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이의 뮤직비디오 젠틀맨 심의를 놓고 전국언론노조 KBS본부(KBS본부노조)가 벌인 ‘수작’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논리 비약과 궤변, 침소봉대, 말 바꾸기, 이중 잣대 등 온갖 수법을 동원해 언론노조가 미운 놈을 어떻게 조지는지 그 전형적인 사례를 보여준 것뿐이다. 이번 해프닝에서 얻은 작은 소득이라면 KBS 심의실이 시시각각 변하는 가벼운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지켰다는 점에서 국민의 방송다운 모습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싸이는 싸이고 심의는 심의다. 싸이가 아무리 세계적 인기가수라고 할지라도 KBS 규정에 어긋난다면 봐주기란 있을 수 없다. 이 문제는 KBS 심의규정이 현실을 반영하는가 아니면 시대착오인가와는 별개다. 만일 싸이의 유명세에 눌려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여론을 쫓았다면 그것이야말로 KBS 심의실이 비난받아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KBS는 재심의까지 원칙을 지켰고 이 과정에서 KBS본부노조는 여론에 올라타 눈엣가시 같은 심의실장 내쫓을 궁리에나 골몰했다. 원칙은 내다버리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만 추구한 셈이다.
특히 KBS본부노조가 회사와 황우섭 심의실장을 비난하는 논리는 수준이하다. “지난 5년여 간 온갖 불공정, 편파방송을 저질러놓고 일개 뮤직비디오에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 주차금지 표지판을 훼손해서 방송이 불가하다면 그동안 전국토를 훼손하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고 옹호했냐는 등의 지적에 사실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뮤직비디오 심의와 도대체 4대강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뮤직비디오 심의는 KBS의 분명한 규정이 존재한다. 이것은 이념과 정치진영에 따라 흔들리는 원칙이 아니다. 4대강이 ‘주차금지 표지판 훼손이니 방송불가’와 같은 분명한 잣대로 판가름할 수 있는 문제인가? 이념과 정치진영에 따라 또 개인에 따라 판단이 제각각인 정치적 문제 아닌가? KBS본부노조 말대로 ‘일개 뮤직비디오’의 기준과 4대강에 대한 판단 기준은 전혀 다른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죄악’이라고 못 박는 것도 우습지만 애초에 비교대상이 아닌 정치적 논란거리를 끌어들여 회사를 비판하는 논거로 사용하는 것은 KBS본부노조 의도가 정치적이라는 증거다.
지난 5년간 편파방송을 저질렀다는 주장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권의 KBS가 노무현 정권 낙하산 사장 정연주씨의 KBS가 저지른 수많은 편파·불공정 방송과 같은 짓을 저지른 적이 있었나? 노골적으로 조중동 신문과 보수진영을 씹어대던 당시 미디어포커스와 시사투나잇과 같이, 이명박 정권 때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나? 탄핵방송과 같이 공영방송이 대놓고 정권을 위해 충성했던 적이 있었나? 백번 양보해 이명박 정권의 시사뉴스 보도가 편향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해도 노무현 정권의 KBS가 보여준 그 충성방송에는 발끝도 못 쫓아간다. 그때는 군소리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보수 정권이 들어서자 편파방송 운운하는 건 추태이자 KBS본부노조의 마비된 균형감각만 자랑하는 꼴이다. 그런 KBS본부노조가 공정방송을 판단하고 심의규정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가 아닌가.
책임당사자는 심의부장, 그럼에도 KBS본부노조는 황우섭 표적 사냥하며 생떼
물론 첫 심의에 대한 노조의 비판은 원칙상 일정 부분 맞다. KBS 규정상 뮤직비디오심의위는 위원장(심의부장) 포함, 외주국·교양국·예능국 팀장 이상 각 1명과 심의실 심의위원 3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되고 재적인원 과반 참석에 과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하는데 3명만이 참석한 것은 사정이야 어쨌든 노조 말대로 규정 위반이다. 사소한 것을 심의할지라도 형식과 절차를 지켰어야 했다. 물론 심의부장에게도 원칙을 지키지 못한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당초 4명이 참석하기로 했는데 회의직전 위원 한 명이 급히 병원에 가는 바람에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던 것이다. 해당 위원이 위임을 했다지만 위임에 관한 규정이 따로 없다면 규정 위반인 것은 마찬가지다. 문제는 심의부장이 규정에 관한 문제를 지나치게 가볍게 생각해 심의실장에게 당시 이 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황 실장은 의결정족수를 채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뒤늦게 의결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다급히 심의부장에게 경위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이럴 경우 과연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걸까? 당연히 보고를 누락한 심의부장이다. 그러나 KBS본부노조는 황우섭 실장을 교체하는 것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 실장이 최종 책임자인 것은 맞지만 과연 이 경우가 그의 옷을 벗길만한 경우인가? 황 실장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심의를 강행하도록 지시했나? 필자가 확인한 바로 심의부장은 당시 보고 누락에 대해 황 실장에게 사과까지 했다. 최종 책임자라고해서 아무 때나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다. 이 경우에 책임질 사람은 당연히 심의부장이다. 그렇기에 심의부장 본인도 잘못을 인정하고 실장에게 사과까지 한 게 아닌가. KBS측의 인사 조치는 지극히 상식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명백한 사안을 가지고 KBS본부노조가 황 실장을 특정해 성명을 내고 여론몰이에 나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것은 표적 사냥이자 생떼쓰기에 불과하다.
