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파헤쳐온 한국과 일본의 양국 지식인들이 지난 5일,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제2차 위안부문제 한일 합동 심포지엄’을 열고 ‘위안부 문제의 실태와 한일 교과서 서술’ 문제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나눴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까지 기재된, “위안부는 일본군에 의해 강제연행되어 성노예가 되었다”라는 위안부 문제 관련 기존 통설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는 양국의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이러한 심포지엄을 공동으로 개최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자유통일을 위한 국가 대개조 네트워크’가 주최하고 ‘위안부사기 청산연대’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일본 레이타쿠(麗澤)대학 특임교수, 스기하라 세이시로(杉原誠四郎) 국제역사논전연구소 이사장, 야마모토 유미코(山本優美子) 나데시코액션 대표, 마츠키 쿠니토시(松木國俊) 국제역사논전연구소 수석연구원 등 일본 측 위안부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 측 위안부 전문가들도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 주옥순 위안부사기 청산연대 대표 등이 함께 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국제 학술 행사에 걸맞는 위용을 뽐냈다.
이영훈‧스기하라 세이시로‧존 마크 램자이어… 한국·일본·미국 연구자 대표해 축사
한국과 일본 양국의 국기가 게양된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는 행사 시작에 앞서 애국가와 함께 기미가요(君が代)도 함께 불러 양국 우호의 의지부터 다졌다.
행사는 이영훈 교장의 축사로 시작됐다. 이 교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발생한 지 벌써 32년이지만 그 사이 한국과 일본의 우호 관계는 이 문제로 인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며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한국에서는 아직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성립해 있지 않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직도 대부분의 한국인은 아시아‧태평양전쟁기에 일본 경찰이나 헌병이 조선의 여자들을, 심지어 어린 소녀들까지 강제로 납치하거나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고 알고 있다”며 “위안부에 관한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솔직하게 지적하면 ‘날조된 역사’라고 하겠다”며 “위안부에 관한 교과서의 엉터리 서술이 고쳐져야 하며 전국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은 하루빨리 철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장의 축사에 이어 스기하라 세이시로(杉原誠四郎) 이사장의 축사가 시작됐다. 스기하라 세이시로 이사장은 “우선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는 입장의 한일 연구자가 모여 사상 최초의 한일 공동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되어 큰 경하의 뜻을 표한다”고 감사의 뜻을 비췄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한일 쌍방에서 맹위를 떨쳤지만 현재는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이라는 사실이 존재하지 않았고 결코 성노예가 아니었던 것이 명확히 증명됐다”며 “그럼에도 교과서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술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에 한일 우호를 방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스기하라 세이시로 이사장은 “한국과 일본은 아시아의 확고한 민주주의 국가로서 함께 손을 잡고 세계 인류 발전에 기여해 나가야 한다”며 “오늘은 양국간 목엣가시가 된 위안부 문제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교과서로부터 위안부의 기술을 없애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2021년초 ‘태평양전쟁기의 매춘 계약’ 제하 학술논문 발표를 통해 위안부의 실체를 매춘부로 규정해 반일 세력의 집중적 공격을 받았던 바 있는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로스쿨 교수도 이날 행사에 영상 축사 메시지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램자이어 교수는 “외교 정책을 논할 때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진실되고 직설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다”며 “특정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쓰면 안되며 역사적 사건에 대해 없는 말을 지어내도 안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일본 군부대 주변에 있던 위안소에서 벌어진 일도 마찬가지”라며 “일본 군부대 주변에 있던 매춘시설과 매춘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주제가 무엇이 됐든 완전한 언론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며 “그런 자유가 보장됨으로써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집단적 역사를 이해할수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일본통치 겪은 조선인들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란 사실 알고 있었다”
축사가 끝난 후, 주요 발표자인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 류석춘 교수,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 이우연 연구위원, 마츠키 쿠니토시 수석연구원, 김병헌 소장의 발표가 이어졌다.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 교수는 ‘일본에서 시작된 위안부 문제’라는 주제로 위안부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은 일본에서 먼저 촉발됐다는 사실을 전했다.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1992년도에 위안부 문제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사를 하던 내게 당시 조선일보 전 편집국장이 ‘조선인 위안부가 강제연행됐다는 이야기는 바보 같은 소리다. 조선인 모집업자가 가난한 농촌 집안을 찾아가 부모에게 돈을 주고 그 딸을 위안부로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회상했다.
