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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가 쓰레기보다 못한 이유

의사의 한 마디 뒤에는 수많은 전문가와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를 쓴 허현회씨가 최근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라는 책을 새로 내놓았다. 표지부터 의사의 말을 무시하라는 무시무시한 주장을 하고있다.

생물학과 기초의학을 전공한 필자에게 이 책은 엉터리 주장들이 하도 많아서 상대할 가치를 못 느낄 정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4월 30일 현재 교보문고 건강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는 등 전문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을 현혹시켜 건강을 해치게 할 상황인지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필자는 지난번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를 평가하면서 저자가 의학에 대해 이야기 할 기초적인 지식 수준에 미달하고 있음을 보인 바 있다. 이 책도 역시 작가의 수준을 여실히 드러낸다.

과학에 일자무식인 사람이 상대성이론이 어쩌고, 초끈이론이 어쩌고, 분자진화가 어쩌고 다양한 과학 영역에 대해 얼핏 주워들은 이야기에 상상을 더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늘어놓는 일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엉터리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서 전문가가 틀렸다고 이야기를 해주려면 상대성이론 전문가, 초끈이론 전문가, 분자진화 전문가가 모두 나서야 한다. 여러 전문 영역에 대해 헛소리를 펼치기는 쉽지만 전문 영역의 올바른 지식은 각각의 분야 전문가들만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론물리학자에게 분자진화에 대한 지식은 준비되어 있지 않다.

허현회씨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담배가 어떻고, 비타민이 어떻고, 항생제가 어떻고 이런 저런 주장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이 올바른 정보인지 신경쓰지 않는다면 말이다. 반면에 올바른 정보는 아무나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이루어놓은 결론을 추적해야만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역설적이게도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따위의 책을 쓰는 일보다 그 내용을 반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더 어렵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백개의 화살을 아무데나 쏘기는 쉽지만 백개의 과녁에 정확히 맞추어 쏘기는 어렵지 않은가.

이 책의 내용들을 지적하여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이 과녁을 빗나가고 있음을 보이고 정확한 과녁으로 인도할 계획이다. 그러나 모든 주장들을 다루려면 책보다 수십배 많은 지면이 필요하기 때문에 몇 가지 내용만 짚어보겠다. 저자가 화살을 엉뚱한 데에 쏘고 있음을 확인하고 다른 화살들에도 신경을 쓰지 않길 바란다.

담배

저자는 맨 처음 주제로 담배를 다룬다. 담배가 건강에 해롭고 암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음모이며 오히려 건강에 유익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책의 14페이지에서 73페이지까지 담배에 대해서 통계가 잘못됐다느니, 천연과 합성은 다르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과학자들의 입장은 어떨까? 2004년에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흡연 및 간접흡연과 암에 대해서 정리해 자료집을 발표했는데 1450페이지가 넘으며 인터넷에 공개되어 누구나 읽을 수 있다. (http://monographs.iarc.fr/ENG/Monographs/vol83/mono83.pdf)

담배에 관련된 수많은 통계뿐만 아니라 분자 수준에서의 화학반응, 세포내의 반응, 생체 내에서의 대사과정, 동물실험 등에 대해 "간추려 요약한" 자료가 1500 페이지다. 그 자료집에서 인용한 연구논문들과 보고서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다. 또 그 연구들이 인용한 인접 분야의 연구들까지 합치면 수십만 페이지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

의사가 "담배가 해로우니 끊으라."고 하는 말 한 마디의 이면에는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고로 만들어진 압도적인 데이터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자, 당신은 허현회의 주장을 믿겠는가, 의사의 주장을 믿겠는가?

섹스

저자는 콘돔이 암을 유발하고, 각종 성병은 면역체계가 정상이면 쉽게 회복되기 때문에 성병 예방을 위해 콘돔을 사용하라는 권고를 따르지 말라고 주장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쉽게 인과관계가 드러나보이지 않는 담배와 암에 해서 그렇게 꼼꼼하게 정리한 과학자들과 보건 전문가들이 콘돔에 암을 일으키는 물질이 들어가는 꼴을 보고만 있겠는가?

