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농업과 자동차, 섬유 분야가 전체 협정 타결을 좌우할 마지막 쟁점으로 남은 가운데, 오는 19~21일 열리는 2차 농업 고위급 협상과 이를 준비하는 농림부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농림부는 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이 '모든 농산물의 예외없는 관세 철폐' 고집을 꺾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분야를 위해 농업을 희생시키는 이른바 '빅 딜' 가능성도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농업도 같은 시기 워싱턴에서 진행되는 김종훈-웬디 커틀러 양국 수석대표 회의와 이후 예상되는 통상교섭본부장 또는 대통령간 최고위급 논의를 통해 'FTA 타결'이라는 큰 틀 안에서 개방의 수위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농업 협상 9개월간 제자리
양국은 주요 농산물의 양허(개방) 방향을 놓고 지난 여덟 차례의 실무 협상과 이달 초 워싱턴에서 열린 1차 농업 고위급 협의 등에서 좀처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농업 분과의 경우 사실상 협상이 시작된 작년 6월 이후 9개월여 동안 제자리 걸음이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쌀.쇠고기.돼지고기.닭고기.감귤 등 우리측 '민감 품목'을 인정하고 우리가 '즉시 관세 철폐'를 대신해 민감도와 시장특성에 따라 품목별로 제시한 양허제외, 수입쿼타(TRQ), 세번 분리, 계절관세 등의 다양한 방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은 8차 협상과 최근의 고위급 협의 등에서 계속 "궁극적으로 모든 농산물의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아울러 적용 기간을 줄이고 할당 물량을 크게 늘리지 않는 한 우리가 제시한 계절관세와 TRQ 방식 등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 농림부 "美 요구 수준 낮춰야 타결 가능"
사실상 협상 마감시한(이달 말)이 임박한 현재, 농림부의 입장은 한 마디로 '우리는 핵심 민감 품목을 결코 양보할 수 없으니 미국측이 만족하고 알아서 물러나라'는 것이다. 지난 8차 협상에서 배종하 국제농업국장이 미국측에 전달한 을지문덕의 시 내용 그대로다.
고위급 협의에 우리측 수석대표로 나서는 민동석 농림부 통상차관보는 "협상이 진전되려면 미국이 '현행 관세 유지는 있을 수 없다'는 지금까지의 주장에서 물러나 신축성을 보여야 한다"며 "요구가 지나쳐 상대방이 받을 수 없다면 요구하는 쪽이 수준을 낮추는 것이 당연하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였다.
또 그는 "농업의 경우 우리 입장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고, 양자간 협상에서는 이같은 서로의 상황을 고려해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며 관세 철폐 원칙만 고집하는 미국측의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아울러 그는 우리 정부가 자동차나 섬유 등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기 위해 농업에서 양보할 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현재 정부 내부에서 농업의 경우 기본적으로 다른 분야와 연계하지 않는다는 기본 방침이 세워져 있다"고 강조했다.
◇ 쇠고기 관세-검역 연계되나
이번 2차 농업 고위급 협의의 최대 쟁점은 역시 개방 민감도가 가장 큰 쇠고기의 현행 40% 관세 유지 여부다.
쌀의 경우 우리측이 지금까지 여러 차례 미국이 쌀을 양허(개방) 대상으로 거론하면 협상을 깰 수도 있다고 강조해온 만큼, 미국이 협상 막판에 무리하게 쌀 관세 문제까지 들고 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농림부 내부의 시각이다. 또 시장 규모도 쇠고기가 쌀을 크게 웃돌아 실익 측면에서도 미국은 쇠고기 협상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쇠고기와 오렌지 등 초민감품목에 대한 우리측의 기본 입장은 수입쿼타(TRQ) 등은 논의해볼 수 있으나 현행 관세 수준을 낮출 수는 없다는 것이다.