또한 “한 연합통신 기자도 ‘전직 위안부 할머니 여러 명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어떤 과정으로 위안소에 갔는지는 좀처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자세히 들어보니 조선인 모집업자가 등장한다. 빈곤으로 인해 위안부가 된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오히려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직시하고 있었던 시기가 1990년대였다는 것.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는 “한국에서 일본통치기를 아는 세대가 다수인 시기에는 일본군이 전쟁터에 위안부로 불리는 매춘부를 데려갔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또 위안부는 강제연행돼 성노예가 된 것이 아니라, 가난의 결과, 조선의 공창과 마찬가지로 전쟁터에서 매춘업에 종사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고 짚었다.
하지만, 1990년대초 일본의 ‘조선과 조선인에게 공식 사과를 100인 위원회’의 멤버인 아오야기 아츠코라는 주부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조직적 반일 시위에 나서면서 위안부 문제의 거짓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게 니시오카 쓰토무 교수의 진단이다.
아울러 당시 일본의 좌파 신문인 아사히신문이 “제주도에 있는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갔다”는 요시다 세이지의 거짓 증언 등을 대거 유포했던 등의 이유로 잘못된 ‘위안부 강제연행설’의 거짓이 확산됐다는 것.
그는 “물론 위안부 문제를 부각시킨 또 다른 요소는 한국 측에도 있었다. 1990년부터 이화여대 교수 윤정옥이 중심이 되어 한국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는 운동이 시작됐다”면서 “윤정옥은 여성단체를 규합해 90년 11월 정대협을 결성했다. 정대협이 이후 위안부 문제로 한일 정부가 나름의 해결을 모색해보려고 할 때마다 이런 시도를 깨부수며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정옥은 물론이고, 윤정옥이 초대 대표였던 정대협도 그 발족에서부터 사실 일본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윤정옥 자신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며 “일본의 허위세력이 한국의 허위세력을 도와줌으로써 위안부 문제가 시작된 것이다. 이를 끝내기 위해서는 한일 진실세력이 손을 잡는 수밖에 없다”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류석춘 “강제연행?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에 홀려 따라나섰다는 위안부 증언은 뭔가?”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는 ‘위안부 문제의 사법화: 역사 논쟁에서 법적 다툼으로’ 제하 발표를 통해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연구자들의 ‘학문의 자유’를 탄압하고 법적 재갈을 물리려는 좌파 단체들과 사법기관의 행태를 비판했다.
류석춘 전 교수는 존 마크 램자이어 교수와 자신의 사례를 들어 발표를 이어갔다. 지난 2019년 류 전 교수는 대학 강의 도중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발언을 했다는 사유로 위안부 명예훼손 혐의 명목의 기소가 이뤄져 지금도 재판을 받는 중이다. 1심 재판에서 검찰은 류 교수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해 논란이 됐다.
램자이어 교수도 역시 ‘태평양전쟁기의 매춘 계약’ 제하 논문에서 위안부의 실체를 매춘부로 규정해 한국과 미국, 일본의 반일 세력들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았던 바 있다. 삼국에서 국제적으로 조직된 반일 세력은 램자이어 교수의 논문을 철회시켜야 한다며 학술지 측을 강하게 압박하는 서명까지 돌렸다.
류 교수는 “2020년 10월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이 나를 기소하면서 보도자료를 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에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매춘에 종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된 것이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현 정의기억연대)이 일본군에 강제동원 당한 것처럼 증언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라는 취지로 내가 강의 중에 허위발언을 했다고 적시됐다”고 설명했다.
