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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청춘투쟁기②] 변희재 "옳은 길이라면 질게 뻔한 싸움도 계속"

거대권력, 친노 포털과의 처절한 싸움, 안티조선과의 완전한 결별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은 포털의 여론장악을 가장 먼저 경고한 사람 중 하나다. 포털과의 싸움에서 그는 친노종북 세력의 실체를 목도한다. 친노-종북좌파 세력은 조선일보로 상징되는 종이신문을 죽여야한다는 명분아래 포털의 독점과 언론장악을 은근히 조장했다. 결국 변 대표의 경고는 이제 현실이 됐다. 네이버와 다음은 뉴스의 유통을 독점하고 있다. 속도와 선정성이 지상과제로 떠오르면서, '사실확인의 저널리즘'이 설 공간은 사라졌다. 박근혜 대통령 거짓 탄핵은 이처럼 포털이 구축한 언론 생태계 속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번 기사에서는 변 대표가 왜 10년 넘게 포털과 처절한 투쟁을 했는지, 그 과정에서 안티조선 운동을 함께했던 친노좌파들과 왜 완전히 갈라서게 됐는지 소개한다. 본지는 '변희재의 청춘투쟁' 중에서 재미있는 대목을 선정, 매월 연재하고 있다. 변희재의 청춘투쟁'은 현재 미디어워치 홈페이지를 통해 절찬 판매 중이다. -편집자 주 




패배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건, 올바른 길이라면 질게 뻔한 싸움도 계속해야한단 뜻이다. 그 대표적 싸움이 거대권력 포털사이트와의 싸움이었다. 포털은 언론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서 인터넷신문을 운영하는 나 같은 사람이 포털과 싸운다는 것은 매체의 성공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었다.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는 2013년 7월18일 시사IN LIVE에 칼럼 ‘언론, 네이버 개평에 중독되다’를 게재했다.

이른바 포털 권력에 유착해온 친노종북언론 기자들 중 사실상 처음으로 이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칼럼이었다. 특히 강양구 기자는 진중권 교수의 한예종 학칙 관련 조작으로 나와 언론중재위에서 맞붙어 정정보도를 해야 했을 정도로 악연이 있던 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론과 결론에서 다음과 같이 내 포털 비판에 대해 그 가치를 인정했다.

 “사족 하나. 앞서 언급했듯이 포털 권력의 문제점 대부분은 이미 변희재가 수년에 걸쳐서 언급했던 것들이다. 개인적으로 그때 그의 경고를 <프레시안>을 비롯한 진보 언론이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상황이 이 지경까지 오지는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늦었지만 그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진영이 달라 첨예하게 대립해왔던 관계에서 이 정도 입장 표명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포털에 뜯어 먹힌 언론 상황이 어렵단 점을 방증함과 동시에, 8년 간 포털권력과 싸워온 입장에서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늦었다 싶었을 때가 가장 빠른 법 아니겠는가.

강양구 기자 칼럼은 2013년 6월 27일 동아일보 박정훈 차장의 ‘우시민이 되고 싶은 변희재’에 추가설명이 될 수 있는 소재다. 나는 박정훈 차장 글에 대해 포털 관련해 다음과 같이 답변한 바 있다.

“보수세력과 선이 닿은 것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언론계 최대 현안인 포털사 문제였다. 필자는 이념을 떠나 포털의 언론권력 남용이야말로 언론계를 죽이는 원흉이라 판단, 2005년부터 포털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거대 자본의 여론 장악을 비판해온 친노세력의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친노세력이 포털을 제어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은 조중동 등 종이신문을 죽이기 위해, 그렇게 여론을 장악하여 영구집권 세력을 만들기 위해 포털의 독점과 언론장악을 두둔하고 찬양하고 보장해주었다. 이것이 정치에 이어서 언론에서의 친노 세력과의 완전한 결별 이유였다.”