이번 일이 황 실장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울만한 사안이 아니라는 것은 KBS본부노조 스스로도 말하고 있다. “젠틀맨’을 방송 불가 판정내린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심의규정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심의 정족수를 어긴 것은 문제가 되는데, 이것이 책임자를 경질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면 그 대상은 심의부장이 아니라 심의실장이 되어야 한다.” KBS본부노조가 단서를 단 것이 바로 “이것이 책임자를 경질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라면”이란 대목이다. 바꿔 말해 노조 스스로도 정족수를 어긴 것이 책임자를 경질해야 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노조는 황 실장이 뮤직비디오 심의과정에 심의실장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주장한다. 심의부장이 회의를 주재했다 하더라도 심의실장이 사후에라도 보고를 받았을 것이며, 절차상의 문제도 인지를 하고 있었을 게 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심의부장은 보고 누락에 대해 황 실장에게 사과까지 했다.
궤변의 KBS본부노조, 오히려 황우섭이야말로 언론노조 횡포 막을 적임자임을 증명
더 기가 찬 건 황 실장이 물러나야하는 이유로 든 KBS본부노조의 황당한 논리다. 황 실장이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그가 사전에 절차상의 문제도 인지하고 있었을 게 분명하니 징계해야 한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느 나라 징계논리인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그랬을 것’이란 가정으로 책임을 묻고 징계하는 민주국가가 이 세상에 있나? 황 실장의 해명이 거짓이라면 그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증거라도 내놓고 떠들어야 한다. 아무런 증거도 내놓지 않고 무조건 물러나라니 세살 먹은 어린아이와 KBS본부노조가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나. 딱한 노릇이다. 게다가 노조는 이번 일이 최종 책임자를 경질할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황 실장더러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그렇게 논리가 궁색하다보니 뮤직비디오 심의 문제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황 실장의 정치성향이나 과거 언행을 끄집어내 이유랍시고 대고 있는 것이다. KBS본부노조의 주장은 온통 논점 일탈에 논리 비약까지 궤변 그 자체다.
KBS본부노조가 심의실과 황우섭 심의실장을 신뢰할 수 없다면서 또 꺼내든 게 황 실장의 정치성향 문제다. 그가 지난 총선 때 새누리당 공천자들에게 필승을 기원하는 화환을 보냈다는 것과 KBS 스페셜 정율성 편의 불방을 주장했다는 점, KBS본부노조 파업을 비판했다는 점, 쌍용차 해고자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3일을 문제 삼았다는 점 등을 시시콜콜히 지적했다. KBS본부노조는 “누구보다도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심의실장을 이런 사람이 맡고 있으니 절대다수 심의위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내 심의에 대한 불신이 가실 수가 없다. 심의기준에 맞지 않는 뮤직비디오 제재, 물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심의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황우섭 실장 같은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한 이는 쉽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새 노조의 주장은 싸이의 젠틀맨은 단지 구실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백한 것과 마찬가지다. 황 실장이 언론노조의 파업을 비판하는 보수성향의 인물로 심의실 최종 책임자로 있어서는 자신들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만들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 것과 같다. 이 얘기는 무엇을 의미하나. 황 실장이야말로 과거 공영방송 KBS를 좌파정권 충견으로 만들었던 정연주 사장 시절을 꿈꾸는 KBS본부노조의 횡포를 막을 적임자라는 사실을 역설한다. 이 모든 논리는 필자가 억지로 지어내고 비약한 것이 아니다. KBS본부노조의 억지 주장에서 끌어낸 당연한 논리의 귀착일 뿐이다. 황우섭 한 명 제거하겠다고 싸이의 뮤직비디오 심의에 대한 여론을 이용하는 얄팍함, 원칙이라곤 눈 씻고 찾아보기 어려운 노조가 규정과 원칙 타령하는 이율배반, 노조의 침소봉대와 이중 잣대를 그들의 허술한 논리에서 증명해 보인 것뿐이다. 이렇게 수치를 모르는 뻔뻔한 KBS본부노조가 국민의 방송에 똬리를 틀고 있다. 이들과 황우섭 심의실장 중 누가 더 유해한가? 아마도 많은 국민은 진작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박한명 폴리뷰 편집국장 hanmyoung@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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