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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지식인들은 낡은 구태를 벗어라

진중권의 감성적 선동의 글을 우려한다

진중권 교수는 그간 사회에 예지가 넘치는 글들을 수년간 제공해 왔기에 필자 또한 그 혜택을 입은 바 있어 내심 고맙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인터넷 기반 사회가 되었고 이번 미네르바 사건에서 보았듯이 지식이라는 힘을 가진 사람이 인터넷이라는 파급효과가 큰 도구와 연결되어, 짧은 시간에 거대한 증폭효과를 내는 도구와 결합했을 때 그 힘의 파괴력은 훨씬 거대해 진다는 점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은, 미네르바의 경우를 통해 볼 수 있었다. 힘을 가진 모든 이가, 특히 직접적으로, 지식을 가진 누구나가 명료히 인식해야 하는 점이다. 이는 미네르바가 구속당한 처지가 안타깝고 억울하게 느낀다 해서 그러한 윤리적 의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진교수의 아고라에서 26일과 28, 양일 찬성수 1위에 어떤 반대 답글도 달리지 않은 글은, 그러한 기준으로 보았을 때 문제가 없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나 28일의 경우 찬성수 대비 반대 투표수가 100분의 1(반대21/찬성2300여)도 되지 않는 보기 드문 순도 높은 찬성을 받은 글이기에 더 그렇다.

먼저 진교수는 백분토론에서도 이미 인정한 바 있는데,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은 맞다는 점이다. 곧, 공문을 발송했다는 거짓말을 한 점은 진교수도 인정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면 이러한 거짓말은 왜 했을까? 선의로 한 것인가? 그리고 그 거짓말로 인해 비롯된 피해는 큰가? 이 두 가지가 미네르바의 태도를 법정까지 가게 만드는 핵심 문제다. 지난 변희재 대표와의 야후 토론 때도 지적되었듯, 미네르바는 분명 대중을 속일 목적이 있음은 분명해 보였다.

예를 들어 누군가로부터 알게 된 정부기관으로부터 외환 매입 자제 요청을 그는 공문이 내려온 것으로 잘못 이해했을 수도 있고 혹 제3의 전달자가 미네르바에게 그렇게 잘못 전달했을 수도 있다. 만약 이로 인한 실수였으면 나쁜 의도가 있다고 하기엔 더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러나 당시 토론 때도 진교수가 부정하지 못한 것은 공문의 형태를 직접 만들어서 마치 이를 직접 본 것처럼 형식을 만들어서 대중에게 전파했다는 점이다. 이는 자신들을 경제 대통령, 경제의 선지자로 여기는 수많은 대중들을 자신의 힘으로 우롱하여 조종할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목적으로 였을까? 미네르바가 외환투자 재테크나 기타 펀드, 주식 테크를 하는 사람이라서 허위 사실을 통해 사람을 조종하여 자신이 직접 이득을 취하려는 것은 아닌 듯하다. 그의 명의로 된 주식이나 펀드, 외환 거래 명세가 없는 점으로 봐서 그러하다. 그러면 누군가 제3의 인물이 와서 미네르바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한 후 그 댓가를 보상해 주겠다는 제의에 의한 것인가? 이는 아마 더 수사가 진척되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한다. 만약 이마저도 아니고 아무런 금전적 이익이 없는데 그리하였다고 한다면, 이는 순수히 힘있는 자가 자신에게 의지하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처지의 약자에 대해 자신의 힘을 행사해 봄으로써 느끼는 만족감, 곧 남을 콘트롤함으로써 자신의 힘을 느끼는 그런 쾌감을 도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분명 지식을 가진 자로써, 힘을 가진 자로써 당연히 따르게 되는 윤리적 책임을 위배한 것임은 진교수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윤리적 문제가 구속까지 되어야 하는 수준인가? 하는 점인데, 이는 필자도 이전 글에서 밝혔듯 구속은 과하지 않았나 한다. 그러나 검찰에 불려가서 조사 받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인터넷이라는 우리가 콘트롤할 수 없는 신속한 파급효과를 갖는 도구라는 점을 생각했을 때 그에 마땅한 더한 윤리를 가져야 함은 자연스럽고 그러하기에 그러한 윤리를 하지 못했을 때 사회 윤리 유지에 책임있는 기관으로써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그런 문제로 몇 번 검찰에 왔다갔다만 해도 아마 그런 자신을 믿는 사람을 속이고 슬쩍 장난치는 저열한 태도는 버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말이다.

