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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성을 위한 대한민국은 없다

늙은 마초들, 진보 상징 자본 위해 젊은 남성 희생시켜


2000년대 초 여성계에서 박근혜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까지만 해도 경쟁력 있는 정치인에 불과했던 그녀는 이제 누가 뭐래도 대선승리에 가장 근접한 거물급 정치인이다. 여성계에 한정됐던 논의가 전체 대한민국의 현실적 고민으로 다가온 것이다. 한국에서 대선을 앞둔 5개월은 조선왕조의 500년과 같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변화 속도는 빠르다. 이런 사회에서 진보주의자 노릇을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태어나지 않고서는 어제의 진보가 오늘의 수구로 전락해 버린다.

흔히 보수진영에서는 진보진영이 한국현대사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진보진영 내에서도 한국사회의 성취에 가장 인색한 것은 여성계 인사들이다. 경제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물질적 변화가 여성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을 법도 하지만 그들에게 대한민국은 여전히 여성지옥이고 야만의 땅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세대 간에 있어 또 다른 폭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한국사회의 변화속도를 감안한다면 노인들과 젊은 세대 사이에는 수 백 년의 시차가 존재하는 셈이다. 더욱이 일부 미래학자들 가운데는 한국을 미래에 가장 근접한 사회로 평가하기도 한다. 이는 젊은 세대의 남녀문제가 기존의 인식을 넘어섰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한국사회가 여성문제와 관련해 사유해야 할 인물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녀 이부진이다. 이 재벌3세 여성은 한국사회의 진화 속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세계적으로도 여성CEO의 존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대기업으로는 휴렛팩커드의 칼리 피오리나 정도가 스타 CEO의 자리를 차지했으나 6년간의 길지 않은 이력으로 자리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한국식 오너경영시스템이라는 측면에서 이부진의 파워는 전문경영인과 비교되지 않는다. 그의 존재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우먼파워에 속한다.

재벌에 대한 감시는 진보진영의 주요 역할로 인식되지만 우리가 그녀의 오빠에게만 관심을 쏟는 사이 한국사회는 또 다른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부진 외에 또 다른 재벌3세 여성들을 살펴보자. 장선윤(1971년생, 호텔롯데 고문), 정유경(1972년생, 조선호텔 상무), 이서현(1973년생, 제일모직 부사장), 정지이(1977년생, 현대U&I전무) 등이 모두 1970년대에 태어난 재벌가 3세 여성들이다. 여성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한국사회는 생각보다 훨씬 빨리 여성들의 시대를 열었는지도 모른다. 이들의 존재는 성평등 역시도 세대문제와 함께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1993년 이부진이 대학을 졸업할 때 그의 아버지는 이 나라의 딸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내놓았다. 이른바 삼성의 ‘신경영 선언’이었다. 흔히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는 구호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가운데는 여성인재에 대한 문호개방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 삼성가문의 딸자식 사랑은 유명하다. 이병철 선대회장은 아들들에게 잔인할 만큼 냉정했지만 딸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였다. 그 가운데서도 막내딸 이명희 신세계 그룹회장에 대한 사랑은 유별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명희가 여성 기업가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1990년대부터의 일이다. 이부진과 그의 고모 사이에는 사회활동 시기에 큰 차이가 없다. 이것은 1990년대 이후 여성들의 사회참여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이며, 이부진의 존재는 그 세대 여성들의 도약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상징자본에 의한 2차 폭력

전근대와 근대, 탈근대가 혼재된 한국사회는 사회적 약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오늘날에는 피라미드의 하부구조에 위치한 젊은 남성들에게 이중고가 가해지고 있다. 12월7일자 조선일보 ‘동서남북’ 코너에서 강경희 기자가 쓴 ‘텅 빈 학교 운동장, 나약한 남자들’이란 칼럼을 보자. 초등학교 교사의 여초 현상으로 학교 운동장이 텅 비고, 입시위주의 교육정책으로 남자들이 나라를 지키지 못할 만큼 나약해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보수언론의 기자답게 나약한 남성을 맘껏 조롱하고 있다. 그러나 씩씩한 남성을 또 다른 여성들이 어떻게 비난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씩씩하면 마초라고 두들겨 맞고, 나약하면 초식남이라고 욕먹어야 하는 것이 이 시대 남자들의 운명이다.

그러나 젊은 남성의 입장에서 더욱 괘씸한 것은 이미 물적 토대를 장악한 늙은 마초들이 ‘진보’라는 상징자본을 갖기 위해 젊은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현상이다. 헤럴드경제 10월15일자 ‘신의 직장에 여신은 없다’는 기사를 보자.

“신건 민주당 의원은 14일 한국거래소 국정감사에서 한국거래소의 여성근로자 고용비율은 14%에 그쳐 민간기업 평균 고용률 30~35%보다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관리자급인 여성근로자비율은 더 낮아 과장급 이상은 전체 444명 가운데 15명으로 3%에 불과했으며 차장급 이상은 전체 264명 가운데 단 4명으로 2%에 그쳤다. 직책별로도 부서장은 단 한 명도 없었고 92명의 팀장 가운데 여성은 3명뿐이었다. 신 의원은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한국거래소는 ‘남성 신들만을 위한 직장’”이라며 “거래소는 고급 여성인력을 키우는데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질타했다.”

참 대단한 훈계다. 도대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그것도 탈당과 입당을 반복한 정치철새가 이런 훈계를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들의 인식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자료에 기반 한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2010년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성불평등지수는 20위로 경제수준과 비슷하다. 문제는 여성권한척도(GEM)에서 6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다른 지표가 개선되지 않더라도 여성 의원 비율만 2012년 20%로 높아져도 유엔개발계획의 여성권한척도에서 한국 순위는 51위로 상승하고, 25%로 높아지면 40위까지 뛰어오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한다. 즉 대한민국의 성평등지수에서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는 주된 이유는 늙은 남자들의 과도한 권력독점에서 기인한다. 그런데 물적 토대를 장악한 이들이 진보라는 상징자본마저도 갖기 위해 젊은 남성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지식인 세계에서 흔히 발견된다. 이미 대학교수, 언론사 간부 등의 철밥통을 차지한 이들이 여성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참해 목소리를 키우는 것은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진보가 ‘양심’이나 ‘성찰’ 등 고결한 단어의 결과물이라고 착각하지만 자신들이 차지한 철밥통이야말로 진보적 발언의 원인이라는 점은 간과한다. 보수진영의 노인들이 젊은 세대에 무관심한 이상으로 이들은 젊은 남성들에게 가학적이다. 이들이 요즘 젊은층이 보수화되었다고 혀를 끌끌 차는 것은 그들의 물질적 기반을 빼앗고, 확인사살까지 감행하는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는 1970년대 이후에 태어난 남성들로부터 물질적 기반을 빼앗아 갔다. 젊은 남성들은 이런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스스로 모범을 보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국회의원, 대학교수, 언론계 고위직부터 여성들에게 양보할 것을 요구하자. 도대체 그들이 먼저 양보하지 않는다면 누가 해야 한단 말인가? 어제의 진보주의자들에게 오늘에 걸맞은 명칭을 부여해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여성주의자는 여성수구집단이거나 진보마초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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