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국민으로부터 차갑게 외면당한 데에는 박근혜 후보의 책임만 있는 건 아니다. 아무리 박 후보가 올림픽 뒤에 숨어 조용한 경선을 고집했다 하더라도 다른 후보들이 그 같은 꼼수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애당적 판단을 내렸다면 지금 같은 최악의 경선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공천헌금 파문이란 사태까지 덮친 새누리당의 꼴불견 경선은 최악의 골리앗 후보 박근혜와 최악의 다윗 후보 비박주자들이 함께 만들어 낸 웃지 못 할 한 편의 코미디극이다.
특히 용의 꼬리도 아닌 지렁이의 꼬리를 자처하는 비박주자들의 한심한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암담한 새누리당의 미래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공천헌금 사건으로 당이 밑둥까지 흔들리는 마당에 당의 미래보다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입지 다지기에만 올인한 듯한 이기적인 모습들은 실망 그 자체다. 박근혜 비판경쟁에 진정성은 보이지 않고 정략과 계산만 느껴진다. 공천헌금 파문을 놓고도 적당한 선에서 적당히 완급을 조절한 ‘박근혜 책임론’ 제기는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덜어주려는 인상마저 풍긴다.
주지하다시피 새누리당의 공천헌금 파문은 당의 존립을 전면 부정하는 심각한 사건이다. 과거 한나라당의 구태정치와 단절하기 위해서란 이유로 비대위를 꾸려 당명도 바꾸고 정강정책도 바꿨다. 무엇보다 개혁의 핵심은 공천혁명이라며 공천물갈이를 통해 당의 얼굴들을 싹 바꿨다. 당시 공천심사위를 통해 공천을 주도했던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도덕성 공천, 인품 공천이라고 생각한다”며 자화자찬까지 했었다. 그랬던 그 공천의 실체가 현기환, 현영희, 친박 측근들이 줄줄이 거론되는 추악한 돈공천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공천헌금 사태로 당은 기로에 섰는데 1% 지키려고 자기를 못 던지는 비박주자들
한나라당의 새누리당 변신이 이렇듯 대국민사기극으로 판명되고 있는 마당에 비박주자들이 경선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은 이들이야말로 공천헌금 파문 사태로 인한 당의 진짜 위기를 모른다는 점을 방증한다. 사태가 벌어지고 난 후 이들은 당의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며 경선보이콧 선언을 했다가 “경선은 국민과의 약속”이라며 압박에 나선 박근혜측에 백기투항하고 불과 사흘만에 복귀했다. 경선만이 국민과의 약속은 아니다. 새누리당 탄생 자체가 국민에 대한 거대한 약속과 맹세였다.
새누리당이 국민을 배신한 사건, 당의 탄생 자체가 부정되는 사건이 일어난 상황에서 경선에 복귀하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하단 말인가? 비박주자들은 자신들을 던져야 했다.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 이들이라면 당의 존폐가 달린 이번 사태에 대해 통한의 책임감을 느껴야 했다. 박근혜의 책임을 말하기 전에 우선 자신들부터 책임을 지려는 큰 정치인의 모습을 보여야 했다. 후보를 사퇴하고 자신이 가진 1%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당을 살리려는 최소한의 진정성을 보여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 중 그 누구도 그런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민이 아무 관심도 주지 않는 새누리당의 불행한 경선이 진행되고 있는 데에는 이런 비박주자들의 이기심과 무책임 탓이 크다. 박근혜라는 거대한 골리앗과 맞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신을 던져도 될까 말까한 싸움에서 그나마 가진 1%를 지키려고 아등바등 하고 있으니 국민이 그런 못난 비박주자들에게서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 공천헌금 사태에 대해서도 말로는 “당이 무너질 수 있다. 적당히 넘어가선 안 된다” “공천헌금은 성매매보다도 나쁘다” 등 말로만 무성할 뿐이다. 최종 책임자인 박근혜 후보에 책임을 묻고 당을 구하기 위해 행동으로 나서는 이는 단 한명도 없었다.
