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 여성계에서 박근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경쟁력 있는 정치인에 불과했던 그녀는 이제 누가 뭐래도 대선승리에 가장 근접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여성계에 한정됐던 논의가 전체 대한민국의 현실적 고민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국에서 대선을 앞둔 5개월은 조선왕조의 500년과 같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이런 사회에서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수구로 전락해 버린다.흔히 보수진영에서는 진보진영이 한국현대사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진보진영 내에서도 한국사회의 성취에 가장 인색한 것은 여성계 인사들이다. 경제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물질적 변화가 여성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을 법도 하지만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성지옥이고 야만의 땅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세대 간에 있어 또 다른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변화속도를 감안한다면 노인들과 젊은 세대 사이에는 수 백 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더욱이 일부 미래학자들 가운데는 한국을 미래에 가장 근접한 사회로 평가하
한국 도서시장에서 사회과학 서적이 부활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반기에 ‘정의란 무엇인가’가 시장을 평정한 이후 하반기에는 한국학자 장하준의 저서가 다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장하준은 분명 이 시대 한국 지식인들 가운데서 가장 돋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노벨경제학상 후보로 꼽히는 정통 학자라기보다는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영향력을 넓히는 공공적 지식인으로 평가받기도 한다.그러나 한국사회는 장하준을 마냥 뿌듯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마치 박찬호나 박지성이 해외 빅 리그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그를 온전히 한국 지식인 사회가 탄생시킨 인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 더 냉정하게 평가하면 한국 내에서는 장하준과 같은 토종지식인이 태어날 수가 없다. 단지 한국어가 주류언어가 아니라는 이유만은 아니다. 한국의 지식생태계가 끝없이 내부를 지향하는 폐쇄적 성향 때문이다. 지난 2005년 KBS1 ‘TV 책을 말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런 장면이 생생하게 방영된 바 있다. 당시 장하준은 대표적 진보좌파 지식인으로 꼽히는 진중권으로부터 상식 이하의 공격을 당했다. 그러나 그날의 논쟁으로 상처를 입은 것은 장하준이 아니라 진중권이었다. 그는 살신성인의 자세로 한국 진
북한의 기습폭격으로 시작된 연평도 사태가 아직 아물지 않고 있다. 분명 사안으로 봐서는 사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사건인데 너무 조용해 섬뜩할 정도다. 세상이 이렇게 조용한데는 유명 인사들의 침묵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해병대 출신 인사 몇몇만이 주목을 받았을 뿐 지난 2008년 광우병 시위 당시 쏟아져 나왔던 유명인들의 주옥같은 어록에 비하면 낯설기 짝이 없다. 과연 광우병의 공포가 전쟁의 공포보다 컸던 것일까?언제부터인가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뚜렷한 특징은 이들 대다수가 좌파적 성향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진작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미국 대선이 치러지면 할리우드에선 민주당에 대한 지지발언이 봇물처럼 쏟아진다. 과거 미스 유니버스 대회 출전자들이 틀에 박힌 듯 ‘세계평화’를 운운한 것처럼 셀러브리티들의 세계에서 좌파 커밍아웃은 하나의 패션이다.그렇다면 왜 유명 인사들은 친좌파적 발언에 집중하는 것일까? 한마디로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대중 스타들에게 진보담론은 쿨한 이미지를 전파하는 좋은 소재다. 지금처럼 ‘애국’과 같은 단어가 진부해진 세상에서 ‘인권’, ‘평화’와 같은 구호는 대중의 폭넓은 지
지난 6월 지방선거 출마 후보자들의 병역사항을 공개한 내용을 보면 뜻밖의 결과가 눈에 띈다. 한나라당이 병역면제 정당이라는 사회적 관념과는 달리 민주당의 병역미필자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보면 국회의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임을 알 수 있다. 지난 17대 국회에선 한나라당 21.4% 대 열린우리당 25.4%, 현재의 18대 국회에선 한나라당 15.4% 대 24.6%로 모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병역면제 비율이 높다.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이들 가운데 학생운동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다수이기 때문이라 짐작할 수 있다.하지만 이제는 군대 대신 감옥 갔다 온 이들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공통된 인식을 도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실상 386정치세력이 수많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에 집요하게 보상을 요구하는 부분이 바로 수감이력이다. 우리사회가 언제까지 이들에게 인질로 잡혀있을 수는 없는 이상 한번쯤 정리가 필요하다. 더욱이 한홍구의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진보진영의 병역미필자들 문제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병역문제에 대해서는 시민단체가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병들의 복무 여건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지난 6월 KBS 심야토론에서는 지방선거에 드러난 30대들의 목소리를 듣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그동안 사회적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던 자들을 배려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기획이었다. 패널로 출연한 이들은 386논객만큼 익숙지는 않은 얼굴로 우리사회 30대들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듯 했다. 하지만 드물게 찾아온 기회는 생산적이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을 긍정하는 측으로 참여한 고재열과 탁현민은 마치 한국의 30대들이 여전히 오렌지족이기라도 한 듯 묘사했다. 특히 탁현민은 30대들이 민주화 운동에 무임승차한데 대한 부채의식이 있다고 발언함으로써 자학적 역사관을 드러냈다. 이 정도면 세뇌교육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수준이다. 가치관의 차이를 떠나 사실관계 자체가 왜곡되었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무리는 아니다. 전대협 의장님께서 솔방울로 화염병을 만들고 나뭇가지로 쇠파이프를 만들었다는 전설을 만들어 내지 않은 게 다행인지 모른다. 이날 토론은 의식 있는 척 하는 젊은이들이 어떤 프레임에 갇혀있는지 잘 보여주었다. 오늘날 386의 권력은 역사를 장악한데서 나온다. 그것은 자신들을 미화하기 위해 철저히 조작된 역사다. 386정치건달들이 무위도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역사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특히 해방 이후 현대사에 관한 시각은 평행선을 달린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 인식과는 달리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동일한 속성으로 이루어졌다. 현대사의 주역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분모를 살펴보자. 구인회1907년 생이병철1910년 생정주영 1915년 생 인류역사상 가장 큰 부자 중 1/4은 1830년대 생 미국인들이었다. 어느 사회나 가장 큰 부자는 특정시기에 집중적으로 출현한다. 그러나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세계적 대기업이 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노키아는 1865년 목재회사로 설립되었다. 훗날 컴퓨터 사업을 시작한 것은 한 세기가 지난 1960년이었다. 그러나 이병철은 1952년 제당사업을 시작한 후 1969년 삼성전자를 설립한다. 그의 사업인생은 19세기형 소비재사업에서 시작해 21세기형 첨단사업으로 막을 내렸다. 압축성장의 한국현대사는 몇 세대에 걸쳐 나눠가졌어야 할 사업의 기회를 한 세대가 독식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들은 전쟁의 폐허에서 최초로 경제적 헤게모니를 잡은 후 한국경제가 한 단계씩 도약할 때마다 새로운 산업진출 기회를 남김없이 빨아들였다. 이런 결과는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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