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FC] 미일 정상회담 성과는 뒷전... ‘스킨십’ ‘허그’에 집착한 언론

다카이치 ‘허그’… 2시간 만에 4건→14건
오후엔 30건 가량까지 동일 키워드 반복된 ‘복제 보도’ 확산돼
美日정상회담 신뢰 메세지 장면 축소... ‘스킨십’ 통한 ‘난관 돌파’로 프레임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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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싸잇=백소영 기자 ㅣ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방미 정상외교를 두고 국내 언론이 ‘스킨십’ ‘와락’ ‘허그’ ‘친화력’ 같은 표현을 일제히 반복한 기사들을 내놓고 있다. 주변국 정상외교의 성과와 협상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국내 외교를 되돌아봐야 할 대목에서, 보도의 초점이 장면 묘사에 치우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나라의 정상외교를 사실상 ‘스킨십 장면’으로 소비하는 보도 양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2시간 만에 4건에서 14건… 오후엔 30건 가량 동일 프레임 확산


20일 오전 9시 42분과 오전 11시 40분 네이버 뉴스 검색 화면을 직접 비교한 결과, 관련 보도는 상단 노출 기준 4건 수준에서 14건 안팎으로 급증했다.


기사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니었다. 제목과 본문에서 쓰인 핵심 단어도 ‘스킨십’ ‘와락’ ‘허그’ ‘친화력’ 등으로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최초로 보도한 <연합뉴스>는 이날 오전 9시 4분 「다카이치, 트럼프에 또 ‘스킨십 공세…친화력으로 난관돌파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했고, <SBS>도 오전 9시 35분 사실상 같은 제목의 뉴스가 송고됐다.


<YTN>은 오전 9시 51분 「손 내밀었는데 ‘와락’…다카이치, 트럼프에 또 ‘스킨십’ 공세」, <KBS>는 오전 11시 10분 「‘허그’하고 ‘도널드~’ 친화력 과시한 다카이치…‘진주만’ 언급한 트럼프」, <채널A>는 오전 11시 31분 「트럼프 보자마자 ‘와락’ 안은 다카이치…특유의 ‘스킨십 외교’ 현장」이라고 보도했다.


이처럼 단시간 내 다카이치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허그한 장면을 두고 ‘립서비스’ ‘스킨십 외교’ ‘압박 돌파’ 동일한 표현과 유사한 제목 구조가 반복됐다.


이를 두고 각 매체가 독립적으로 분석한 기사라기보다 하나의 서술 방식이 확산된 ‘복제 보도’ 양상이 뚜렷히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20일 오후에도 30건 정도의 유사 보도가 이어졌다.

 

 

공영방송까지 ‘스킨십’ 프레임에 보도 균형 논란


공중파를 포함한 주요 매체들이 정상외교를 ‘스킨십’이라는 표현을 부각해 전달하는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공영방송의 경우, 단순한 장면 전달을 넘어 사실에 기반한 균형 있는 정보 제공과 공공성 유지가 요구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외교·안보와 같이 국가 이미지와 직결되는 사안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하고 맥락 중심의 보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와락’ ‘허그’ 등 감정적 표현을 내세운 보도는 공영방송의 역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아울러 국내 공영방송의 보도는 해외 언론과 외교 관계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정보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상외교를 장면 중심으로 축소한 서술이 국가 외교 이미지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허그’는 신뢰의 표현… ‘와락’만 남긴 보도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 정상 간의 신체 접촉은 단순한 예의를 넘어, 외교 관계 수준을 드러내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정상회담은 전 세계 언론과 외교 관계자들이 주목하는 공개된 무대인 만큼, 지도자들은 제스처와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측면이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자연스럽게 신체 접촉을 나눈 장면은, 양국 정상 간 신뢰 관계와 소통 가능성을 외부에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즉, ‘허그’와 같은 장면은 단순한 친밀감 표현이 아니라 외교적 관계 수준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메시지이다.


그럼에도 국내 언론 보도 상당수는 이러한 신호의 의미를 해석하기보다 ‘와락’ ‘허그’ ‘친화력’ 등 자극적인 표현으로 1차원적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면서, 정작 전달돼야 할 외교적 메시지를 희석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허그 장면에 가려진 실제 의제 ‘안보·에너지·경제’


이번 정상회담에서 논의된 내용은 국내 보도 흐름과는 결이 다르다.


백악관과 일본 외무성 발표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는 안보 협력과 에너지 문제, 중동 정세 대응, 경제안보, 핵심 광물 공급망 등 전략적 의제가 폭넓게 논의되며 국제 안보를 주된 의제로 두고 회담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언론 보도와 달리, 이번 회담의 핵심은 단순한 친밀감 표현이 아니라 안보·에너지·경제를 축으로 한 전략적 협의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 방어와 관련해 일본의 역할 확대를 직접 요구했고, 다카이치 총리는 이란 핵 문제와 해협 봉쇄를 강하게 비판하며 외교적 지지 입장을 밝혔다.


