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오전 12시경, 서울 2호선 시청역은 발디딜 틈없이 붐볐다. 지하철 출구까지 15분 정도 걸렸을까.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던 한 태극기 시민이 ‘문재인 퇴진’이라는 구호를 크게 외쳤다.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고조된 목소리로 이를 따라 외쳤다. 2002년 월드컵을 방불케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 장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신 핸드폰의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면서 SNS에 사진을 전송했다. "지금은 국가적 위기" 시청역 출구로 나오니 셀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모여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집회에 버금가는 규모였다. 사람들이 너무 빼곡히 몰려있어서 ‘산소가 부족하지 않을까’라는 어처구니없는 걱정까지 들 정도였다. 출구 주변에선 형광 조끼를 입은 젊은이들이 ‘한국 교회 기도의 날’이라고 적힌 팜플렛을 나눠주고 있었다. 팜플렛에는 “지금은 국가적 위기! 지금은 기도할 때!”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는 우파성향의 기독교단체가 연 행사였다. 비슷한 시간에 자유한국당은 세종문화회관 부근에서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를 열고 있었고, 우리공화당은 숭례문 앞에서 '문재인 퇴진 태극기 집회'를 개최하
이전기사 : [이승만TV 위안부의 진실⑩] “우리 모두는 사실상 위안부와 위안소 관리인의 자손”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위안부였던 故 문옥주 씨(1924년생, 1996년 사망)의 회고를 바탕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11회차 동영상 강의(‘방패사단의 위안부 문옥주’, 5월 5일)를 구성했다. 문옥주 씨는 사망하기 3년전, 일본의 작가 모리카와 마치코(森川万智子)라는 작가에게 자신의 인생을 회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모리카와 마치코는 1996년 일본에서 이를 ‘문옥주, 버마 전선 방패사단의 위안부였던 나(文玉珠 ビルマ戰線楯師團の慰安婦だった私)’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2005년에 우리나라에서 ‘버마전선 일본군 위안부 문옥주’로 번역 출간됐다. 영민하고 적극적인 소녀 문옥주 이 교장은 이 책을 토대로 문 씨의 위안부 생활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문옥주 씨는 7~8세 나이에 동네 이웃집에 동냥을 하러 갈 정도 매우 가난한 집안에서 살았다. 그에게는 3명의 남매가 있었는데, 나이가 12살 위인 그의 언니는 민며느리로 팔려가기도 했다.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던 문 씨는 기생이 되어서 노래와 춤을 하면 돈을 벌수 있다
이전기사 : [이승만TV 위안부의 진실⑨] "위안부 숫자 턱없이 과장… 3,500명 가량이 합리적 수치" “저는 우리 모두가 위안부나 위안소 관리인의 자손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인 군 위안부, 민간의 창기와 작부는 (모두 합하면) 10만명도 넘었을 것이다. 만주나, 대만, 일본, 중국 관내로 나간 조선인 창기와 작부도 따질 필요가 있다. 그중 상당 수는 해방 이후 귀국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70년~100년이 흘렀다. 그들의 자손을 모두 헤아려 볼까? 적어도 300만명은 된다는 어림수가 금방 생각난다. 오늘날 한국인의 20분의 1이다. (그들의 자손들은) 우리 이웃들이다” -이영훈 교장(위안부 진실 9회차 강의에서)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10회차 동영상 강의 '어느 위안소 쵸우바의 일기'(4월 28일)를 통해 당시 위안부들의 실생활을 들여다봤다. “여인들은 전대금 갚으면 위안소에 구속될 필요가 없었다” 이 교장이 소개한 이 일기의 주인공은 미얀마(버마)와 싱가폴에서 일본군 위안소의 관리인으로 근무하던 박치근 씨(1905년~1979년)다. 이 교장에 따르면 그는 본래 소실(小室, 첩)과 함께 대구에서 매
문재인 정권의 반일 선동으로 한일 관계가 극악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점가에선 한국 사회의 전근대적‘반일’ 풍토를 정면으로 비판한 단행본‘반일 종족주의’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어 주목된다. (관련 기사 :이승만 학당 ‘반일 종족주의’ 발간… ‘수탈설’‧‘강제동원설’‧‘성노예설’ 등 반박) 지난달 30일 출간된‘반일 종족주의’는 국내 서점업계 1위 교보문고에서 2주 연속 인터넷 베스트 주간(7월1일~7월16일 기준) ‘정치/사회 분야’ 1위를 기록한데 이어, 인터넷 베스트 주간(7월9일~7월16일 기준) ‘종합 분야’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타 서점가에서도‘반일 종족주의’의 인기는 급증하고 있다. 인터파크에서는 주간 베스트셀러(7월10일~7월16일 기준) ‘역사와 문화 분야’ 1위, 당일 베스트셀러(7월 17일 오전 11시 기준) ‘종합 분야’ 2위를 기록했다. 알라딘(7월 셋째 주)과 YES24(7월10일~7월17일)에서도 주간 베스트 ‘역사 분야’ 2위다. 이승만 학당에 따르면 ‘반일 종족주의’는 초판과 2쇄가 전량 소진되고, 현재 3쇄까지 인쇄한 상황이다. 대구, 부산 등 지역 서점가에서는 곳곳에서 매진 행진이 벌어지고 있어 현재 판매 추세대로
