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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에 드러난 30대 반란, 위험수위 넘었다

각 기관의 실무 책임자로서의 영향력도 무시 못해

선거날이 가까워지면서 아무래도 중도우파 진영에서 거의 유일하게 청년세대와 뉴미디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일을 하다보니, 선거 관계자들이나 타 언론사로부터 “특별한 변수가 있겠냐”라는 질문을 사적으로 많이 받게 되었다. 즉 주로 여당에 유리한 여론조사 결과 이외에 인터넷이나 트위터에서 청년층의 다른 움직임이 보이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때마다 “20대의 투표율이 올라갈 것은 분명하지만 큰 흐름을 바꿀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답을 하곤 했다. 예상은 그대로 빗나갔다.

미디어워치 차원에서 상시적으로 정치웹진 서프라이즈, 다음의 아고라, 트위터 등을 모니터해왔다. 또한 올해 들어 20대를 대상으로 투표 및 정치참여 운동을 하는 청년단체들의 활동도 사안마다 확인해왔다. 큰 변화의 흐름이 없다고 판단했던 이유는 이미 다음의 아고라 같은 경우는 정치세력화되어 정당 홈페이지 정도의 기능 이상을 할 수는 없고, 트위터는 매체의 특성 상 치밀한 논리를 전파할 수 없기 때문에, 어차피 표심들은 다 결정이 되었고, 기존의 여론조사에 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 반영이 되었을 거라 판단한 것이다. 또한 그간 관심을 가져왔던 20대 조직들의 경우도 청년세대의 특성 상 일반 대중에 영향력을 발휘할 정도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20대의 움직임은 조직과 각종 자료로 쉽게 파악 가능

그러나 선거 당일 웹진 서프라이즈와 다음 아고라, 트위터는 폭발 수준이었다. 이들 매체를 통해 청년세대는 말로만 투표 독려를 하는 수준을 넘어 자발적으로 향응접대(?)까지 하면서 자신의 친구들을 투표소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결국 기존의 여론조사 뿐 아니라 뉴시스와 YTN의 예측조사와도 전혀 다른 선거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선거 다음날 주로 20대에 관한 논의를 하게 되었다. 서울시장의 경우 선거 당일날까지 조사한 예측조사의 11%의 표차가 0.6%라는 초박빙으로 줄 수 있을 정도로 20대들이 표심에 영향력을 행사했냐는 것이다.

20대의 경우는 88만원세대론과 G세대론의 덕택으로 의식조사나 행동양식 등의 분석 자료들이 나와있다. 또한 언론에서도 상시적으로 20대 관련 보도를 하기 때문에 충분히 흐름을 확인할 수 있다. 과학적인 분석은 될 수 없겠지만, 20대들이 이 정도의 큰 흐름을 형성할 정도의 논리적 완성도, 조직력 등을 보여주지는 못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30대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30대는 20대 시절인 92년도부터 96년도까지 지금의 88만원세대와 G세대론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광풍적인 신세대론에 휘말려왔다. 386세대와 산업화 세대와는 아예 인종적으로 달라서 상상력과 창의력, 개성을 갖춘 이른바 일본식 신인류라 칭송받아왔다. 그 상징적인 인물은 바로 서태지였다.

그러나 이들 신세대들이 서서히 30대로 접어든 2000년대 이후, 30대는 공적 담론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에 필자는 2006년 11월 28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90년대 신세대 다 어디로 갔나’라는 칼럼을 기고하여 “정계, 학계, 경제계, 언론계, 문화계 등을 통틀어 386 세대 밑의 신세대 그룹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90년대 초반 그토록 개성과 창의력이 넘쳐난다는 신세대들이 정작 한창 활동을 할 30대에 이르렀는데도, 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라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30대가 공적 담론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리더가 없기 때문이다. 리더가 없으니 당연히 조직이 없고, 조직이 없으니 세대의 움직임이 미디어를 통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특히 88만원세대와 G세대론 등의 20대 담론이 나온 이후에는 30대를 20대로부터 완전히 분리해내려는 작업들마저 시작되었다. 88만원세대론자들은 20대를 더욱 비참하게 묘사해야 하므로 30대는 386세대와 더 가까운 기득권 세대로 분류할 수밖에 없고, G세대론자들은 “G세대와 똑같이 글로벌, 뉴미디어, 대중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춘 30대가 왜 변변한 리더 하나 없이 바닥에 있느냐”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배제시킬 수밖에 없었다.

