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채널’이라는 일본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다. 익명 게시판 중심이며, 한국으로 치면 포털사이트 토론방 집합체라 보면 된다. 주 사용자가 10~30대 젊은 층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하루 평균 포스트 게재 수 100만 건, 페이지뷰 2000만 회를 자랑하는 2채널이 ‘일본 청년문화의 산 표본’으로 여겨지게 된 건 의외가 아니다. 오프라인 상으로도 여러 사회 사건들을 일으키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쇼난 해변 청소’ 사건이다. 일본 후지TV가 진행하던 쇼난 해변 청소 이벤트 직전, 2채널 네티즌 수천 명이 먼저 청소를 해버린 사건이다. 이미 깨끗해진 해변에서 방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네티즌들의 주된 목적은 자연보호라기보다 거대 방송사를 한 번 ‘물’ 먹여 보려는 것이었다. 방송사에 딱히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했다.
이 사건을 두고 일본 미디어는 갖가지 분석을 제시했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경제 불황 증후군’ 주장이다. 2채널 네티즌들이 지금껏 벌인 갖가지 사회사건은 오래 전부터 관찰돼 온 경제 불황기 청년 정서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 권력․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반발, 공공성․공익성 집착, 국가주의․민족주의 맹신 등 모든 요소가 그러했다. 기성사회로 치고 들어갈 수 없는 젊은 세대의 사회적 무력감과 패배감이 원인으로 꼽혔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한국 젊은이들도 같은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매개로 집단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도 같다. 고도 IT사회에서 장기 경제 불황을 겪는 청년 정서란 많건 적건 닮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들을 다루는 방식은 일본과 한국이 크게 달랐다.
일본은 이들 존재가 부각된 뒤 일단 폄하부터 시작했다. ‘로스트 제네레이션’ 등 부정적 세대명칭을 만들어내며 공격했다. 그러나 곧 이 방향을 접었다. 어찌됐건 미래 주역이 되어야 할 세대라는 점을 인식했다. 폄하만 할 게 아니라 특징과 장점을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대중문화 흐름에 있어 선도적 위치임을 알아챘다. 각종 대중문화 상품들이 이 세대의 취향에 근거해 등장했고, IT분야에서도 마찬가지 기류가 흘렀다. 이들의 미묘한 요구에 부응한 닌텐도社가 마침내 절대부동의 소니社를 앞질렀다. 2채널 게시판 일화를 소설․영화․TV드라마․만화․연극 등으로 미디어믹스 시킨 ‘전차남’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자 ‘2채널 문화’는 일반사회로 퍼져나갔다. 이들의 성지인 전자상가 거리 아키하바라는 칙칙한 오타쿠 이미지를 벗어나 국제적 유행의 중심이 됐다. 분위기가 반전되자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하던 ‘버려진 세대’들도 용기를 얻어 하나둘씩 자기 방향을 찾아갔다. 게임업계, 애니메이션업계, 아이돌상품 기획사 등에서 활약, 미래 일본의 주역이 될 채비를 조금씩 갖춰가고 있다.
한국 역시 이 무기력한 청년 세대에 폄하부터 들어간 건 마찬가지다. 미디어가 발 벗고 나서 비참한 현실 묘사 등을 통해 이들의 사회적 자신감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이후에도 이들을 돌아볼 생각을 안 했다. 일단 ‘가장 불행하고, 가장 가난한 세대’로 만들어버린 뒤, 이들의 응축된 분노와 좌절감을 특정집단 목적에 부응하는 방식으로 이용하려 들었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시들어가는 촛불집회에서 목 놓아 소리치고 있는 1만여 청년들이다.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사실 외치는 것처럼 정권 타도나 교체라 보기 힘들다. 그저 사회에서 한 사람 몫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 소박한 기대마저 산산이 무너지자, 이들을 선동한 386좌파세력마저도 당황해 할 정도로 무정부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386좌파세력에게는 이들의 장점을 찾아내 새로운 사회적 가능성을 쥐어줄 의도가 없다. 구시대적 이데올로기 발상과 신념을 계승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나아가 자신들의 이슈 선점권을 보전키 위해 필요할 때마다 각 세대들을 띄웠다 죽였다 하며 움직일 요량에 그친다. 시위가 끝나면 청년들은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회는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 갈 곳을 잃어 소모적 시위현장으로 몰려 든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사회적 에너지 낭비라는 측면도 있지만, 결국 이들이야말로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세대이기 때문이다. 기성사회가 이들을 적응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미래사회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고, 반드시 기성사회로 편입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님을 알려야 한다. 제도적 폭을 넓혀주고,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응원해줘야 한다. 괴테는 “청년들은 무슨 일을 하든 촉망받는 미래가 있다”고 했다. 그 ‘일’을, 자신들 목적에 따라 시키는 것이 아니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기성세대의 의무다. 광화문 거리의 수많은 촛불이 남긴 가장 중요한 과제다. / 이문원
* 조선일보 기고글을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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