류 전 교수는 자신은 허위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정대협이 강제연행의 증거라며 출판한 책이 8권 있다”며 “이중 1993년 출판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 위안부들 증언집’ 124페이지에는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이 실렸는데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보였다 그걸 받고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됐다’고 쓰여있다”고 소개했다.
강제연행 관련 위안부들의 증언 번복 문제를 이용수의 사례로 지적한 류 전 교수는 이런 사유로 자신의 재판 역시 파행 상황임을 전했다. 류 전 교수는 “2023년 3월 22일 재판을 마지막으로, (내 사건의) 담당 판사는 사건을 기소한 검사가 당연히 제출해야 할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를 아직도 제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재판을 공전시키겠다고 선언했다”고 알렸다.
야마모토 유미코 “UN‧ILO, 위안부 1차 자료 연구 안해… 좌파 NGO의 정치적 의견서 영향일 뿐”
야마모토 유미코(山本優美子) 나데시코액션 대표는 ‘위안부=성노예라는 인식에 이용된 UN, ILO, UNESCO'를 주제로 세 번째 발표를 이어갔다.
우선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는 오랜 세월 동안 좌파 NGO들이 국제기구들에 정치적 압박성 의견서를 보내면서 ‘강제연행설’, ‘성노예설’ 등이 정설처럼 굳혀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안부가 ‘강제연행된 성노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UN, ILO 등 국제기관이 이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주장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UN, ILO에서는 전문가가 철저히 조사와 연구를 해 결론을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1차 자료에 근거한 조사나 연구는 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이어 “이는 모두 좌파 NGO와 노동조합이 UN과 ILO에 보낸 의견서의 영향”이라며 “간단히 말해 좌파 단체들의 고자질의 결과다. 오랜 세월 두 기구에 보고된 정보는 좌파 단체의 의견 뿐이었으며 편향된 정보나 거짓말을 바탕으로 UN으로부터 권고가 ILO에서는 견해가 발표된 것”이라고 역설했다.
UN에는 ‘일본변호사협회’,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자료관(WAM)', '일본 여자 차별 철폐 조약 NGO 네트워크’, ‘국제엠네스티’, ‘신일본 부인의 모임’, ‘정의연’ 등 단체가, ILO에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이, 강제연행설, 성노예설을 주장하는 정치적 압박성 의견서를 보냈다는 것이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의 지적이다.
야마모토 유미코 대표는 “2016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위안부의 목소리’라는 제목의 신청이 제출됐다”며 “‘위안부의 소리’는 한국과 일본이 중심이 되어 등록을 진행하려한다. 우리 한일 전문가와 연구자가 협력하여 이 등재를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위안부가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국제기구를 통해 거짓말이 확산되면서 외교 문제와 안보문제에도 영향을 미쳤다”며 “무엇보다 교과서에 거짓말이 기술돼 한국 어린이들에게는 일본에 대한 증오심을 심고 일본 어린이들에게는 자기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하도록 교육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우연 “미 해군 기록에도 ‘위안부는 지원자거나 부모에 의해 팔린 사람들’이라고 적혀”
네 번째 발표자로 나선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조선인 위안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이어갔다.
먼저 이 연구위원은 정대협에서 2003년에 발간한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2’ 저서에 나온 위안부 현병숙 씨의 증언을 소개하며 일본군 위안부의 모집 경로를 추적했다. 이 책에는 현병숙 씨가 위안부 모집 업자와 기간과 비용 등을 협상하는 과정이 담겨있다.
책을 보면 3년간 2,000원을 주겠다는 업자의 말에 현 씨는 “3년간 2,000원을 주면 1년에 1,000원도 못된다. 매년 1,000원씩만 달라”고 답하고 결국 3년간 3,000원을 받기로 업자와 합의한다. 이 과정에서 업자는 현 씨에게 부모의 도장이 찍힌 동의서를 얻어올 것을 요구하고 현 씨는 이에 응하기도 한다.
