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아나운서가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그와 관련한 기사가 인터넷 포털을 도배질 했다. 이용자들이 보고 싶지 않아도 보도 싶게 만들고, 클릭하고 싶지 않아도 클릭 하게 만들었다. 한 명의 아나운서가 프리랜서를 선언한 내용을 읽고 있어야 하는지 자괴감이 들게 했다. 수많은 기사들이 흥미를 자아내려고, 낚시질을 유도하는 노력이 가상하니 봉사하는 셈치고 클릭해 주었다며 위안을 삼는다면 자괴감이 덜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봉사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김성주 아나운서의 프리선언은 아나운서에서 아나테이너, 다시 엔터테이너로 거듭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얻은 인기에 힙 입어 김성주 아나운서는 아나운서에 엔터테이너의 역할을 결합시켜 인기를 배가 시켜왔다. 그는 방송국 내에서는 다양한 자신의 재능을 살릴 수 없고, 소모적으로 빨리는 느낌이었다는 속내를 털어 놓았다. 방송국을 벗어나 더욱 다양한 재능을 펼쳐 보이겠다는 것이다. 물론 방송 전파 내에서 벗어나지는 않겠다고 한다.
강수정 전 아나운서의 예와 같이 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의 결합이 아니라 엔터테이너의 역할에 더욱 치중하겠다는 의미로 읽혀진다. 단순히 아나운서와 경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연예인들과 경쟁을 하겠다는 의미이다. 다시 한 번 이번에도 놀라운 것은 언론인으로 여겨주길 바라던 이들이 한순간에 연예인화 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공공적 역할을 하던 아나운서가 연예인이 되겠다고 선언한 일이 역시 인터넷을 도배질할만한 지 의문이다.
다룬다 해도 몇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개인의 권리와 선택은 보장받아야 한다. 아나운서에게만 혹독하게 도덕적 사회적 의무를 다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조직의 후광에 기대어 인기를 끈 뒤 조직을 버렸다는 비판을 하기도 쉽지 않다. 개인이 조직에 희생된 면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라면 나름대로 조직과 개인의 역설과 사회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할 만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조차 없었다. 단지 그의 성공 가능성과 생존경쟁의 문제, 후속 아나운서의 면면이나 MBC의 반응에 치중하고 있다.
무엇보다 기획사 시스템에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의 흡수돼 가는 현상에 대한 진단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단순히 프리랜서는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연예기획사의 소속이 되면서 오히려 자신이 몸담고 있던 방송사에 대항하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물론, 그 대항은 방송의 공공성이나 공영성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사담 프로그램이나 감각적인 오락 프로그램에 치중해 인기를 추구하는 대중문화 산업 체계의 부속품이 되어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선택할 것이다. 이런 점들이 빠진다면 더욱 인터넷을 도배질할만한 것인지 의문이 들게 된다.
그러나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완전히 간과 할 수는 없다. 조직체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기 능력을 발휘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것은 우리 사회 동시대인들의 소망이다. 사실 아나운서들의 자괴감도 이해 못할 일이 아니다. 힘들게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소속 아나운서들은 일반 프리랜서 진행자들이나 연예인 진행자보다 엄청나게 낮은 인센티브를 받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내부 소속 진행자들을 방기하고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이 연예인 진행자의 몸값을 올렸고, 이것이 자사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를 증폭시켰으며, 그들이 이름을 얻은 뒤 프리랜서로 빠져나가는 행태를 낳았다. 프리선언은 방송사의 자업자득이며, 일종의 방송 구조에 대한 공격으로 읽히는 이유이다. 만약 아나운서가 아니라 기자이어도 이름만 얻으면 뛰쳐나가고 싶게 만드는 방송 시스템의 모순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의 기사는 찾기 힘들다. 있다고 해도 포털에 노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프리랜서 선언으로 방송 전파를 통해 자신의 몸값을 챙기겠다는 심리가 더욱 강화 되는 것은 우려스럽다. 방송은 방송일 뿐이다. 부와 명예의 수단이 아니다. 차라리 다양한 능력을 개발하겠다는 이유보다 조직에서 벗어나 한결 여유롭게 생활하겠다는 명분이 더 타당하게 들리는 이유다. 개인의 권리를 찾는 사람을 수용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개인의 권리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존경하지는 않는다. 지금 프리 선언에 나름대로 정신이 있는지 알 수 없다. 한 순간의 인기에 기대어 부와 명예만을 추구하겠다는 인상으로 비치는 것은 본인에게나 프리랜서를 선언한 이들에게도 모두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방송사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는지 모르지만, 방송 전파의 공영성에서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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