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K 의혹 커질수록 노정권 실정 드러나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 사건에 드디어 노무현 대통령이 개입하였다. 법무부장관에 지휘권 발동을 요구하고, 특검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이다. 다만 지휘권 발동은 법무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은 이명박 후보의 동의 하에 심각한 충돌없이 통과되었다.
이에, 정동영, 문국현, 이인제, 이회창, 권영길 후보 등은 반부패 연대를 선언하며, 이명박 후보의 당선 저지를 위해 목소리를 모으는 형국이다. 이념과 노선 및 정책에 상관없이 일단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저지해야 한다는 데 합의한 것이다. 물론 실제로 후보단일화로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이다. 여전히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기록하며, 설사 후보단일화가 된다 해도, 승리 가능성이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그간 노무현 정권이 치적으로 내세웠던 것들이 점차 하나 둘 허구로 밝혀지고 있다. 이 문제를 지적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정국이 대선의 승패여부보다, 대선 이후의 혼전으로 흐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하지 않으면, 혼란을 수습할 수 없고, 오류를 바로잡을 수도 없다.
일단 이제는 친노인사들조차 인정하는 바, 수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개중 몇 가지는 사실로 드러나도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는 데에는 노무현 정권의 실정 탓이 크다. 그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않고 있다. 사기를 쳐서 돈 좀 벌어모은 후보라 해도, 민생과 관계도 없는 이념적 이슈만 고집하는 세력에게 더 이상 재집권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민심의 견고한 흐름이 있다. 이명박 후보 개인의 지지율만 높은 게 아니라 한나라당의 정당 지지율 자체가 높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이러한 엽기적 상황을 초래한 노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이에 대해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럼 단지 노대통령의 잘못은 이 뿐일까?
노정권 내내 독립되었던 검찰이 갑자기 어용이 되었다니
아니다. 훨씬 더 중요한 실책이 BBk 논란 속에 숨어 있다. 일단 여러차례 지적했듯이, 노무현 정권이 그토록 자랑하던 검찰 독립을 그들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이제는 노대통령 스스로도 검찰의 수사를 부정하고 있다. 대체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4년 반 동안 공정하고 독립되어있던 검찰이 갑자기 다들 어용검찰로 변신했다는 말인가.
진보개혁진영은 이미 김대중 정권 시절까지 합쳐 10년 간 검찰을 통치했다. 이들은 10년 동안 검찰 개혁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아직까지 친노인사들은 “노대통령이 검찰을 국민 품으로 돌려놓으니, 검찰이 권력의 품으로 돌아갔다”라는 자기 변명을 하고 있다. 궤변이다.
검찰은 국가 시스템 속에 존재하는 공조직이다. 어떤 때는 독립되어있다가, 어떤 때는 어용이 된다는 건 검찰이 개혁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냥 예전하고 똑같은데, 정권에 힘이 있을 때는 정권편에 섰다, 정권이 바뀔 때쯤 차기 정권에 줄서는 행태를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럼 최소한 노무현 정권에서 책임있는 인사라면, 검찰 개혁이 허구였다는 점을 스스로 고백하고, 국민들에 사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노무현 정권 초기 시절 대선자금 수사로 정국을 얼마나 뒤흔들었던가. 그때도 현실 권력인 노정권에 검찰이 유리한 수사를 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지금의 검찰 비판에서 진정성을 확보할 수 없다. 실제로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에서 검찰 개혁을 위한 시스템을 개혁한 바는 전혀 없다. 무소불위의 검찰의 기소독점도 해소하지 못했고,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들이 권력과 독립되어 움직이지도 않았다.
특검제 하나 신뢰 확보하지 못한 10년 개혁 정권
둘째는 특검의 무용론이다. 검찰이 권력에 종속되어있어도, 김대중 정권 시절 도입한 특검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이명박 후보의 당선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빌 클린턴의 사생활까지 다 밝혀내는 미국의 특검 정도가 된다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일개 네티즌들도 이미 이명박 후보를 피의자 취급하는 판에, 특검이 제대로만 되면, 이후보가 당선 뒤라도 어떻게 버텨내겠는가.
