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은 자신들이 그렇게 목을 매던 ‘원·판(원세훈, 김용판)’ 두 증인을 국정원 국정조사 청문회장에 세웠지만,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두 증인을 청문회장에 끌어내기 위해 민주당이 갖은 무리수를 동원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국민은 민주당이 두 사람의 범죄행위를 증명할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검찰의 기소 내용을 전면 부인하는 두 사람의 거짓말이나 허점을 낚아 올릴 촘촘한 논리의 그물망 정도는 최소한 준비해 뒀겠구나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민주당 청문위원들은 가장 기본적인 준비조차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증인선서 거부에 간단히 무너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고작 “참으로 뻔뻔한 얼굴을 가지셨다(정청래)” “도둑이 제발 저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얼마나 거짓말을 하면 선서를 못 하나(박영선)” 따위의 징징거림뿐이었다.
따지고 보면, 민주당이 전혀 예상 못 할 일은 아니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였기도 하다. 언론의 보도와 파장에 대한 염려, 재판에 대한 악영향, 발언을 빌미로 한 민주당의 정치공세 등 이런 부분들을 김용판·원세훈 두 사람이 당연히 염두에 뒀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했다면, 민주당이 증인 선서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다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그런 점에선 증인 선서의 의미를 좀 더 무겁게 받아들인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당이 죄인 취급하는 김용판·원세훈 두 사람이다. 이들이 민주당과 촛불진영에 불의로 똘똘 뭉친 악당들로 보여도 선서 거부는 엄연히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권리행사에 속한다. 민주당이 그동안 떠들어왔던 대로 두 사람이 국기문란 사건의 당사자이면서도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확신한다면 악다구니와 손가락질이 아니라 증거와 논리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그렇질 못했다.
민주당이 김용판·원세훈에 대한 비난으로 부실 국조 책임을 비켜갈 순 없다
방송과 언론에 비친 야당 청문위원들의 행태는 한심 그 자체였다. “정권이 바뀌고 토사구팽 당해 억울한 심정은 없나. 이 자리에서 진실을 말해 동정심을 얻고 국민의 따뜻한 눈물을 받아야 보호 받을 수 있다(민주당 정청래 의원, 원 전 원장에게 진실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며 유치한 이간질을 하지 않나, “국정원판 투캅스를 보는 느낌이다(통합진보당 이상규 의원, 원 전 원장과 김 전 청장의 증언 거부를 비판하며)” 등의 감정적 비난만 쏟아냈다. 특히 청문회가 끝난 후 사자후를 토하듯 짐짓 준엄한 신경민 의원의 꾸짖음은 솔직히 가소롭기까지 하다. “청문회는 듣자는 것인데 원세훈-김용판 청문회는 도대체 말하지를 않아서 듣지를 못해 무효” “증인선서를 거부한 원판은 진실을 말하기를 거부하고 국민을 모독하고 국회를 무시했다. 국민에 대한 도전이고 선전포고” “이런 사람들이 원장, 청장을 하면서 부패한 권력에 빌붙고 정치에 개입해 민주주의를 짓밟았다는 것을,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운명을 맡겼던 걸 확인했다. 한 여름의 공포영화”
재판 때문에 나오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불러낸 건 민주당이다. 불러만 놓으면 알아서들 참회의 고백이라도 할 줄 알았단 말인가? 말하지 않겠다고 버텨도 말하지 않을 수 없게끔 명백한 증거와 철두철미한 논리를 준비해야 하는 쪽은 민주당이다. 그런데 청문위원이란 사람들이 말하지 않아서 무효라는 한심한 소리를 하질 않나, ‘대국민 선전포고’ ‘한 여름의 공포영화’와 같이 말장난이나 하면서 자신들의 무능을 자랑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기가 차지 않을 수 있나. 민주당이 입만 열면 외치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란 것이다.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국정조사를 실시해야 했다면, 그 자리에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줬어야 할 게 아닌가. 기본도 안 된 자세로 국민 세금이나 낭비한 주제에 김용판·원세훈 비난으로 책임을 비켜가는 태도야말로 국민의 알권리를 무시한 게 아니고 뭔가. 고작 고압적 자세로 증인들을 다그치는 모습 보여주려고 그렇게 방송사 중계를 요구했던 것인가. 김용판·원세훈을 손가락질하는 자신들 얼굴이나 알리려고 방송사를 이용한 게 아니고 도대체 뭐란 말인가. 준비도 안 돼, 능력도 없어, 도대체 결과가 뻔한 국정조사를 관철시킨 이유는 뭔가. 다 알면서도 신통찮은 촛불집회 동력이나 얻으려는 목적은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졸작 청문회를 만든 주제에 민주당은 이젠 또 김무성, 권영세 두 사람을 청문회장에 불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정조사가 총체적 실패로 끝날 기미가 보이자 특검 요구까지 하고 있다. 하나를 들어줄 때마다 그 이상을 요구하는 식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어렵게 판을 깔아줘도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하면서 무리한 요구를 거듭하며 장외투쟁의 핑곗거리만 찾아대는 꼴이다. 그런 식으로 가서는 민주당이 더 얻을 게 없다. 촛불에 기대 국정조사를 얻어냈지만, 민주당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는커녕 김용판이란 인물만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일을 되풀이하면서 무능을 자랑하는 건 민주당 수권능력에 대한 근본적 회의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작열하는 태양이 한풀 꺾이고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민주당의 촛불이 활활 잘 타오를 것이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바로 그때가 촛불 뒤로 숨은 민주당 무능에 대한 국민 심판이 시작되는 순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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