“반일 종족주의는 이 땅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살아가는 대다수 인간의 내면을 지배하는 여러 정신적 구조들 중의 하나이다. 오늘날의 대다수 ‘한국인’들은 일제시대 역사와 관련, 취약한 실증적 논거를 가진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 통념은 전근대적인 성리학적 세계관에 기반한 국익우선주의와 샤머니즘을 토대로 한다.” 정광제 이승만 학당 대외협력 이사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이승만 학당에서 열린 단행본‘반일 종족주의’출간 기념‘반일 종족주의 비판 세미나’를 통해 반일 종족주의적 사고의 근원을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제 서두에서 정광제 이사는“시계는 나사가 없이 존재할 수 없지만 나사는 시계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다.시계보다 나사가 본질적이다”며“반일 종족주의도 마찬가지다.반일이 종족주의를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종족주의적 사고가 반일 감정을 표면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쉽게 말해 한국인들에게 내재된 전근대 종족주의적 성향이 반일 감정을 낳았다는 것이다. 정 이사는 종족주의에 대해 ‘자신의 종족을 가장 우선시하는 태도나 사상’이라며, 자신의 주위에 끊임없이 적을 만들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단합을 꾀해 생존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종족주의의 특질이
‘광복절 제자리 찾기’를 주제로 한길거리 토크쇼가 오는 17일,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열린다. 자유보수 지향 역사연구인들의 모임인 국사교과서연구소(소장 김병헌)가 개최하는 이번 길거리 토크쇼는 금주 행사로서 3회차를 맞는다. 연구소는 지난 3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광복절 제자리 찾기’ 행사를 이어오고 있다. 연구소는 “광복절은‘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과 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날’이지만,지금껏 우리는‘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날’로 잘못 알고 있었다”며 “이를 바로잡자는 차원에서매주마다‘광복절 제자리 찾기’길거리 토크쇼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한반도 주민들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에서 패퇴한 날인 1945년 8월 15일에 바로 주권을 회복한 것이 아니라 직후에도 당시 해방군인 미군정의 통치를 계속 받아야 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선출로서 우리 힘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 수립되고 미군정으로부터도 ‘광복(光復, 주권을 회복하다)’이 이뤄진 것은 해방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에 이르러서다. 즉, 올해 8월 15일은 해방기념일 74주년(1945년 기준)이면서, 광복절 71주년(1948년 기준
이전기사 : [이승만TV 위안부의 진실⑧] 역외로 진출한 조선의 매춘업… '위안소도 직접 경영했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9회차 동영상 강의 ‘일본군 위안부’(4월 19일)를 통해 위안부 ‘20만명설’과 ‘강제연행설’을 반박했다. 한국인들, 여자근로정신대와 위안부 혼동 이영훈 교장은 이날 강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일본과의 외교적 분쟁으로 떠오른 것은 1991년부터였다”며 “지금까지 28년간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 교장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에는) 일본의 원인도 있고 한국의 요인도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요인을 지적하자면 ‘위안부’와 ‘여자근로정신대’를 혼동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영훈 교장은 “여자근로정신대는 전시기에 여성이 군수공장으로 동원돼 일정기간 노동한 것을 말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가 터지니 위안부와 정신대를 혼동했다”며 “일제가 여성(근로정신대)을 위안부로 삼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근로정신대가) 위안부로 충당된 단 한건의 사례도 알려진 바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1
