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하이닉스 반도체, 아르테미스 2호 타고 ‘심우주 시험대’ 올랐다

‘54년의 공백’ 깬 아르테미스 2호... 달은 이제 ‘도착지’가 아닌 ‘출발점’
K-라드큐브, 밴앨런대 방사선 정밀 관측... 韓 반도체 ‘우주 인증’ 첫 도전

인싸잇=이다현 기자ㅣ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소자가 2일 우주를 향해 날아올랐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유인 우주탐사 임무인 아르테미스(Artemis) 2호 발사 성공과 함께, 본체에 탑재된 큐브위성 ‘K-라드큐브(K-RadCube)’에 실리면서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부품이 NASA 유인 우주 임무에 동행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심우주 방사선 환경에서의 성능 검증이라는 전례 없는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아르테미스 2호는 이날 오전 7시36분(한국시간)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 39B 발사대에서 발사됐다. 1972년 12월 아폴로(Apollo) 17호 이후 54년 만에 인류를 달 궤도로 보내는 유인 우주선이 지구를 떠난 것이다.

 

발사 당일 플로리다주 코코아비치 해안은 인파로 가득 찼다. 로켓이 화염을 뿜으며 맑은 하늘로 솟구치자 수만 명의 관중이 환호했다. 그러나 같은 시각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대형 스크린에는 발사 장면이 중계된 곳이 단 한 곳도 없었다.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발사를 지켜보던 맥심 크리비안(37)은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공동의 성취감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이 대조적인 두 장면은 아르테미스 2호가 가진 이중적 성격을 압축한다. 역사적 이정표임은 분명하지만, 아폴로 시대처럼 전 세계가 숨을 죽이던 열기는 더 이상 없다. NASA가 달에 돌아가는 이유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달 착륙’이 목표가 아니다... 이번 임무의 진짜 의미는

 

아르테미스 2호는 달 착륙 임무가 아니다. 사령관 리드 와이즈먼(Reid Wiseman)을 비롯해 최초의 흑인 심우주 비행 우주인인 조종사 빅터 글로버(Victor Glover), 최초의 여성 심우주 비행 우주인인 임무 전문가 크리스티나 코크(Christina Koch), 최초의 비(比)미국인 달 비행 승무원인 캐나다 우주비행사 제러미 핸슨(Jeremy Hansen) 등 4명은 달 표면에 내리지 않는다.

 

약 9.3㎥, 미니밴 두 대 크기의 오리온 캡슐에서 10일을 보낸 뒤 오는 1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인근 태평양 해역에 착수하는 것으로 임무가 끝난다.

 

핵심 목적은 심우주 환경에서 오리온 우주선의 생명유지장치, 통신, 항법 시스템을 실제 유인 비행으로 검증하는 데 있다.

 

아미트 크샤트리야(Amit Kshatriya) NASA 부국장은 발사 전 브리핑에서 “초기 임무에서 생명 유지 시스템의 성능이 나오지 않는다면 달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실제로 발사 직후 오리온의 통신 시스템이 일시 두절되고 화장실 결함도 발생했다. NASA는 통신 문제는 곧 복구되었으며 화장실 문제는 대체 수단을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오리온은 달 뒷면을 통과하면서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유인 우주선의 신기록도 세운다. 지구로부터 약 40만 6900㎞로, 아폴로 13호 비상 귀환 당시 기록보다 약 6700㎞ 더 멀다. 유인 탐사선이 달 뒷면에 접근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도 우주로 갔다... 삼성·하이닉스 반도체 실은 ‘K-라드큐브’

 

 

이번 발사에는 한국의 기술도 실렸다. 한국천문연구원과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우주방사선 관측 큐브위성 ‘K-라드큐브(K-RadCube)’가 탑재됐다. 사상 최초로 국내 개발 탑재체가 NASA 유인 우주 임무에 동행하는 것이다.

 

K-라드큐브는 발사 5시간 7분 후 고도 약 3만 6000㎞ 지점에서 분리돼 최대 7만㎞ 지구 고타원궤도(HEO)를 약 2주간 비행하며 밴앨런 복사대의 우주방사선 데이터를 수집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소자도 탑재돼 강한 방사선 환경에서의 성능 저하 여부를 직접 검증한다. 

 

수집된 데이터는 향후 유인 달 상주 및 화성 탐사 시 방사선 안전 기준 수립과 심우주용 전자장비 개발에 활용될 전망이다. 한국천문연구원이 개발을 총괄하고, 위성 시스템은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 지상국 운영은 KT SAT이 담당한다.  

 

왜 이 검증이 중요한가... 뉴스페이스 시장의 관문 된 ‘방사선 내성’

 

우주 방사선은 반도체 회로에 오류를 일으키거나 성능을 저하시켜, 심우주용 전자장비 개발에서 가장 큰 기술적 변수로 꼽힌다. 지구 저궤도의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달리, 달·화성으로 향할수록 밴앨런대 바깥의 방사선 환경은 급격히 가혹해진다. 때문에 심우주 임무에 탑재되는 반도체는 방사선 내성(耐性) 검증이 사실상 필수 조건이다.

 

K-라드큐브는 위성이 제공하는 정량적 방사선 계측 데이터와 소자의 실시간 반응을 연계 분석해 방사선 환경에 대한 반도체의 반응 특성을 정밀 평가한다. 이 데이터가 확보되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회사는 ‘실제 심우주 환경에서 검증된 반도체’라는 공식 이력을 갖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검증 결과가 뉴스페이스(New Space) 시장 공략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위성·우주선용 부품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방사선 내성이 입증된 반도체는 항공우주 규격 인증 취득에 유리한 데이터로 활용될 수 있다. 우주 탐사 장비 전반에 쓰이는 반도체 규격 수립에 한국 기업의 실측 데이터가 직접 반영되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오태석 우주항공청장은 지난달 31일 서울 소재 위성제조기업 나라스페이스테크놀로지스에서 열린 제3차 우주항공 SOS 간담회에서 “우리 기업들이 달과 화성을 넘어 심우주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우주청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앞으로도 우주탐사 분야의 투자와 도전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