리더와 깃발도 없이 64%의 표몰이 성공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

일반적으로 선거에서는 세대를 상징하는 리더와 조직이 나오면서 그 힘을 바탕으로 여론과 표심이 형성된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당선을 이끌어냈던 386세대는 수많은 정치, 경제, 사회 조직을 활용했다. 이들 조직의 리더들이 매체를 활용하여 공적 담론을 형성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여론형성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지자체 선거의 30대의 반란이 언론은커녕 여론조사에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이들 세대의 리더와 조직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직과 리더없이 한 세대의 정치적 의사를 35%의 표차로 단일하게 형성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오바마 세대의 선거혁명만 해도 실리콘밸리의 기업가 조직과 정당의 청년조직들이 깃발을 들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페이스북의 창업자인 마크주커버그와 크리스휴즈 같은 20대 스타가 등장하여 “우리가 왜 오바마를 선택했는지” 오바마 세대를 대표하여 설명할 수 있는 스피커 역할을 하게 된다.

사실 상 이번 지자체 선거의 결과를 결정해버린 30대 중에서 자신의 세대를 대표하여 왜 64%의 30대들이 야당을 선택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인물이 있는가? 만약 있었다면 이미 선거날 이전부터 언론에 나타났을 것이다. 30대의 반란이 이슈가 되면 언론사에서 급조해서 만들어낼 지는 모르겠다.

30대는 20대 시절 신세대 신드롬이라는 거대한 사기극을 공통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좀처럼 언론이 만들어내는 신드롬에 휘둘리지 않는 냉소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친노좌파 언론의 대대적인 선동만을 원인으로 지목할 수도 없고, 깃발 없이도 물밑에서 이번의 선거 반란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즉 이번 선거의 30대의 투표행위를 북풍, 노풍 등의 하나의 바람에 의한 현상으로 볼 수 없고, 30대 전반에 냉소와 불안의식이 겹치면서 단단한 표심으로 굳어졌다고 봐야하는 것이다.

세대를 대표하는 조직과 리더 없어, 소통 채널 개설도 쉽지 않아

체제의 안정을 원하는 세력이라면 20대의 경우 손쉽게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20대의 조직 리더들을 정부 각 산하기관의 관련 위원회에 참여시켜, 이들을 통해 20대와 소통하여, 설득할 것은 설득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면 된다. 그러나 30대의 경우는 세대와의 소통 채널 자체를 개설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누구 하나 30대를 대표한다며 깃발을 들고 나오더라도, 워낙 냉소주의가 팽배하여 세대 자체에서 부정되기 때문이다. 또한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그럴 만한 인물조차 찾기 어렵다.

문제는 앞으로이다. 이번 30대의 투표는 지난 모든 선거를 통틀어 야당 지지의 최고조로 올라섰다. 그리고 선거에서 이겼다. 만약 30대들이 그간 정치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였다면, 이들 세력이 점차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세력이 커지는 것을 확인하지 못할 것은 물론이다.

실무 전담자의 지위를 활용할 때는 사실 상 속수무책

더 심각한 것은 30대는 각 기관에서 실무를 전담하고 있는 세대라는 점이다. 언론사의 경우 20대는 수습 기간이고 40대는 데스크로 올라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사는 30대가 맡게 된다. 필자는 이미 각 언론사에서 유시민에 대한 긍정적 기사가 쏟아져나오는 이유는 데스크의 지시가 아니라 30대 기자들의 자체 판단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언론사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포털뉴스의 실무자들도 대부분 30대들이다. 즉 30대는 조직을 만들지도, 깃발을 들지도 않지만, 실무 책임자라는 자신의 지위를 활용해 얼마든지 자신들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 세대의 64%가 한쪽 정치성향으로 쏠려있다면, 언론사는 물론, 각 기업, 기관, 심지어 한나라당까지도 30대 실무 담당자들이 한 쪽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특히 실무 책임자로서 상관인 40대와 신입에 가까운 20대에 직접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측정 불가이다.

더구나 30대는 빠르면 5년, 최소한 10년 안에 각 기관의 의사결권자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지금의 30대의 여론 흐름이 지속된다면, 5년 뒤, 10년 뒤의 대한민국의 미래는 불을 보듯 뻔한것이다.

지금껏 중도우파 진영은 눈에 훤히 보이는 20대들의 반란에만 주목해왔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눈에 보이지 않는 30대 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슈화시켜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다루냐고? 그래서 어려운 일이고, 어려워도 해야하는 일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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