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강용석 | 지상파 방송은 곧 권력이었다. 지상파 방송 뉴스가 조·중·동과 함께 특종을 장악하며,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만들어 내고, 누군가를 악마로 혹은 천사로도 꾸며낼 능력이 있었다.
과거 필자가 알고 지낸 한 방송 기자는 “내가 마음먹고 방송 잘못 내면 회사 하나 망하게 할 수 있다”고 코웃음을 쳤는데, 아직도 그 거만하고 세상 다 가진 듯한 모습이 역력하다.
그들은 방송 권력을 무기로 뉴스는 물론이고 드라마와 음악 등 문화 영상 콘텐츠 시장을 주도했다. 국민들이 지상파 방송을 보러 TV 앞에 모여들다 보니, 자연스레 광고 시장마저 장악했다.
기업마다 방송 중간에 광고를 경쟁적으로 넣으려 했다. 단가는 타협 따윈 없이 방송사가 부르는 게 값이었다. 백화점과 시장보다 방송에서 파는 게 곧 돈이 되다 보니 현대와 롯데, GS, 신세계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홈쇼핑 시장에 진출하려 애를 썼다.
이는 옛날 옛적의 일이 아니다. 불과 2000년대 중후반 대한민국 미디어 업계의 보편적 상황이었다.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포털에서 원하는 뉴스를 검색하고, 지상파 앵커보다 정치·시사 유튜버를 통해 많은 뉴스를 시청하며, TV 예능프로보다 먹방·여행 유튜버가 젊은이들에 더 인지도가 높고, 홈쇼핑이 아닌 쿠팡과 네이버 쇼핑에서 상품을 비교해 가성비 제품을 구매하는 오늘날 우리에 실로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망한 들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고 코웃음을 치던 방송사들의 현 상황은 어떨까.
지상파와 종편 방송사에서 제작한 드라마 중 시청률 10%를 넘기는 작품은 흔치 않고, 이제 20%의 시청률조차 ‘천장’이라고 말할 정도다. 월별 채널 시청률도 2%대 이하로, 황금시간대 방송 3사 메인 뉴스조차 3~6%대가 고작이다.
이에 TV 생중계만으로는 시청자를 끌어모을 수 없다고 판단해, 유튜브 채널에서 라이브로 송출하며 그나마 시청률을 만회하려 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발간하는 방송산업실태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DMB포함)의 광고 매출 규모는 지난 2005년 2조 4021억 원에서 2023년 9279억 원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방송사별로 2014년 대비 2023년 매출 감소율 보면, KBS는 62.3%, MBC는 54.5%, SBS는 34.2%에 달했다. 2023년 기준 이들 방송3사의 광고 매출 규모는 KBS 1967억 원, MBC 2028억 원, SBS 2900억 원이었다.
시청자들이 미디어를 소비하는 환경이 지상파보다 유튜브와 OTT로 바뀌고 있으니, 대기업이 이들에 굳이 비싼 돈 들여 광고하려 하지 않고, 관련 수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브라운관의 백화점이라고 불린 홈쇼핑은 어떤가. 지난달 15일 한국TV홈쇼핑협회가 발표한 7개(GS·CJ·현대·롯데·NS·홈앤·공영) TV홈쇼핑 사업자의 지난해 업황 분석 자료에 따르면, 전체 거래액은 18조 5050억 원으로 전년 대비 5.1% 감소했다고 한다. 지난 2021년 이후 연평균 –4.2% 감소율을 기록하며 역성장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다.
전통적으로 홈쇼핑 업체의 핵심 수익원이던 방송매출액은 2조 6180억 원으로 같은 기간 0.9% 줄었는데, 이는 2012년 이후 최저치라고 한다. 전체 매출 대비 방송 매출 비중도 2021년 51.5%에서 2025년 46.7%로 낮아졌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예전만큼 TV를 잘 보지도 않고, TV를 통해 물건을 구매하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쿠팡이나 네이버 쇼핑 등에 비해 제품의 질이 월등히 높거나, 배송이 빠르거나, 기타 혜택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이들 TV홈쇼핑에서만 독점 판매하는 상품도 예전만큼 없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굳이 시간과 전기료까지 낭비하며 TV를 켜지 않고, 스마트폰에서 클릭 하나로 간편하고 싸게 제품을 구매한 지 오래다.
