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의 진짜 재미는 선거가 끝난 후에 벌어지는 진풍경에 있는 것 같다. 선거 전엔 사뭇 비판적이었던 보수언론이 끝나자마자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에 아부성 찬사를 늘어놓는 모습하며, 선거 전엔 원내1당은 따 놓은 당상처럼 여기고 막가파식으로 기세등등하더니 선거 후 풀이 죽어 있는 좌파진영 모습들이 그렇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누가 뭐래도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은 정치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다는 고전을 그대로 재연이라도 하듯 절묘한 줄타기의 진수를 보여준 김무성 의원의 ‘구국의 결단’이었다. 한때 박 위원장과 대립각을 세우며 ‘탈박’을 자처하더니 이젠 박 위원장과 함께 나란히 19대 총선 주·조연의 평가를 받고 있다. 단지 박 위원장을 비판했다고 돌덩이를 던지던 친박 지지자들은 이제 그를 애국자로 떠받든다. 배신자가 몇 달 사이에 영웅으로 거듭났다. 도대체 어딜 가면 이런 재미있고 엽기적인 장면을 또 구경할 수 있을까 싶다.박근혜를 배신한 자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찍혀 있던 김무성 의원이 완벽히 박근혜당으로 재탄생한 새누리당에서 차기 당 대표감으로 거론된다고 한다. 공천에서 탈락한 그가 무소속이라도 출마했다면 부산경남에서 새누리당의 성적은 형편없었을 것이고
야심차게 노렸던 과반은커녕 원내1당이란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 채 싸늘한 민심을 확인한 민주통합당이 충격 속에 책임론이란 후폭풍을 맞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그간에 쌓인 온갖 문제들과 민간인사찰 파문 등 반MB정서가 커질대로 커진 분위기상 야당으로선 이번 선거는 당연히 ‘차려진 밥상’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밥상에 올라온 밥과 반찬을 그대로 받아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선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큼 충격의 여파가 컸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좌파언론과 지지세력, 민통당 안팎에선 한명숙 대표를 비롯해 지도부를 향한 비판이 거세다. 486측근·학연(이대)공천 등으로 잘못된 공천을 주도한 점,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점, 김용민 막말 파문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점 등 온갖 실패의 이유들이 지적되고 있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뼈저린 반성과 후회를 해도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민통당과 지지세력의 자책과 반성이 딱 그 꼴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번 선거는 새누리당이 승리한 선거가 아니라 민주통합당이 패배한 선거였다. 또 민심이 ‘정권심판’보다 ‘야권연대’를 먼저 심판한
4.11 총선은 명실공히 심판의 날이 될 것이다. 어떤 세력이 심판의 칼을 쥐게 되고, 어떤 세력이 심판의 대상이 될지는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번 선거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이명박 정부 마지막 해에 치러지는 총선거로 이 정권은 자신들이 이끈 국정운영에 대해 국민으로부터 최종 성적표를 받아들게 될 것이고, 반대로 야당은 자신들의 집요한 이명박 정권 안티테제 운동성과를 의석수로 확인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지지층 국민의 요구와 의사도 묻지 않고 단 한 사람의 필요에 의해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급변신한 정치세력에 대한 심판이다. 4.11 총선결과는 이렇게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로 나타날 것이다. 4.11 총선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최소한의 권위마저 파괴된 우리 정치의 얄팍한 수준과 천박한 현실을 드러낼 것이다. 권위가 사라진 사회는 뿌리 깊은 나무가 없는 숲과 같다. 얕고 자잘한 뿌리들로 지탱하는 나무는 큰 비와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그런 나무들로 이룬 숲은 변화무쌍한 자연을 견디지 못한다. 맹목적인 공권력 불신, 정부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 사회체제를 흔드는 불복종운동, 이를 통해 드러나는 반헌법 정신은 사회의 기
2012년 4.11총선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우리의 민주주의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많은 이들에게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선거라는 점에서 역사책 한 페이지에 특별히 기록될만하다. 보편적 발전 원칙이 기형을 일으키고 변태되어 21세기에 구시대적인 지체와 퇴행의 면면들로 스멀스멀 되살아나고 있는 현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점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단 한 사람이 정당과 그 주변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는 모습을 생생히 목격할 수 있었고, 민주주의 이름으로 소수 집단이 거대 야당을 집어 삼키고 전체 민의를 유린하는 장면도 발견된다.