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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직구 청춘투쟁기①] 대학생 변희재, 위선덩어리 서울대 신좌파 운동권에 홀로 맞서다

1990년대 서울대 학생운동권의 위선에 '살의를 느낄 정도로' 격분하기도

본지는 앞으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의 자서전 ‘변희재의 청춘투쟁’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선정, 일부를 연재할 방침이다. 다만, 변희재 대표의 기타 과거 저서와 기고 중에서도 '인간 변희재'를 설명하는 좋은 소재가 있으면 발굴해 소개할 예정이다. ‘변희재의 청춘투쟁’은 현재 미디어워치 홈페이지를 통해 절찬 판매 중이다. (판매 링크 바로가기) -편집자 주.





군대에서 대학으로 복학한 뒤, 학비와 생활비 등을 모두 내가 직접 벌어 해결하겠단 각오를 다졌다. 카투사 복무 시절, 대학생 신분 미군들이 군대에서 2~3년 정도 복무해 부모로부터 독립, 대학학비를 벌어가는 것을 보며 배운 생각이다. 이런 미군들을 보며 개인의 독립성은 부모의 경제력으로부터의 독립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울대생의 경우 조금만 노력하면 한두 건의 과외지도 아르바이트는 쉽게 구할 수 있다. 나 역시 두 건의 과외지도로 월 60만 원의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당시 서울대 인문대학 등록금이 학기 당 80만 원이었고, 발로 뛰어 찾아보면 약 30만 원 정도 장학금은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이 정도 수입이면 충분히 생활비와 등록금을 직접 마련할 수 있었다.

문제는 1999년에 ‘스타비평’이란 책을 출판하면서 문화평론가로서 활동하고, 동시에 인터넷신문 대자보 편집장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 전체적으로 수입이 오히려 과외 아르바이트 할 때보다 크게 줄었다. 반면 글을 쓰기 위한 자료수집비 등의 지출은 크게 늘었다. 결국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미학과 동기생 2명과 함께 월 15만 원짜리 지하방으로 거처를 옮겼다. 한 명은 애초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로부터 독립했고, 다른 한 명은 부유층이었는데 아버지 회사가 IMF 위기에 직격탄을 맞아 스스로 자립해야 했다.

우리 셋의 눈으로 가장 이해가 안 됐던 것은 서울대 신좌파 운동권학생들 중 부모 잘 만나 그 돈으로 ‘민중혁명’ ‘노동자 해방’ ‘가부장제 폐지’를 외치는 부류였다. 실제로 서울대 운동권학생들과 충돌한 경우 거의 대부분 부잣집 출신들이 그 상대였다.

당시 나는 이름이 제법 알려진 서울대 페미니즘 운동가와 인터넷상으로 쪽지를 교환하고 있었는데, 한 번은 “가부장제 폐지하자며 아버지 돈 받아 학교 다니고 페미니즘 운동해도 되는 건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에 그는 “그런 모순의 괴로움을 견디면서 하는 게 운동이다”란 어이없는 답을 보내왔다.

대학교 2학년 시절, 1학년 후배 한 명이 “우리 과 20명 동기 중 부모가 서울대 출신인 친구가 모두 16명인데, 우리 부모님은 서울대 출신이 아니다”라며 투덜거린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곤 “대체 너희들은 어떻게 부모님들의 서울대 출신 성분비율을 조사했냐. 한 자리에 모여 ‘서울대, 손들어!’ 이렇게 조사했냐”고 물어봤다.

서울대에 입학해 받은 충격은, 서울대생들이 자신의 출신성분과 부모의 사회적 지위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있단 점이었다. 그러다보니 학년 전체의 서울대 출신 부모비율까지 조사되는 것이다.

내 동기 중 한 명은 압구정동 출신으로 서울대 재학 내내 신좌파 운동 리더로 활동했다. 그 친구는 주로 여자후배들과 술자리를 할 때마다 “나는 압구정동 출신이고, 자본가 계급의 아버지를 둔 게 너무 괴로워” 이런 식의 발언들을 자주 했다. 그럼 나는 그에 발끈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진보넷 미학과 게시판에 ‘신좌파 운동가들은 모두 상속제 폐지를 약속하라’란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나는 그 글에서 내 동기 실명까지 거론했는데, 그를 비롯한 신좌파 운동가들 누구도 상속제 폐지를 약속하지 않았다. 

나는 그 동기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운동에 가난한 애들 다 끌어들였다가 미처 인생 준비를 못해 낙오되면 대체 누가 책임질 거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그는 “원래 운동은 한 명의 영웅이 탄생되기 위해 무수한 민중의 희생을 동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나는 그때 살의를 느낄 정도로 분노해 그와는 향후 일체 말을 섞지 않았다. 

(‘변희재의 청춘투쟁’ 77~80쪽 ‘1990년대 학생운동은 부잣집 자식들의 고상한 취미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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