이 과정에서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글로벌 에너지 수송 핵심 거점을 둘러싼 안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으며, 일본이 의존하는 에너지 공급 구조와도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외교 이벤트로 보기 어려운 회담이었다.


아울러 군사 지원과 관련된 논의까지 포함되면서 국제 안보 상황에 대해 촉각을 세워야 하는 대목에서, 보도의 초점이 장면 중심으로 이동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양국은 109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함께 에너지 인프라, 핵심 광물 공급망, 첨단 기술 협력 등 경제안보 분야에서도 광범위한 협력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된다.


결국 이번 회담은 국제 안보를 주된 주제로 둔 군사·에너지·경제가 결합된 복합 전략 회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국내 보도 상당수는 이러한 구조적 의제보다 ‘와락’ ‘허그’ ‘친화력’과 같은 장면 묘사에 초점을 맞추며, 외교의 본질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현지 언론의 보도 방향 역시 국내 언론과 확연히 달랐다.


아사히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매체들은 미일 정상회담에서 가장 민감한 국제 안보 문제가 거론된 만큼, 호르무즈 해협 대응과 안보 전략, 대미 요구에 대한 일본의 대응 방식 등 실질적인 외교 의제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일본이 미국의 군사적 요구를 명확히 수용하지 않으면서도 동맹 균열을 피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최악은 피했다” “잘 넘겼다”는 평가와 함께 향후 부담이 될 수 있는 ‘무거운 숙제’까지 동시에 짚었다.


이와 함께 일본 민영방송 테레비아사히는 이번 정상회담을 “終始和やか(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전하면서도, 곧바로 호르무즈 해협 대응과 에너지 안보 문제 등 실질적인 협상 내용으로 보도를 이어갔다.


또 회담 과정에서 나온 ‘진주만’ 발언과 같은 민감한 장면도 그대로 전달하며, 분위기뿐 아니라 갈등 요소까지 함께 보도했다.

 

교도통신도 이번 미일 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허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는 회담 초반 장면과 분위기를 전달하기 위한 맥락적 서술에 그쳤을 뿐, 국내 보도처럼 이를 외교 전략이나 난관 돌파의 상징으로 확대 해석하지는 않았다.


특히 교도통신 보도에서는 ‘허그’ 장면 이후 회담 분위기와 대화 흐름, 통역 여부, 발언 맥락 등 구체적인 외교 상황이 이어서 설명되며, 장면이 아닌 맥락 중심의 서술이 유지됐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다카이치 총리를 향해 “멋진 파트너”라고 평가한 발언 역시 국내 보도에서는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발언은 양국 정상 간 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정상 간 신뢰와 협력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국내 보도에서는 이를 ‘립서비스’ ‘스킨십 외교’ ‘압박 돌파’ 등의 표현과 함께 배치하며, 외교적 신뢰 형성을 단순한 이미지 전략이나 상황 모면으로 축소하는 서술이 이어졌다.


같은 발언을 두고도 한쪽은 관계의 신호로 해석했고, 다른 한쪽은 전술적 연출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보도 프레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같은 서술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실제 외교 관계의 성격보다 ‘연출된 장면’이라는 인식을 먼저 갖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복제 보도’ 확산으로 인한 프레임 생성 기사… 누구를 위한 보도인가 


이 같은 보도 양상은 단순한 표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프레임의 문제로 이어진다.


동일한 키워드를 헤드라인에 사용해 짧은 시간 내 반복되면서, 각 매체가 독립적으로 분석한 기사라기보다 하나의 서술 방식이 확산된 ‘복제 보도’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과적으로 독자는 외교의 맥락이 아닌 ‘이미지’를 먼저 접하게 된다.


안보와 경제, 외교 전략이라는 핵심 의제는 상대적으로 부각되지 않았고, 스킨십 장면만 남는 보도 구조가 형성됐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보도의 본질을 잃었다는 문제 제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같은 장면을 두고도 한쪽은 맥락 속에서 설명했고, 다른 한쪽은 장면 자체로 소비했다는 점에서 보도 방식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문제는 ‘허그’라는 장면 자체가 아니라, 그 장면이 담고 있는 외교적 의미와 맥락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 보도 방식에 있다.


외교는 제스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의 협상과 전략과 결과로 평가돼야 한다는 점에서 장면 중심의 보도는 외교의 본질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결국 이번 보도 논란은 특정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를 바라보는 언론의 시선과 보도 방식 전반에 대한 근본적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