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싸잇=유용욱 주필 | 대부분의 순직 의무복무자는 스무 살 언저리의 청년이다. 군복을 입고, 경찰 제복을 입고, 또 소방복을 입은 채 일상의 경계에서 국가의 일을 하다 떠난 이들이다. 전쟁터가 아니어도 언제나 죽음은 찾아왔고, 그 순간은 늘 예고 없이 갑작스럽게 왔다.
그들이 떠난 뒤 남는 사람은 대개 부모다. 배우자도, 자녀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순직 의무군경을 떠올릴 때면 한 가지 질문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 꽂혀 오래오래 남는다. 그들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누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줄 것인가..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옅어진다. 애도(哀悼)의 목소리도, 분향소의 꽃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사람의 이름은 불리지 않으면 잊힌다. 그 사실 앞에서 국가는 비록 뒤늦긴 했지만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선택을 하나 했다. 개인의 슬픔에 머물러 있던 기억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끌어안기로 한 것이다.
매년 4월 넷째 금요일, ‘순직의무군경의 날’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이 날은 단순한 추모의 시간이 아니다. 잊히기 쉬운 이름들을 국가가 직접 불러내는 날이다. 오랜 시간이 흘러, 혹 가족의 기억이 닿지 않는 순간에도, 국가는 이들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선언이다.
의무복무라는 말은 익숙하다. 그러나 그 말 속에 담긴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훈련 중 사고, 임무 수행 중 질병, 현장 근무 중의 불의의 참변.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가 아니어도, 국가 기능 유지를 위한 일을 하는 자리는 언제나 위험과 맞닿아 있다. 우리가 아무 일 없는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는 그 하루를 끝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 기념일이 5월 가정의 달을 앞둔 시기에 놓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4월의 마지막 주간은 특히 가족을 이루지 못한 채 떠난 청년들, 그리고 그들을 먼저 보내야 했던 부모의 시간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 세월이 흐르면 슬픔은 말수가 줄고, 기억은 조용해진다. 그래서 더더욱, 사회가 나서야만 하는 것이다.
국가가 이들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호명(呼名)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언어다. 기억하겠다는 말은, 돌보겠다는 뜻이고, 외면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순직의무군경의 날이 ‘기억을 넘어 책임을 확인하는 날’로 불려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념식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약속은 반복되어야 한다. 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형식에 머물지 않는지, 각종 지원제도는 남겨진 이들이 겪고 있는 현실의 고통에 제대로 닿아 있는지, 국가는 매년 이 날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들 인간의 기억은 그 자체가 가진 한계로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져 간다. 따라서 기억은 제도로 남겨질 때 비로소 오래간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이 평범한 일상은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그 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멈춰야 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반복될 때, 이 기억은 공동체의 핵심가치가 될 것이다.
순직의무군경의 날은 일찍 떠난 이들을 위한 하루이면서, 살아 있는 우리가 국가의 책임을 다시 묻는 날이어야 한다. 그들의 이름을 오래오래 부르기 위해, 또 그들을 기억하는 우리의 기억을 제도와 실천으로 반드시 이어가겠다는 약속의 날이다.
필자는 이 날이 오면 늘 같은 생각을 한다. 국가가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죽음을 역사 속 문장으로만 남기지 않겠다는 뜻이어야 한다고. 불리는 이름 하나하나에 삶이 있었고, 미처 펼치지 못한 시간과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어야 한다고.
그래서 순직의무군경의 날은 그저 추모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기억은 제도가 되고, 제도는 책임이 되어야 한다. 이름을 불렀다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그것이 국가가 젊은 생 앞에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예의다.
우리의 이 약속이 해마다 반복되어, 마침내 습관이 되고 상식이 될 때까지, 나는 이 날이 국가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지를 묻는 날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해서, 더 이상은 아무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 없기를 바란다. 그 소중한 이름들이,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이 나라의 기억 속에 머물기를 바란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맡은 바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다 유명(幽明)을 달리한 이땅의 모든 순직의무군경의 명복(冥福)을 빌며, 그 유족분들께도 마음으로부터의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한다.
□ 유용욱 주필
- 1993년 KBS 공채 19기
- KBS 전략기획실 성과평가부장
- KBS 법무실장
- KBS N 경영본부장
- 현) 인싸잇 경기 편집국장 및 공동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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