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SK하이닉스 산업기술유출 사건 대해부 ② – 中에 영업비밀 유출자 선처 탄원한 고위 임원

<인싸잇>은 SK하이닉스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원 또는 협력사 관계자 등의 산업기술유출 및 영업비밀 누설 등 사건에 관한 최근 2~3년간의 판례를 전수 분석해, 그중 중요 사건 다섯 건을 추렸습니다. 각 사건의 발생 원인과 문제점 등을 여러모로 살핀 연속 보도를 통해, SK하이닉스의 보안 개선 방안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인싸잇=한민철 편집국장 | 지난해 6월 12일 대법원은 산업기술 유출과 영업비밀 국외 누설 등의 혐의로 기소된 M사 관계자 등에게 원심의 유죄 형량을 확정했다.

 

M사는 과거 현대전자 시절부터 반도체 세정장비 국산화를 목적으로 SK하이닉스와 10년 이상 세정장비의 공동개발을 진행하고 이를 납품해온 반도체 장비업체로 알려져 있다.

M사는 지난 2017년부터 중국 반도체 제조사인 K사 및 중국 반도체 컨설팅 전문기업 J사와 반도체 세정장비 수출 등에 관한 협의를 해나갔다. 이는 M사가 SK하이닉스의 내부 기술을 유출하게 된 계기가 됐다.

 

향후 드러난 바에 따르면, 사실 M사는 SK하이닉스와 반도체 세정장비 개발 및 관리 업무를 하면서 이 회사 소속 직원들의 이천 사업장 내 D램 제조라인 출입이 잦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SK하이닉스의 세정공정 양산 레시피를 무단으로 클린노트 등에 적어 유출하거나, 세정공정 양산 레시피 화면을 캡처해 USB 등에 저장해 밖으로 빼 내왔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취득한 정보를 엑셀파일 등으로 변형해 M사 기술팀 직원들의 PC 등에 저장해 쌓아놓고 있었다.

 

그런데 M사는 K사와 J사로부터 반도체 사업 추진을 위한 세정장비 레시피를 요구받았고, 이에 그동안 SK하이닉스 이천 공장에서 빼 내온 관련 정보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들의 기술 유출 행위는 꽤 조직적이었는데, 우선 중국 측 영업을 담당하는 M사의 영업그룹장이 K사 등으로부터 반도체 세정장비 레시피 제공에 관해 요구받으면 이를 연구소장에 문의하고, 연구소장은 다시 기술팀에 연락해 그동안 SK하이닉스에서 빼내어 모아놓은 자료를 선별해 전달을 요청했다.

 

그렇게 조직적이며 치밀하게 요청 및 전달한 자료를 정리해 이메일을 통해 K사 측 관계자에 전송하면서, 최종적으로 SK하이닉스의 기밀이 중국 기업에 유출된 것이다.

특히 M사는 2019년 3월경 J사와 중국 상하이에서 반도체 세정장비 수출 협의를 앞두고, 여기에 활용할 반도체 세정장비에 대한 레시피를 필요로 했다. 내부적으로 관련 자료를 준비하기로 했는데, M사 연구소장은 그동안 자사에서 관리하지 않고 있던 SK하이닉스의 세정장비 레시피까지 포함하려 했다.

 

이에 각 부서가 SK하이닉스로부터 관련 기술을 빼내기로 공모했고, 기술팀 직원이 자신의 양말 속에 USB를 숨긴 채 SK하이닉스 사업장에 들어갔다. 이어 당시 가동 중인 반도체 세정장비 4대의 입력 패널에서 6개의 케미컬별 세정공정 양산 레시피 화면을 캡처했고, 이를 USB에 저장해 무단으로 반출했다.

 

결국 자사의 사업상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십수 년 동안 협력한 SK하이닉스의 내부 자료를 유출해 중국 회사인 J사에 누설한 것이다.

 

법원은 이들의 행위를 결코 가볍게 판단하지 않았다. 지난 2023년 9월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보면서 “피고인 중 일부는 SK하이닉스의 중국 경쟁 업체에 회사의 정보를 유출하였는바 그중에는 국가핵심 기술까지 포함돼 죄질이나 비난 가능성이 높다”며 “국가산업기술에 해당하는 SK하이닉스의 웨이퍼 적층 구조와 각 층의 소재 정보, 식각·세정공정 정보 등을 수집해 중국 회사에 유출했다”고 판시했다.

