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삼성물산 합병에 피해” 국민연금 vs 이재용 손배소 ② - 모순됐던 매수·매도 행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제일모직-삼성물산 불법 합병 의혹 사건의 형사재판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지 벌써 9개월이 흘러가고 있다. 이 사건의 1심부터 최종심까지 법원이 흔들림 없이 모든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고, 이에 그동안 검찰과 언론, 일부 정치권을 통해 제기된 ‘이재용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합병’은 죄가 없는 동시에 사실무근으로 사법적 결론이 내려졌다. 이재용 회장과 삼성으로서는 이제 더 이상 떠올리기도 싫을 법한 이 사건이 민사 법정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에서 이 부당한 합병으로 인해 재산상 손해를 입었다며 이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고 나선 것이다.

 

 

인싸잇=한민철 편집국장 | 2015년 5월 26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은 각 이사회를 통해 합병 결의를 발표한다. 그러면서 두 회사의 유가증권시장에서의 상장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비율 1대 0.35를 산출했다.

 

두 회사가 합병하게 되면, 합병사의 신주를 발행해야 한다. 기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각 주주들은 합병비율을 토대로 신주를 받게 된다. 1대 0.35의 합병비율에서 제일모직 주주들은 주식 1주를 내놓으면 합병사의 신주 1주를 받게 된다. 반면 삼성물산 주주들은 기존 주식 1주를 내놓으면 합병사 신주를 0.35주밖에 받지 못한다.

 

이에 당시 삼성물산 주주들은 물산에 불리한 비율로 합병이 이뤄져 재산상 손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합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했다. (실제로 이재용 회장은 1대 0.35의 합병비율로 물산 지분 16.538%를 취득했다.)

 

특히 당시 제일모직의 최대 주주가 이재용 회장이으로, 합병을 통해 사실상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 중 한 명은 이 회장이 분명했기에, 삼성물산 주주 사이에서는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합병”이라며 반대 기류가 적지 않았다.

만약 이 합병비율이 실제로 부당했다면 가장 강하게 손해 발생을 호소하며 합병을 반대해야 하는 쪽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그런데 앞선 보도에서 살펴봤듯이 당시 국민연금은 내부적으로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에 대해 찬성 기류가 강했다는 게 관련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여러 증거와 증언을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무엇보다 당시 국민연금은 합병에 반대하는 삼성물산 주주들의 주장과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었다.

 

소위 합병 반대파들은 삼성물산의 영위 사업의 규모와 보유한 계열사 지분 비율, 또 당시 삼성물산의 매출 규모가 제일모직의 5배 그리고 영업이익과 총자산은 3배 이상 높다는 점을 들어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물론 삼성물산이 당시 삼성 계열사의 사실상의 지주사 역할을 했고, 사업과 매출·자산 등의 규모가 제일모직보다 큰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상장사 간의 합병비율은 이런 매출과 자산, 영업이익, 사업 종류 등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오로지 주가로 산정하게 된다. 그 방식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 예나 지금이나 상세히 설명돼 있다.

 

이에 당시에는 이런 주장도 제기됐다. 제일모직에 유리하되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비율을 의도적으로 조성하기 위해, 실제 합병 필요성이 없음에도 제일모직의 주가가 높은 동시에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은 타이밍을 노려 합병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사건 재판에서 검찰 측이 주장하는 논리이기도 했다.

 

실제로 제일모직의 주가는 2014년 12월 18일 상장 당일 종가 11만 3000원에서 지속적으로 상승해 2015년 상반기 내내 14~16만 원대를 형성하며 시가총액 약 18조 원 이상을 유지했다.

 

반면 삼성물산의 주가는 2014년 11월 12일 7만 6800원(시가총액 약 12조 원)에서 모직 상장 완료 무렵인 2014년 12월경 5만 원 대로 급락한 후, 2015년 5월 22일 5만 5300원(시가총액 약 8조 6000억 원)으로 27.99% 하락했고, 같은 기간 5만 원대에 머무르며 시가총액이 약 10조 원을 하회했다.

 

 

불리한 합병이었다면, 왜 삼성물산 보유 지분 순매도했나

 

앞서 언급했듯이 합병에 반대하던 이들의 주장은 제일모직의 주가는 높은데 삼성물산의 주가는 낮은 상황에서 삼성 측이 이재용 회장을 합병사의 최대 주주로 만들어 완벽한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했고, 이때로 합병 타이밍을 의도적으로 잡았기에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당시 시장 참여자 다수가 삼성물산의 주가가 향후 오를 가능성이 있었다고 판단했고,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시너지도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보편적인 인식이었어야 했다.

부당한 합병이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로 가장 큰 피해자인 국민연금의 행보를 살펴보자. 국민연금은 2014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보유하던 삼성물산 주식 약 580만 주(약 3357억 원)를 순매도했다.

 

당시 삼성물산의 주력이던 건설 분야의 불황으로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특히 2015년 1분기 실적 발표(4월 23일)에서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5.6%와 57.7% 하락한 ‘어닝 쇼크’의 실적을 발표했다.

