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란 말의 가치가 길바닥에 흔히 뒹구는 돌멩이 수준으로 떨어진 세상에서 진짜 원칙주의자를 만났을 때의 기분은 묘하게도 양가적이게 된다. 특히나 선거를 앞두고 너도 나도 자신의 이기심을 원칙으로 포장해 표 모으는 데만 정신이 팔린 정치꾼들의 너절한 ‘원칙팔이’가 횡행하는 천박한 세상에선 더욱 그렇다. 새삼 감탄을 하면서도 그 원칙주의자의 세상살이가 남들처럼 적당히 타협하고 눈감으며 내달리는 순탄대로는 아닐 것이다, 그가 그 이유로 더 중히 쓰이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방향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고영주 변호사님이 그런 인물 중 한 사람이다. 보수우파 진영에는 때에 따라 시류에 편승하며 잇속계산부터 하거나 입신양명에만 눈이 밝은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자기 양심과 후배들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분들도 여럿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대선을 앞두고 대승적 원칙을 따르기보다는 정치적 호불호나 자신의 고정관념에 의해 평소의 불편부당한 평정심을 잃고 약해지는 분들이 적지 않아 실망감이 큰 상황에서 고 변호사님과 같이 여전히 원칙을 강조하며 보수우파 진영의 울타리 역할을 자임하는 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또 하나의 행운이 아닌가 싶다.
보수우파 진영이 보고 배워야 할 가장 큰 교훈으로 고 변호사님의 넓은 포용력을 들고 싶다. 그는 원칙이 분명한 사람이다. 30년 가까운 검사생활 중 공안전문가로서 한 우물을 팠던 그는 이념과 안보 문제에 있어 누구보다 원칙이 확고하다. 그러나 그 이념과 안보의 잣대를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가 ‘누구를 반대하니 너는 좌파’ ‘5.16은 쿠데타라 했으니 너는 종북도우미’ 따위의 수준 이하 저질의 논리로 사람을 재단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념과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아는 사람은 이념과 안보 논리로 함부로 타인을 쉽게 낙인찍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해 보인다.
고영주 변호사님은 보수우파 진영의 다양한 의견과 논리를 존중한다. 설령 자신의 생각과 의견이 달라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우파시민사회의 도움 요청이 있으면 흔쾌히 달려간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편가르기에 부화뇌동해 나의 생각과 다르면 외면하고 협력하기를 거부하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는 극단적 논리를 고집하는 이들이 보고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다. 또 특정 정치인의 논리가 보수우파의 논리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타도 대상으로 삼아 쳐내기에 급급한 천박한 논리를 고집하는 이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할 대상이다. 희생정신과 포용력, 관대함 이런 것들이야말로 현재 보수우파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덕목이 아닌가.
그런 그가 좌파세력의 공격대상이 돼버린 MBC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게 됐다. 신임 방문진 감사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비록 그가 이사가 아닌 감사로, 노영방송으로 전락한 MBC 정상화를 위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고 변호사님이 가진 원칙과 소신이라면 노조에 의해 흔들리는 MBC의 위상을 제대로 바로 잡는 데에 큰 역할을 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있다. 고 변호사님과의 만남은 그런 필자의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어 주었다.
“공영방송의 원칙을 깬 것은 MBC노조이며 내 소신에 반하여 노조의 편을 들 수는 없다”
고영주 변호사님은 만남의 자리에서 우파진영의 리더들을 칭찬하기 바빴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와의 개인적 인연을 곁들여가며 이론가로서 뛰어난 실력과 훌륭한 면모를 설명했고, 또 한 분의 소신 있는 우파의 리더 중 한 분인 양영태 박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아마도 고영주 변호사, 조갑제 대표, 양영태 박사 등 이 분들이 모든 면에서 생각과 가치기준이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교류하고 인정하는 모습 그 자체는 증오와 편협한 사고, 이기심으로 가득한 보수우파 진영 전체가 보고 배워야 하는 모습이 아닐까. 특히 겸손한 태도로 지위의 높낮이가 아닌 상대를 있는 그대로 칭찬할 줄 아는 고 변호사님의 진정어린 자세는 필자와 같은 한참 어린 후배들이 새겨야 할 모범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보수우파의 큰 품’인 고영주 변호사를 떠올리면 마냥 기대고만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 싶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면서도 편협하지 않은 넓은 품으로 보수우파를 다 안으려는 태도, 이기심보다는 희생정신이 더 빛나는 모습에서 정치권을 보며 실망한 마음의 위로마저 얻는 듯하다. 지금까지 보수의 어른들이 후배들과 어린 세대에게 잘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을 바로 고 변호사님을 통해 보면서 보수의 혁신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념과 안보를 우선시 하는 게 편협한 사고와 불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이 좌파의 전유물처럼 되어서도 안 된다. 보수는 이념과 안보의 가치를 말하기보다 미운 놈 때려잡기, 내편의 흠을 덮는 방편으로 악용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대중포퓰리즘을 경계하되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종북의 교활함에 눈을 부릅뜨되, 종북으로 마녀사냥을 즐겨서도 안 된다. 지성과 감성의 조화야말로 보수 혁신의 길이라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보수가 지녀야할 지성과 감성을 지닌 큰 뿌리로 자리 잡은 고영주 변호사님의 존재가 든든하다. 그가 보여주는 보수의 뿌리가, 깊고 넓게 퍼져 오래도록 기억되는 진한 향기로 남길 바란다.
폴리뷰 편집국장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phm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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