진교수가 특히 문제를 삼는 부분은 미네르바가 공익을 해한 점이 없다 혹 매우 미약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보자.

주식이 거래되는 매매소의 예를 들어, 만약 자신이 주식을 사고파는 사람들에게 공신력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그러한 힘을 가지고, 주식거래소라는 기관 자체가 자신의 눈에 차지 않는다고 하여, 자신에게 신뢰를 가진 고객군에 대고 큰소리로 큰일 났다고 거짓말을 하는 행위를 한다면, 이는 장난이라 하더라도 그 책임은 크다 할 것이다. 특히 이를 통해서 주식거래소 기관의 업무에 해를 끼치고 그 매매 또한 얼어붙게 만들고 다른 한 측에선 건강하지 못한 매수를 나타나게 한다면 이것이 거짓임이 명백한 경우 법에 의한 처벌을 받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겠다.

혹은 자신이 정부 기관이 하는 행태가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의 머리 속에 나쁜 생각만 자꾸 키우게 한다고 자신의 힘을 동원해 사람들을 동원하여 거짓 구호를 외치며 큰 소리로 업무 방해를 놓는다면 이에 대해 공권력을 투입시키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겠다. 그러하기에 검찰 출두 명령은 이해될 만한 조치였다.

특히나 그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 중엔 그간 그닥 신뢰할 만하다고 느끼지 않고 신통치 않게 여겨온 외국인 고객들도 있는데 그들이 들을 수 있도록 대놓고 거짓된 사실을 자신의 거짓된 신분을 빙자하여 구호를 외침으로 상처를 주는 행위를 한다면 이는 분명 나쁜 의도가 있는 것이다.

법에는 반드시 구체적 금액으로 나타낼 수 없더라도 구체적으로 피해를 본 사실이 있다고 인정될 때는 법적 제재와 처벌을 받게 된다. 모욕죄 등이 그러하고 정신적 피해 배상이 그러하다.

그리고 지역에 아무리 명망있는 종교인이라 하더라도 몇날 몇시에 하늘로부터 심판의 날이 임하니 일단 가족이고 경제활동이고 다 차치하고 기도하러 나오라고 거짓말을 하여 지역사회의 질서를 교란시켰다면 검찰에서 조사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하겠다.
그 교란을 통해 일어난 사회적 비용과 경제적 비용이 아무리 작더라도 쓸데없는 소모를 일으키고 질서를 교란시켰으므로 분명 그 의도를 집중적으로 파헤쳐 볼 필요는 있는 것이다. 만약 이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한 바가 있다면 분명한 처벌 대상이다.

물론 진교수의 주장인 구속이 지나치다는 점에는 동의하나, 그러나 다음과 같은 진교수의 감정을 이용한 논리적 비약을 통해 사람들이 문제의 한면만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잘못됬다. 이는 미네르바의 문제가 지식을 가진 사람의 윤리문제라고 보았을 때 진교수 또한 미네르바 사건의 핵심을 감정에 의해 외면하고 자신도 같은 문제를 저지르는 덕 아닌가 한다.

