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진영이 종합편성채널 출범을 계기로 그 대응방식에 있어 강경파와 온건파 간 분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강경파는 좌파진영 인사들은 종편 참여 자체를 절대 금해야한다는 입장인 반면, 온건파는 생계형 참여의 경우 일정부분 이해해줘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대체적으로 온건파는 프리랜서 등 경제적 약자층이거나 생활전선에서 한참 활약해야 할 젊은 층인데 반해, 강경파는 정규직을 갖고 있거나 자유직이더라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 또는 생활전선에서 은퇴한 원로들이다.
최근 조중동 및 종편의 취재·출연 거부선언을 한 좌파진영 원로들도 강경파의 한 예다. 지난 15일 프레스센터에서 김원웅 전 국회의원, ‘김대중 평전’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함세웅 신부 등 좌파진영 원로로 불리는 20여명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3개 매체 신문 인터뷰?기고와 이들 매체의 종편채널 출연 거부선언을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조중동은 민주주의의 상식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불가촉의 존재’가 되어야 마땅하며, 민주주의의 바다에서 고립된 섬으로 잠시 남아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정 매체에 대해 이와 같은 거부 선언을 한다는 것이 정상적인 민주사회라면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 될 것”이라면서도 “지금 한국사회는 우리 같은 사람들까지 나서서 ‘조중동 거부’를 선언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또 “이 정권을 탄생시킨 조중동은 오히려 정부의 실정을 감싸면서 부자와 재벌만을 위한 정책을 요구하고, 남북 대립을 부추겼으며, 친일파와 독재자를 미화하고 되살리는 데 앞장섰다”며 “반칙과 특혜로 얼룩진 조중동 방송은 그 존재 자체가 민주주의에 대한 유린이요 시대착오”라고 비난했다.
김원웅·김삼웅·함세웅 등 3명 외 이 선언에 이름을 올린 17명을 살펴보면 김병상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대표, 유영표 민주화운동공제회 이사장 등 대부분 생활전선에서 은퇴한 원로들이며, 좌파언론에서 이미 활동하고 있는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조중동 매체에 기고·인터뷰 하거나 종편에 출연할 ‘필요’가 없는 인물들이다.
한편 좌파인사들의 종편 출연을 열렬히 비난하고 있는 고재열 시사IN 기자의 경우 기본적으로 시사IN 소속 고정급여생활자로 종편에 매달릴 이유가 없는 인물이다. 고 기자는 좌파진영 긴급 집담회 ‘진보진영 종편참여,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도 토론자로 참석, “종편이란 괴물을 초장에 때려잡아야 한다. 여기에 침묵하는 것은 후손에 죄를 짓는 일”이라며 강경론을 편 바 있다. 최근 종편이란 ‘절대악’과 싸우다 그 과정에서 지탄을 받기도 한 소설가 공지영도 강경파에 속한다. 공씨는 종편 개국축하 쇼에 출연한 가수 인순이에 “인순이님 개념 없다”, 조선TV에 출연한 김연아 선수에겐 “연아, 아줌마가 너 참 이뻐했는데 네가 성년이니 네 의견을 표현하는 게 맞아. 연아 그런데 안녕”이라며 트위터를 통해 비판 글을 올렸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기도 했다.
그러나 공씨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하기 전까진 상황이 달랐다. 엄밀히 말해 공씨가 조중동 거부를 시작한 것은 근작 ‘도가니’가 영화화돼 대히트를 기록하며 덩달아 그의 원작소설도 베스트셀러로 등극, ‘떼돈’을 벌게 된 시점부터다. 그 전까진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을 통해 소설을 연재하거나 책 홍보를 위해 조중동과의 인터뷰도 개의치 않았다.