그러나 특검을 추진하는 측에서조차 특검이 이명박 후보의 혐의를 정확히 조사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회의적이다. 특히 이번 특검이 이례적으로 대법원장 추천에 노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식을 택했어도 그렇다. 오히려 한나라당이 특검을 받아들이겠다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 10년 간 정권을 잡았으면서 특검제 하나 정착 못 시켰단 말인가. 현직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특검제를 못 믿겠다면, 대체 뭘 믿을 수 있단 말인가.
지난 2003년 노대통령 측근 비리 관련 특검 당시, 한 특검보는 검찰의 수사방해를 질타하며 전격 사임했다. 이때의 특검은 가장 중요한 계좌추적조차 하지 않고, 노대통령 측에 면죄부를 주며 끝났다. 심지어 노정권 당시 대북송금 관련 특별검사 송두환을 훗날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앉히는 코드인사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특별검사까지 어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렇듯 특검조차 권력에 종속되어있다는 점을 진보진영 인사들조차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명박 후보가 당선이 되면, 특검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특검에 자신이 없다면, 그간의 특검의 부실에 대해서도 철저히 반성을 할 필요가 있다.
여전히 막강한 권력 대통령
마지막으로, 친노인사들이 입버릇처럼 자랑하던 대통령의 권위주의를 버렸다는 지적이다. 대통령도 헌법 상의 공기관이다. 대통령의 권위주의를 버렸다는 뜻은, 노대통령 혼자 마음 속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제와 비교하여 훨씬 더 막강한 권력을 지닌 한국의 대통령의 제도적 권력 자체를 개혁해냈어야 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역시 이를 전혀 무시했다. 그냥 혼자서 “나는 국정원의 보고를 받지 않는다”, “나는 검찰을 이용하지 않았다”며 동네 반창회장 운영방식만을 자랑했을 뿐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대통령의 권력을 적절히 이용하며, 온갖 공기관에 자신들의 측근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그리고 이들을 선거 때만 되면 차출하고, 낙선하면 또다시 공기관으로 보내는 일을 반복했다. 영락없는 대통령 권력의 남용이다. 이러한 대통령 자리 자체의 위력이 유력 대선 후보 이명박에 벌써부터 힘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들 말대로, 이미 포털, 방송, 검찰 등이 이명박 후보에 줄서고 있다면, 이는 이명박 후보가 잘나서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진 민주진영의 정권에서조차,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에 대해 아무런 개혁도 하지 않았다는 점을 줄서는 사람들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하에서 한직으로 밀려난 설움을 이명박으로 풀어보겠다는 뜻이다. 대통령 권력 자체를 개혁한다는 점은 바로 이렇게 유력 대선후보에 줄을 설 필요가 없도록 제도를 바꾸겠다는 뜻이다.
차기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에 검찰도 믿지 못하고, 현직 대통령이 직접 임명할 특검도 믿지 못한다면, 대체 민주개혁 정권이 그간 해놓은 국가운영에 대한 개혁의 업적이 대체 뭐란 말인가.
특검 실패하면 모두 몰살당할 셈인가
그러니까, 그냥 입을 다물자는 게 아니다. 온갖 의혹에도 여전히 이명박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모든 개혁을 다 이루어낸 것처럼 떠들다가, 정권 말기 되니까, 자신들이 통치한 기관과 제도 모두를 부정하는 개혁세력의 이중성에 대한 역겨움을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심리가 지지율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그러니, 일단 그간의 개혁방법도 틀렸고, 개혁의 대상도 틀렸다는 점을 솔직해 국민 앞에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라. 그 다음에 그나마 과거 군사정권보다는 나아졌다는 점이 있다면,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집중적으로 감시하라.
아직 범죄 혐의도 입증되지 않은 유력 후보에게 마구잡이로 사퇴를 요구하지 말고, 각자 최선을 다해서 유권자의 지지를 받은 뒤, 특검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여론을 모아가는 방식이 옳다. 그리고 막강한 대통령 권력 앞에서 검찰 수사는 물론 특검의 한계도 인정하며 반성하라.
그래야 특검도 제대로 진행되고, 설사 원치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할 말이 있는 것이다. / 변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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