다음과 같은 진교수의 주장을 보자

“하지만 떡.검찰의 조사 결과 미네르바는 자신의 글로 개인적 이득(利得)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미네르바가 아무 이유 없이 공익을 해하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반사회적asocial 성격의 사이코라고 가정하는 것인데, ”

반사회적 성격의 사이코가 아니더라도 반사회적 일을 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보통의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도 그러한 건강하지 못한 정신적 상태에서 간혹 빠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도 때로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이러한 경우에 대해 휴매니즘적인 관용을 가지는 것은 천번 동의하고 싶은 마음이나, 그 행위의 결과가 엄중할 때 해당하는 책임을 지게 된다. 곧 진교수의 말은 논리적 비약이며 다분히 감정에 호소하여 선동하는 식이다. 그리고 필자같이 미네르바가 심리적인 개인의 이득을 보았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멀쩡한 사람을 싸이코로 모는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진교수는 또 “공익을 해할 의도를 가진 사람이 280개의 글을 올리면서 그 중에서 달랑 두 개에만 허위를 담는다? 이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가정이지요. 280개 중에 두 개라면, 실수, 착오, 과장, 혹은 성급한 추측 등으로 추정하는 게 상식적일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진교수의 말대로 그것이 실수, 과장, 착오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의한 피해가 크다면 법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타당하다. 남자가 어느 여자에게 오랫동안 매우 잘해 주어서 결국 데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허락없이 수치심을 일으키는 부위에 손을 대면 성추행이 되는 것이다. 데이트 강간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수치를 유발하는 부위를 만졌다하더라도 그 남자는 분명 악의에서 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많은 10대 청소년들이 붐비는 대중교통에서 여성의 몸에 손을 대는 것이 비록 악의에서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법적인 제재를 받을 수 있듯 말이다. 데이트 강간을 한 남성이나 버스에서 여자 몸에 손을 댄 청소년 모두 그렇게 하면 상대도 좋아할 줄 알았다고 흔히 여기듯 말이다.

곧 논리적 비약이지만 위와 같은 미네르바의 태도는 전혀 문제가 없어서, 구속이 아니더라도 미네르바를 문제 삼는 것은 마치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사회 전반 윤리라는 가장 중요한 측면에서 문제가 생긴다. 이렇게 비상식적인 것으로 몰아가도 되는 것은 그야말로 자신이 열받는다고 그 강렬한 감정에 휘말려 그에 의해 세상을 바라보고 또 행동하는데도 면죄부를 주게되는 마치 군중들의 철지난 급속한 혁명 물결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러한 낡은 회교 윤리자를 연상케 하는 정신은 “선의로 278개의 글을 올리던 사람이 갑자기 악의를 갖게 된 동기 혹은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라며 말도 안되는 것으로 몰아붙이지만 동네 여자 꼬마에게 수년간 잘해주다 집에 데리고 가서도 잘해주다, 갑자기 일어난 욕정에 의해 자신의 모든 정신적 콘트롤 능력을 이용하고, 회유 압박 등을 통해 성추행을 하면 죄가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네르바가 당시에 자신이 가진 권력, 곧 대중으로 부터의 신뢰를 자신의 삿된 욕심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사용 곧 남용했느냐 아니냐가 문제의 핵심인 것이다.

동시에 필자가 최초에 기획시리즈로 쓴 여성스포츠인에 대한 인권보고에서도 언급했지만 코치들이 여자 선수들을 교육적(?) 차원에서 매질을 하지만 그러다 보면 안타까운 마음에 안게 되고 그러다 보면 갑자기 자연히 성폭력을 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아무리 미네르바가 그동안 선의를 가지고 글을 많이 썼다고 하더라도 권력남용이 가능한 기회가 왔을 때 자신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이를 이용했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을 무는 것은 자연스럽다.

물론 필자도 줄곧 밝혔듯 구속은 지나치다라고 본다. 그러나 미네르바가 중대한 윤리적 잘못을 저지른 것은 맞다. 그리고 진교수도 지적했듯 피해액을 계측하기 어려운 것 또한 맞다. 그래서 진교수가 지적했듯 구속이 어려운 것은 맞더라도 동시에 죄가 없다라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미네르바의 구속이 억울하다해서 감정에 휘말려서 마땅히 보아야할 이 윤리적 문제를 염두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항시 경계해야 할 점이다. 특히 군중심리의 파괴성, 공격성을 알기에 그러하다. 이를 더 촉발시키기 쉬운, 영향력이 더 큰 진교수같은 지식인은 더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마치 미네르바가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것을 아무 근거 없는 선한 양이 희생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은, 정서적으로 비슷한 약자의 위치에 있는 군중개개인을 정서적으로 한 면만을 보게하여 선동해가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특히 가장 많은 시사에 관심있는 대중이 드나드는 아고라라는 곳에서 100대1의 순도 높은 찬성을 받았고 문제삼는 답글도 달리지 않았기에, 지적하지 않고 넘어가기 어려웠다.

