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 = 유용욱 주필 | 2002년 개봉한 베트남전 실화 바탕 영화 『위 워 솔저스』(We Were Soldiers)의 가장 눈부신 장면은, 포탄이 우박처럼 떨어지고 생사(生死)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깊은 골짜기로 향하기 직전, 할 무어 중령(멜 깁슨 분)이 연병장에 선 어린 병사들 앞에서 나지막이 읊조리던 맹세의 순간이다. 피와 흙먼지 속에서 완성된 '지휘관의 맹세’ "우리는 지금부터 신성한 전투에 돌입한다. 내가 부하들보다 가장 먼저 적지(敵地)에 발을 디딜 것이며, 철수할 때는 맨 나중에 나올 것이다. 내가 살아 있든, 죽어 있든 단 한 사람의 부하도 내 뒤에 남겨두지 않겠다.“ 이 명대사는 단순한 영화 속 대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타인의 목숨을 짊어진 자가 마땅히 치러야 할 영혼의 몸값이었고, 계급장의 무게를 피로 증명하겠다는 지휘관의 거룩한 제의(祭儀)였다. 2026년 9월, 짙은 안개와 풀벌레 소리만이 조용히 흐르던 대한민국 서부전선 제25사단 비무장지대(DMZ). 그 조용하고도 잔혹한 침묵의 땅에서,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보다 훨씬 더 처절하고도 숭고한 현실의 '할 무어'를 목격했다. 군사분계선(MDL) 남쪽의 서늘한 수색로. 최근 북한이 수시로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가을의 문턱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높고 푸르른데, 이 땅의 정치가 국민에게 안겨주는 무게는 비할 데 없이 무겁고 쓰라리기만 하다. 삶의 현장에서 땀 흘려가며 하루를 힘겹게 견뎌내는 서민들의 손마디는 갈수록 팍팍해지고, 밤잠을 이루지 못하며 미래를 걱정하는 이들의 한숨 소리는 깊어만 가는데, 국정을 책임진 권력의 무대는 여전히 그들만의 화려한 연극으로 가득 차 있다. 지난 18일, TV 화면을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된 대통령의 대국민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국민이 느낀 것은 따뜻한 위로나 희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냉혹하게 외면당한 민심의 깊은 절망감이자, 연출된 소통 뒤에 숨은 서늘한 오만함이었다. 정교하게 연출된 감성 연극과 책임의 유체이탈(幽體離脫) 카메라 불빛 아래 고개를 숙이며 “모든 것이 저의 부족함 탓”이라며 읍소하는 통치자의 모습은, 겉보기에는 국민 앞에 겸손히 다가서는 유연한 '소통의 포즈'처럼 비쳐졌다. 100분이라는 시간 동안 무려 13번이나 ‘부족함’을 언급하고, 고개를 숙이며 민생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사전에 세밀하게 계산된 연출의 극치였다. 그러나 그 정교하게 단장된 감성적 언사의 커튼을 거둬내자 드러난 본질은 참담했다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용혜인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그러나 국민이 묻는 것은 “왜 사퇴했느냐”가 아니라 “사퇴하면 무엇이 끝나는가”이다. 대통령의 인사 발표 이후 불과 2주 남짓, 각종 편법과 궤변, 도덕성 논란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만들더니 여당의 사퇴 권고에 떠밀리듯 물러났다. 장관 후보직 하나를 내려놓았다고 해서 제기된 의혹과 정치적 책임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퇴는 직(職)을 내려놓는 행위일 뿐, 잘못에 대한 면죄부가 아니다. 여권(與圈)과 본인은 이를 정치적 결단이나 진보 연대를 위한 희생쯤으로 포장하고 싶겠으나,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씁쓸함을 넘어 거센 분노와 허탈함으로 가득 차 있다. 사퇴는 면죄부가 아니다… 철저한 수사와 처벌이 반드시 뒤따라야 국민 대다수의 정서는 용 후보자의 장관 후보직 사퇴가 결코 사태의 '종결'이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장관 자리 하나 내려놓았다고 해서 그간 청문회 국면에서 드러난 무수한 부조리와 불합리, 나아가 실정법(實定法) 위반 정황이 다분한 불법적 행적들에 면죄부가 주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간 국민이 목도(目睹)한 것은 공직 후보자로서의 최소한의 자질조차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대한민국 공직 사회의 법적·도덕적 마지노선이 어디까지 무너져 내릴 수 있는지, 눈앞에서 펼쳐지는 비극적 현실을 목도(目睹)하며 절망을 넘어 국민들 눈에는 피눈물이 흐른다. 부끄러움을 잊은 권력,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는가 모두 12개 혐의로 5개의 재판에 회부된 범죄 혐의자가 권력의 핵심에 서더니, 청년과 정의의 탈을 쓴 자들이 기득권을 챙긴다. 국민에게는 "빚내서 집 사지 말라"던 자들이 뒤에서는 ‘영끌’과 갭투자로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을 거둬들이는 나라. 오늘 우리가 맞닥뜨린 대한민국은 법치가 도륙(屠戮)당하고 공직 윤리가 완전히 파멸한 ‘위선자들의 천국’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발표된 이재명 정부 2기 개각 인선은 단순히 ‘인사 실패’라는 미사여구(美辭麗句)로 포장할 수 없는 국가적 ‘인사 참사’이자 정권의 ‘도덕적 파산 선언’이다.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알선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김승원 후보자가 지명된 것부터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물건 잔뜩 챙겨 가고 있으니 있어 보라"며 유흥업소 출신 여성 브로커와 은밀한 대화를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30일 이재명 대통령이 법무부·재정경제부·국토교통부·성평등가족부 등을 포함한 ‘2기 내각’ 개각을 단행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국민이 기대했던 국정 쇄신의 신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기대보다 의문이, 쇄신보다 정권의 위기관리라는 의구심이 앞선다. 