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간 현장에서 서민들과 애환 함께 한 진짜 시민운동가
시장후보 기탁금 5천만원에 후보 개인정보공개 공보물비 4천5백만원이 선거비 총액
오는 6월 지방선거 새정치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활빈단 홍정식 단장이 누구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40억원을 쓸수 있다는 서울시장 선거에 단 돈 9천5백만원을 갖고 서울시장에 도전하는 활빈단 홍정식 단장.
9천5백만원의 용도도 시장 출마에 필수적인 5천만원의 기탁금과 필수공보물인 후보 개인정보공보물비다. 그나마도 부족해 2천만원의 카드론을 빌려 겨우 이 돈을 마련했다.
그는 왜 이런 무모한 도전에 나섰을까? 그의 과거 인생을 알면 그 이유를 대충 짐작하게 된다.
관세청 근무 당시부터 부패추방운동... 한번 내뱉은 말에는 책임지고 죽을 각오로 실천
홍 단장은 문교부(현 교육부) 공무원 생활을 시작으로 관세청 공무원을 20년 넘게 지냈다. 관세청 공무원 시절에는 서울세관, 김포세관 등 전국 주요 세관에서 활약했다.
세관근무 당시 그의 활약상은 지금도 관세청 공무원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특히 야간 당직관으로 관세청 주요 간부들의 책상을 일일이 뒤지며 복무점검을 한 비화는 퇴직한 관세청 공무원들 술자리에서 지금도 흘러 나온다.
세관근무를 하면서 주위에 새겨진 이런 강직한 인상은 당시 정권실세들의 귀에 들어가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그의 행보를 눈여겨, 그에게 정치입문을 제의했지만 그는 한사코 거절했다.
이런 강직한 공무원상을 정립한 그는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공무원 길을 중도하차 한다. 이유는 IMF사태가 터지면서 관가에 불어닥친 구조조정 과정서 선배들에게 한 약속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 지금 국가를 살리기 위해선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는데, 선배님들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용퇴하시길 권고드립니다"
"만약 선배님들이 퇴직하지 않으면 저라도 솔선수범 명예퇴직에 앞장서겠습니다" 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한 그의 강한 명퇴 권유는 공무원을 철밥통으로 여긴 관세청 고위직에게 먹혀들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그는 본인이 약속한대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솔선수범 차원에서 명퇴를 신청했다.
그는 지금도 "당시 퇴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세관장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김대중 정부시절 '옷로비 사건' 당시 전국의 주요 장차관 부인들에게 '몸베 보내기' 운동이나 판검사들에게 때타월을 보내 "너 때나 벗겨라"는 대검찰청 앞 법조비리 질타시위는 당시 주요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당시 홍 단장의 이런 행보는 총선 낙선 후 절치부심 상태에 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귀에 들어온다. 정치재기를 꿈꾸던 노 전 대통령은 그에게 정치입문을 권유하며 그와 만나자고 제안했다.
첫 만남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그의 연세대 "지방자치 시대의 지방재정 확충방안" 이라는 석사학위논문을 미리 숙독해 그의 모든 것을 사전에 간파하고 대화를 시작했다.
저녁내 같이 술먹고 심지어 한밤중에 노 전대통령의 자택인 명륜동 집에 갈 것을 권유했으나 그는 심야에 방문하는 것이 실례되어 한사코 뿌리쳤다고 한다.
그런 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입문 제안을 거부했다.
정치이상은 컸으나, 가는 방향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홍 단장은 지금도 "만약 그 당시 노 전 대통령과 같이 갔더라면 참여정부 시절 장관은 충분히 하고도 남았을 것"이라고 내뱉곤 한다.
정치입문을 거절한 그는 대신 부패정치를 추방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오로지 공익과 민익, 그리고 국익을 대변한 시민운동에 주력했다.
노무현 정치입문 제의 거부하며 주류에 맞서 철저한 비주류 삶 선택, 청와대 앞에서 밤새시위까지
주류에 맞서 철저히 비주류의 삶을 선택한 그는 오로지 정의와 서민의 편에 서서 타협하지 않고 싸워왔다. 불의를 참지 못할 땐 정권의 심장부인 청와대 앞에서 혼자서 밤새 시위를 하곤 했다.
심지어 검사와 판사는 물론 국회의원, 노조간부, 주요 성직자들까지 그에게 고발당하지 않은 비리인사는 없다.
그가 추구한 것은 '좌나우' '보수와 진보' 가 아닌 오로지 애국적, 백성의 관점에서 그 모든 행동을 실천해왔다.
북한 김정일과 김정은 정권에 맞서 문산 등지를 방문 "우리 북한동포 살려내라"며 시위를 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과오를 지적하기 위해 김해 봉하마을 부엉이바위를 수십차례 방문시위를 벌였다.
전국의 주요 관공서와 일본 대사관, 중국 대사관을 돌며 "대한민국을 함부로 넘보지 말라"며 애국시위를 벌였다.
서울 일본 대사관 앞에 살다시피하며 아베 총리의 극우군국주의 행보를 강력히 규탄했지만, 2011. 3.11 일본 대지진 사태가 발생하자마자 국내에서 '일본인 돕기 운동'에 가장 먼저 나서 국내 주요 방송과 외신에 보도되기도 했다.
민익-공익-국익과 부패추방, 귀족노조에 맞서 지위고하 막론하고 검찰고발..도쿄 한복판서 항일시위도
올초에도 그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신승철 민노총 위원장, 조계사 주지 등을 철도노조 불법파업 '범인은닉죄' 로 고발할 정도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귀족노조를 옹호한 정치귀족세력에 맞서 싸워왔다.
불법파업 추방운동, 공직사회 부정부패척결운동, 종북세력척결운동, 제주강정마을, 밀양송전탑 등 국책사업훼방선동세력추방운동, 독도수호 등 15년간 아스팔트 현장에서 실천하는 시민운동가의 삶을 살아왔다.
3년전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섬주민이 연평도를 빠져나갈 상황에서 오히려 주민등록을 이전해 6개월간 연평도에서 살 정도로 애국심도 강하다.
특히 지난 2012년 일본정부의 우경화에 맞서 일본 도쿄총리 관저와 황거 앞에서 일본우경화에 항의하며 일본정부 규탄시위를 벌여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이 사건은 일본 전역과 전 세계 주요언론에 보도됐다.
일본의 동경TV나 후지TV는 한국에서 반일문제가 불거지면 그의 의로운 행동에 주목, 취재요청을 한다.
최근에도 그의 활약상은 일본 전역에 방송됐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삼성 등 대기업을 비판하며 그들로부터 협찬금을 챙겨가며 시민운동가로 성장해 왔다면 홍 대표는 지난 15년 동안 ‘기업氣살리기 운동’과 ‘불법파업 추방운동’에 자신의 공무원 연금을 쏟아가며 시민운동을 해왔다는 면에서 박 시장과는 이력과 평가가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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