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춘 전 대사는 말했다. 신념보다 진실이 중요하다고. 이명박 지지자들은 이야기한다. 진실보다는 신념이 우선이라고. 이명박 당선자에게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들한테 BBK 사건의 진실은 아무 필요가 없다. 이명박 지지층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이명박은 노무현과 다르다는 신념이다.
진실은 신념을 이기지 못한다. 이게 진실이다. 진실이 신념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물론 있기는 하다. 그들에게 진실에 대한 신념의 우위를 납득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아니한다. 진실이 신념을 이긴다는 주장 역시 하나의 신념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자신이 BBK를 창업했다고 밝히는 내용이 포함된 광운대 특강 동영상이 공개되었다. 드디어, 혹은 또다시 ‘한 방’이 터진 셈이다. 외견상으로는 이당선자가 휘청거리는 모양새다. 결사저지를 공언해왔던 BBK 특검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으로 갑자기 선회했으므로.
그러나 전격적인 특검법 수용은 특검을 해도 꿀릴 게 없다는 뜻이다. 정말이다. 이명박은 꿀릴 게 없다. 특별검사든 보통검사든 본질적 임무는 진실규명에 있다. 국민들의 신념을 바꾸는 데 있지 않다. 신념을 깨뜨리는 건 오직 신념뿐이다. 정치는 진실과 신념의 싸움터가 아니다. 신념과 신념의 대결장이다.
이명박 지지자들은 이명박이 가령 인신매매를 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폭로되더라도 투표일에 그를 찍을 사람들이다. 국민원로가 누차 강조해오지 않았던가? 이명박은 부도덕한(Immoral) 후보가 아닌 무도덕한(Amoral) 후보자라고. 도덕률을 거스르는 삶이 아니라, 도덕성의 개념 자체에 아예 해당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온 정치인인 까닭에 그가 “하늘이 낸 후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이명박이 민생경제를 살릴 적임자일 것 같아서 지지한다고? 순전히 뻥이다. 이명박 지지자들조차 이명박의 대권획득을 께름칙해한다. 경제회생은 이러한 께름칙함을 씻어줄 안성맞춤의 핑계다. 대부분의 이명박 지지자들은 이명박을 노무현의 안티테제로 ‘믿는’ 까닭에 그를 지지한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이명박 진영은 이명박이 위기에 직면할 적마다 지지자들의 믿음을 굳혀주는 무대연출을 시도한다.
이명박 캠프가 구사하는 전략전술의 흐름을 탐지해야 할 경우 국민원로는 동아일보의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한다. 2007년 대선정국에서 동아일보가 제일 노골적으로 이명박 당선자를 편들고 있는 탓이다. “정권 연장 목적 靑개입 용납 못해” 동아일보 홈페이지 대문화면에 걸린 제목이다. 노무현 대 이명박으로 구도를 몰아가려는 저의가 확연히 엿보인다. 노무현과 이명박이 길항관계란 대중의 인식을 더욱 공고히 다지려는 포석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청와대가 검찰이 BBK 주가조작 사건을 재수사하도록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겠다는 의사를 왜 불쑥 내비쳤는지 참으로 의문이다.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해명할 수도 있겠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BBK의 실소유주임을 뒷받침하는 물증들은 그전에도 꾸준히, 그리고 무수히 출현한 터다.
더군다나 재수사 지휘권 발동을 실무적으로 총괄하는 법무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아직 뚜렷이 결정된 사항이 없단다(오늘 오전 법무부는 지휘권 발동을 하지 않기로 결정). 청와대의 느닷없는 수사지휘권 발동 검토 소식이 실체적 진실규명에 과연 도움이 될 지 불투명한 상황인 것이다. 청와대는 부산, 검찰은 태연, 한나라당은 발끈. 광운대 동영상에 대처하는 세 가지 자세에 여론의 관심과 언론의 조명이 쏠리면서 정작 동영상을 ‘특종’한 신당과 정동영측은 어느새 뒷줄로 슬그머니 밀려나고 말았다. 무대 위에서는 다시금 노명박, 즉 노무현과 이명박만 춤춘다. 이명박과 노무현이 적대관계라는 이명박 지지자들의 신념만 결과적으로 강화됐다.
이명박 당선자를 발원지로 삼은 기상천외의 위장 시리즈가 등장했다. 위장전입, 위장취업, 위장국밥집 등. 선거일이 코앞에 닥친 지금 나는 이명박 당선자가 위장 반노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는 반노로 분류되기에는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알게 모르게 너무나 많은 혜택을 받았다. 심지어 청와대가 검찰 지휘권 발동을 검토한 일마저 이명박에게는 남는 장사다. 재수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도 전에 선거 끝날 테니까. 한나라당 지지성향의 유권자들만 쓸데없이 결속시키고서는.
세상에 공짜점심은 없는 법이다. 이명박 당선자가 노무현 대통령을 위해 총대를 메야만 할 때가 언젠가는 반드시 오리라. 앞으로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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