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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의 정체성을 직시할 용기, 있습니까?” 신간 ‘충성과 반역’

대한민국 창군·건국·호국의 주역은 조선인 출신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집권하자마자 ‘반일친중’ 선동하는 친북성향 국군통수권자, 무식일까 고의일까

[편집자주] 이 글은 길도형 장수하늘소·타임라인 출판 대표가 정안기 박사의 신간 ‘충성과 반역’(조갑제닷컴)을 읽고 본지에 투고한 서평입니다. 




1. 나의 아버지와 국군 제6사단 이야기
 
선친, 즉 나의 아버지는 1933년생으로 1997년 폐암 악화로 65년 생애를 마쳤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은 숲에 묻혀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방태산 산기슭 초가삼간에서 화전민의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30년대 후반, 겨울이 끝나기도 전부터 송기(소나무 속껍질)를 먹어야 했던 찢어지는 가난을 벗어나 보고자 일가족이 방태산을 떠나 인천으로 가 지금의 십정동에 정착했다.

그마저도 운이 없던 아버지는 40년대 초반 양평의 먼 친척집에 대를 이을 양자로 가야 했다. 말이 양자이지 사실상 머슴살이였다. 어느 날, 양평 친척집에 아들도 볼 겸 들른 조부는 피골이 상접한데다 눈마저 퀭한 아들을 보게 된다. 지게 가득 섶나무를 지고 들어오는 아들의 모습을 본 조부는 지게작대기를 빼앗아 친척을 개 패듯이 두들겨 패고 아들 손을 잡고 십정동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객지에서 거칠게 구르는 돌이 되어 버린 아버지는 해방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십정동 집에 머물지 못하고 가출해 버린다. 서울과 양평을 떠돌던 아버지는 1950년 언저리에 춘천까지 간다. 아마도 고향이 강원도 인제인지라 부랑하던 소년은 자신을 이끄는 본능의 힘에 이끌려 춘천까지 간 것이리라.

1950년 무렵, 17세 소년은 춘천의 한 군부대 옆 민가의 일을 해주며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군부대 영내로의 심부름도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창 때 키가 170센티미터 중반대였던 소년이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로 군부대 심부름을 갈 때마다 장병들이 말도 걸고 장난도 걸고는 했다. 그런 4월 어느 날인가도 심부름 차 영내에 들어갔던 소년은 군인들과 어울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장교가 훤칠한 키에 앳되어 보이는 소년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다가 “너 군인 시켜 줄까?” 하고 농 반 진 반의 말을 건넸다. 소년은 그렇잖아도 남의 집 궂은일이나 하며 보내던 참이라 냉큼 “시켜 주면 하지요!” 하고 답했다. 장난삼아 말을 건넸던 장교는 싱글싱글 웃으며 병사들에게 말했다.

“이 녀석에게 맞을 만한 군복 있으면 갖다 입혀 봐라”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군번도 없이 계급 없는 군복을 입고 영내 생활을 시작했다. 그 군부대가 바로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예하 부대. 나의 아버지는 그렇게 훈련병 시절을 거치지도 않고 고참 병사들 속에서 병과훈련·교육을 비롯한 고된 병영생활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태어나서 처음 교육이란 것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한글을 비롯해서 기본적인 한자를 읽고 쓰는 것을 그때 배우고 익혔다. 소년으로서는 난생처음 겪는 일들이었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비록 학교가 아닌 군대에서였지만, 교육을 통해 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즐거움과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 행복과 즐거움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을 시작한 북괴군의 포성과 함께 너무도 빨리 끝나 버렸다.



2. 제6사단의 춘천대첩으로 시작하는 책 한 권

2월 29일, 두툼한 책 한 권이 도착했다. ‘충성과 반역’, ‘대한민국 창군(創軍)·건국(建國)과 호국(護國)의 주역 일본군 육군특별지원병’이란 부제가 책의 주제를 명징하게 드러낸다. 목차와 머리말에 이어지는 서문 서너 쪽을 읽어 내리며 손이 떨리고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오랜 시간 나의 열과 성이 배인 수고(手稿)가 활자로 바뀌어 책으로 묶인 것처럼 감격스럽다.

서두를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의 '춘천전투(대첩)'로 시작한다. 내가 이 책을 받아들며 감격한 이유이자 글머리를 선친 이야기로 시작한 이유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일제히 남침을 시작한 북괴군 중에서도 핵심 전력인 제2군단을 춘천 소양강에 수장, 패퇴시킴으로써 스탈린과 김일성의 수도 서울 포위, 봉쇄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든 춘천전투는 대한민국사 가운데에서도 가장 결정적인 순간으로 기록되어 마땅하다. 1개 연대가 북괴군 2개 사단을 궤멸시키고, 1개 사단이 북괴군 정예 1개 군단을 와해시킨 전투. 그 주역이 바로 제7연대, 그리고 국군 제6사단이었다.