비박주자들 말로만 “당 위기” 행동으로는 ‘박근혜 스파링 파트너’
말로는 당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라면서도 행동으로는 당이 무너지도록 방치하고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해당행위자들이라고 불러 마땅하다. 몇 개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검찰수사 결과에 따라, 그것도 사실로 확정되면 황우여 대표가 사퇴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고작 사흘 만에 초라히 복귀했다는 건, 경선보이콧 선언 자체에 진정성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당의 쇄신이나 환골탈태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는 무의미한 약속에 복귀했다는 건 당초 보이콧 선언이 단지 박근혜에 대한 위력시위 차원밖에 안 됐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말로 이번 사건이 당의 존폐가 걸린 위기라고 걱정했다면 이런 가벼운 처신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의 위기는 이런 식으로 외면하고 고작해야 ‘박근혜 때리기’ 소재 정도로만 활용하는 비박주자들은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충성 경쟁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당내 민주주의는 죽고, 벌써부터 돈공천 파문으로 싹수가 노래 당의 미래가 암울한데도 정수장학회 등 박 후보의 아킬레스건을 적당히 털어내 주는 등 도우미 역할하기 바쁘다. 각종 토론회에서는 치열한 검증이 아니라 본선 무대에 설 박 후보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누가 더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잘 하나 경쟁하고 있다. 박근혜의 제일가는 스파링 파트너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김문수 스스로 “시원하게 검증하는 것이 우리 당에는 좋은 것이 아니겠느냐. 우리 당 후보가 누가 되더라도 본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제일”이라고 고백하지 않던가.
‘박근혜 부역’ 사도 걷는 비박주자, 이상돈·김종인 등 기회주의자보다 더 당 망치는 주역들
이런 비박주자들은 경선이 끝나면 아마도 모두 선대위에 합류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나설 것이다. ‘박근혜로는 대선 필패’라는 그들의 평소 주장이 민망할 정도로 그때부턴 박근혜 칭송 경쟁에 나서게 될 수도 있다. 김문수의 멱살을 잡았던 지지자들은 박근혜를 칭송하는 김문수를 칭찬하느라 손가락과 입이 바빠질 것이다. 애초에 당을 걱정하기보단 이기심이 먼저였던 비박주자들이 ‘박근혜 대선 필승론’에 나설 건 뻔한 일이다. 그런 이들을 박근혜 지지자들은 뭐하러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공격하나? 그들에게 곧 환호하게 될 당신들 아닌가?
그러나 비박주자들이 이런 식으로 사실상 ‘박근혜 대세론’ 강화에 나서며 조연을 자처해봐야 새누리당의 대선 승리는 요원하다. 공천헌금 파문 수습한다고 아무리 박 후보가 꼬리를 잘라내고 책임을 회피해봐야 그 궁색한 모습에 국민이 박수치기 어렵다. 말살된 당내 민주주의, 사당화 등 출발 당시부터 누적되어온 온갖 문제와 더불어 공천헌금 파문을 통해 마침내 드러난 새누리당의 대국민사기극이 폭로된 마당에 정도를 피하고 사도만 걸어선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런 사도의 길을 비박주자들은 걷고 있다. 그 길은 당이 대선에서 패배하고 보수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비박주자들은 이상돈 등 보수를 참칭한 기회주의자들과 김종인, 윤상현 등 기회주의 정치꾼들보다 어떤 면에서 훨씬 더 추한 이들이다. 당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진정한 박근혜의 ‘부역자’ 노릇을 하며 사실상 당을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골리앗과 다윗이 야합한 짜고 치는 이 싸움의 결과는 뻔하다. 골리앗이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다윗이 했어야 할 정의로운 돌팔매질을 둘 다 피하지는 못할 것이다. 국민을 다윗으로 만드는 새누리당의 2012년 대선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phm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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