한국 사회의 반일강박관념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한 책 ‘반일 종족주의’출간 기념으로 책의 주요 주제를 해설하는세미나가오는 12일, 오후 7시 이승만 학당에서 열린다. (관련기사 :이승만 학당 ‘반일 종족주의’ 발간… ‘수탈설’‧‘강제동원설’‧‘성노예설’ 등 반박) 세미나는‘위안부와 노무동원노동자 동상설치를 반대하는 모임’, ‘반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 ‘한국근현대사연구회’, ‘국사교과서연구소’등4개 단체가 주최하며,이날 발제자로는 정광제(송산) 이승만학당 이사가 나선다. 세미나 주최자 중 한 사람인 ‘반일 민족주의를 반대하는 모임’ 대표이우연 박사는 이번 세미나에 대해서“반일종족주의의 개념은 물론, 그 내용과 원천, 양상,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말 이승만 학당은 일본에 대한 우리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역사관을 타파하는 책‘반일 종족주의’를 발간하면서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전기사 : [이승만TV 위안부의 진실⑦] 1300원에 딸을 팔던 조선의 아버지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조선의 매춘업은 일찍부터 만주, 중국 관내, 대만, 나아가 일본으로 진출했다”며 “(조선의) 가난한 아버지가 인신매매 업자로부터 전대금(轉貸金)을 받고 딸의 공창 취업을 승낙하는 (형태의) 인신매매는 조선 매춘업의 역외 진출 과정”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8회차 동영상 강의 '매춘업의 역외진출'(4월 17일)에서 조선의 매춘업이 1916년 조선총독부의 공창제 시행 이후, 근방의 나라로 진출하는 과정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만주로 건너간 조선인 100만명 넘어… 매춘업 종사 여성 10명 중 1명은 조선인” 먼저 이영훈 교장은 일제시대에 만주로 진출한 조선인 매춘업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우선 당시 만주로 건너갔던 조선인들의 숫자부터 파악했다. 이 교장에 따르면 1910년대 초중반에는 연간 평균 1만여명, 1910년대 후반에는 6만명을 전후한 조선인들이 만주로 건너갔다. 특히 1931년 만주사변을 계기로 조선총독부가 조선인들의 만주 이민을 장려하면서, 이민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1931년부터
납북피해자가족단체가 판문점에서의 미북회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사실상 종전선언”이라고 평가한데 대해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3일,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는 성명서를 통해 “북한의 반인륜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문재인 대통령의 ‘사실상(de facto) 종전선언’을 절대 반대한다”고밝혔다. 가족협의회는 “전쟁 중 납북된 자국민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고 말하는 종전과 평화는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10만 납북피해자의 존재를 지우는 발언에 가족들은 분노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가족협의회는 “북한은 아직도 전 세계를 위협하는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고 있고, 전쟁을 일으킨 법적책임과 10만 납북범죄,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 민간인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를 해결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사실상(de facto)’이든 ‘법적(de jure)’이든 그 어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족협의회는“한반도의 종전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회담에서 전쟁납북범죄 문제가 선결 의제로 채택되어 해결돼야 한다”며 “평화는 김정은과의 대화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납북자들이 가족과 조국의 품으로 무사히 귀환하고 북한의
이우연 낙성대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다음달 2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 유엔 본부에서 개최되는 ‘군함도의 진실’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내용을 미리 공개했다. 지난 25일 이 연구위원이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한 해당 유엔 발표용 자료는‘일제시대에 조선인들이 군함도에 강제로 끌려가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으며 제대로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했다’는 한국인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반일민족주의반대모임 대표 이우연, “反日이데올로기는 民族主義가 아니라 種族主義”) 글은 최근 한국 대법원의 노무동원 배상 판결을 비판하면서 시작된다. 이 연구위원은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이 1939년부터 일본으로 간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고 판결했다”며 “이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 사법부의 선고와 행정부의 태도는 전시노무동원을 ‘강제연행’과 ‘노예노동’으로 오해한 데서 발생한 것”이라며 “이는 한편으로는 일본을 무조건 적대시하는 한국의 ‘반일종족주의’적인 악감정 탓”이라고 꼬집었다. 이 연구위원은 강제연행설에 대해 “(한국의 반일종족주의는) 조총련계 연구자 박경식이 한일국
