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설령 정의가 왜곡되더라도 오직 진실을 추구해야만 한다.” 언론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퓰리처상을 만든 조셉 퓰리처가 한 말이다. 최근 재창립식을 연 자유언론인협회의 상임고문 전원책 자유경제원장이 언론인들에게 당부한 말이기도 하다. 언론은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과 부패, 비리를 고발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진실을 추구한 결과가 설령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깨뜨릴지라도 언론은 진실추구를 바이블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정의’란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지 않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보듯 나의 정의가 너의 불의가 될 수 있고, 나의 불의가 사회의 정의도 될 수 있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언론은 무엇을 스스로의 ‘정의’로 삼아야 하나. 바로 ‘진실(사실)’이라는 것이다.
MBC노조의 ‘주장’을 ‘진실’로 단정하고 잘못된 허위보도를 내보냈던 언론들이 계속해서 수모를 당하고 있다. ‘김재철 사장과 무용가J씨 부동산 투기 의혹’ 보도나 MBC가 무용가J씨에게 특혜를 줬다는 의혹 등이 허위보도로 판명되어 정정·반론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당초 이런 의혹들은 김 사장과 '무용가J' 정명자씨가 부적절한 관계라고 좌파언론들이 넘겨짚는 데 기초자료로 쓰였고, 노조 역시 이런 허위주장을 근거로 두 사람에 대해 지속적인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의 돌팔매를 해댔다. 그런데 그 주장이 원천적으로 허위라고 판명된 것이다. 아무리 노조를 돕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한다 해도, 언론이라면 같은 사안에 대해 한 번의 정정·반론보도의 수치를 겪었다면, 두 번째 보도부터는 달랐어야 했다.
허위보도에 정정·반론보도 되풀이한 노컷뉴스, 뷰스앤뉴스의 악질적 고의성
그런 점에서 노컷뉴스와 뷰스앤뉴스의 두 번째 허위보도는 정도가 심한 악질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두 매체가 극단적으로 말해 ‘무뇌매체’라고 보지 않는다. 노조의 각종 주장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검증할 능력이 없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노조에서 확산시키는 각종 의혹들이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도 아니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두 매체의 두 번째 정정·반론보도는 역으로 이들 매체의 고의성과 악의성을 고스란히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인 것이다. 즉 진실(사실)여부를 확인할 의지도, 생각도 없고 오직 김 사장과 정씨만 죽이면 된다는 식의 악랄함만 번득인 경우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의문은 다음에까지 미칠 수밖에 없게 된다. 노조의 허위를 아예 검증할 생각조차 없는 이들 매체들은 과연 노조와 어떤 관계인가? ‘허위보도 매체’란 오명까지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위험을 각오하고 노조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실검증 노력을 아예 포기한 채 김재철 죽이기에만 올인한 이유는 무엇인가? 김재철을 반드시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빠져 언론으로서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는 언론이란 곳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만 하나? 이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 MBC 방송을 장악한 노조의 초법적 월권행위에 개혁의 칼을 들이 댄 김 사장이 노조의 음모와 모략에 쓰러진다면 웃게 될 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지금까지 노조를 둘러싼 정치권력, 언론권력, 시민사회의 반응을 보면 어렵지 않게 답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MBC 노조의 나팔수를 자처하거나(노컷뉴스, 뷰스앤뉴스 등), 노조의 권력에 눌려 진실을 바로 잡을 용기를 쉽게 포기하거나(뉴스한국), 노조의 허위를 고발할 정의감이 없는 언론들이 난무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우리의 비극이다. 언론의 역할과 사명에 반하는 행위도 서슴없이 해대며 ‘언론 코스프레’를 하는 사이비들이 설치는 혼란이 바로 작금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거짓을 진실로 포장하는 것, 진실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는 것 등은 아무리 ‘정의’의 얼굴이 입체적이라고 다면적이라고 해도 정의와는 무관한 것이다. 노조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면, 언론을 자처하는 그들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왜곡된 방식, 편법, 술수와 같은 방식을 택해서는 안 됐던 것이다. 그리고 언론이라면 그들의 일방적 주장을 자신들의 매체에 싣고 결과적으로 ‘진실’로 세탁해 주는 불의를 저질러선 안 되는 것이다. ‘죽은 언론의 사회’야말로 퓰리처가 그토록 경계하고 우려했던 비극적 사회현실이 아니었던가.