이 책은 일제치하인 1938년부터 1943년까지 6년여 동안 식민지 조선에서 시행된 ‘육군특별지원병제’에 대한 고찰이자 이 제도를 통해서 양성된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의 역사적 위상을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맥락을 통해서 실증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1905년 을사조약에 이어 1910년 고종이 국권을 일본에 넘김으로써 이씨 조선왕조는 일본에 병합(倂合), 일본 황실의 일부로 전락한다.

대한제국 시기 개혁 시도는 근대사회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고종과 양반 지배계급에 의해 개화·개혁 주도세력들이 제거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조선을 병합한 일본은 봉건 왕조의 구습을 혁파하고 근대적 개혁을 강제하며 피식민지 사람들의 생활과 인식에 근대를 이식시키기 시작했다.

한반도에는 일제라는 타의에 의해 급속히 근대가 이식된다. 반상(班常) 기본의 신분제 혁파부터 생산과 소비, 언론·출판·문화, 교육 등 사회 시스템 전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인들은 피동적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적극적 소비의 주체가 되어 갔다. 비록 타자에 의해 이식된 근대였지만, 1930년대 들어 한반도인들은 식민지 모국 일본뿐 아니라 만주 신경(창춘)과 하얼빈 일대까지 활동무대를 넓히며 근대인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찾아나가기에 이른다.

경제, 문화, 교육 등 한성을 중심으로 한 주요 도시들부터 한반도에서는 가히 르네상스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새 세상이 펼쳐진다. 한반도 역사상 유례가 없는 번영의 시기였다. 그러나 한 가지 해결되지 않는 결정적인 것이 더 많은 근대로의 진보를 가로막았다. 바로 정치였다. 식민 피지배자로서의 한반도인들은 경제·문화 활동과 교육을 통한 각성의 뒤에서 2등 국민이란 신분과 자격에 머물러야 했다.


3. 조선인이 더 환호했던 육군특별지원병제도...왜?

3.1만세운동 뒤부터 시행된 총독부의 문화정책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조선의 기업가와 언론인 등의 사회지도층 인사들 중심으로 식민 모국으로부터의 참정권 획득 시도가 지속됐다.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1938년 일본 육군성은 조선인의 황민화와 병력 자원화를 목적으로 칙령 제95호 ‘육군특별지원병령’을 공포한다. 육군특별지원병제는 38년 이전까지 일본국 호적법과 병역법 적용에서 배제해 왔던 제국신민(조선인)에 대해 병역을 부여하는 일본 식민지 최초의 군사동원이었다. 

식민 모국 일본정부의 이러한 결정은 궁극적으로 조선을 하나의 국가 체제로 수렴하기 위한 시도였고, 한반도인들을 일본 내지인들과 차별을 없애 하나의 국민이란 정체성으로 가져가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참정권을 부여함으로써 조선의 자치권을 인정하고, 한반도인에게 권리와 의무를 지닌 근대적 시민권자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렇게 시행된 육군특별지원병제는 도지사, 총독부, 조선군사령부가 실시하는 세 차례에 걸친 엄격한 선발 전형을 거쳐야 했다. 물론 그 선발 전형으로 가기 전에도 호주 및 친권자의 동의와 부윤과 읍면장 등 지역유지의 신원보증이 절대적이었다. 그렇게 신원보증을 받고 1938년부터 43년까지 6년간 지원한 17세 이상 장정들 숫자가 무려 80만 3,317명이었다. 전원 보통학교 이상을 졸업한 키 160센티미티 이상의 건장한 조선 청년들이었다. 특이한 것은 이들 지원자는 최종 선발되어 입영한 뒤에도 가계 경제력에 별다른 영향이 없는 ‘보통 이상의 생계를 영위’하는 중농층 이상의 자제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이들 중농층은 전근대 양반 출신의 상류층과 달리 출세 지향성이 강한 전근대 시기 상민 출신들로, 일제 시기 가계 경제력이 커지고 근대 교육에도 힘써 온 보다 역동적인 계층이었다. 그 자제들, 그 중에서도 특히 차남들이 대거 지원했다는 점은, 장자 중심 사회에서 차남들의 자아실현과 성공을 향한 욕망이 적극 개입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지원자의 72퍼센트가 남한 출신들로, 일제에 의한 산업화가 적극 진행된 북한 지역과 달리 남한 지역은 향촌사회의 시대착오적 반상차별, 지주제에 의한 사회적 모순, 1939년 삼남을 휩쓴 대한발(大旱魃)의 충격이 크게 작용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신분 상승과 출세 지향적인 중농층 자제들에게 육군특별지원병제는 향촌사회의 구습으로 남아 있는 신분차별과 사회적 모순으로부터의 탈출이자 입신양명을 위한 지름길로 작용했다. 그런 만큼 재수 삼수도 마다 않는 장정들이 속출했다고 한다.

