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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386 세대가 있었고, 90년대에 ‘신세대’(일명 X세대)가 있었다. “나는 나”, “아무도 나를 규정할 수 없어”, “평범한 것은 죽기보다 싫다” 등의 광고카피들이 386 세대를 대신하여 20세로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신세대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성과 주체성이 강하여, 도발적이고 독창적인 일만 찾는 특별한 인종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공장에서 신나게 일하는 사람은 “내가 좋아서 한다”며 신세대가 되었고, 압구정동 오렌지족들도 “내가 좋아서 쓴다”며 신세대가 되었다. 그렇게 거대한 신세대 그룹이 90년대를 유령처럼 떠돌았고, 그 유령들은 언론과 광고 곳곳에 나타났다. 그러다 2006년 대한민국의 신세대들은 이제 서른이 넘어 버렸다.

그러나 정계, 학계, 경제계, 언론계, 문화계 등을 통틀어 386 세대 밑의 신세대 그룹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90년대 초반 그토록 개성과 창의력이 넘쳐난다는 신세대들이 정작 한창 활동을 할 30대에 이르렀는데도,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이제 40이 넘은 386 세대가 30대였을 때, 이미 그 세대는 각계각층에서 리더의 지위에 올라서 있었다. 대표적인 386 주자인 임종석 의원은 2000년 3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치를 이끌어 나가게 되었고, 68년생인 ‘다음’의 이재웅 대표는 99년, 32세의 나이에 자신의 회사를 코스닥 등록에 성공시켰다. 문학계에서는 공지영을 비롯한 386 세대가 일찌감치 90년대 문단의 흐름을 주도했고, 영화계는 박찬욱, 봉준호 감독 등이 30대 초반부터 기대를 받기 시작했다. 이들은 현재까지 대부분 사회의 주류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물론 386 세대 전체가 다 이들과 같은 것은 아니다. 386 세대 내에서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있고, 80년대 운동권 리더들이 여전히 리더 역할을 이어간다며, 평범한 386 세대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양한 조직활동으로 인맥을 넓혀간 386 세대들의 연대의식은 세대 전체의 큰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신세대들은 개성과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대학 시절부터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다고 당시 언론과 광고에서 떠들듯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제대로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 당시 한 지식인이 비판했듯이, “그렇게 잘났다며, 남들 가는 대학에 왜 다 가고,남들 사는 차는 왜 다 사는가”라는 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20~30대는 현실 안주형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그럼 그 많은 신세대는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아랫세대가 윗세대의 공과를 초월해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대를 망라하여, 학비를 자신이 직접 벌어 학업을 마친 사람이 얼마나 되며, 결혼할 때 집과 혼수를 직접 마련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중요한 문제에 부닥치면 결국 모든 세대가 함께 풀어 나가는 것이 대한민국의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역시 그렇게 잘났다는 정권 내부의 386 세대조차, 윗세대를 무시하다 결국 경제와 외교분야에서 심각한 실정을 저지르고 있지 않은가?

90년대 신세대는 대학생의 사회적 역할이 축소되는 역사적 흐름이나, 청년 실업률이 갑작스럽게 높아가는 경제적 조건 때문에 묵묵히 현실의 고통을 인내할 수밖에 없는 세대였다. 돌이켜보면, 당시 사회는 이런 세대에게 마치 우주에서 뚝 떨어진 듯 개성 넘치는 것 같은 괴물의 가면을 씌워 놓았던 것이다.

이제 서른이 넘은 신세대들은 그 가면을 벗고 자신들만의 역할을 당당히 되찾을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이념과 세대 간의 갈등이 짙게 깔린 이 시대에서, 꾸준한 대화와 이해심으로 산업화 시대를 이끈 부모 세대와 민주화 시대를 이끈 형제자매 세대 간의 공감대를 찾아 주는 것이다. IMF, 벤처 거품, 청년 실업난 등 상실의 시대를 청년으로 살아가며 얻은 인내심과 냉정한 판단력이야말로 신세대들의 숨겨진 장점이기 때문이다.


변희재 ·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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