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욱 칼럼] ‘우물 밖 개구리’가 빠진 지적(知的) 오만(傲慢)과 진영논리의 함정

어느 청바지 브랜드가 던진 뜻밖의 질문

인싸잇=유용욱 주필 | ‘뱅뱅사거리’라는 지명이 왜 생겨났는가? 양재역과 강남역 사이, 주변이 허허벌판이던 시절부터 그 자리를 지켜온 ‘뱅뱅’ 매장 덕에 우리는 그곳을 ‘뱅뱅사거리’라 부른다. 하지만 화려한 수입 브랜드와 트렌디한 편집숍이 즐비한 강남 한복판에서, ‘뱅뱅’이라는 브랜드의 존재감은 묘하게 비껴가 있다. 

 

 

패션에 관심이 좀 있다는 이들에게 뱅뱅은 추억 속의 이름이거나, 혹은 ‘누가 입는지도 모를’ 생소한 브랜드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소위 말하는 패션 피플들이 리바이스나 게스, 혹은 수십만 원대 프리미엄 진을 논할 때, 뱅뱅은 한때 연 매출 2천억 원에 육박하며 국내 청바지 시장에서 손꼽히는 판매량을 기록해 왔다. 

 

지금은 성장세가 주춤하면서 연 매출 또한 천억 대로 낮아지긴 했다지만, 뱅뱅이 구가하던 연 최대 매출 2천억 원대라는 압도적인 수치는 우리가 ‘촌스럽다’거나 ‘무관심하다’며 고개를 돌린 그 지점에, 우리가 알지 못하던 거대한 실체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이것이 바로 선거 때만 되면 다시 회자되는 ‘뱅뱅 이론’의 핵심이다.

 

‘우물 밖 개구리’라는 역설적 공포

 

이 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충격은 단순히 패션 취향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는 자들의 지독한 편견을 꼬집는다. 우리는 흔히 좁은 세상을 보는 이를 ‘우물 안 개구리’라 부른다. 하지만 뱅뱅 이론은 더 무서운 존재를 경고한다. 바로 스스로 우물 밖에 서서 세상을 다 내려다보고 있다고 착각하는 ‘우물 밖 개구리’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SNS를 활발히 사용하고, 각종 시사 유튜브 같은 대안 매체를 탐독하며, 스스로가 깨어 있고 진보적이며 실용적인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은 우물 안에 실존하는 압도적인 다수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

 

내가 뱅뱅 청바지를 입지 않고 내 주변 누구도 입지 않는다고 해서, 뱅뱅이 사라졌을 거라 단정하는 오만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오만은 결국 “세상은 왜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가”라는 허탈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선거 결과가 자신의 예상과 다를 때 이런 허탈감은 더욱 커진다.

 

‘진영논리’라는 색안경, 그리고 지적 게으름

 

정치와 사회 현상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뱅뱅 이론은 더욱 잔인하게 작동한다. 지난 선거들에서 우리가 목격했듯, 특정 진영에 매몰된 이들은 “내 주변엔 온통 이 후보를 지지하는데 결과가 왜 이 모양이냐”며 개표 결과를 의심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는 조작의 증거가 아니라, 본인이 보고 싶은 세상만 선택적으로 취해온 ‘확증 편향’의 증거일 뿐이다.

 

자기가 속한 진영의 논리는 언제나 따뜻하고 안전하다. 그 안에서는 복잡한 세상을 다각도로 분석할 필요가 없다. "우리 편이 옳다"는 전제 아래 모든 정보를 재단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 게으름은 우리를 눈먼 장님으로 만든다. 

 

우리가 그동안 치러온 각종 선거들을 경험하면서 ‘말이 없어 무시했던’ 청년층, ‘너무 지저분해서 지나치지도 않았던’ 시장 골목의 사람들, 그들이 만드는 거대한 민심의 조류를 읽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우물 밖’에서 헛발질만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 그리고 그 너머를 보는 눈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일종의 밈(meme)에 가까운 이론이긴 하지만 이 뱅뱅 이론 원문에서는 세상을 세 부류로 나눈다. 모두를 속이려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조조(曺操) 같은 부류’, 그들에게 속아 넘어가는 ‘순진한 다수’, 그리고 속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우리’다. 

 

여기서 비극은 속지 않으려는 우리가, 속고 있는 자들을 ‘계몽의 대상’이나 ‘과거의 나’로 하대(下待)하며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뱅뱅 어패럴이 대한민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시장의 일부분만을 보고 "내 스타일이 정답"이라 외친 이들과 달리, 시장 전체를 객관적으로 직시했다. 

 

누가 실제로 지갑을 여는지, 그들의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편견 없이 바라보았기에 오랜 기간 높은 판매량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 ‘객관적인 응시(凝視)’다. 나의 도그마를 내려놓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공포를 마주하며,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실체를 인정하는 용기 말이다.

 

‘뱅뱅’의 바다로 뛰어들 용기

 

칼럼을 마무리하며 다시 묻는다. 당신의 세상엔 ‘뱅뱅’이 살고 있는가? 아니면 혹시 당신은 자기가 속한 진영에만 머물며 확증 편향에 갇힌 집단에 숨어 자신과 소통하는 각종 SNS 속 세상이 ‘인류의 표준’이라 착각하는 지적 게으름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지점은 명확하다. 나만이 옳다는 선민(選民)의식의 색안경을 과감히 벗어던지는 것이다. 비린내 나는 수산물 시장 골목에서 즐겁게 소주잔을 기울이는 평범한 이웃들의 정서, 뱅뱅 청바지를 실용적이라 여기며 구매하는 다수의 논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세상을 바꿀 수 없다.

 

그동안 우리가 무시했던 그 ‘조용한 다수’를 우리의 희망으로 만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세계로 직접 걸어 들어가 그들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세상은 당신이 돌고 있는 그 작은 원보다 훨씬 크고 복잡하며, 동시에 뜨겁다. 이제 그만 ‘우물 밖’의 오만을 버리고, 뱅뱅이 활보하는 진짜 광장으로 내려와야 할 때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