이 연구위원은 한겨레신문을 창간한 송건호 씨의 저서 ‘일제지배하의 한국현대사’에도 “일본 당국은 1937년말의 남경 공략 후, 서주 작전이 개시될 무렵 조선 내의 어용알선업자들에게 지시하여 빈핍으로 매춘생활을 하고 있던 조선 여성을 다수 중국대륙으로 데리고 가서 ‘위안소’, ‘간이위안소’, ‘육군오락소’ 등의 명칭을 가진 일본군 시설에 배치하고 일본군 병사의 노리갯감으로 삼았다”라고 서술된 내용이 있음을 전했다.
1944년 미군 포로가 됐던 3명의 조선인 군속들을 심문했던 미 해군의 기록(Composite Report on Three Korean Navyu 'Imperial Japanese Navy' Civilians List No.78) 역시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게 이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 자료에서 조선인 군속들은 “우리들이 태평양에서 본 모든 매춘부들은 지원자이거나 그들의 부모에 의해 매춘부로 팔린 사람들이다. 이것은 조선적 사고방식이지만, 일본인이 만약 여성을 직접적으로 징집했다면 조선의 늙은이나 젊은이는 격분하여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남성들은 분노하여 무슨 일을 당할지라도 일본인을 살해하고 나섰을 것이다”라고 증언했다.
마츠키 쿠니토시 “조선의 남자들이 딸‧여동생이 강제연행되어도 그냥 배웅했다는 것이 말이 되나”
다음으로 발표에 나선 마츠키 쿠니토시(松木國俊) 수석연구원은 ‘위안부의 실태와 일본 학교 교과서의 문제점’을 주제로 발언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요시다 세이지라는 사기꾼의 거짓말부터 시작돼 일본 좌익 세력과 한국내의 친북반일시민단체가 만들어낸 장대한 픽션”이라며 “좌익 학자들은 일본을 폄하하고 아이들에게 일본인으로서 긍지를 갖지 못하도록,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공유하는 일본과 한국이 손을 잡지 못하도록 온갖 거짓말을 교과서에 쓴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러한 교과서는 일본인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줄 뿐 아니라 한국 국민들의 민족 자긍심도 크게 손상시킬 것”이라며 “조선 남자들은 자신의 딸, 여동생, 애인이 눈앞에서 강제 연행되어도 저항도 하지 않고 그냥 배웅하고 있었던 것이 되어 버린다”고 짚었다.
마츠키 쿠니토시 수석 연구원은 1930년 말 동아일보에 실린 ‘양가 처녀를 유인해 만주에 매각 편재 부산서 범인 체포’, ‘악덕소개업자가 발호, 농촌부녀자를 유괴, 피해 여성이 백 명을 돌파한다. 부산형사 봉천으로 급행’, ‘하연명 유괴사건 파문 확대. 악랄한 유곽업자. 경찰의 구출을 염려. 속속 외국으로 전매함. 인사소개소에 검찰의 메스. 특별조사대 편성 내탑’ 제하 기사들을 제시하며, “당시에는 악랄한 유곽업자 혹은 유괴마들이 많은 양가의 자녀와 농촌 부녀자들을 납치해 중국으로 팔아 넘긴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구출한 사람이 일본 경찰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시한 신문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매춘부로 만들기 위해 소녀가 강제연행된 사실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한 자는 악덕 유괴단이었다”며 “그들은 소녀와 그 부모들을 교묘한 수법으로 속여 데리고 나와 학대하고 매춘부로 인육시장에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팔린 소녀를 일본인 경찰관이 한국인 경찰관과 힘을 합쳐 구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당시의 실태였다”며 “즉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강제연행’은 북한과 남한의 반일시민단체, 그리고 일본의 좌익이 한일을 이간질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이다. 이에 속아 한일이 갈라지면 북한이나 중국의 뜻대로 되는 것”이라고 첨언했다.