 

당연히 삼성물산의 주가는 급격히 빠질 수밖에 없었고, 2015년 1월 1일부터 5월 25일까지 국내 기관의 순매도량 순위에서 현대자동차에 이어 삼성물산이 2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만약 당시 1대 0.35의 합병비율이 부당하고 삼성물산의 주가가 저평가돼 여전히 오를 가망이 보였다면, 국민연금은 물산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거나 적어도 이처럼 580만 주를 순매도해서는 안 되는 게 상식적이었다.

 

얄궂게도 국민연금은 당시 삼성물산 보유 주식은 순매도하면서, 제일모직 주식을 대규모 순매수했다. 이는 이재용 회장에 대한 형사사건 재판 과정에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당시 제일모직은 주가 하락이 예상되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가 고평가로 주가 하락이 예상됐다면 기관투자자들이 모직의 주식을 팔았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전 6개월 동안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주식을 약 4699억 원 순매수했습니다.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직 주식이 고평가돼서 주가 하락이 예상된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2021.4.22. 서울중앙지법 2020고합718, 공소 요지에 대한 변호인 의견 진술
「이재용, 세기의 재판」1부 내용 일부 발췌

 

2015년 상반기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을 순매도한 이유에 대해, 이번 민사재판의 피고인이기도 한 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과거 이재용 회장에 대한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다음과 같이 증언한 바 있다.

 

문 : 이것은 삼성물산의 합병 발표 전 주가입니다. 합병 발표를 하기 전 약 1개월간의 주가를 저희가 모아봤는데요. 6만 원대에서 5만 5000원 정도로 주가가 내려가고 있습니다. 삼성물산 주가가 내려갔기 때문에 결국 합병비율도 내려가게 된 것이죠.

 

답 : 네.

 

문 : 주가에 대해 저평가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삼성물산 주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 기간 중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주식 매매 관련 보고인데요. 국민연금의 경우에는 주식 투자를 직접 하는 것도 있고, 위탁 운용 방식으로 하는 방식 두 가지가 있죠.

 

답 : 네.

 

문 : 이 표를 보시면 2015년 1월부터 5월 합병 발표 때까지 직접과 위탁에서 모두 다 마이너스라는 것은 순매도를 의미하는 겁니다. 전부 삼성물산 주식을 팔고 있죠.

 

답 : 네, 매도인 것 같은데 수치가 정확한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직접과 위탁이 전부 매도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국민연금이 2015년 1월부터 5월까지 계속 주식을 매도했다는 게 빨간색 방금 보여드린 그 내용이고요. 기관투자자 전체도 거래소 홈페이지에 가면 다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그걸 정리해 보니까, 국민연금뿐 아니라 기관 투자가 전체도 그 기간 이렇게 매도를 많이 했습니다. 이 사실을 증인 알고 계셨습니까.

 

답 : 네, 제 기억으로는 물산이 1/4분기 실적이 아주 안 좋게 나와서, 특히 4월 이후에 매도가 좀 더 많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 그래서 국민연금뿐 아니고 기관투자자 전체가 이렇게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한 것은 저평가돼있다고 얘기를 듣는 당시의 주가 수준에서도 이렇게 매도하는 게 더 이익이 된다.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에 매도를 한 거죠.

 

답 : 예, 그렇습니다. 매도하고 나서 또 다른 타이밍에서 매수할 기회가 있으니까요.

 

문 :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돼있다. 이런 주장은 이렇게 기관투자자와 국민연금이 다 이렇게 팔고 있는 것과 배치되는 주장 아닙니까?

 

답 : 네, 그런 측면도 있을 겁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대로 저평가라는 게 두 가지 종류로 봤을 때, 주가가 떨어지는 측면에서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문 : 다음 국민연금 자료 제시합니다. 그 당시에 주식을 이렇게 합병 발표 전에 매도하신 배경을 정리한 겁니다. 여기 보면, 유가 하락에 따른 글로벌 건설 발주 둔화 그리고 상사 부문의 마진 둔화 우려, 방금 말씀하셨던 1분기 실적 충격 즉 어닝쇼크, 이런 것들 때문에 결국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주식을 매도한 것이고, 다른 기관투자자들도 동일한 것으로 알고 있죠.

 

답 : 네.

 

-2017.6.21.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94, 증인 홍완선에 대한 변호인 반대신문
「이재용, 세기의 재판」1부 내용 일부 발췌

 

 

국민연금 내부의 투자 전문가 집단인 기금운용본부에서도 당시 하락을 거듭하던 삼성물산의 주가가 회사 사업 전망이 불투명하며 어닝쇼크까지 겹쳐 당분간은 반등할 계기가 없어 보인다고 판단해 지속적인 매도에 나섰다. 그래야 손실은 최소화하고 또 다른 매수 타이밍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스스로 삼성물산의 저평가와 향후 주가가 오를 것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제 와 당시 합병이 삼성물산에 불리했다며 이 회장 측에 손해배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인가.

 

진정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이자 합병비율이 이뤄졌다면, 왜 당시 그렇게 물산 지분을 대량 순매도하고, 모직 주식은 사들였는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