 

삼성전자, 공탁 안 받고 ‘엄벌 탄원’... SK하이닉스 임원은 ‘선처 탄원’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세정공정 양산 레시피를 유출하는데 직접적으로 가담한 M사 연구소장과 영업그룹장에 각 징역 1년 6개월에 벌금 3000만 원, 품질그룹장에는 징역 1년(집유), 기술팀장에 징역 10월(집유), 기술팀 직원 등에 각 징역 8개월(집유)을 선고했다.

 

이들은 항소했는데, 지난 2024년 10월 서울고법 형사합의7부는 연구소장과 영업그룹장에 대한 벌금의 액수를 원심보다 늘렸고, 품질팀 책임자에 대한 집행유예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머지 기술팀 관계자들의 항소는 기각했다.

 

이 사건 항소심에서는 함께 기소된 M사 부사장에 대한 징역 형량을 높이거나, 앞서 언급했듯이 피고인 일부에 대한 벌금 액수를 늘리고 집행유예를 취소하는 등 1심보다 엄한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SK하이닉스를 비롯해 국내 관련 산업계와 국가경제에 어떻게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중국 K사와 J사에 어떻게 유리하게 작용하는지 등 범행의 결과에 대해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며 “SK하이닉스의 협력업체인 사정을 악용해 관련 정보를 부정취득하고 이를 국외에 유출하는 등 범행이 계획적·조직적으로 이뤄졌다”며 1심보다 더 가중한 형량을 정한 사유를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부분이 있다. 항소심에서 이들 M사 관계자들의 형량에 유리하게 반영한 사유가 있었는데, SK하이닉스 고위 임원의 ‘선처 탄원’가 그것이었다.

 

실제로 당시 항소심 선고를 11일 앞두고, SK하이닉스의 김 아무개 부사장 명의로 피고인인 M사 연구소장과 품질그룹장에 대한 선처 탄원서가 재판부에 제출됐다.

 

물론 재판부는 김 부사장의 해당 탄원서를 SK하이닉스로부터 위임을 받은 공식 문서로 판단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이 두 피고인의 유리한 양형에 반영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사실 당시 M사 피고인들 관련 사건은 SK하이닉스뿐 아니라, 삼성전자의 기술을 유출한 건에 대해서도 심리가 동시에 진행됐다. 다시 말해 삼성전자도 이 사건 피해자 중 한 곳이었다.

 

항소심에서 M사 피고인들은 혐의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피해자 삼성전자에 피해 회복 차원에서 일부 금액을 공탁하는 성의를 보였다. 하지만 삼성전자 측은 당시 공탁금을 받을 의사가 없다며 오히려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했다.

 

어쩌면 이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수년간 협력사로서의 의리를 저버리고 회사의 피와 살과도 같은 산업기술을 유출해 중국 회사에 빼돌렸다면, 이는 도저히 선처를 고려할 가치도 없는 행위였다.

 

당시 삼성전자 관계자는 필자에 “회사에 기술 유출이라는 막중한 피해를 줬는데, 겨우 일부 금액을 공탁한다 해서 선처 탄원을 해준다면, 주주들로부터 배임 소지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당시 SK하이닉스의 김 부사장은 두 사람의 피고인을 위한 선처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물론 두 사람의 형량은 1심보다 다소 가중됐다고 볼 수 있지만, 선처 탄원이 반영되면서 ‘더 무겁게 올라갈 수도 있는 판결이 이 정도에서 그쳤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김 부사장에 대한 과거 언론보도를 살펴보면, 그는 SK하이닉스의 핵심 소재와 부품 수급을 담당하면서 안정적 공급망 관리와 준법 활동을 담당하는 구매 전략 조직을 신설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회사의 핵심 소재와 부품 수급을 담당하는 부서의 고위 임원이 회사의 중요 산업기술과 영업비밀을 유출한 전 협력사 사람들에게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은 이 사건에서 SK하이닉스 측에 계속해 따라다닐 물음표가 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술유출 그것도 중국에 회사의 기밀을 빼돌린 사건에 대해 매정할 정도로 엄격한 인식을 가져야 함에도 일반 직원도 아닌 고위 임원이 피고인들에 선처 탄원까지 했다는 점에서, 지난해 SK텔레콤 유심 해킹 사태에서 “보안은 생명의 문제”라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말이 어디까지가 의지이고 한계인지 와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해 본지는 SK하이닉스 산업기술유출 사건 대해부 ① 사안에 관한 보완 및 개선 여부에 대해 SK하이닉스 측에 질의했지만, 답변을 얻지 못했고 심지어 언론 담당자로부터 연락 차단까지 당했다. 이에 사측이 위 사건에서 발견된 문제점에 관한 개선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이를 개선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