종편 출연 온건파는 상대적으로 젊은 프리랜서들
반면 종편 출연 문제 온건파는 확실히 처한 현실 자체가 강경파와는 전혀 다르다. 동아일보 종편 채널A 출연을 계기로 강경파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은 허지웅 영화평론가의 경우 1979년생으로 한창 생활전선에 나서야할 32세이며, 영화주간지 필름2.0, 문화월간지 GQ와 영화월간지 프리미어 기자를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그는 고재열 기자 등으로부터 집단 공격을 당하자 시사IN 기고 칼럼을 통해 “종편에 출연하는 개인의 노동이 왜 나쁜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며 “그에 관해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는 합의에의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그래놓고 종편에 출연한 개인을 부역자, 변절자로 낙인찍었다. 이것은 분열적 요구”라며 “종편에 출연한 개인은자신의 선의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선택을 강요받아야 했다. 영혼을 팔아 남긴 뻔뻔한 부역자로 남거나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고 반성하거나”라고 냉소했다. 그러면서 “우리 편이 아니면 저 편일 수밖에 없는 좁고 편협하며 단촐한 세상, 그 경계에 종편 부역자들이 있다”고 했다.
각종 정치사회적 이슈에서 촛불진영을 옹호하고 정부를 비판해오며 독립PD협회 초대 회장까지 역임한 이성규PD도 최근 자신의 작품 ‘오래된 인력거’가 채널A를 통해 방영되면서 좌파진영으로부터 비판받은 경우다. 이PD도 올해 49세로 아직 생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고, 역시 프리랜서다. 특히 상업성이 높지 않은 다큐멘터리PD로서 소위 ‘잘 팔리는’ 드라마·예능PD들과 상황이 크게 다르다.
그는 ‘오래된 인력거’ 문제로 공격받자 “지상파의 불합리한 구조를 바꿔 보려고, 지상파를 상대로 몇 년 동안 싸우고 달래도 보고 협상도 해봤지만 콧방귀도 안 뀌었다”며 “혈육 같은 작품을 종편에 안기는 마음 결코 편하진 않지만, 그러면 아예 한국에서의 방영을 포기해야 하느냐”고 반발했다. 종편이 좌파진영의 독립PD의 생계문제 뿐 아니라 창작의 자유까지 보장하고 있는 역설적 현실을 보여준 셈이다.
한편 시사평론가 진중권도 의외로 온건파 중 한명이다. 진 평론가는 종편 개국 당일 트위터에 “종편의 미래? 광고시장이란 게 뻔한데, 밥상에 숟가락 몇 개 더 얹는다고 솥에 밥이 늘어나나요? 겨우 하나 정도 살아남을까? 행여 다 살아남아도 아마 기업에 조폭식으로 광고 협박을 해가며 근근히 광고 따서 명맥을 이어나가는 수준일 겁니다”라며 “연아 씹는 넘들. 용서치 않으리라. 부르르.... 오랜만에 발동하는 승냥이 근성.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그 중간의 일련의 그레이로 이루어지죠. 세상을 흑과 백으로 재단할 경우 불가피하게 폭력이 발생하게 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종편을 비판하면서도 한편으론 종편 출연 문제를 흑백논리로 비난하는 분위기는 반대한 것이다. 잘 인식되고 있진 못하지만, 진 평론가 역시 현재 딱히 적을 두고 있는 곳이 없는 프리랜서이며, 한편 ‘나는 꼼수다’ 인기 등의 영향으로 비주류로 밀려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종편이 안티조중동 단일대오 무너뜨리는 첨병?
어찌됐건 현실적으로 종편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게 된 좌파진영 인사들의 종편 비판은 무뎌질 가능성이 크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기업들로부터 광고를 수주하면서 기업비판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은 것과 같은 이치다.
좌파진영 인력이 대거 종편으로 유입되고, 종편이 이들의 생계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상, 역설적으로 좌파진영의 안티조중동 운동은 약화·세분화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아이러니하지만 이 과정에서 종편이 좌파진영 분열을 촉진해 안티조중동 단일대오를 무너뜨리는 첨병 역할을 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그 조짐은 분명히 일고 있다.
ⓒ 미디어워치 & mediawatch.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