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민주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21세기 변태적 민주주의 파괴 현상을 국민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하는지 아연하기만 하다.특히 새누리당에서 속속 등장하는 현대판 가케무샤들의 부활은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부딪힌 위기의 본질을 보여준다. 한나라당을 갈아엎고 새누리당을 만든 김종인, 이상돈, 이준석, 조동원, 손수조...이들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충실한 그림자 무사들이다. 그림자란 혼자 존재할 수 없는 무존재의 존재들이다. 오로지 박근혜란 권력자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존재들이란 얘기다. 이
선거가 있을 때마다 흔히 구경할 수 있는 광경 중 하나가 네가티브 공세다. 당선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안 가리고 상대방을 헐뜯고 왜곡·과장하여 상대후보를 천하의 둘도 없는 부패한 악인으로 낙인찍어 버린다. 상대를 최악의 인물로 만들고 그리곤 그 최악의 인물이 만들어갈 끔찍한 세상을 막을 유일한 인물이 바로 자신임을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강조한다. 저마다 모세를 자처하고 매트릭스의 네오(The One : 구세주)가 되는 것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선거전의 당선자가 정기적으로 교체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선거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의 정치 불신과 냉소주의만 부추기고 오히려 정치발전의 지체현상만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오지 않을 ‘고도를 기다리며’ 언제까지나 구원자만을 기다리게 하는 식의 정치집단의 선거문화는 일종의 사기에 가깝다. 4.11 총선 정국에서도 이런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 문제로 이명박 정권을 공격하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언론노조 등의 모습에서 오직 자신들만이 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오만이 느껴진다. 현 정권을 최고의 악당으로 만들기 위해서 자신들의 과거행적과 양심불
휴가철마다 휴가지에서 벌어지는 천태만상 꼴불견이 매년 뉴스에 오르는 것처럼 국회의원 선거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폴리페서 논란이다. 19대 총선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4.11 총선에 출마한 현직 교수들은 대략 20여명이 된다고 한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새누리당이 11명, 민주통합당 3명, 통합진보당 2명, 자유선진당과 국민생각이 각각 1명씩이다. 교수직은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정치판에 뛰어든 얌체족 숫자가 그 정도 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그 얌체들 중 절반 이상이 언급했다시피 새누리당 소속이다. 이처럼 새누리당이 유독 폴리페서를 선호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국민 앞에 ‘공정사회’ ‘공정한 룰’을 떠드는 정당이 맞는지 의심스럽다.지난 1월 새누리당 박근혜 위원장은 정강정책을 개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번 정강정책 개정안은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우리의 나아갈 길이 국민 행복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보다 공정한 사회,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 가겠다는 우리의 의지도 잘 담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의 이런 의지를 담아 바꾼 것이 새누리당의 새 정강정책인 것이고, 이런 정강정책을 제대로 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여론조사 조작사건으로 소위 야권연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경기동부연합이라는 음습한 NL계 주사파세력이 통진당 당권을 장악해 이 대표를 앞세워 당을 종북성향으로 완전히 바꾸었고, 심상정, 노회찬, 유시민 등 종북과는 거리가 있는 비당권파는 당의 강압논리에 따라 주사파 세력에 대해 현재 어떤 비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를 떠들고 반대정치세력에 대해선 수구세력, 반민주세력으로 매도하던 자들이 스스로는 당권파의 힘의 논리와 기득권에 억눌려 반민주적인 당의 종북 색채에는 일절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여론조사 조작이라는 그야말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선거부정행위마저 ‘사소한 잘못’ 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사퇴한 이 대표를 ‘대승적인 결단’을 한 것 마냥 미화하고 찬양하며 잔뜩 포장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심상정, 노회찬 등 진보신당 탈당파들이 과거 주사파 세력과 종북주의 논쟁을 벌이고 갈라섰으면서도 오직 권력을 위해 다시 그들과 손을 잡았으니 이들도 종북세력과 한편이라는 논리를 편다. 맞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지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선거승리를 위해 민주노동당을 찍으면 사표가 된
