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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재 특보, "자유총연맹을 통일의 선봉대로 키우겠다"

4계절 햇볕정책론으로 낡은 운동권 세력과 차별화


김경재 전 청와대 홍보특보가 자유총연맹 총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김 전 특보는 2월 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임무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통일운동의 선봉대’이어야 할 자유총연맹에 수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를 바로잡는데 헌신하기 위해 오늘 출마의 변을 여러분께 드리게 됐습니다"라고 선언했다.

김 전 특보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국민운동단체로서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자유수호’가 아니라 ‘사익수호’에 급급하여 회원들의 단합을 저해하고 조직의 사기를 극도로 떨어뜨리고, 외부적으로는 실효성 없는 회원확대정책과 실적에 급급하여 부풀리기 식 발표로 연맹의 대외적 신인도를 결정적으로 추락시키고 있는 점", " 사사건건 행정부와 대립하여, 그것도 비전과 현실인식이 부족하여 대립 각을 세워온 점" 등 세 가지를 개혁안으로 제시했다.




16년 간 미국 망명 생활, 낡은 운동권 세력과 다른 미국식 개방형 민주주의자

김경재 특보는 80년대 이래 10대 베스트셀러로 손꼽히는 ‘김형욱 회고록’의 저자로서 7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대선 도전 당시 캠프에 합류한 뒤, 미국으로 망명 16년 간 해외 민주화운동가로서의 경력을 쌓았다. 87년 6.29 선언 직후 귀국, 김대중 전 대통령의 두 번째 대선 도전을 도왔으나, 양김 단일화 당시 동교동에서 유일하게 김영삼 후보에 양보할 것을 주장하여, 당시 김옥두 전 의원과 멱살잡이를 하는 등 사실 상 동교동 가신들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이 때문에 88년 총선과 92년 총선에서 각각 강남, 종로라는 어려운 지역구에 출마, 낙선한 뒤, 96년 총선과 2000년 총선에서 순천에서 재선 의원을 지냈다.

김경재 전 의원은 정치권에서는 홍보 전문가로 92년 대선, 97년 대선과 2002년 대선 모두 홍보본부장을 맡으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해낸 1등 공신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파트너인 기획본부장은 현 야권의 친노계 수장인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로서, 최근 20년 간 야권의 선거는 김경재, 이해찬 콤비가 만들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안하무인 수준의 대정부 질의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해찬 의원이 유일하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인물도 김경재 특보이다.

2002년 대선 승리 일등 공신으로 승승장구하던 김경재 특보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전 장관 등이 주도한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부터 예상치 않은 시련을 겪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면서도 조순형 의원과 함께 열린우리당에 참여하지 않고 민주당에 남아,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탄핵을 주도했다. 특히 김경재 특보는 탄핵을 위해 상임위를 법사위로 옮기는데, 당시 탄핵의 총 책임자인 법사위원장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다. 이번 인사에서도, 대통령 보좌를 위해 김기춘 실장이 직접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재 특보는 탄핵 이전부터 점차 세가 기우는 민주당을 재건하기 위해 재선 지역구 순천을 양보하고 서울 강북을에 출마를 선언한다. 당시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대구 지역에 출마를 선언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이 때 함께 서울 출마를 선언하기로 되어있던 민주당의 호남중진들이 하나둘씩 다시 호남으로 내려가며 혼자 서울 강북에서 고투했으나 탄핵 역풍을 이기지 못하고 낙선한다.

김경재 전 의원 다른 탄핵 주역들과 달리 복귀가 늦은 이유는 그의 중도 노선 탓으로 분석된다. 일단 그는 추미애, 김영환 의원과 달리 탄핵에 사과하지 않았다. 김경재 전 의원은 공식적으로나 사석에서 모두 “노무현 대통령 탄핵은, 총선에 개입한 대통령에 대한 정당한 민주적 절차였다”는 신념을 바꾸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2008년 총선에서 박재승, 박경철 등 친노인사가 주도한 공천심사위원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기도 했다.