김병헌 “성인 영역인 ‘위안부’, 초중고 교과서에는 부적절… 일본 증오를 부추겨”
마지막으로 발표에 나선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 소장은 ‘한국 초중고 교과서의 위안부 서술 실태와 대책‘을 주제로 논의했다. 김병헌 소장은 우리나라의 초중고 교과서에서 위안부 서술과 관련한 세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것은 △ 위안부에 대한 거짓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 △ 매춘부라는 성인 영역을 다루고 있다는 점 △ 일본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우선 위안부의 정의와 관련해 교과서의 거짓된 서술을 바로잡았다. 그는 “위안부는 포주와 계약을 체결하고 돈을 번 직업여성으로, 일본군의 동원대상도 일본군 성노예도 아니다”면서 “군인이 민간인을 강제로 끌고 가거나 성폭력을 저질렀다면 이는 중대한 범죄행위로 처벌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소장은 “1966년 대법원 판례[66다1635, 1636]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일상용어에 있어서 위안부라 함은 매춘행위를 하는 여자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했다. 위안부는 포주와 고용계약을 체결하고 영업허가를 취득한 다음 매춘을 하는 여성 즉, 공창이다. 이 위안부에 대해선 매춘부, 작부, 창기, 창녀, 추업부와 같은 여러 명칭이 있다”면서 교과서에서 쓰이고 있는 위안부라는 단어의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김병헌 소장은 “교과서에 서술된 위안부 피해의 가해자를 일본군으로 지목하고 있지만 이는 모두 거짓말”이라면서 “이처럼 교과서의 위안부 서술은 아이들에게 일본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을 조장하는가 하면 성인의 영역인 매춘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거짓과 증오를 가르치는 것은 아이들의 심성을 황폐화시킬 뿐만 아니라 한일간 갈등과 대립의 씨앗을 뿌리는 것과 다름없다”며 “이러한 교과서의 위안부 서술은 일부를 수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어느모로 보나 비교육적 서술이기 때문에 위안부 서술 전체를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병헌 소장은 교과서에 “위안부 학살”이 언급되고 있지만 자신이 외교부에 학살된 위안부 관련 정보가 있으면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정보 부존재’라는 답변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하기도 했다. 김 소장은 “학살된 위안부는 존재하지 않으며 교과서는 거짓”이라고 강조했다.
”진실에 침묵한 이들에 대한 ‘복수심’이 친일파라는 비난에도 이런 연구를 계속 하게 된 원동력“
심포지엄 마지막 질의응답에서 일본 산케이신문(産経新聞) 서울지국장 사쿠라이 노리오(桜井紀雄) 기자는 한국 측 학자들에게 “친일파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이러한 주장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류석춘 전 교수는 “발전사회학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일제시대는 수탈만 있었던,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는 시대라는 통설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연속적으로 이해하는 데 무리가 있었다”면서 “일제시대에도 근대화가 진행되었다고 봐야 한국의 발전이 연속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학교수가 연구 결과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만큼, 친일파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이런 주장을 하게 됐다”면서 “이번에 이렇게 일본에 오신 전문가들로부터 위안부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친일파가 되어서 잘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하자 장내에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우연 연구위원은 ”2004년에 (나의 지도교수인)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MBC 100분 토론에서 위안부 문제로 발언한 일로 인해 큰 비난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 당시에 이 전 교수를 공격하며 진실에 침묵한 사람들에 대한 ‘복수심’이 친일파라는 비난에도 이런 연구를 계속 하게 된 원동력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다가 오늘에 이르렀다“며 ”앞으로도 갈 길이 멀지만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친일파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앞으로 이런 주장을 계속 하겠다“고 답변했다.
김병헌 소장은 심포지엄을 마무리하면서 ”나라가 건강하려면 자라나는 세대가 건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육체적인 건강보다 더 중요한게 정신적인 건강이고,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계속 주입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사기’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