자신들만의 ‘정의’란 망상에 사로잡혀 풍차(허상)를 공격하는 ‘돈키호테’ 한겨레 등 좌파언론
미디어오늘, 미디어스 등이 이미 허위보도에 대한 정정반론보도로 철퇴를 맞았고, 노컷뉴스와 뷰스앤뉴스 등이 또 다시 ‘그 짓’을 되풀이하다가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입은 마당에 이들 언론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진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여전히 진실의 틈새를 노리며 발톱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은 안타까울 뿐이다. 계속해서 정명자씨의 남편을 이용해 김재철 사장 퇴진을 압박하거나, 노조가 빼돌려 고발한 김 사장의 법인카드내역을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는 단순한 내용을 마치 노조의 배임 의혹 주장이 사실인 것처럼 오해하도록 쉽게 기사를 작성해 선동하는 모습은 이미 정의와 진실을 추구한다는 언론의 영역과는 무관한 일이 돼 버렸다. 정의도 진실도 사라진 허상을 붙들고 칼을 휘두르며 애잔함까지 던져주는 이들 언론의 모습은, 마치 망상에 사로잡혀 풍차를 향해 돌격하던 돈키호테마저 연상시킨다.
특히 한겨레는 최근 사설(25일자 사설-‘논문표절 의혹’ 김재우 이사, 조속히 물러나야)에서까지 “김 사장의 법인카드 불법사용 및 무용가 ㅈ씨 특혜지원 의혹 등에 대해선 면죄부를 줬다”는 허위의 단정적인 표현까지 썼다. 최근 친MBC 노조 언론들의 끊임없는 정정·반론보도 행렬을 보고도, 진실은 무시하고 오직 자신들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만 계속 주장하겠다는 초지일관의 똥고집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조의 입김만 쐬다가 눈과 귀가 먼 듯한 정씨의 남편을 들쑤셔 ‘김재철 사장 퇴진’을 읊조리게 만들고, 딸의 가정이 추문으로 위기에 몰린 현실에 절망한 정씨의 노모를 반신불수 상태로 만드는 등 사실상 정씨 가정을 풍비박산 시켜놓고도 또 어떤 죄업을 쌓으려고 하는지 깊은 한숨만 나올 뿐이다. 정치권, 사회, 언론이 협잡하듯 남편을 때려잡는 모습을 보고 그저 속앓이만 하고 있을 김 사장의 가정은 또 어떤가.
망상에 사로잡혀 허상을 공격하는 언론의 비이성은 차가운 법의 심판으로 깨워야
진실은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만의 정의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 자신들이 틀렸다는 현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 것, 그런 자신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 이런 모습들은 이미 우리 언론들이 앓고 있는 병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사회의 부당한 권력을 견제하는 언론이 자아도취와 그들만의 정의라는 망상에 빠져 객관성과 현실감을 잃어버렸다면 이젠 특단의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언론권력이 휘두르는 칼에 우리 사회가 어떻게 왜곡되고, 어떤 식으로 피해자들이 생산되며 어떤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지 우리는 이번 MBC노조와 어용 언론매체들의 일련의 행태들을 보면서 뼈아프지만 생생한 경험을 얻게 됐다.
그렇다면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진실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자들이 기댈 것은 단 하나뿐이다. 법과 원칙뿐이다. 거짓을 불사하는 막나가는 언론에 제동을 걸고, 언론이 낳은 각종 허위보도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선 법이 바로서야 한다. MBC노조의 각종 불법사례와 허위에 대해 이미 검찰에 여러 차례 고소고발이 이루어진 상태이니만큼, 검찰은 노조와 좌파언론권력, 그들을 지지하는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돈키호테 수준의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언론권력을 차가운 법의 이성으로 깨워야 한다. 정신이상자와 사회불만자들의 무차별 칼부림만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가 아니다. 말과 글로 아무렇지 않게 무고한 사람들을 찌르고 난자하는 언론의 살인행위가 난무한다는 것은 더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이다. 법의 정의는 진실(사실)이고, 법과 원칙으로 그 정의로움이 살아있음을 보여줄 때, 이성을 잃은 언론의 난동을 막고, 그 폐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phm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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