진정한 국정 쇄신 인사라면 지난 국정의 한계를 돌아보고 사람과 정책을 바꾸겠다는 성찰이 담겨야 한다. 그러나 이번 인사에서 읽히는 것은 국정 기조 전환이 아닌 기존 기조의 강행이며, 쇄신이나 미래도 아니고 안정도 아닌 오직 정치적 계산 뿐이다. 일요일 아침의 ‘기습 개각’이 던진 불길한 신호 방식부터 어색했다. 일요일 오전 전격적으로 발표된 개각 과정에서, G20 회의 참석차 인천공항에 도착한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출국 직전에야 교체 사실을 통보받고 출장을 취소하려다 다시 급히 길을 떠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무리 보장되는 임기가 따로 없는 국무위원이라 해도 국제외교 무대를 앞둔 수장에게 출국 직전 사퇴를 통보한 것은 정상적인 인사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인사는 메시지다. 그러나 이번 개각을 통해 청와대가 던진 메시지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국정
인싸잇 = 유용욱 주필 |굳이 거창하게 뭘 인용하지 않더라도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이것은 웅변이나 수사(修辭)가 아니라 군대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한 유일무이한 존립 기반이다. 전장에 투입된 하급 지휘관이 상관의 명령을 받는 순간 법전을 펼쳐 들고 상관의 명령에 대해 위헌성과 위법성을 저울질한 뒤 실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 그 조직을 과연 군대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군대가 아니라 로스쿨 동아리 중 하나이거나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갈팡질팡하다 적의 총탄에 사분오열할 사조직에 불과하다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 사법부는 비록 1심 선고이긴 하지만 군의 이 엄혹한 생리를 철저히 외면하고 대한민국 국군을 향해 사형을 선고했다. 사법부마저 굴복한 ‘내란 몰이 광풍’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7-2부는 12·3 비상계엄 당시 707특수임무단을 이끌고 국회로 출동했던 김현태 전 단장(대령)에게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내란 특검팀의 징역 18년 구형에 이어 나온 이 엄벌주의 판결은 아무리 느슨한 잣대로 되짚어 보더라도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리 이미 특정 집단이 법원 내 요직 대부분을 장악한 사법부라지만 법원마저
인싸잇 = 유용욱 주필 |국민의 삶과 직결된 수많은 국정 과제 중 경제가 ‘먹고사는 문제’라면, 안보는 말 그대로 ‘죽고 사는 문제’다. 경제적 시련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지만, 안보가 한번 허물어지면 국가의 존망(存亡)은 물론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터전이 일순간에 잿더미로 변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은 지구상 유일하게 냉전의 아픔을 간직한 분단국가이자, 지금 이 순간에도 휴전선 너머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전쟁이 진행 중’인 나라다. 이런 나라에서 국방과 안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국방부가 추진 중인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폐합 파동과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보고 있자면, 필자는 참담함을 넘어 깊은 충격과 절망감을 금할 길이 없다. 국가의 안위(安危)를 책임질 정예 장교 육성 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이 엄중한 사안에 대해 정작 국민적 관심은 너무나 무관심하고 미미하기 때문이다. 안보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무감각 속에서, 안보의 핵심 기둥이어야 할 사관학교가 정치적 계산과 왜곡된 명분 아래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조목조
인싸잇 = 유용욱 주필 | 노웅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가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하면서 정치권이 또다시 거친 공방에 휩싸였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판결을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이자 조작 기소"로 규정하며 수사를 주도했던 한동훈 무소속 의원의 사과를 요구했고, 이재명 대통령 역시 과거 민주당 대표 시절의 공천 배제를 사과하며 "선배님, 죄송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격정적인 메시지를 띄웠다. 그러나 거창한 사과와 비난의 수사학(修辭學) 뒤에 숨겨진 판결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이번 사건은 한국 정치가 형사사법 체계의 본질을 얼마나 자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Not Guilty’와 ‘Innocent’의 엄연한 법리적 차이 우선 이번 판결이 결코 노웅래 전 의원의 완벽한 도덕적 청렴을 증명하거나 "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미국의 형사법에서 무죄 판결을 'Innocent(죄가 없음)'가 아닌 'Not Guilty(유죄 입증 실패)'라고 칭하는 이유는 매우 명확하다. 이는 피고인의 완전한 무결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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