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 ‘불통’ 이미지의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의 대권출마선언 장소로 서울 영등포의 타임스퀘어 광장을 선택했다고 한다. 경선룰 논란 등을 거치며 부쩍 강화된 부정적 이미지를 덜어내기 위해서 고심 끝에 선택한 장소라는 것이다. 이상일 캠프 공동대변인이 “복합 쇼핑몰인 타임스퀘어 광장은 각계각층의 국민이 많이 다니는 열린 공간”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박 전 위원장의 답답하고 폐쇄적인 이미지 해소를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당초 박 전 위원장 캠프측이 출마선언 장소로 고려했던 후보지들은 국회 앞 잔디광장, 한강시민공원, 구로디지털단지, 올림픽공원, 전쟁기념관, 국립현충원 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러 이유들로 배제되고, 최종적으로 타임스퀘어 광장으로 결정난 것이다. 박 전 위원장은 대선 승리를 위해선 새누리당 경선이 국민의 시선을 받을 수 있도록 활력이 넘쳐야 하고, 이를 위해선 다른 후보들이 최선을 다해 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도록 완전국민경선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조언은 간단히 무시했다.
어떻게 하면 새누리당 대선 경선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극도로 무미건조한 경선을 ‘원칙’이란 욕심으로 밀어붙인 이가 자신의 대선출마 선언식은 많은 시민이 오가는 화려한 타임스퀘어 광장을 선택했으니 한편으론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이제까지 쌓아놓은 이미지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는 온갖 돌발변수가 숨어 있는 경쟁무대는 되도록 안보이게 작을수록 좋고, 자신의 이미지 선전을 위한 무대는 크고 화려할수록 좋다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불통, 독선, 경직된 박근혜 이미지 타임스퀘어 광장 출마선언이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타임스퀘어 광장만큼 박 전 위원장과 어울리지 않는 장소도 없을 것 같다. 젊음과 활기, 대중의 욕구가 폭발하는 타임스퀘어만큼 그와 이질적인 장소도 없다는 얘기다. 완전국민경선제에 대한 국민적 요구 무시, 자신보다 지지율이 낮은 후보자들, 당내 소수자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깔아뭉개는 일방독주와 독선, 쓴소리에 대한 체질적 거부 등 이런 면면들은 개방적이고 소통이 활발한 광장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걸쳐 입은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연상시킨다.
박근혜 전 위원장 스스로 만든 불통의 이미지는 타임스퀘어 광장이 가진 이미지를 이용해 지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의 불통의 역사는 오래됐고, 이미지 차원이 아닌 현실의 문제이다. 대선출마선언을 각계각층의 국민이 이용한다는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한다고 해서 그의 고질적 불통자세가 달라질리 없고, ‘별놈의 朴’들만 생존할 수 있는 새누리당의 숨막히는 반민주성이 고쳐질리 없다. 박 전 위원장의 독선, 독재, 불통 등의 부정적 이미지는 타임스퀘어 광장이 가진 민주, 평등, 소통의 긍정적 이미지를 잠식할 뿐이다.
물론, 박 전 위원장과 타임스퀘어 광장이 아주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는 복합 쇼핑몰을 배경으로 자신의 가치를 설파할 대선출정식이 소비자인 국민의 이목을 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발표된 박근혜 캠프의 진용을 보면, 보수우파를 소비하는 국민, 진보좌파를 소비하는 국민 모두를 내 손님으로 맞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인선이 시선을 잡아끈다.
이념, 철학 없이 오로지 ‘표’만 노린 캠프 인적 구성은 기괴함 그 자체
마치 없는 게 없는 복합 쇼핑몰에서 모든 손님의 취향을 다 접수하여 기어코 지갑을 열게 하겠다는 타임스퀘어의 욕망처럼 우파와 좌파, 보수와 진보, 친이와 친박을 망라한 인물들을 내세워 모든 국민의 지지를 다 빨아들이겠다는 욕망으로 번뜩인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과 홍사덕 전 의원이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조윤선 전 의원과 이상일 의원이 공동대변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 김종인 정책위원장(선대위원장 겸)과 현명관 정책위원(전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정책파트 중 외교안보 분야는 노무현정부 인물인 윤병세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꼿꼿장수’란 닉네임의 김장수 전 국방장관의 이름이 보인다. 정치발전위원회에선 박효종 서울대 교수와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호흡을 맞출 예정이라고 한다.
경제민주화란 정치구호를 경제논리로 둔갑시킨 좌파진영 인물 김종인과 ‘보수꼴통’의 이미지가 강한 구시대의 인물 홍사덕을 나란히 공동선대위원장에 앉힌 것, 친이계란 희생양에서 캠프대변인으로 내정되며 친박으로 극적 부활한 조윤선과 언론인의 양심은 내팽개칠 정도로 현업시절부터 ‘뼛속부터 친박’이었던 이상일의 기용은 볼수록 절묘하다.
‘재벌 때려잡기’란 의혹이 강한 경제민주화의 김종인과 전 전경련 부회장의 기묘한 동거, 강성보수 이미지의 김장수와 ‘남북관계만 잘 되면 나머진 다 깽판쳐도 좋다’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으로, 외교부 차관보를 거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으로 일한 윤병세의 기용, 특히 정치발전위원회에 대표적 보수우파 인물 중 한 사람인 박효종 교수와 ‘보수우파의 적’에 가까운 이상돈 교수를 함께 기용한 대목은 압권 중 압권이다.
‘국민행복’ 눈높이 아닌 ‘여왕행복’ 눈높이 맞춘 캠프의 미래는 뻔하다
박근혜 캠프의 이와 같은 인선이 보여주는 욕망은 타임스퀘어의 복합 쇼핑몰의 무한 욕망을 능가한다. 박 전 위원장측은 이런 인선을 두고 ‘국민행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좌우 모두를 욕망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분명한 의지의 피력이다. 이들이 모두 존경과 능력을 인정받는 이들도 아니고, 오히려 좌우와 이념, 신념, 진영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회주의 처신을 한 이들이 여럿에, 논리적으로 도저히 함께 갈 수 없는 이들까지 부조화의 극치를 보여도 말이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했지만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인선.
이런 인물들을 거느리고 박 전 위원장은 10일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단다.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겠다고 한다. 왕관을 머리에 쓰고 여왕으로 완성되는 그 순간을 위해 수첩공주가 대장정을 떠나는 것이다. 무한소비의 타임스퀘어에서 무한욕망의 대권주자의 출마선언만큼 또 어울리는 게 어디 있을까 싶다. 타임스퀘어 쇼핑몰이 온갖 종류의 상품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듯, 이념, 철학 모든 게 별것 아니란 듯 좌우 구색 다 맞춰 좌판에 내놓은 박 전 위원장의 쇼핑몰 흥행 성적이 궁금하기만 하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모자라느니 못한 법이다. 모두의 사랑을 받겠다고 들여놓은 극단적 상품들이 소비자들에게 다양성이 아닌 기괴함, 거부감, 혐오감으로 다가갈 땐 그나마 단골손님들도 끊길 수 있다. 소비층 확대를 위해 나름 치밀하게 계획해 들여놓았다는 상품들이 부조화와 불협화음으로 오히려 구매심리를 위축시킨다면 그 쇼핑몰의 앞날은 뻔하다. 구성된 박근혜 캠프를 보고 얼핏 이런 생각부터 드는 건 비단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폴리뷰 대표필진 - 박한명 - (hanmyoung@empas.com) 트위터 주소 https://twitter.com/phm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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