지금까지도 내가 좌에서 우로 전향했단 헛소문 근거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기고 건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된 이유는 내 사상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언론에 위협이 될 게 너무나 명확해 보이는 포털 권력에 대해, 친노종북언론세력이 다짜고짜 찬양하는 것을 넘어 이를 비판하는 나를 음해하기 시작하면서다. 그렇게 나는 언론진영을 넘게 된 것이다. 강양구 기자는 자신의 칼럼 서문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변희재가 항상 틀린 것은 아니다. 2005년 그가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 사이트의 폐해를 지적할 때만 하더라도 귀를 기울이는 이가 극소수였다. 특히 <프레시안>을 포함한 진보 언론은 은근히 포털 사이트의 승승장구에 기대는 형편이었다. 심지어 몇몇 기자는 포털 사이트에 헐값으로 공급한 자신의 기사에 댓글 수천 개가 붙을 때면 희열을 느끼기조차 했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내가 포털권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한 건 2005년 1월 이른바 ‘연예인X파일’ 유출 사건부터다. 당시 제일기획이 의뢰해 만든 100여 명 연예인들의 사생활 정보파일이 인터넷에서 유출되면서 수백여 개 관련 보도가 쏟아졌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들은 이런 기사들을 모조리 뉴스메인에 띄우고 심지어 파일 링크까지 걸어놓아 수천만 명의 국민들이 이 ‘연예인X 파일’을 받아볼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포털권력의 실체가 전혀 알려지지 않았기에 언론사들은 이 사건을 제일기획과 연예인들 간 대립과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었고, 포털들은 이런 뉴스 또한 연일 메인에 올리고 있었다. 내 눈으로 볼 때 이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포털이었다. 포털들은 당시 약 30%의 추가 클릭수를 확보, 돈으로 환산한다면 수백억 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취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나와 김지룡 문화평론가 등 소수 논객들이 포털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지만 당시로선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됐다. ‘연예인X파일’ 관련 기사들을 박스로 묶어 메인에 내걸던 포털들이 자사 책임론을 묻는 칼럼만큼은 한적한 구석에 처박아놓고 있단 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각 포털들은 마치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양 철저히 위장하고 있었기에 내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하루 1만 여개 기사를 다루는 포털에서 자사에 불리한 기사를 철저히 은폐하기 시작하면 포털비판론은 여론에서 차단돼버리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나는 긴급히 당시 언론계 영향력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신학림 언론노조위원장(현 미디어오늘 대표)에 전화를 걸어 포털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나 신학림 위원장은 버럭 화를 내면서 “포털 비판 같은 것을 왜 언론노조에 설명하느냐”, “싸우려면 혼자 싸우라”고 오히려 나를 공격했다.

당시 나는 전화를 끊고 약 10여분 간 멍했던 기억이다. 그때만 해도 언론노조라면 언론사와 언론인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거대한 자본으로 언론을 장악하려 하는 포털의 문제점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대응해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최소한 그런 게 언론노조가 명분으로 내세운 게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같은 엽기적 사건들은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2005년 2월16일 민언련 주최 ‘연예인X파일’ 사건 관련 토론회에서 민언련 김은주 협동사무처장이 발제를 하는데, 포털책임론을 거론하는 김지룡 평론가 등 극소수 논객들을 비판한 것이다. 더 황당한 일은 포털을 비판하러 참여한 당시 문화평론가이자 현 미디어워치 편집장 이문원의 토론에 대해, 미디어오늘 측은 토론자 소개는 물론 사진에서도 그를 제외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미디어오늘 기사만 보면 이문원이란 사람이 토론회에 참여한 사실조차 독자가 알 수 없도록 조작해놓은 것이었다.

친노종북언론세력 양대 단체인 언론노조와 민언련, 그리고 그들의 기관지인 미디어오늘이 보인 친(親)포털 행각은 너무나 명확한 메시지를 보냈다. 친노종북세력은 절대 포털을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포털을 찬양할 것이며, 포털을 비판하는 자들을 음해해서라도 포털의 권력을 지키려 할 것이란 점이다.

이런 흐름은 인터넷언론을 포함하는 신문법 개정안과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친노종북세력은 듣기에도 역겨운 수준 궤변을 늘어놓으며 포털에 언론으로서 책임을 면제해줬다. 결국 포털은 법 테두리에서 벗어나 마음 놓고 언론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언론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는 최고의 특혜를 받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정치적 거래 이후, 포털들은 노무현 정권 찬양에 나서면서 정경유착과 권언유착에 나섰다.

나는 2005년 내내 한겨레, 경향신문, 언론노조, 민언련, 미디어오늘 등을 찾아다니며, 포털 권력을 방기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지 경고하고 다녔다. 당시 나는 브레이크뉴스 편집장을 사임하고 일본에서 ‘겨울연가’ 윤석호 감독 관련 책을 출판한 뒤 현업 복귀를 준비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포털의 위력에 다들 굴복하는 시기라 포털과 싸우는 내가 몸담을 언론사를 찾는단 것은 불가능했다. 어쩌면 그랬기에 더 화끈하게 포털과 싸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005년 내내, 친노종북세력에선 미디어오늘 주도로 포털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는 보도를 쏟아냈다. 그때마다 나는 미디어오늘에 반박글을 보냈지만 대부분 게재거부 당했다. 포털 싸움 초기만 해도 나를 도와주겠다던 좌파진영 인사들도 속속 백기를 투항, 2005년 말에 이르면 친노종북진영에서의 포털 비판담론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면서 나는 더 이상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찾지 못했다.

'변희재의 청춘투쟁' 77~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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