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욱 칼럼] 민족 최대의 명절 앞에서 멈춰 선 시간

인싸잇=유용욱 주필 | 설을 앞둔 시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향해 이동을 시작하고, 또 일 때문에 귀성(歸省)이 어려운 이들은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족의 안부를 묻는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작년에 이어 이번 설에도 돌아갈 집도, 안부를 물어볼 가족이 사라진 시간이다.

 

 

각각의 사연과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무안공항을 출발해 해외로 향했던 가족들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공항으로 착륙을 시도하던 제주항공 여객기는 마침내 기적적으로 동체착륙에 성공했다. 기체는 활주로에 무사히 닿았고, 조종사는 마지막까지 비행기를 세우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탑승자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한 동료 조종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목숨을 건 동체착륙은 거의 완벽했다.” 한 베테랑 조종사의 말이다. 항공기 조종사의 눈으로 보면, 그날,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가 선택하고 목숨을 걸고 결행했던 동체착륙은 ‘기적’이 아니라, 최후의 계산에 이어 내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속도, 풍향, 활주로 길이, 남은 제동 수단, 그리고 당시 기체 손상 상태를 불과 몇 초 안에 동시에 계산하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항공기 조종사는 영웅이 되기 위해 조종간을 잡지 않는다. 오직 승객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일 뿐이다. 그날 제주항공 7C 2216편 항공기 조종사의 머릿속을 지배한 생각은 오직 단 하나였을 것이다. 이 비행기를 활주로에 반드시 안전하게 멈춰 세워야 한다는 것.

 

그래서였을까. 그날 제주항공 7C 2216편의 동체착륙은 완벽했다. 하지만 활주로 끝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안전 구역이 아닌 차가운 콘크리트 구조물이었다. 조종사가 목숨 걸고 지켜낸 생명들을, 국가의 안전 불감증이 설계한 구조물이 앗아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조사 중'이라는 고장난 녹음기만 틀어대고 있다.

당시 사고 영상을 접한 같은 회사 소속 동료 조종사가 한 방송사 뉴스에서 기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기장님의 동체착륙이 너무 완벽해 눈물이 났다.”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연신 닦아내던 뉴스 인터뷰 영상이 떠올라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고 목젖이 뜨거워진다.

 

만약 활주로 끝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없었다면, 이 사고는 세계 항공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비상착륙 사례’로 기록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그래서 그 조종사의 눈물이 더욱 아프게 느껴진다. 조종사에게 그날은 “어쩔 수 없었다”라는 한마디 말만으로는 정리될 수 없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후라 할지라도 지켜내지 못한 생명 앞에서, 조종사는 변명할 언어조차 갖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그 기장과 부기장의 영원한 부재(不在)와 그들의 침묵이 동료의 눈물로 남았고, 가장 완벽한 동체착륙 앞에서지만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형 인명사고를 수반하는 항공사고는 통상 조종사의 문제로만 설명될 수 없는 사고라는 사실은 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또 대부분의 항공 사고 조사결과 보고서에선 이미 사망한, 그래서 변명조차 불가능한 조종사 과실로 잠정 결론을 내리고 최종 원인은 미상(未詳)으로 마무리하는 사례 또한 드물지 않기 때문에 그의 눈물이 더욱 더 아프게 느껴진다.

 

그러나 최근 일부에 불과하지만 공개된 사고조사보고서는 훨씬 더 잔인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활주로 끝 둔덕 내부에 콘크리트 구조물만 없었다면, 당시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간 어찌된 영문인지 강요된 침묵 앞에서 이번에 공개된 조사보고서는 적잖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다시 말해 당시 사고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었다는 사실이 이제 공식 문서로 남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안공항의 시계는 사고 당일로 멈춰 서 있다. 어렵게 마련된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도 지난 1월30일 공식적인 활동을 종료하면서 더 이상의 자료 공개는 없었고, 특정된 책임자도 없으며, 유가족들의 절규에 가까운 질문에는 수사 중인 사항이라 답변이 어렵다는 고장난 녹음기 소리같은 무의미한 답변뿐이다.

 

‘셀프 조사’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고는 조사 중일 뿐이고 경찰 수사 책임자는 국토부 산하 위원회 조사 결과가 나와야 본격화 할 수 있다는 판에 박힌 의례적 답변뿐이다. 참으로 놀라울 정도로 기시감(旣視感)을 보여주는 사회적 참사에 대한 정부 관계당국의 대응이다. 멀리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그랬고, 가깝게는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 후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 당국의 대응과 답변이 꼭 그랬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 모든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는 이 세 가지 뿐이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늘, 수사가 진행 중이니 수사결과를 지켜보자며 한없이 늘어지는 진상규명. 그리고 진짜 책임자는 어디가고 애꿎은 하위직들에게만 내려지는 솜방망이 처벌 뿐이다. 재발방지 대책이라곤 어디서 가져왔는지 그대로 복사해 붙인 것 같은 걸 대책이랍시고 제시한다. 그러면서 기껏 한다는 말이 선심쓰듯 하는 추모공원 조성과 추모비 건립 약속 정도가 전부다.

 

지금 이 시간에도 유가족들은 무안공항에 남아있다. 그들은 유난히 추웠던 이번 겨울 내내 차가운 바닥에 텐트를 치고, 왜 가족이 죽어야 했는지에 대한 답을 기다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그 기다림 속에서 네 명의 유가족이 한 많은 세상을 등지고 먼 길을 떠났다. 결국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는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 2분 57초로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의 무관심 속에서 지금 이 순간도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참사인 것이다.

 

거듭 강조해 말하지만, 이것은 단순한 항공 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간 반복해 온 선택적 책임의 문제다. 어떤 참사는 ‘국가적 비극’이 되고, 또 어떤 참사는 조용히 밀려난다. 주무관청인 국토부와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께 묻고 싶다. 그 기준은 무엇인가. 희생자의 수인가, 정치적 부담인가 그도저도 아니라면 아니면 책임질 사람이 정해져 있느냐의 문제인가.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에서야 특별수사단이 꾸려졌다. 그러나 이 소식은 위안이라기보다 더 큰 의문과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왜 지금인가. 그렇다면 그 긴 시간 동안 왜 유가족이 직접 거리로 나서야만 했는가.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것은 복수가 아니다. ‘그날의 진실’이고 ‘책임소재’이다. 다시는 같은 이유로 누군가의 가족이 설을, 추석을 앞두고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없게 하고 싶은 것이다.

 

무안공항에서 사라진 179명의 목숨은 결코 숫자가 아니다. 그들 모두에게는 이름이 있었고, 착륙 후 돌아갈 집이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무안공항 도착장에 마중나온 가족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해를 맞아 설날에 함께 떡국을 나눌 가족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생명’은 선택적으로 보호될 수 없다. 물론 ‘책임’도 결코 선택돼서는 안 된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사회적 참사를 겪어내면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 단순한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켜가지 못한다면, 무안공항 참사는 끝난 사건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비극이다.

 

제주항공 7C 2216편 탑승객 전원과 승무원 중 사고로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모든 분들의 영원한 안식(安息)과 영면(永眠)을 기원하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또한 그들 모두에게 신의 가호(加護)가 임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