쇠고기의 경우 관세 문제 뿐 아니라 '뼛조각 논란'을 비롯한 검역 문제가 함께 얽혀있어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이번 2차 협의 일정상 19일 첫날은 FTA 양허 방향을 주제로, 20일에는 쇠고기 검역 문제만을 놓고 논의가 진행된다. 쇠고기 검역 문제가 이번 FTA 협상의 공식 의제가 아니므로 형식적으로 두 협의를 분리했으나, 미국측이 줄곧 "쇠고기 전면 개방 없이는 FTA를 체결할 수 없다"며 뼛조각 문제와 FTA의 연계를 주장하고 있어 사실상 두 문제를 완전히 떼어 놓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다.
최근 민 차관보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미국이 검역 문제에서 강도 높은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보조를 맞출 수 있느냐에 따라 쇠고기 관세 문제에 대한 '딜'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바로 뒷날 박홍수 장관은 "쇠고기 관세와 검역 협상을 분리한다"며 원칙을 다시 강조하는 등 혼선을 빚은 것도 이 같은 농림부의 곤란한 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협상이 맞물려 돌아간다해도, 검역 부문 쟁점에서 역시 양국의 입장 차가 워낙 커 딜 자체가 쉽게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측은 현재 국제수역사무국(OIE) 총회에서 오는 5월 자국의 '광우병 통제국 등급' 판정이 확실한 상태이므로 이달말 FTA 체결시한까지 5월 확정과 동시에 즉시 뼈를 포함한 쇠고기 전면 수입이 가능토록 기본 사항을 합의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측은 판정이 확정되더라도 자체 위험 평가 등 수입국의 권리를 최대한 행사한 뒤에야 수입 위생조건 개정을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한 마디로 국민의 건강과 축산 농가 피해를 고려해야 하는 농림부로서는 마땅히 물러설 자리가 없는 국면이다.
◇ 최고위급 협상에서 개방수위 결정될 듯
현재까지의 이 같은 분위기로 미뤄, 이번 2차 고위급 협의에서도 미국측이 '예외없는 관세 철폐' 원칙과 '뼈를 포함한 모든 쇠고기 즉시 수입' 주장을 다시 들고 나올 경우 논의가 원점을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배종하 국제농업국장도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어떤 태도로 나올지 예상하기는 어렵지만, 대단히 어려운 협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치열한 협상을 앞두고 농림부는 "철저히 실익을 따져 협상하라"는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힘을 얻고 있다. 취약 부문인 농업의 경우 개방 폭을 끝까지, 최대한 줄이는 것이 곧 실익을 챙기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만약 양국이 이번 2차 협의를 비롯, 추가 고위급 협의에서도 별다른 타협점을 찾지 못할 경우 결국 농업 분야의 협정 방향은 통상교섭본부장 또는 대통령간 최고위급 협의에서 결정된다. 이 경우 농업의 개방 수위는 협정에 따른 양국 이익의 전체 균형을 맞추는 과정에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미국이 고위급 협의에서 쌀과 쇠고기 등 몇 가지 핵심 품목에 대해 유연성만 보이면 농업 분과도 의외로 쉽게 타결에 이를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양허 방향이 결정되지 않은 미정(undefined) 품목은 우리가 주장하는 235개 '민감 품목'을 포함해 280개다.
그러나 실제 협상 타결의 관건이라 할 수 있는 품목 수는 쌀.쇠고기.오렌지.감자.대두.낙농품 등 핵심 민감 품목을 포함해 수 십개 정도에 불과하다. 현재 양국이 관련 품목까지 '꾸러미(패키지)를 구성, 양허 협상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측이 '포도 가공품이나 포도주 등의 관세는 철폐할 수 있지만 신선 포도는 불가하다'는 입장이고 이를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포도 관련 품목 모두가 미정 품목으로 분류되는 식이다.
배 국장은 "핵심 부분에 대해 양국이 어떻게 하자는 합의만 이뤄진다면 나머지 부분들은 지금까지 8차 협상을 진행해온 실무팀이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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