이들 7개 홈쇼핑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 총합은 4000억 원을 밑도는 수준이라는데, 한국 쿠팡의 작년 영업이익만 1조 6368억 원(전년 대비 +27.6%)에 달한다. 수익성 측면에서 경쟁력을 사실상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의미다.
밥그릇 싸움에 신뢰 잃은 방송사 vs ‘뉴노멀’로 성공한 넷플릭스
소비자들이 뉴미디어와 모바일 커머스로 진작에 넘어갔고, 광고 시장도 이곳에서 판을 키우는 마당에 방송사들의 위기의식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밥그릇 싸움이 독이 돼 적자 우려를 키우는 동시에, 시청자 신뢰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제로 올해 2월에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동계올림픽 중계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동안 올림픽은 지상파 3사가 돈을 모아 중계권을 사고 공동으로 방송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JTBC가 지상파보다 훨씬 높은 금액을 국제올림픽위원회에 제시해 단독 중계권을 따냈고, 2026~2032년까지 올림픽과 2030년까지 월드컵 중계권까지 확보했다.
JTBC가 이를 위해 쓴 돈만 약 5억 달러(한화 약 7000억 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JTBC는 중계권을 지상파 3사에 비싸게 되팔아 투자금을 회수하려 했지만, 이들 3사가 거절하면서 JTBC가 독점 중계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동계올림픽은 흥행에 참패했고, 미디어 업계에선 JTBC가 “독박을 썼다”거나 “독배를 마셨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JTBC는 내달 11일 개막하는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을 약 1억 2000만 달러(약 1900억 원)에 확보했고, 3사에 중계권 구매를 제안했지만 SBS와 MBC는 이를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JTBC로서는 향후 수익성 악화를 예상할 수밖에 없고, 방송사 간의 갈등을 키우는 동시에, 시청자들은 이들에 대한 불신을 키울 수밖에 없다.
10년 전 넷플릭스가 한국 진출을 선언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들의 실패 가능성이 크다는 언론보도가 적지 않았다. 또 국내 방송사와 통신사들의 넷플릭스에 대한 견제도 상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른 새 표준)’을 추구하며 과감한 도전에 나섰고, 현재 리모콘을 들고 TV를 켜면 지상파 3사나 케이블 채널도 아닌 넷플릭스 버튼을 눌러 콘텐츠 탐험에 나선다. 공중파 드라마와 시사 다큐 프로그램도 이제 넷플릭스에 자신들의 콘텐츠를 납품하기에 이르렀다.
시대의 흐름과 대세를 거스른다면 지금은 입에 풀칠 정도는 할지 모르겠지만, 결국 물조차 구하지 못해 입술이 마르고 굶주림에 소멸하는 미래를 그들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사 <인싸잇>을 창간한 지 벌써 1주년이다. 그동안 언론 매체를 경험하면서 절실히 느낀 건 조·중·동과 같은 메이저 언론도 지상파 3사 같은 유력 방송사도, 매체 규모와 상관없이 새롭고 특별한 콘텐츠가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유튜브와 함께 미디어 권력의 최고봉에 올라 있는 네이버 포털에 뉴스 검색이 된다면, 인싸잇도 조·중·동도 SBS와 KBS, MBC를 비롯한 어느 언론사도 똑같은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결국 누가 더 노력하고 머리를 잘 써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데 누가 살아남는지 결정될 뿐이다. 규모와 명성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움과 혁신의 발상 그리고 변화에 발 빠른 대처만이 이 ‘미디어 정글’에서 살아남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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