탄핵의 결정적인 이유인 민주당 분당 사건은 유시민 전 장관 등이 구태연한 민주당 호남 기득권 세력 타파를 위해 기획되었으나, 실제로 분당 이후 열린우리당, 그리고 지금의 민주당은 낡은386세대와 친노시민단체의 개입으로 급격히 좌클릭하기 시작했다. 김경재 전 의원은 이에 대해 “내가 만약 미국에서 16년 간 살지 않았다면, 지금쯤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나 하고 있었을 것”이라 회고하듯, 미국 생활 탓에 김경재 전 의원은 사고방식이나 정치적 입장이 기존의 민주화세력과는 다른 노선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2000년, 방북 뒤 김정일에 대한 부정적 견해 전해 DJ정권에서 용퇴한 김경재

김경재 특보는 미국의 경제력을 십분 이용할 수 있는 한미FTA 적극 찬성론자이다. 반면 명분없는 전쟁이라는 이라크전 파병은 반대했다. 김 전 의원은 정치인의 존재 이유는 힘없는 서민의 편에 서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식의 무상복지 시리즈에는 반대한다. 김 전 의원은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김경재 특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동교동 주류와 큰 차이를 보이는 점은 북한에 대한 입장이었다. 김 전 의원은 2000년 초 김 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현역 의원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으나, 귀국 후 보고에서 “아무리 좋은 이념이나 체제라 하더라도 국민을 굶주리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며,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신중히 접근하라”고 조언한 뒤, 사실 상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연은 끊기게 되었다. 김경재 전 의원이 물러나자 이를 수습한 인물이 바로 박지원 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이다. 김경재 전 의원이 용퇴한 뒤, 박지원 원내대표가 주도하여 대북송금을 단행, 현재의 왜곡된 남북관계의 첫단추가 채워진 것이다.

박지원 대표의 미국에서의 사업, 가족사, 정치행적 등등 속속 꿰고 있어

현재 이해찬과 함께 야권의 투톱을 이루는 박지원 원내대표는 김경재 전 의원과 깊은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미국 맨하튼에서 가발장수를 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에 줄을 대고 있던 박 원내대표를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소개한 이가 바로 김경재 전 의원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부터 구축한 방대한 정보 네트워크로 정부와 여당을 유린하는 박 원내대표가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도 김경재 전 의원이다. 김경재 전 의원은 박 원내대표의 미국에서의 사업, 가족사, 정치 행적,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관계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김경재 특보는 과거 “정치공작 수준의 박지원 원내대표의 입을 막지 않으면 민주당의 총선과 대선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이런 김경재 특보가 정통보수세력과도 연을 맺게 된 것은 2011년 순천재보선 때였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주도하여 순천 후보를 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에게 넘겨주자, 김경재 전 최고위원은 무소속 출마 “내 고향 순천에서 종북을 막겠다”며 출전했다.

김경재 전 위원은 무려 다섯 차례의 TV토론에서 김선동 의원에게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다그쳤으나 김선동 의원은 이에 대해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며 빠져나갔다. 오히려 한겨레신문과 오마이뉴스 등이 김경재 전 위원을 색깔론자라 몰아붙여 결국 순천은 종북세력의 핵심인 김선동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2011년 순천 재보선 때 종북 김선동과 싸우면서, 정통보수세력과도 인연 맺어

이 과정에서 당시 정통보수세력인 지만원 박사, 법철 스님, 서경석 목사, 정베드로 목사, 최인식 시민협 집행위원장,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와 국민행동 등의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김경재 전 최고위원을 지지하고 선거를 돕게 되었다. 특히 당시 호남에서 북한인권 사진전을 열던 정베드로 목사 등은 순천에 상주하여 선거를 도왔고 김경재 전 위원도 “북한 인권은 침묵해선 안 되고 공론화해서 풀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인연 덕에 보수세력 역시 김경재 전 위원에 대해서는 호의적이다.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김경재 전 위원 영입설이 나돌자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애국세력에선 호평이 대부분이었다. 애국세력의 대표 논객인 월간조선의 배진영 차장은 페이스북에 “김경재씨는 친노종북이나 DJ패당과는 격이 다른 사람”이라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와서 유명무실해진 자유총연맹을 김경재 특보가 실질적인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통일을 위한 선봉대로 개혁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국자유총연맹 회장출마 출사표