에이즈에 걸린 사람과 섹스를 해도 에이즈에 감염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우리 몸에는 항체 등 면역물질이 담긴 체액과 피부가 1차로 병원체의 침입을 막고 병원체가 감염하더라도 면역계가 맞서 싸운다.

그러나 병을 일으키는 세균과 바이러스들이 현재까지 남아서 우리를 괴롭힐 수 있는 이유는 먼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면역계와 싸워 이겨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면역계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고 예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콘돔으로 예방할 수 있는 성병 중에는 에이즈나 매독 처럼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인 질병들부터, 암을 유발시켜 1급 발암물질로 지정된 인유두종바이러스(HPV), 평생 감염된 상태로 남아 종종 성기에 물집을 발생시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 불임을 일으키는 임질 등 여러가지가 있다.

미국 CDC의 자료에 따르면 매년 6만명이 매독에, 78만명이 헤르페스 바이러스에, 82만명이 매독에 감염된다고 한다. 간과할 수 없는 숫자다.

 




정신착란을 일으키고 목숨까지 앗아가는 매독은 항생제가 없던 과거에는 공포 그 자체였다. 모짜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도 매독에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허현회는 병원에 가지 말라, 의사를 믿지 말라, 항생제를 쓰지 말라고 주장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성병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현대의학과 의사와 항생제의 은총 덕분이다.

천연과 합성

허현회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 중에 하나가 천연과 합성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자구조가 같으면 같은 물질일 뿐이지 그것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는 의미가 없다. 외부에 있을 때에는 여러 다른 성분들과 섞여있어서 달라 보일지 몰라도 몸 속에 들어오면 각각의 분자 상태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나, 길에서 주운 돈이나, 훔친 돈이나 기분은 다를지 몰라도 결국 똑같은 돈인 것처럼 말이다.

합성화학물질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MSG도 물에 녹으면 생명체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글루탐산이라는 아미노산과 나트륨으로 존재한다.

생태계의 기본 원리는 에너지는 흐르고 물질은 순환한다는 것이다. 지구상의 물질들은 천 년 전이나 만 년 전이나 일 억 년전이나 그대로 존재해왔는데 단지 화학반응을 통해 형태만 바뀔 뿐이다. 화학반응은 미생물, 식물, 동물 등 생명체 내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지표면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지하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는 공장에서 석유를 원료로 뽑아낸 제품을 '합성화학물질'이라고 여기지만 석유도 한 때는 지구상의 생명체였다. 땅 속에 묻혀서 오랜 시간 화학반응을 거쳐 석유가 된 것이다. 휘발유 같은 물질도 결국 '천연'의 석유에서 추출한 '천연' 물질이다.

천연과 합성의 구별은 무의미하다. 그저 널리 알려진 잘못된 상식일 뿐이다. 사람들이 '천연'이 쓰여있으면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는 사실이 그것이 실제로 의미가 있음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가 쓰레기보다 못한 이유

이 책이 100% 틀리지는 않았다. 개중에는 옳은 이야기도 소수 섞여있다. 초보자라도 수많은 화살을 쏘다보면 맞추는 경우도 있지 않겠는가.

옳은 이야기가 조금 들어있다고 해서 참고할 가치가 조금이라도 생기는 것은 아니다. 책에 담긴 내용 중 옳은 부분만 골라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전문가에 불과하며 이미 옳은 지식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새로 얻을 게 없다.

쓰레기는 누구든 주워다 돈이 될만한 재활용품을 골라낼 수 있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에게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엉터리 정보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 책에서 올바른 정보를 골라 취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 책은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앞서 언급했던 담배와 암에 대한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 의사, 보건당국이 하는 이야기는 대수롭지 않아 보일지 몰라도 그 뒤에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어마어마한 근거가 있다. 비전문가들이 하는 여러 솔깃한 이야기들을 전문가, 의사, 보건당국이 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은 허현회의 책과 15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모두 읽고 담배가 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직접 판정할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허현회의 모든 주장에 대해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전문가들이 동의한 이야기를 전하는 의사를 믿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 기사는 사이언티픽 크리틱스(http://scicri.com/)의 제휴로 제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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