이승만 학당(교장 이영훈)이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역사관을 타파하는‘반일 종족주의(反日種族主義)’를 발간한다고 밝혔다. 이 책은 유튜브 이승만TV에 업로드됐던 ‘위기 한국의 근원, 반일 종족주의’ 강의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강의를 간추린 것이다. 이승만 학당은 지난 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반일 종족주의는 20세기 전반 일본이 한국을 지배한 역사에 관해 오늘날 한국인들이 가진 통념으로서, 아무런 사실적 근거 없이 거짓말로 쌓아올린 샤머니즘적 세계관”이라며 “이승만학당은 반일 종족주의의 기원, 형성, 확산, 맹위의 전 과정을 국민에게 고발하고 그 위험성을 경계하기 위해 이 책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책의 저자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김용삼 펜앤마이크 대기자, 주익종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실장 등 이승만학당의 소속원 외에도 김낙년 동국대 교수와 정안기 서울대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등 총 6인이다. 책은 프롤로그와 본문 3부, 에필로그로 구성됐다. 프롤로그에서는 대한민국이 거짓말의 나라가 됐음을 통박(痛駁)하고, 나라가 파멸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이 책을 읽어달라고 당부한다. 제 1부‘종족주의의
납북피해자가족단체가 6·25 남침 69주기를 맞아 오는 25일 오후 1시 서울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북한의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이사장 이미일)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10만 남한 민간인을 불법으로 납치한 북한의 전쟁범죄를 규탄하는 행사를 가진다”며 “이날 행사에선 북한의 전쟁범죄인 민간인 납치에 대해 규탄하고, 북한의 범죄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행사는 개회식(12:30~12:40), 규탄사(12:40~13:30), 가두행진(13:30~14:30), 청와대 민원접수(14:30~15:00) 순으로 열릴 예정이다. 가두행진에서는 납북장면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도 실시될 예정이다. 행사 후, 가족회는 청와대 민원실에 ‘북한의 6·25전쟁납북범죄를 규탄하고 정부차원의 납북범죄 해결을 요구하는 내용의 결의문’을 전달할 계획이다. 행사에는 1950년에 남편을 납북으로 잃은 초대 납북피해가족회 임원이자, 생존 증인인 납북피해 1세대 김복남(98세) 여사와, 할아버지를 납북으로 잃은 3세대 손녀들도 함께한다. 가족회 측은 “북한은 6·25남침 도발 후 남한 민간인 10만여 명을 불법적으로 납치하고,
이전기사 : [이승만TV 위안부의 진실⑥] 조선에선 매춘업 성립 불가능… ‘성(性) 지배’ 수준에 머물러 “대구에서 39세 된 아비가 15세 된 딸을 160원에 팔아먹은 것을 딸의 동창생들이 구하려고 몸값을 모은다 한다. 딸을 팔아먹는 것쯤은 동양천지에서는 그리 신기할 것이 아니다. (중략) 혹은 남의 딸과 아내를 꾀어 다 팔아먹기, 혹은 제 아내를 팔아먹는 일도 있다. (중략) 팔아서 먹는 놈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사다가 먹는 놈도 있다. 이른바 예기(藝妓), 창기(娼妓), 작부(酌婦), 첩(妾)같은 것이다” (-1934년 이광수의 글 “팔려가는 딸들”-) “경성부내 사간정 14번지 김ㅊ(22)이라는 여자는 27일 종로서에 출두하여 ‘차라리 기생노롯은 할지언정 유곽의 창기 노릇은 할 수 없습니다‘ 하면서 눈물을 지으며 호소하였다. (중략) 그 부모가 쪼들리는 생활난에 견디다 못하여 10여일 전에 만주국 도문에서 유곽을 경영하는 신XX에게 1300원을 받고 초향을 창기로 팔기로 계약을 했는데, 유곽 주인은 매일 와서 유곽으로 가자고 조르나 김초향은 노래와 웃음을 파는 기생생활은 할지언정 고기까지 파는 창기노릇은 할 수 없으니 경찰서에서 좋도록 처리하여 달
이전기사 : [이승만TV 위안부의 진실⑤] “조선시대에도 군 위안부 존재했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은 조선총독부의 공창제(公娼制]) 시행이 조선시대 성(性) 문화를 ‘신분적 성 지배’에서 ‘상업적 매춘’ 구조로 전환시켰다고 분석했다. 이 교장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실’ 6회차 동영상 강의 '공창제의 시행, 신분적 성지배에서 상업적 매춘으로'(4월 1일)를 통해 조선에서 시행된 공창제의 기원과 의미, 특징 등을 설명하며 근대 우리나라의 성(性) 역사를 조명했다. 등록제, 성병 검진 의무제, 집창제가 근대 공창제의 기본 요건 이영훈 교장은 조선의 공창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공창제의 역사적 의의를 짚었다. 그에 따르면 공창제는 근대 서유럽에서 시작됐다. 공창제가 시행된 직접적 계기는 병사(兵士)들의 성병 감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병사들의 성병 감염은 군의 전투력과 사기에 큰 지장을 주기 때문이다. 이후 여러 나라는 공창제를 통해 매춘업을 국가 관리하에 뒀다. 공창제가 성립되기 위해선 세 가지 요건이 갖춰져야 했다. 1. 성매매 종사자 등록제, 2. 성병 검진 의무제, 3. 영업 구역 집중제(집창제)다. 등록제는 ‘인신매매 및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