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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은 김대중의 노예임을 선언했다

국정파탄 세력 심판의 깃발마저 내던져


선거를 불과 4일 앞두고 벌어진 세계경제 대국 13위를 자랑하는 대한민국 국회의 자화상이었다. 헌정사상 처음 있는 낯 뜨거운 추태였다. 이런 와중에 2000년 10월 17일 광운대학교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특강을 한 이명박 후보의 육성이 담긴 동영상이 16일 공개되었다.

이명박 후보는 이 강연에서 “제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인터넷 금융회사를 창립했습니다.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하고 이제 그 투자자문회사가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사이버 증권회사를 설립하기로 했습니다. 며칠 전에 그 예비허가가 나왔습니다. BBK 투자자문회사는 금년에 시작했지만, 이미 9월말로 28.8%의 이익이 났습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신당은 웬 떡이냐며 ① 이명박 후보 사퇴 ② 한나라당의 진상공개와 사과 ③ 특검에 의한 재수사를 촉구하는 결의안이라는 것을 잽싸게 채택했다. 한나라당은 동영상에 대해 “BBK 소유문제는 검찰에서 이미 다 조사해서 밝혀진 내용”이라면서 “신당이 공갈범과 손잡고 마지막으로 대선 정국을 어지럽히려 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또 “그 당시 김경준을 치켜세우는 과정에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면서 “내가 창립했다”는 이명박 후보의 말은 이 후보가 잘 못 말한 것이라고 애써 변명하기도 했다.

신기록 풍성한 17대 국회와 17대 대선, 원인제공자에게 국민은 난감해 해

이 동영상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져 대선정국을 극적인 상황으로까지 몰아갔다. 검찰의 BBK 수사결과에 입조차 벙긋하지 않던 盧무현 대통령은 16일 “검찰이 열심히 수사했지만, 국민적 의혹해소와 검찰의 신뢰회복을 위해” BBK사건에 대한 재수사지휘를 검토하라고 정성진 법무장관에게 지시했다.

그리고 17일 국회는 한나라당이 불참한 가운데 재적의원 298명 중 대통합민주신당, 민노당, 민주당, 국중당 의원 등 160명이 표결에 참가하여 160대 0으로 ‘이명박 특검법’을 통과시킴으로써 盧 대통령의 ‘특검법’ 수용여부에 따라 대통령 당선자가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이 또한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래저래 17대 국회와 17대 대선은 ‘부끄러운 신기록’을 풍성하게 세운 챔피언으로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결정된 이 순간에도 국민들은 풍성한 신기록을 세울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준 장본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할지 부끄럽다고 해야 할지 난감해 하고 있다.

호남인들, 지역감정 해소의 절호의 기회 놓쳐

BBK 때문에 아수라장이 돼 버린 17대 대통령 선거는 영호남의 지역주의를 일시에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난립한 정당과 후보들이 상호 이익을 좇아 합종연횡(合縱連衡)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신당과 민주당은 한 뿌리에서 난 형제이기에 거대한 적 한나라당과 맞서기 위해서는 쉽게 합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형제간이라도 갈등의 골이 워낙 깊은데다 신당의 배신과 오만 때문에 통합이 무산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때 마침 한나라당도, 무소속 이회창 측도 민주당에 손을 내밀었었기에 더욱 좋은 기회였다.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영남정권 30여 년 동안 호남인의 가슴에 ‘호남 푸대접’이라는 억울한 대못을 박았기 때문에 확산되고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의당 결자해지(結者解之)가 합리적일 터이다. 그러나 강한 자의 속성은 오만이 아니던가.

기실 한나라당은 민주당에게 손을 내미는 시늉만 했지 진정성이 없었다. 대권을 다 잡았다고 으스대는 그들에게서 카이사르나 링컨의 관용을 찾겠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보다 어리석은 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강자가 한껏 오만해져 있을 때 지역주의와 남남갈등 해소라는 대의명분을 내걸고 한신이 부랑배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갔던 ‘현자의 용기’를 거울삼아 한라당과 연횡하는 것은 참으로 용기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쾌거였을 터였다. 약소국가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진(蘇秦)의 합종책보다는 강국인 秦나라와 연횡하는 것이 이롭다는 장의(張儀)의 외교술이 오늘날 더 실용성을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현명하게 판단하여 한나라당과 정책적인 공조를 이루었다면, 30여 년 묵은 지역감정의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물러가고 밝은 아침이 영호남인들을 즐겁게 맞아주었을 것이다. 대의명분 뿐 아니라, 덤으로 공동정부 구성이라는 선물까지 받을 수 있기에 호남인들은 기꺼이 여기에 동참했을 것이라고 필자는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좋은 기회는 아마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에 못내 아쉬운 마음이다.

아직도 ‘DJ의 노예’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호남인들

필자는 ‘민주당, 한나라와 공조하여 영호남 지역감정 해소에 앞장서라’는 칼럼(12.11)에서 “호남인들은 지금까지 지역감정을 부추긴 세력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지내왔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 근거로 필자는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타난 득표율을 예로 들었다. 박정희 후보의 고향인 경북에서 박정희와 김대중의 득표율 비율은 76.42% 대 23.57%였다. 반면에 김대중 후보의 고향인 전남에서 김대중과 박정희의 득표율은 64.58% 대 35.41%였다. 이는 당시에는 영남인들이 호남인들보다 더 강한 지역감정을 갖고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2030 세대 등 직장을 구할 길 없거나 직장에서 쫓겨난 220만 여명의 실업자들과 중소기업가와 영세상인들의 한결 같은 소망인 ‘국가파탄 세력 심판’이라는 목소리가 호남인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아서 일까. 호남인들은 또다시 이번 대선에서도 자존심과 명예를 헌신짝 버리듯 다 팽개치고 5년 동안 국민을 밤낮으로 들볶았던 그 ‘망국 세력’에게 몰표를 안겨주었다. 가히 ‘DJ의 노예’임을 과시한 행위였다고 아니할 수 없다.

광주는 정동영에게 79.75%라는 표를 던졌는데, 이명박에게는 8.69% 이회창에게는 3.40%라는 표를 주었다. 전북에서 정동영은 81.60%를, 이명박은 9.04%를, 이회창은 3.63%를 얻었다. 전남은 정동영에게 78.65%, 이명박에게 9.22%, 이회창에게 3.61%의 지지를 보냈다.

민주당은 호남인들을 기반으로 한 정당이다. 그 전통이 자그마치 50년이나 된다. 민주당은 DJ가 협박 반 회유 반으로 끈질기게 요구한 신당과의 합작을 끝내 거부했다. 그리고 민주당을 배신하고 열린당을 만든 ‘국정파탄 세력’을 심판하겠다는 정의로운 기치를 들었다.

그런 정당의 후보 이인제에게 광주가 1.07%, 전북이 0.68%, 전남이 2.39%라는 꿈에도 잊지 못할 선심(?)을 베풀었다. ‘DJ 명령 불복종’에 대한 심판인가, 응징인가, 아니면 보복인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남인들이 DJ의 노예에서 벗어날 ‘그 때’가 몹시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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