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전 의원이 끝내 공천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새누리당 공천위는 나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의 기소청탁 의혹을 명분삼아 지난 서울시장 선거에서부터 ‘1억원 피부과’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일방적인 흑색선전·선동을 펴온 나꼼수에 의해 온몸에 자상을 입은 나경원을 간단히 폐기처분해 버렸다. 자당의 미래를 걸머질 젊은 유력 정치인을 보호할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이때다 싶게 단칼에 잘라내는 새누리당의 비정함은 나경원 본인뿐만 아니라 많은 지지자와 국민에게도 상처를 줬다.
나경원이 예뻐서가 아니다. 나경원이 독보적인 정치인이라서도 아니다. 불과 몇달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위원장이 “나경원을 지지해달라”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을 설득하며 함께 뛰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제와 나꼼수가 제기한 문제만으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었다며 내치는 것은 인간적으로나, 정치 도의상으로 보나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기 때문이다. 도덕성 의혹 때문에 내쳤다지만, 저축은행 관계자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이성헌은 일찌감치 공천을 받았다. 수해 골프파문으로 제명까지 됐던 홍문종에게는 최소한 경선 후보로 뛸 수 있게 배려했다.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는 현재 새누리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를 비판하는 것처럼 혐의 자체만으로도 도덕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다. 기소청탁 의혹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제명까지 당했던 이의 도덕성도 나경원의 도덕성보다 뛰어나다곤 할 수 없다. 그러나 버림받은 나경원과 달리 위풍당당하게 살아남은 이들이 나경원과 다른 점이라면 둘 다 친박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나경원과 같이 박근혜 위원장 꼭두각시에 불과한 공천위의 칼날에 날아간 인물이 여럿 있다. 상당수가 친이계로 불리는 이들이다. 명분 있는 날에 목이 날아갔다면 당사자나 지켜보는 국민이나 납득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기준도 모호한 공천 잣대는 탈락자들을 쉽게 승복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권영세 사무총장의 말대로 "객관적 데이터에 의해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평가한 결과"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최소한 자신이 왜 떨어졌는지 납득할 수 없는 이들에게는 왜 컷 오프 탈락했는지, 공천 심사 내용을 알려주고 그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공천위는 그 많은 요구를 묵살하고 있다. 그리고 공천위의 공천결과는 그토록 강조하던 공천 원칙이 도덕성이 아닌 단 한가지의 기준에서 이루어졌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게 만들고 있다.
새누리 ‘피의 숙청’ 공천기준의 유일한 원칙은 ‘박근혜 대권가도’
미래희망연대 출신 의원에게 무려 30%이상 지지율이 앞서고도 공천에서 탈락한 유정현, 이재오계 왼팔, 오른팔로 불리는 권택기, 진수희의 탈락, 정몽준계 전여옥 제거, 마포갑(강승규), 광진갑(권택기), 성북을(정태근, 불출마), 노원갑(공석) 에서의 친박 성향의 기초단체장들의 대거 부활. 이들 구청장 출신들의 부활에 대해 언론조차도 ‘당선은 못 되도 최소한 박 위원장의 대권가도를 위해 뛸 수 있는 사람들에게 공천을 준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정적의 수장을 살리는 대신 수족들을 모두 자르고, 새누리 모두가 희망하는 총선 승리 대신 박근혜 대선을 위해 뛸 사람들을 염두에 둔 참으로 절묘한 공천 결과다. 오로지 박근혜를 위한 설계도가 이미 준비된 공천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재오, 정몽준 입장에서는 살아남은 것조차 수치가 될 뿐인 결과다. 동지 잃고, 팔다리 다 잘리고 구차하게 목숨만 부지해서 존재한들 과연 이들에게 앞으로 어떤 의미와 미래가 있겠나?
박근혜 위원장이 임명한 비대위가 돗자리를 깔고, 박 위원장이 임명한 공천위가 서슬퍼런 칼춤을 추며 만들어낸 결과에 다들 ‘친이 학살’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지난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를 대거 탈락시킨 사실과 비교해 붙인 수식어다. 혹자는 과거 친이계가 당권을 쥔 상황에서 ‘친박 학살’이 이루어진 것을 볼 때, 친박이 세를 쥔 오늘의 친이 학살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과거 ‘친박 학살’은 잘못된 말이다. 지난 공천위에는 친박 강창희가 있었고, 최고위원회의에도 친박계가 3명이나 있었다. 그런 인사들이 친이계와 힘을 합해 내놓은 공천결과가 지난 총선 공천결과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공심위와 비대위 모두 친박 인사들로만 채웠다. 박 위원장은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여론의 눈치도 살피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할 수 있도록 ‘철새’ 김종인, ‘변절자’ 이상돈, 철딱서니 이준석 등 많은 사람의 지탄을 받는 인물로 채우고, 자신이 임명한 공천위의 공천 심사도 밀실에서 진행되도록 했다. 그 결과 친이계는 대거 숙청되었다. 그렇게 해 자신의 대권가도를 탄탄히 다졌다. 이런 모습을 독재라고 하지 않으면 뭘 독재라고 부를 수 있겠나. 오늘의 모습을 보고도 2008년 공천을 ‘친박 학살’ 운운하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나경원, 이재오, 정몽준, 오세훈 모두 힘 모아 신당 창당해야
이런 새누리당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박근혜 대권가도를 위해 원칙도 도덕성도 지지자도 쓰레기만도 못하게 내다버린 새누리당에 찍소리도 못하고 제거된 희생양들은 울분과 한탄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총선에서 각개전투로 싸우며 의미없이 피를 토하고 사라져서도 안된다. 수많은 정적을 치고 그 낭자한 피로 활짝 웃고 있는 박근혜만 빛나는 새누리당이 결코 보수의 정당이 될 순 없다. 이번 공천의 최대 희생양 중 하나인 나경원은 차차기 대권주자 지지율 1, 2위를 달리는 인물이다. 많은 국민이 그를 차차기 대통령감으로 꼽고 있다. 좌파진영의 타켓팅과 아군의 공동작전으로 급침몰한 나경원은 이대로 죽어선 안된다. 적진에서 무기력하게 산화할 게 아니라 새로운 땅에 세력을 규합해 진정으로 새 가치를 위한 정치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나경원은 새누리당을 박차고 나와 신당을 차려야 한다. 이재오, 정몽준 걸출한 장수들도 한낱 공천장을 받아 쥐고 뒷방 퇴물로 늙어가선 안된다. 나경원을 친 그 칼에 일말의 희망을 기대할지도 모를 차차기 선두주자 오세훈 역시 뜻을 함께 모아야 한다. 무상급식 포퓰리즘에 맞서 보수세력과 함께 싸웠던 그 기개의 오세훈이라면 새누리당에 구차한 희망을 걸지 않으리라고 본다. 많은 적의 피로써 새롭게 태어난 박근혜에 맞서려면 나경원이 신당 대표로 나와 박근혜에 맞서야 한다. 그러나 피 대신 정의와 용기, 진정한 보수의 가치로 새롭게 무장하고 맞서야 한다. 그래야 박근혜를 대적할 수 있다.
나경원은 이제 자신이 온실속 화초가 될 수 없다는 냉엄한 현실을 깨달아야 한다. 신당의 깃발을 들고 거칠고 황량한 들판으로 나와 자신의 무기력과 싸우며 동시에 이재오, 정몽준과 함께 타락하고 희미해진 보수정치를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요구이자 역사적 사명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경원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출처 : 폴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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