저는 오늘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발전을 설립목적으로 하는 한국자유총연맹을 사랑하는 회원과 국민 여러분께 제 16대 회장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중히 인사드립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개발로 촉발된 한반도의 긴장과 한/미/중 사드배치 검토에 따른 논란이 보여주듯이 동북아정세는 100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듯이 복합적이고 위기일발의 엄중한 비상시국입니다.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공인으로서 명분을 버리고, 국가적 비전을 방기한 채 사익을 위해 이합집산한다는 국민의 냉엄한 질책을 받고 있는 민의의 전당이 상징하듯이 공적 영역의 지도력 또한 대한민국의 위기를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지난 62년 동안 민간운동의 선봉에서 국민의병(國民義兵)을 자임했던 자유총연맹 회원 여러분에게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비록 회원의 말석에 서는 것이 행정적으로는 늦었지만 박근혜정부 3년 동안 303회의 생방송에 출연하여 회원동지 여러분의 드높은 의기와 지향점을 국민들께 직접 전달하는 국민통합과 관민소통을 담당하는 ‘홍보특보’의 소임을 누구보다도 충실하게 했음을 보고 드립니다.

이러한 저의 활동을 평가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새로운 역할을 요구해왔습니다. 새로운 임무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통일운동의 선봉대’이어야 할 자유총연맹에 수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를 바로잡는데 헌신하기 위해 오늘 출마의 변을 여러분께 드리게 됐습니다.

제가 판단한 자유총연맹은 크게 세 가지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급변하는 시대흐름에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오랜 역사와 전통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국민운동단체로서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둘째, 올바른 시대정보와 비전이 부족한 선장이 연맹을 내부적으로는 ‘자유수호’가 아니라 ‘사익수호’에 급급하여 회원들의 단합을 저해하고 조직의 사기를 극도로 떨어뜨리고, 외부적으로는 실효성 없는 회원확대정책과 실적에 급급하여 부풀리기 식 발표로 연맹의 대외적 신인도를 결정적으로 추락시키고 있습니다.

셋째, 모든 국민운동단체는 자율권을 가지되 정부와 협력 속에 정보를 공유하고, 역할을 기능적으로 분할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며 특히 아시아반공연맹이라는 국제적 네트워크 속에서 출발하여 안보와 국가정체성 수호의 선봉을 담당하는 자유총연맹은 정부와의 조율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사건건 행정부와 대립하여, 그것도 비전과 현실인식이 부족하여 대립 각을 세워왔으니 결과는 너무나 자명한 것이었습니다. 연맹을 실질적으로 기득권유지와 사익추구에 급급하여 사실상 원래의 창립정신에서 한참 벗어나 와해수준의 낭떠러지까지 몰고 온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존경하는 연맹동지 여러분.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공적 활동 전반을 통해 단 한 번도 합리적인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적이 없습니다.

때문에 저는 우선 연맹을 국민통합의 역동적인 조직으로 재 탄생시켜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통일선봉대(統一先鋒隊)로서 자랑스러운 위상과 기능을 확보할 비전과 수많은 ‘액션플랜’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전과 기획이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동지 여러분들 스스로가 역사에서 자랑스럽고 현실에서 정당한 보상과 예우를 받도록 할 것이며 개인적인 일로 조직에 누를 끼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깨끗하고 투명한 재정운영과 자기관리를 해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특히 지역회장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가겠습니다.

저의 비전과 공약은 선거규정이 허용하는 시점에서 상세하게 동지 여러분들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2월 1일


김경재 (전 청와대홍보특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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