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한 1천240억 달러 규모 전비법안 통과를 강행하면서 지난해 11월 중간 선거 이후 유지돼오던 백악관과 민주당 간 불안한 공생이 완벽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30%대의 낮은 지지도로 힘들게 국정을 이끌어 오던 조지 부시 대통령은 "더 이상 밀릴 수는 없다"는 판단 아래 거부권 행사를 선언, 일찌감치 배수의 진까지 쳐놓은 상태이며 이라크 정책의 변화가 중간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이라고 믿고 있는 민주당은 한치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향후 상ㆍ하원 절충을 통해 철군시한을 담은 최종 법안이 마련되더라도 부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될 것이 뻔하고 이에 따라 전비 지출 차질에 따른 책임론 공방, 미국민들의 불안감 가중 등 대치 정국의 파장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다.
◇"부시는 대결을 필요로 한다"= 공화당의 여론분석가인 데이비드 존슨은 24일 중간선거 패배 이후 의회가 민주당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은 "공화당 지지층 결속을 위해 민주당과의 대결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문제는 물론 검사해임 파동에 따른 백악관 보좌관 증언 등 모든 쟁점에서 싸움을 벌여야 한다면서 "만일 부시가 싸우지 않으면 그는 공화당 내의 한 관여 세력으로 끝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이라크 정책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을 공화당원들에게 설파했으며 그 결과 하원 투표에서 이탈자는 단 2명에 그쳤던 반면, 민주당 이탈자는 4명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공화당 의원들이 이라크 정책과 관련, 부시 대통령에 맞서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을 점점 더 크게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딕 체니 부통령은 이날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유대계 공화당원 연합(RJC) 모임에 참석, "민주당은 미군을 지지하지 않고 있으며 , 오히려 미군을 해치고 있다"고 비난하고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안정되기 전까지는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민주, "이라크 정책 바꿀 기념비적 법안"= 민주당의 폴 하디스(뉴햄프셔) 하원의원은 이날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이라크 정책을 바꿀 때가 됐다고 알려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서 이 법안은 이라크 정책을 바꿀 기념비적인 법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라크전으로 미군 3천200명이 숨지고 수만 명이 부상했으며, 5천억 달러의 세금이 쓰이는 등 알카에다와 테러전에 쓰일 귀중한 자원이 전용됐다면서 4년간의 정책 실패 후 민주당은 변화를 원하는 국민의 염원에 따라 이라크 국민이 자기 나라를 책임지게 하는 새 노선을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으로서는 2008년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고유 권한인 군통수권까지 침해한다는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와 관련, "백악관은 미국민이 이라크전을 반대하고는 있지만 의회가 군통수권자를 해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계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최종 법안에 관심= 민주당이 지난 22일 상원 세출위원회에서 향후 4개월 뒤부터 늦어도 내년 3월말까지 미군 철수를 조건으로 한 전비 법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금주중 전체 표결이 있을 예정이다.
공화당이 의사 방해를 통해 표결 저지에 나설 지 주목되는 가운데 만일 이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게 되면, 상하 양원의 비공개 법안 절충위원회가 상ㆍ하원 두 가지 안을 놓고 최종안을 마련하게 된다.
두 가지 안 모두 철군 조건을 담고 있으나 절충위원회가 과연 최종안에도 철군 시한을 포함시킬 지는 두고 봐야 한다.
(워싱턴=연합뉴스) nh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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