그렇게 한 면만을 감정적으로 보게 되면 상대와 소통의 여지는 사라지고 서로 때려 부수려고 발악하는 제로섬식 싸움과 죽고 죽이는 당파싸움, 좌우가 서로 학살하는 싸움, 국회에서의 무력 충돌, 홍위병적 파괴와 인민재판이 그 결과여 왔다.

이 모두가 한국 사회와 친숙한 현상들 아닌가? 이제 이 어려운 시기에 난관을 딛고 이 문제들을 한 큐에 싹 해결해 나가 비로소 이 난관을 뛰어넘어 가게 될 수있기를 사회구성원 모두가 협력했으면 한다.
미학을 수련한 진교수의 높은 감성은 장점일 수도 있다. 뛰어난 감정상이 더 넓고 정교한 이성을 추동해내는 동력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파고들기까지 한다. 거의 매번 진교수의 말을 들을 때마다 감성적으로 자극되는 경우를 많이 느끼지만,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과도한 경우가 있어 때론 크고 작은 오류들이 눈에 띈다. 특히 진교수의 전반적인 스탠스에서 그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어찌보면 많은 한국의 지식인들에게도 보이는 바인데 이러한 관습을 가진 태도는 좋은 습관으로 대체되야 한다. 그렇게 좋은 태도와 이것이 습관화된 지식인이 아니고 감정적 언행과 태도가 습관된 지식인이라면 새로운 사회의 발전 동력에서는 교체되야 할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진교수의 장점은 장점대로 살리되 더 좋은 태도와 습관을 가져 새 시대에 맞는 결과물 제품들로 사회에 봉헌하길 기대한다. 인문학이 경제`경영보다 발전하지 못한 점이 바로 이렇게 나쁜 태도와 그 하자가 많은 상품들에 있지 않았나 한다.

스스로 그러나 자신의 강한 감정을 자신이 콘트롤하지 못하여 이를 삿된 방향으로 쓴다면, 혹 그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 것에 의해 사역된다면, 이에 대한 마땅한 윤리적 책임을 묻게 된다. 감정적 선동을 통해, 그 수많은 군중의 혁명 후에 그 결과를 관찰해보면 사실은 군중이 오히려 크게 당해온 쳇바퀴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 바로 권력자의, 혁명 주도자의, 감정적 선동에 의한 것이었다는 역사적 면면히 이어지는 사실을 자꾸 외면하면 그 책임을 묻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국 사회 전체가 이러한 점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그리고 국민 개개인까지 사회 전반적 정신 상태에서 아직 취약한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나 한다. 다가오는 새 시대에 그래서 사회전반이 다 책임이 물어지는 심판대에 오르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그런 면에서 검찰이 비상식적으로 이상하게 무리수를 두는 것은 현 정부에 원인이있다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선동해 가는 태도보다, 차라리 유시민 전장관이 밝힌 것처럼 현 정부가 못되길 바라지 않는 태도가 더 필요로 한 것이라 본다.

<사족> 그래서일까 진교수는 자의성이라는 한자표기를 自意性 이라고 표기했지만 “끔직하다”라고 묘사할 정도면 恣意性이되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언어생활을 결정하는한자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져 한국말을 해도 무슨 말인지 잘 소통이 되질 않는 경험을 많이 했고, 진교수같이 영향력있는 지식인이 쓴 거라 의심없이 받아들일까하는 염려에 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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