 다른 조모씨와 김모씨, 정모씨는 꿇어 앉은 채 김 회장에게 10∼20여차례씩 손과 발로 맞았고, 북창동 S클럽 사장 조
피해자 `진실' 읍소에 변호인 눈치보며 `혐의 부인'일식 도시락 주문했으나 거의 먹지 못해 (서울=연합뉴스) 성혜미 기자 =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소환돼 피의자 조사를 받은 한화 김승연 회장은 진술 과정에서 거의 `모르쇠'로 일관했다. 조사를 담당한 일선 수사관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29일 오후 4시부터 30일 새벽 3시 20분까지 진행된 조사 내내 동석한 변호사에 의지하면서 차분한 자세로 일관되게 `결백'을 주장했다. 김 회장은 3월 8일 밤 북창동 S크럽에 간 사실은 시인했으나 폭행 가담 또는 지시는 전면 부인했다. 그는 출석 전 `수사 적극 협조'를 공언했던 것과 달리 피의자 대질신문 요청을 조사 막판까지 거부하는 등 비협조적 태도를 보여 경찰의 속을 태웠다. 경찰은 다른 조사실에서 대기 중이던 피해자들에게 모니터 화면을 통해 김 회장의 모습을 보여준 뒤 피해자 진술을 받는 `선면(選面)조사'를 벌여 "때린 사람은 김 회장이 맞다"는 답변을 하나씩 얻어냈다. 이후 경찰의 거듭되는 종용에 김 회장과 변호사는 대질신문 거부가 `약점'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30일 새벽이 돼서야 대질조사에 응했다. 하지만
`보복폭행' 사건을 수사중인 경찰이 김승연 회장 둘째 아들(22)의 출국사실을 언제 알았는지에 대해 한화측과 입장이 엇갈려 공방이 벌어졌다. 29일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24일 사건이 최초 보도되자 25일 오전 등기로 김 회장 차남 A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발송했고, 한화그룹 비서실 임모 경호부장과 협의해 28일 오전 A씨가 출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한화그룹 변호사는 28일 오전 0시30분께 김 회장의 아내가 작성한 `아들이 예일대에 재학중인 유학생으로 해외체류 중이라 정해진 시간에 경찰출석이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했다. 경찰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교환학생으로 재학중인 A씨가 25일 답사팀과 함께 중국으로 출국한 사실을 사흘이나 뒤늦게 확인했다. 경찰은 "25일 오전 경찰전산망으로 A씨의 출국사실을 확인했을 때 국내체류중인 것으로 나타났고, 경찰전산망에 출국 사실이 1∼2일 늦게 등록되는 사실을 몰랐다"며 "한화 임 부장이 A씨가 출석할 것처럼 협의를 계속했기 때문에 다시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한화측에 책임을 돌렸다. 이에 대해 한화 홍보팀은 "진모 경호과장이 26일 경찰 조사를 받을때 A씨의 중국 출국 사실을 알렸는데 경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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