한나라당이란 공당이 새누리당이란 박근혜 위원장의 사당으로 변질돼가는 과정의 책임은 일차적으로 박 위원장에게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말 그대로 공천이 아닌 꼼수로 가득한 사천을 남발하였고, 친이에만 엄격하고 친박에겐 사라진 원칙주의를 내세워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였다. 더군다나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두고 좌파세력이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온갖 허위사실과 유언비어를 동원해 여론을 선동하면서 제2의 광우촛불사태를 꿈꾸는데도 박 비대위원장의 새누리당은 오로지 공천에만 몰두했을 뿐, 그 누구하나 한심한 나라꼴에 대해 제대로 정면에 나서 비판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비대위원이란 사람들은 ‘이명박 지우기’에만 앞장섰고, 공천에 눈이 먼 국회의원들은 눈치보기에만 급급했다. 위원장부터 비대위원, 국회의원들까지 국익은 나몰라라 사익에만 골몰하는 이런 당이 보수우파세력을 대변하는 당이라는 건 그야말로 보수우파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그러나 새누리당이 공당의 가치를 버리고 사익을 쫓는 일인독재 정당이 된 데에 박 비대위원장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도 제대로 된 지적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능과 비굴함만을 보여준 친이세력이라는 사람들의 책임도 적지 않다. 비대위가 당의 가치를 파
생산자가 소비자의 요구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되고 또 다른 생산자가 나오는 것은 경제생태계가 돌아가는 기본 원리다. 시장을 독점하던 S기업이 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또 다른 L, H기업이 그 틈새를 파고들어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더 좋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S기업 물건에 불만이 많았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소비자들은 당연히 L, H기업 물건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적극적으로 구매하게 된다. 이런 현상을 두고 그 어느 누구도 기업이 분열했다고 걱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혀 주고, 기업 간 품질·제품 경쟁을 통해 세계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며, 독과점으로 인한 폐해도 줄이는 건강한 현상으로 바라본다. 이런 논리가 경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정치시장도 마찬가지다. 보수정치 시장을 한 정당이 오랫동안 독점해오면서, 그 결과가 정당·정치인의 생산자 위주의 고비용 저효율 정치, 소비자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 심지어는 소비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정치로 나타난다면, 대안정당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를 두고 ‘분열’이라고 비난하
나경원 전 의원이 끝내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새누리당 공천위는 나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을 명분삼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부터 ‘1억원 피부과’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일방적인 흑색선전·선동을 펴온 나꼼수에 의해 온몸에 자상을 입은 나경원을 간단히 폐기처분해 버렸다. 자당의 미래를 걸머질 젊은 유력 정치인을 보호할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이때다 싶게 단칼에 잘라내는 새누리당의 비정함은 나경원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지지자와 국민에게도 상처를 줬다.나경원이 예뻐서가 아니다. 나경원이 독보적인 정치인이라서도 아니다.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위원장이 “나경원을 지지해달라”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을 설득하며 함께 뛰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와 나꼼수가 제기한 문제만으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며 내치는 것은 인간적으로나, 정치 도의상으로 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도덕성 의혹 때문에 내쳤다지만, 저축은행 관계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이성헌은 일찌감치 공천을 받았다. 수해 골프파문으로 제명까지 됐던 홍문종에게는 최소한 경선 후보로 뛸 수 있게 배려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는 현재 새누리가 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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