그렇게 6년 동안 선발된 지원병은 최종 입영자가 1만 7,136명으로 연평균 45.9대 1의 치열한 경쟁과 선발 과정을 거쳐 2.13퍼센트만이 합격했다. 최종 선발된 장정들은 ‘황국신민의 도장(道場)’이라 일컬어지는 육군특별지원자훈련소에 입소하여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학과교육, 정신교육, 내무생활로 이어지는 일본군의 병영생활 그대로 훈련소 생활을 했다. 그들은 이 과정을 통해서 근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시간, 신체, 언어의 규율화와 함께 이른바 ‘군대식 데모크라시’를 경험했다고 한다. 즉, 생도들의 개성, 인격, 자의식을 부정하고 ‘군대식 평등’을 구현하는 인간성 개조의 불구덩이이자 더 없는 문화적 충격의 장이 바로 육군특별훈련소였고, 그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군대적 규율과 질서 그리고 정신을 체득하면서 ‘제국의 첨병’으로 거듭났다.



1939년 5월, 1기생들부터 중일전쟁에 참전했다. 이들의 참전은 멸사봉군의 상무정신으로 충만한 조선인의 군사적 자질과 잠재력을 가늠하는 역사적 무대로 뛰어듦을 의미했다. 태평양전쟁이 본격 확대되기 시작한 1943년 조선인 육군특별지원병들은 부산항을 떠나 5,00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머나먼 파푸아뉴기니를 비롯한 남양전선과 인도네시아, 버마까지 투입되어 혹독한 자연환경과 연합군이란 적의 끈질긴 추격, 그리고 처절한 생존투쟁의 와중에서 이성만으로 억제할 수 없는 욕망, 공포, 광기 등 ‘악마화’를 방불케 하는 철저한 인간성 파괴를 경험해야 했다. 육군특별지원병은 그렇게 중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을 거치면서 전문적인 군사기술과 풍부한 실전경험을 쌓았고, 투철한 국가관과 사생관(死生觀), 군인정신을 내면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패망으로 끝난 가운데 생환자 1만 1,000명은 1946년 미군정에서 실시한 군사영어학교를 시작으로 정규 군사학교 및 다양한 장교 양성 시스템을 통해 대한민국의 초급 장교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저자는 이들에 대해 “‘명령에 대한 절대적 복종, 임무 완수의 강한 책임감과 충성심’으로 무장한 전사 집단”이라고 평가한다. 백선엽 장군 또한 그들에 대해 “인내심이 강하게 단련된 이들은 사상적으로 전혀 불안이 없었고, 전투지위도 발군 능력의 발휘한” 군사전문가라고 평가했다. 피식민지 시기 이들이 제국의 군인으로서 체득한 지식, 경험, 이념은 이후 대한민국 건국을 지지하고 신생 대한민국을 전복하려는 좌익 세력 타도의 물리적 토대이자 자산이었다.

육군특별지원병 출신의 존재감은 건국 시기 좌익 세력의 반란 진압,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전쟁기를 통해 더욱 크게 부각된다. 그들은 6.25전쟁 전 시기에 걸쳐 최일선 부대장으로 스탈린이 주도하는 남침 기도를 초전에 저지·분쇄하는 군사적 역량을 발휘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국군 제6사단 제7연대장 임부택 중령이다. 임부택 중령의 7연대는 북괴군 제2군단의 예봉을 춘천 봉의산과 소양강 일원에서 격파, 퇴각시킴으로써 한강과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과 미군 및 유엔군 참전을 위한 절체절명의 3일을 확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또 다른 지원병 출신 인물인 송요찬 장군은 수도사단장으로서 1950년 낙동강전선의 기계·안강전투, 1952년 수도고지·저격능선의 고지쟁탈전, 1953년 6.25전쟁 최후의 일전이었던 금성남동지구 전투에서 중공군의 7.13 공세를 분쇄하는 등 불굴의 투혼을 발휘했다. 

이화령의 불사신 함병선 장군, 제6사단 제7연대 제1대대장으로 압록강변 초산까지 다다랐다 중공군의 포위작전을 뚫고 부하들을 이끌고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김용배 장군, 경북 일월산전투의 영웅 박노규 장군, 금성지구 백암산전투의 영웅 박경원 장군 등등 6.25전쟁은 육군특별지원병 출신 지휘관들이 왜 조국의 간성일 수밖에 없는지를 확인하는 장이기도 했다.



