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강종구기자][韓銀보고서 "정책오류로 과도한 저금리와 신용과잉 초래 가능성"]
세계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물가가 낮아진 영향을 간과했다가는 과도한 저금리와 과잉유동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이 한국은행에서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에는 세계화로 인한 물가 영향이 더 커 이같은 함정에 빠질 위험이 더 크며, 물가가 일단 목표범위를 이탈하게 되면 다시 안정을 시키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분석은 그동안 물가상승률이 이례적으로 낮은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인상한데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 줄 뿐만 아니라, 최근 한은이 과잉 유동성을 최대 위험요인으로 지목하며 금리인상 재개를 서두르고 있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신원섭 한국은행 해외조사실 종합분석팀장은 12일 발표한 `세계화의 진전과 정책 제약` 보고서에서 "글로벌 공급증가의 영향을 통화정책 결정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경우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낮아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저금리로 신용과잉, 자산가격 상승과 같은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반대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누증을 적시에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중앙은행의 정책대응이 지연됨으로써 인플레이션 악화를 초래할 위험성도 상존한다"고 강조했다.
OECD에 따르면 이른바 `미꾸라지 물가`, 즉 세계화로 인해 중국 등 개도국으로부터 저가품이 수입되면서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는 영향은 선진국의 경우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아시아 개도국 수입에 따른 소비자물가 하락효과가 연 0.1%포인트, 유로지역의 경우 0.3%포인트에 불과하다는 추정이다.
한은 보고서는 그러나,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인플레이션이 국내요인보다 해외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정도가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품목의 가격이 국내 수급이 아닌 세계시장의 수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신 팀장은 "중국, 구소련, 동유럽 국가 등의 시장경제 편입으로 세계 잠재생산력이 크게 증가했고 이는 인플레이션 완화압력으로 작용했다"며 "따라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평가할 때 국내뿐 아니라 세계 산출갭도 중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계화의 진전은 또한 물가와 성장의 상충관계(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반대로 움직이는 현상)를 약화시켰다는 견해도 대두되고 있다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국내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물가가 결정되는 정도가 감소하고 기업의 가격결정력이나 노동자의 임금교섭력이 약화되면서 경기와 물가가 따로 움직이는 경향이 커졌다는 것.
신팀장은 "물가와 성장의 상충관계 약화는 물가가 목표범위 내에 있을 때는 수요충격이나 정책실수가 발생하더라도 목표를 크게 이탈하지 않는 반면, 일단 목표를 벗어나면 안정회복을 위해 보다 큰 폭의 정책조정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최근 은행 단기 외화차입이 급증하면서 콜금리 인상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소규모 개방경제의 경우 세계화와 개방화로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이 빈번해지고 그로 인해 통화정책이 먹히지 않는다는 우려가 세계적으로도 커지고 있는 것.
지난해 12월 태국이 환율의 급격한 절상과 외자유입을 막기 위해 단기차입 직접 규제에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 환율하락을 내버려두면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외환시장 개입으로 막자니 과잉유동성과 경기과열은 물론, 금리상승을 유발하고 외자유입도 막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자 결국 직접적인 자본거래 규제에 나설 수 밖에 없었던 것.
지난해 3월 아이슬란드의 경우에는 내외금리차를 노린 대규모 외자유입이 내수과열과 자산가격 급등을 초래했으나 외채 누증과 거품가능성을 우려한 외국자본이 한꺼번에 유출하면서 자산가격이 폭락하기도 했다.
신팀장은 그러나 "이같은 위험은 세계화에 의한 개방확대 이외에도 거시정책의 오류나 민간부문의 리스크 인식 실패 등에도 상당부분 기인한다"며 "자본통제로 회귀하기 보다는 금융기관 건전성 강화, 리스크평가 개선 등으로 외부충격 흡수 능력을 높여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강종구기자 dark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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