4. 반공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피를 흘린 나와 당신의 아버지...가슴이 먹먹

‘충성과 반역’, 이 책이 한 명의 독자인 나를 특별히 매료시킨 점은 서두에서도 말했다시피 국군 제6사단 제7연대 계급도 없이 6.25전쟁의 최전선에 섰던 17세 소년, 나의 아버지가 임부택 연대장의 말단 부하 병사였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개전 초기 사흘을 아직 소년티가 가시지 않은 앳된 얼굴로 임부택 연대장의 말단 부하로 소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진 나의 아버지는 이후 춘천에서 홍천·충주로, 김천·왜관을 돌파하여 신림에서 음성으로, 충주에서 문경으로, 신령, 화천, 김화, 평강, 신포, 원산까지 진격한 뒤 낭림산맥을 넘어 다시 양덕, 순천, 개천, 희천을 점령하고 마침내 초산 압록강가까지 다다랐다. 그러나 곧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강계의 어느 계곡에 포위됐다가 필사의 탈출에 성공한다. 그 모든 과정에 임부택 연대장이 있었다.

그리고 1.4후퇴 후 다시 한강 이남으로 밀린 1951년 1월 어느 날, 나의 아버지는 군복을 입은 지 9개월여에 만에 군번과 일등병 계급장을 부여받는다. 이후 사창리에서 중공군의 기습을 받고 죽을 고비를 넘어, 여주·이천에서 용문산으로, 설악에서 가평으로, 가평에서 다시 화천 파로호에 이르기까지 전장에서 청년이 되어 간 나의 아버지에게 전장의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이 모두 스승이었고, 그 맨 앞자리에 임부택 연대장·부사단장이 있었다.

본관이 나주이고 나주 출신인 임부택 장군은 육군특별지원병 출신으로서 춘천전투, 무극리전투, 동락리전투, 이화령·문경전투, 희천전투, 초산전투, 온정리전투, 사창리전투, 용문산전투, 금성전투 등을 승전 또는 필사의 탈출을 성공시킨 맹장이자 명장이었고, 그 명성 자체로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다.     

그리고 그 영웅은 삶과 죽음이 여반장인 전장에서 17, 18세 소년병이 자신의 목숨을 의탁한 절대적 스승이자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다. 소년병은 그 영웅을 믿고 의지하며 적을 향해 총을 쏘고 수류탄을 던지며 돌격하여 백병전까지도 불사했던 것이다. 

선친은 술이 얼근한 저녁이면 모친의 짜증을 감내해 가며 술주정 섞어 자신의 무용담을 얘기하고는 했다. 그 무용담 속에는 김종오 장군도 있었고, 장도영 장군도 있었다. 나 또한 그 얘기들을 한 귀로 들으며 한 귀로 흘려보냈지만, 나이 들어가면서 문득문득 떠오르고는 하는 것이다. 그 어렴풋한 기억 속에는 사창리에서 중공군에게 쫓기면서도 부상당한 소대장을 들추어 업고 달리며 죽을 고비를 넘긴 순간도 있다. 그러나 선친의 무용담 중에서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가장 큰 이름, 그 함자가 바로 임부택 장군이다. 

제국의 육군특별지원병 출신으로 대한민국 정체성의 모든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임부택 장군은 이제 비로소 내게도 영웅이시다. 조국의 간성! 6.25전쟁 3년, 스물도 안 된 나이로 3년을 꼬박 전장을 누볐던 나의 아버지도!

한 선배께서 얼마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밥 먹여 준 아버지부터 존경하거나 이해 또는 인정해야 어른이 되는 듯하다.’ 맞는 말씀이다. 반백을 훌쩍 넘겨 환갑을 몇 년여 남겨 놓고서야 철이 좀 나는 듯하다. 글과 책 다루는 일로 먹고 살아온 몸이 선친의 전쟁 무용담 한 줄 주의를 기울여 기록할 생각을 못 했으니 그저 후회스럽고 선친을 뵐 면목이 없다.

‘충성과 반역’을 읽으며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다. 나는 비록 선친의 전쟁 무용담을 세월 속에 다 흘려버렸지만, 내가 흘려버린 그 기억들을 누군가는 한 올 한 올 건져내어 역사 속에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그가 바로 정안기 박사다. 내가 흘려버린 선친의 전쟁 무용담이 ‘충성과 반역’이란 노작 속에 희미한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는 것을 감히 보고자 하는 나를 정 박사께서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글: 길도형 (장수하늘소·타임라인 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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